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렘17:5~8)

 

 

 

새해가 밝았습니다. 신년 첫 주일예배에 나오신 여러분과 가정 위에 주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결심을 하셨습니까? 아직 안 하셨나요? 그러면 어떤 결심을 하면 좋겠습니까?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매년 신년 초에 결심해도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 그래도 이런 통계가 있습니다. 결심하지 않은 사람보다 결심한 사람의 목표 달성률이 10배나 높다고 합니다. 물론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기는 합니다. 실제로 결심한 것을 25%의 사람들이 1주일이 지나면 포기한다고 합니다. 35%는 1개월 지나면 포기하고, 50%는 6개월 지나면 포기하고 결국 흐지부지된다고 합니다. 이 통계자료를 부정적으로 보기 쉽지만 잘 뜯어보면 긍정적인 면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결심을 하는 게 결심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죠.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리라” 그런데 개작된 말이 있습니다.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다.” 중지하지 않으며 좋겠지만 중지하더라도 결심하고 노력해보자 이겁니다. 특히 우리에겐 하나님이 붙잡아주시는 은혜가 있잖습니까!

하지만 기왕 결심을 하려면 제대로 잘 해야 합니다. 과연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결심해야 새해의 삶 가운데 승리할 수 있을까요? 겉모습 몇 가지가 아닌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결심을 해야 됩니다.

영국의 소설가 길버트 채스터튼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새해에 새로운 1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혼을 얻어야 한다.” 무슨 말일까요? 연도만 바뀌면 안 되고 영적인 변화가 있어야 모든 삶에 변화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영적인 변화를 위해 결심하는 게 좋습니다. 아무쪼록 신년 벽두에 영적인 변화를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2017년에는 정말 새로운 변화로 업그레이드된 승리의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예레미야서를 보고 있는데, 예레미야는 B.C. 600년 전후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대로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눈물로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다 백성은 점점 어려운 난국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신흥 강대국 바벨론이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해결사이신 하나님께 돌아가면 좋은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애굽 같은 강대국의 힘을 빌어 바벨론을 막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수차례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마침내 멸망합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정말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올 때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역설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가르침을 거부한 유다 백성은 영영 멸망했지만, 오늘 이 말씀을 보는 우리는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 그들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까? 그것들을 극복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인생만사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에 달려있음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합니다. 나무 비유인데 두 종류의 나무가 등장합니다. 이는 곧 두 종류의 인간 유형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게 인생 승리의 비결임을 강조합니다. 그게 바로 인생의 근본적 문제인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노력하고 힘쓰고 애써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전지전능자요 절대주권자이십니다. 그리고 심판주이십니다. 한 마디로 모든 게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시127:1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던 사람이었지만 그대로 인간적 한계를 많이 체험했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만사는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관의 관계가 좋으면 행복하고, 반대로 그 관계가 틀어지면 불행해집니다. 이게 바로 인생의 법칙입니다. 그 원리를 사도 요한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요삼2~3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데, 결국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 됩니다. 그러면 범사도 잘 됩니다. 그리고 강건합니다. 이것은 축복의 기도문이지만 신앙과 인생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원리를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의 산상수훈 가운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우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 그들인 농사를 짓느냐? 길쌈을 하느냐? 그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먹이시고 입히신다! 그런데 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을 하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자기 힘으로 산답시고 그런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니까 결국 무슨 말씀입니까? 만사형통(萬事亨通)을 원하면 먼저 만사영통(萬事靈通)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사형통을 소원합니다. 특히 새해를 맞이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만사형통을 기원합니다. 그런데 맥도 모르고 그러는 겁니다. 만사형통이 되려면 먼저 만사영통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영적으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을 때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로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세상에서 잘 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은 멸망할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설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하나님 없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곧 영원한 사망인데, 온 천하를 얻은들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반문하십니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고사하고 육신의 생명도 잃으면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재산이 100억대인데 중병에 걸렸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병세가 너무 위중해서 사망 직전입니다. 다행히 용한 의사를 찾아냅니다. 그런데 의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전재산 100억 원을 주면 고쳐주겠소. 어떻게 해야 됩니까? 100억이고 뭐고 우선 살고 봐야 됩니다. 더 달라면 빚을 내서라도 병을 고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은 얼마나 다 귀하고 시급한 문제이겠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소원하는 만사형통도 영적인 문제 해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무 비유가 바로 그런 원리를 우리에게 웅변으로 가르쳐줍니다.

