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61:1-3 <본문>‘(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
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
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
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
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93년 8월 9일이었습니다. 31살 된 “소피아 화이트”라는 여자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남가주대학교 대학병원 소속의 보육원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여인은 손에 38구경의 권총을 들고는 “엘리자베스 스테튼”이라는 간호사를 찾았습니다. 소피아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남편을 유혹해서 남편이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엘리자베스를 발견한 소피아는 여섯 번 방아쇠를 당겼으며, 그 중 한 방은 팔목에 그리고 다른 한 방은 배에 맞았습니다. 총을 맞은 엘리자베스는 피를 흘리면서도 응급실로 도망했으며, 그녀를 쫓아서 소피아 역시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아무도 이들을 말릴 수 없는 초긴장의 상황이었습니다.
흥분된 모습으로 엘리자베스를 찾는 모습으로 총을 들고 서있던 소피아에게 “죠앤 블랙”이라는 한 간호사가 과감하게 걸어갔습니다. 죠안은 조용히 소피아를 안았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지만, 죠안은 당시 가장 떨고 있던 소피아를 자신의 품에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는 속삭였습니다. “당신이 큰 고통 가운데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네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고통 가운데 있어요. 정말로 당신을 돕고 싶어요.”
이에 소피아는 울면서 자신이 들고 있는 권총을 내려놓았습니다. 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죠앤은 이처럼 회고했습니다. “나는 한 병든 사람을 보았고, 그녀를 꼭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사역입니다. 주님은 병든 자들을 보셨고, 그들을 돌보시기고 치유하시기에 주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아픔과 상처, 상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남이 모르게 나만의 비밀로 묻어둔 채 살아갑니다. 같이 한 집에 살고 한 솥 밥을 먹는 가족까지도 모르는 비밀로,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배우자 조차도 모르는 비밀로 마음 속에 묻어 버리고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떠한 것들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다시 생각하기 싫지만 나의 무의식 속에 남아 때로는 꿈속에서 눌려져 있는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과거의 상처나 아픔과 억압이 오늘날까지도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눌린 자인지를 고백하게 됩니다.
내가 내 스스로를 화장하고 옷을 잘 차려 입고, 남 앞에서 여유 있는 미소를 짓는 다 할찌라도, 내 속에 있는 상처와 아픔과 고통이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나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이것으로 인한 죄책감, 좌절감, 절망감, 불안감, 두려움이 어느 새 내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 빠집니다. 이 시대를 살고 많은 사람들의 솔직한 모습이기도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누가 고칠 수가 있는가 하는 큰 물음을 우리가 던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아픔과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 한 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 구세주,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놀라운 한 분, 주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개 되는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사야가 이 글을 쓰기 전에도 계셨던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주님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소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나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슬픈 자를 위로하고 슬픔대신에 기쁨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나 마음이 상한 자나, 갇힌 자나 슬픈 자는 모두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갖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위해서 주님이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여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는 강력하게 일어날 것이며,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이것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강력하고 온전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치유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로 시작합니다. 주님께 주 여호와의 영,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실 때, 강력하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사역하실 때 성령이 기름붓듯 부어졌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바로 주님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치유하시는 영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살리시는 영이십니다.
로마서 8장 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오늘도 성령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어루만지십니다. 우리를 치료하고 회복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를 치료하시도록 우리는 항상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치유를 하십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서 그들의 가난한 영혼과 심령과 육체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킵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말씀에는 치유와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 속에는 귀신과 어두움의 영을 물리치고 쫓아내는 권세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으로 많은 병자들과 연약한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은 치유와 회복을 일으키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도디 오스틴 여사가 ‘암에서의 치유’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치유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었습니다. 치유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매일 매일 고백하는 것이 제가 치유되는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선포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치유와 회복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말씀을 듣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눌림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1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과 불안과 절망감과 무력감에 눌려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까지 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들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자유를 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치유와 회복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우리가 주님께 나가기만 한다면 우리들의 모든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쉼을 주십니다.
주님은 온전하고 완벽하게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단순히 상처가 아무는 그러한 정도의 치유가 아닙니다. 나은 그 상처에서 도리어 향기가 나는 완벽한 치유입니다. 슬픔이 가시는 그러한 정도의 회복이 아닙니다. 슬픔이 간 그 자리에 기쁨의 꽃다발의 씌워지는 그러한 넘치는 회복입니다. 근심이 사라지는 그러한 치유 정도가 아니라 근심하던 그 마음과 입에서 찬송이 쏟아지는 풍성한 치유입니다. 상처와 아픔 속에 몸부림쳤던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놀라운 회복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은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먹까지 휘두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목사님께 상담을 합니다. 그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목사님은 ‘남편과 별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합니다. 별거를 하면서 두 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상처를 받습니다.
혼자 별거해서 사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무래도 내가 정신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곤 합니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부인의 질문에 남편은, 당신이 나에게 퍼부었던 그 끔찍한 말들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 남편은 가끔 ‘자기가 자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래야 제가 당신의 유산을 상속받지요.’라고 차갑게 말했습니다. 그 남편의 상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깊어지더니 마침내 그는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편은 상처를 받기만 했지 그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미안해요,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부인은 심한 죄책감에 몸부림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은 괴로움과 외로움 때문에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는 불결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들은 또 큰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처속에서 뒹굴던 이 여인이 어느 날,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상처, 남편과의 별거로 인하여 두 아들에게 준 상처, 그리고 그후 계속 정결치 못한 삶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준 더 큰 상처 등.. 이러한 모든 저의 상처가 이제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겨우 치유되어, 마치 오랜 병상생활을 했던 사람이 겨우 활동을 조금씩 하는 그러한 삶을 사는 여인이 아니라, 자기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는, 멋진 사역을 하는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케이 아더’입니다.
그녀는 이런 책을 썼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상처를 치유하신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상처를 치유했다는 단순한 간증집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들이 어떻게 치유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명확한 성경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어느 상담학자의 책보다도, 어느 카운셀러의 책보다도 더 감동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엄청난 상처를 가진 이 여인을 이렇게 치유했는가? 상처에서 피가 나지 않도록, 곪지 않도록 꿰매어서 이제는 상처가 아물어 버린 그런 정도의 치유가 아니라 그 상처에서 도리어 향기가 나도록 만든 그 완전한 치유가 도대체 어디서 왔단 말입니까? 그렇게 치유하신 분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물론, 우리는, 바로 그분은 ‘예수님이다.’라고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빨리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분으로부터 이런 완전한 치유, 넘치는 치유를 받고 있습니까? 라고 다시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슬픈 자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로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우리의 의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치유하시는 분이시요,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치유받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킬 것입니다. 이러한 치유의 은총을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