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출발하며 가져야 할 직분의식

갈1:1-5

2018년 새해 첫 주일 예배입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올 한 해 소원을 놓고 결심을 합니다. 건강을 위해 금연과 금주를 결심하는 분도 있고, 진학과 고시, 결혼, 자녀출산, 취업 등을 위해, 질병치유를 위해, 매출 향상을 위해 갖가지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새해 결심을 지킬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198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 대학교 연구팀이 213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일주일 만에 1/4, 1개월 후 절반이 실패했답니다. 한 달이 못되어 절반이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매년 새해를 맞이하여 40-45% 정도가 결심을 하고 결심한 사람 159명 중 46%가 행동이 변했고 결심하지 않은 사람은 4%만 행동을 바꿀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매년 송구영신 예배 때 기도제목을 써서 제출하고 일 년 동안 기도하는데 기도제목 써 놓고 결심하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많이 차이가 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UCLA와 워싱턴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22년 동안 성공에 대해 연구한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의 저자 로버트 마우어도 계획을 세운 사람들의 25%는 7일 안에 포기하고, 계획을 세운 사람들의 50%는 30일 안에 포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연초에 세운 계획이 성공할 확률은 8%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계획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하트퍼드셔 대학교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 박사 팀이 3천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는 새해 결심을 지킨 사람은 마우어보다 조금 높게 1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매년 우리가 결심을 하고 계획을 하지만 그 계획이 이우러지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매년 결심하고 계획한 것을 성취할 수 있을까요? 2018년도 우리 성도님들이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우고 있을 텐데 그 계획을 끝까지 성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우리 직분자들은 2018년 한 해 맡겨준 일에 대하여 소명의식을 가지고 성취해야 합니다(1).

소명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계획한 일을 잘 성취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계획을 세우지만 포기하고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쉽게 결심한 것을 포기하는 이유는 크게 보면 네 가지 정도를 들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처음부터 성취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천억 매출 목표를 잡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세울 경우입니다. 둘째는 집념이나 의지나 끈기, 열정의 부족일 수 있습니다. 장기 목표를 헌신적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집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집념이 부족한 것입니다. 셋째는 능력 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넷째는 과도한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일평생 이런 장애물들을 다 뛰어넘고 주신 소명을 이루었습니다. 일생 말년에 기록한 디모데 후서 4징 7절 말씀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여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초석을 놓았습니다. 신약 성경 27권 중 13권을 기록한 시대를 앞선 지도자였습니다. 바울은 후대 기독교의 교리, 역사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커서 혹자는 "예수가 없었다면 바울도 없었겠지만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라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소명의식이 강했습니다. 그 소명의식으로 주어진 사명을 힘써 완수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1절에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때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사도권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하여 사람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혈통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아프 안드로폰”,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기원된 것을 부인하는 말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었습니다.(디 안드로프) 사람을 통하여 얻어진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도로 부름받은 경로가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음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직분자의 소명의식입니다. 올 한 해도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회사에서 직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직분이나 직책은 하나님이 주셨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직분과 직책을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소명의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를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바울은 평생 이것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1) 소명의식을 가질 때 막연한 소명의식이 아니라 명확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의 사도로서 이루어야 할 일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도로 부를 때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라는 분명한 사명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평생 이것을 붙들었습니다.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두리뭉실한 것이 아닙니다. 대충대충, 건성건성이 아닙니다. 목표는 선명해야 잘 이룰 수 있습니다.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측정 가능해야 합니다. 달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명확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7절을 보십시오. 자신은 무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소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9절 보세요.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갈 2:9) 얼마나 명확합니까? 로마서 11장 13절에서도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바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직접 사도로 부름 받은 것을 분명히 의식하였고,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도직을 맡은 것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이것을 항상 영광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작심삼일과 인연 끊기(하이디 그랜트 할버슨 저)>라는 책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제시하는 것이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라”입니다. “살을 좀 빼겠다”보다는 “몸무게를 3kg 줄이겠다”라는 식으로 목표를 설정하라는 것입니다. “적게 먹겠다.” “잠을 더 많이 자겠다” 등과 같은 다짐은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는 “주중에 밤 10시까지 잠자리에 들겠다”라는 식으로 평가하고 확인 가능하게 계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구체적으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막연한 계획이 아니라 조건부 계획을 세우라고 합니다. 다이어트, 운동, 협상, 시간관리에 대하여 100편 이상의 연구 결과를 보니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지 미리 결정해 두면 성공 확률을 두 배 혹은 세배까지 올릴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조건부로 계획하는 것이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아주 강력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운동한다는 계획보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퇴근하기 전 30분 동안 운동한다.”라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막연한 것보다 성공 가능성이 300% 높아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실험을 해 보니까 몇 주가 지난 뒤 조건부 계획을 세웠던 이들 가운데 91%가 여전히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였지만 막연한 계획을 세운 사람은 39%에 그쳤답니다. 한 달에 한 번 잊지 않고 자기 손으로 유방암을 진단하는 습관들이기 프로젝트의 경우 조건부 계획을 세운 이들의 100% 가, 그렇지 않은 이들의 53%가 계속하고 있었답니다. 자궁경부암 검사받기에서는 조건부 계획을 세운 이들 가운데 92%가,그렇지 않은 이들은 60%가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답니다. 올 한 해 신앙생활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시길 바랍니다. 일주일에 예배 한 번 드린 분은 2번 드려야 하겠다고 목표를 세우시길 바랍니다. 전도 한 명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시길 바랍니다. 하루 기도 20분은 해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시길 바랍니다. 만만만 생명운동을 통해 해외 어린이 한 명 돕겠다는 목표를 세우시길 바랍니다.