[1] 두 종류의 인생 : 사막의 떨기나무 vs. 물가에 심어진 나무

본문에 나오는 두 종류의 나무는 사막의 떨기나무와 물가에 심어진 나무입니다.

① 사막의 떨기나무 : 인본주의적 인생

사막의 떨기나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인본주의적 인생을 가리킵니다. 그런 인생은 어떤 모습입니까? 렘17: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떨기나무는 키가 작은 관목입니다. 짜리몽땅한 모양이 볼품이 없습니다. 건조한 곳, 메마른 땅, 황무지에 삽니다. 그러니 무슨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 인생은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② 물가에 심어진 나무 : 신본주의적 인생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본주의적 인생을 가리킵니다. 그런 인생을 어떤 모습일까요? 렘17: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물이 풍부하니까 잘 자랍니다. 잎도 푸르청청하고 열매도 많이 맺습니다. 보기도 좋고 알찹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둘 중에 어떤 모습의 인생을 원하십니까? 저는 물가에 시어진 나무로 하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인생의 정답입니다.

[2]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 하나님과 신령한 연합 관계 – 말씀과 기도로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하나님과 신령한 연합 관계를 맺고 사는 인생을 가리킵니다. 그 연합 관계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시작됩니다. 그 후에는 말씀과 기도로 유지되고 점점 깊어집니다. 렘17:8절(상).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 ” 나무는 물을 향해 뿌리를 뻗칩니다. 물을 몹시 갈망하는 것입니다. 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습니까? 떨기나무 같은 인생과 전혀 다릅니다. 떨기나무 같은 인생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렘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인간의 힘을 의지합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거기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가운데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물가에 심어진 나무 같은 인생은 어떻습니까? 렘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의지한다는 말과 의뢰한다는 말은 같습니다. 그 말이 그 말입니다. 반복법이고 강조법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의지하며 사느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느냐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시146:3~5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신령한 연합 관계(mystical union)를 맺고 좀 더 친밀한 영적 교제(spiritual fellowship)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로 설명해 주십니다. 요15:5,7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서는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본문은 인생을 나무로 비유했는데 이 말씀에서는 가지로 비유합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포도나무와 가지 같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가 깊다는 뜻입니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가능합니다.

① 말씀으로 연합 :

먼저 우리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연합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은 시편 1편에 나옵니다. 본문과 비슷합니다. 시1:2~3 “2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서 묵상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가’인데 본래는 ‘읊조리다’ 혹은 ‘암송하다’(recite)라는 뜻입니다. 항상 말씀을 마음속에 담고 수시로 읊조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영적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잎이 푸르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형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승리 비결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대통령으로부터 체신부장관 직을 제의받았을 때 주일성수, 특히 주일학교 교사 사역 때문에 고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나중에 대통령이 주일성수를 보장해 주면서 간청해서 수락합니다. 그는 사업가로서 성경적 경영을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고, 정찰제를 처음 도입했습니다. 한국교회와도 인연이 있습니다. 옛날 종로2가 YMCA 건물을 세우도록 헌금해 준 바 있습니다. 그가 투자한 사업은 항상 성공했습니다. 말년에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회장님이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 가장 성공적인 게 무엇입니까?” 그때 그는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열 두 살 때 최고의 투자를 했습니다. 아주 가난하던 시절이었는데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 한 권을 샀죠. 그게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그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을 때 하나님의 은헤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 최고의 투자는 성경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유산이 최고입니다. 금수저 물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요즘 돌 잔치 때라도 금수저를 쥐어 보게 한다고 유행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좋은 게 성경입니다. 돌잡이할 때도 성경이 최고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새해 벽두에 무엇보다 말씀 묵상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금년에는 성경 일독을 해 보십시오. 그리고 경건의 시간(Quiet Time)을 생활화하십시오. 우리 자녀들도 그렇게 하도록 지도하십시오. 대입시 핑계를 대면 안 됩니다. 고2~고3 때라 어렵다고 한다면 갈수록 어려워질 텐데 그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핑계대거나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면 오히려 영적을 새 힘 얻어 무엇을 하든 더 잘 될 수 있습니다.