2) 소명의식을 가질 때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평생 이룰 장기적인 소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누구에게 복음을 전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세운 교회(행13:13-14:21)입니다. 에베소, 고린도, 빌립보와 같이 한 개별 도시가 아니라 소아시아 중앙부에 위치한 로마 제국의 한 속주 비시디아, 안디옥,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등이 갈라디아 교회들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끝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9장 21절 말씀에서 바울이 항상 로마 전도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갖고 있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나는 로마에 가고 싶다’, ‘나는 로마를 보고 싶다’는 것이 바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로마에 가려고 했습니까? 사도행전 23장 11절에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로마가 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롬15:28)”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서바나가 끝이겠습니까? 바울에게 주신 소명은 유대인을 포함하여 이방인과 임금들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한 해 이루고 끝나는 사명이 아닙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평생 이룰 소명,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올해의 목표를 장기 목표 속에서 잡으시길 바랍니다. 올해만 이루고 말 목표가 아니라 장기 목표를 이룰 목표를 세우시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이루시길 바랍니다.

<겟 스마트(브라이언 트레이시)>라는 책이 있습니다. 같이 노력하고 일하는데 왜 어떤 사람은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하냐를 다루는 책입니다. 그 책에서는 실패하지 않는 노력을 위한 10가지 생각법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미래부터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분명한 목표를 세워라는 것입니다. 에드워드 밴필드 하버드 대학교 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신분 변화에 대해 50여 년 연구했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분모를 알고 싶었답니다. 개인의 경제적 성공과 실패를 진달할 때 ‘시간 전망’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밴필드는 사회 •경제적 성취 수준에 따라 최하층부터 최상층까지 일곱 계층으로 나누어 각 계층을 분석했답니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성취의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전망하는 기간을 길게 가지고 갔다는 사실을 발견했답니다. 출신지,교육 수준,현재 상황과 관계없이 오직 ‘시간 전망’만이 차이를 만드는 일관된 요소였던 것입니다. 미래에 어디에 있고 싶은지 그 목표가 분명할수록 현재 올바른 결정을 더 쉽게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은 대개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의 목표 중 하나를 염두에 두고 임무에 도전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유형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갖고 있는지 입증하는 ‘능력 입증 목표’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역량을 익히기 위한 배움에 초점을 둔 ‘경험을 통한 성장목표’입니다. 능력 입증보다 경험을 통한 성장에 초점을 맞출 때 훨씬 더 지치지 않고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실패의 경험도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직분을 받으면 분명한 장기 목표를 마음에 품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올해의 목표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제자 훈련 시간에 부부가 상의하여 노후 계획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 줍니다. 그런데 부부의 의견이 서로 달라 잘 써오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냥 되는 대로 살지 말고 신앙 안에서 신앙생활, 가정 생활, 경제 생활, 자녀 교육, 노후 생활, 봉사 생활 등 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소명의식을 가질 때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이 주님의 주신 소명을 이루면서 인생 말년에 감옥에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2-14)”

바울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갔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나아가는데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점검하며 나간 것입니다. 이룬 것을 본 것이 아니라 이룰 것을 보고 나간 것입니다. 목표를 이루는 데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작심삼일과 인연 끊기(하이디 그랜트 할버슨 저)>라는 책에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목표 수행 과정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운동을 하고 있는가 자기 점검, 평가, 피드백 구하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지금까지 얼마나 진행되었는가(기존성과 중심사고) 보다 목표지점까지 얼마나 남았는가(향후 성취 중심사고)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비현실적 낙과주의자가 되지 말고 현실적 낙관주의자가 되라고 합니다. 올 한 해 성경을 한 번 읽을 목표를 세웠으면 성경 읽기표를 정하여 매일 매일 체크해 나가며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UCLA와 워싱턴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22년 동안 성공에 대해 연구한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의 저자 로버트 마우어는 “큰일을 해내는 유일한 방법은 아주 작은 일의 반복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연초에 세운 계획이 성공할 확률은 8%에 불과하며, 계획을 세운 사람들의 25%는 7일 안에 포기하고, 계획을 세운 사람들의 50%는 30일 안에 포기한다고 합니다. 결심의 지속시간이 짧은 것은 인간은 연약해 천둥이나 맹수로부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도망쳐 살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방어반응”이라는 생존본능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어 반응이 우리 뇌를 지배하고 있어 안하던 공부, 안하던 운동을 갑자기 하면 뇌는 방어 반응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뇌가 놀라지 않도록 아주 가볍고 아주 작은 계획을 세워 아주 작고, 아주 가볍고, 아주 사소하게 반복하라고 말합니다. 작은 질문은 창의성을 자극하고, 작은 생각은 상상을 현실화시키며, 작은 행동은 끝까지 계획하게 만드는 힘이고, 작은 해결은 장애물을 제거하는 힘이며, 작은 보상은 자신감을 복 돋아 주고, 작은 순간은 위대한 성취를 만든다고 합니다.

사울에게는 수많은 난관과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도 율법주의 거짓 선생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설교를 못한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돈을 좋아한다고, 외모가 변변치 못하다고, 이중인격자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느 곳 하나 편하게 사명을 이루는 곳은 없었습니다. 때로는 옥에 갇히고, 때로는 수없이 매를 맞고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39번의 태장을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그러나 주신 사명 소명의식을 가지고 이루었습니다. 올 한 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직분자로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주신 사명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비바람이 앞길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 길 이 길은 승리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험한 파도 앞길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모진바람 앞길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고난의 길 이 길은 생명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2. 우리 직분자들은 2018년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야 합니다(2-3).

바울은 소명자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에게 무엇을 기원하고 있습니까?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은혜란 말은 헬라인들의 전형적인 인사말인 ‘카이레인’을 반영한 말입니다. 평강이란 인사말은 히브리인들의 전형적인 인사말인 ‘샬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원한 것입니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실현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입니다. 평강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루어진 하나님과 평화, 인간과 평화 자기 자신의 내적 평화입니다. 이것은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의해 오는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이야 말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엡 2:1의 말씀대로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를 살리셨던 은혜입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우리를 소망과 희망으로 인도하시는 은혜입니다. 병들어죽게 된 나에게 살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이방인인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신 은혜입니다. 완전히 패배된 나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평강은 은혜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기 위해 무엇을 하였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1)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2) 지금 이 세대에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3)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일평생을 사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어디에 가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습니다.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절박감을 가지고 이 일을 이루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2)”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직분을 통해 은혜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직분을 통해 평강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는 곳마다 은혜 떨어뜨리고 평강을 깨뜨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직분을 통해 은혜를 넘치게 하고 평강이 넘치게 하여야 합니다. 올 한 해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은혜와 평강을 넘치게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머무는 곳에 사람들을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만드는 중매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을 가지고 싸움을 붙이고 문제를 일으키고 평안을 깨뜨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가면 1908년 급성 맹장염으로 25세의 젊은 나이로 조선 땅에서 순교한 여선교사 루비 켄드릭의 묘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조선 땅에 은혜와 평안을 전하신 분입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를 파송한 텍사스 청년 선교단체에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 회원들에게 열 명씩, 스무 명씩, 오십 명 씩 아침저녁으로 조선에 나오라고 전해주세요. 만약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천 개의 생명을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는 이렇게 편지 보냈습니다.

“이곳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아요.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조선은 주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선교 본부에서는 다들 철수하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집에 가고 싶어요.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제 열정이 아니라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 엄마 사랑합니다.”

이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몸을 드려 직분을 수행했던 사람들에 의해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라고 했습니다.

3. 우리 직분자들은 2018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쓰임받는 직분이 되어야 합니다(5).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현대어 번역은 "하나님께서 모든 세대를 통해서 영원토록 영광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갈 1:5)"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하여 말씀하고 그 사도직을 주신 분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은혜와 평강을 기원한 후 하나님께만 영광께 영광을 있기를 기원하는 것을 봅니다.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을 주신 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대사로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았다고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을 보십시오.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해 한 평생 살았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바울이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하며 소와 화환을 가지고 숭배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바나바와 바울이 옷을 찢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5)”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행하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신이 영광을 받고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단의 교주들은 자기가 감람나무라고, 두 증인이라고, 육신이 죽지 않는다고, 대언자, 목자, 보혜사라고 거짓말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챕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생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24절을 읽어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읽어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드린 대제사장의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했다”고 고백하셨습니다(요 17:4).

우리에게 주신 직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2)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오늘 이 시대에서도 찾고 있습니다. 직분자들는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굴리지는 “인간은 예배드리기 시작할 때에라야 비로소 성장을 시작한다”라고 말합니다. 예배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입니다.

3)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5:16에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우리와 상관없이 영광스런 분이십니다. 이런 것을 본체적 영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런 것을 발산적 영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니까 모세의 얼굴이 빛이 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은 반영된 영광이라고 합니다.

4)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우리는 2018년도 직분자로서 우리의 사역을 통해, 예배를 통해,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겠습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열심히 사업하여, 직장인들은 성실하게 근무하여, 복음을 전하는 분들은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여, 공부하는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받은 달란트 땅에 묻어두지 말고 최선을 다해 개발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은사가 없으면 구하면 됩니다. 한 번이라도 더 예배드림으로, 한 번이라도 더 착한 행실을 함으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출발하는 2018년 첫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8년 첫 주일입니다. 세 가지를 붙들고 출발하시길 바랍니다.

일은 소명의식으로

사람에게 은혜와 평강을

하나님께는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