부디 말씀으로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형통한 삶을 사는 2017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② 기도로 연합 :

그리고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과 연합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친밀한 대화가 중요하듯이 친밀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신령한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빌4:6~7 “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면 영적으로 하나님과 연합되니까 마음에 평안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조차 그랬다면 연약한 우리 인간이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졸며 자니까 안타깝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오직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문구회사 피스코리아의 창업자 신중교 사장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부산 영도에서 작은 문구점을 시작했습니다. 틈만 나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10개월 만에 도매상이 됐습니다. 또 기도하던 중 무언가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959년 스테이플러와 핀을 만드는 평화공업사를 창업합니다. 본격적으로 문구용품을 제조하게 되면서 회사가 성장하자 상표를 Peace로 등록합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하면서 가위, 클립, 칼 등 신제품을 만들 때마다 히트를 쳤습니다. 마침내 국내시장 점유율 60% 를 달성합니다. 미국의 4대 문구업체인 ACE 인수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중남미, 멕시코, 중국, 일본 등지에 수출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불황이 없습니다. IMF 때도 회사가 성장했습니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에 함께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기도로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으면 결코 잘못되려고 해야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공동운명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 승리의 비결입니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쓴「독수리와 굴뚝새」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새들이 누가 제일 높이 날 수 있나 시합을 했습니다. 힘센 독수리가 유유히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모든 새들을 제치고 올라갔는데, 그 순간 독수리의 깃털 속에 숨어 있던 작은 굴뚝새 한 마리가 튀어나와 날아올라갑니다. 결국 그가 승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깃털에 올라탄 굴뚝새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성공보다 먼저 신앙의 승리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년 벽두에 다른 그 어느 것보다 신앙의 승리를 결심하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성공보다 신앙에 목표를 두십시오. 그것을 결단하십시오. 그러면 둘 다 얻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결단합니다. 왕실에서 우상 음식을 제공했는데 그것을 단호히 그 당시 고기는 모두 바벨론 신에게 바쳐진 후 조리합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도살법과 다른 방식으로 하니까 부정합니다. 그는 순결한 신앙을 결단하고 왕실 음식을 거부합니다.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그가 결단하자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환관장에게 부탁했는데 사실은 포로 주제에 그런 요청을 하면 혼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환관장이 통사정을 합니다. 먹지 않아서 빼빼 말라보이면 자신이 왕에게 문책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약간의 틈이 보이자 다니엘이 그 아래에 있는 감독에게 찾아가 요청합니다. 열흘 동안만 채식을 허락해 보고 괜찮으면 그때 가서 다시 허락해 달라고. 하나님이 감독의 마음을 움직여서 응하게 합니다. 그리고 열흘 후에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윤이 나니까 계속 채식만 하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3년 교육 기간 내내 신앙을 지키고 승리합니다. 교육 과정이 끝났을 때 왕이 직접 면접을 했는데 다니엘과 세 친구가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관리로 등용됩니다. 그 후 정권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도록 다니엘은 70여 년 동안 계속 승승장구합니다. 단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그렇다고 우리가 말씀과 기도 살기만 하면 고난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항상 고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이 승리를 보장하시기 때문입니다. 렘17: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더위와 가뭄이 닥쳐와도 물가에 있기에 괜찮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 고난이 와도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는 한 당당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담대하십시오. 바울이 증거합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어떤 고난이 닥쳐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이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따라가기만 해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떤 결심을 하셨습니까? 근본적인 문제부터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부터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쪼록 사막의 떨기나무가 아니라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