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정신의 회복 5

신앙고백을 통하여 예배하라

(로마서 10 9-13)

 

[들어가는 ]

 

오래 제가 신학교에 들어갔을 설교학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날은 같이 둥그렇게 의자에 앉아서 소그룹으로 토의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교수님이 일어나시더니 일어나 사도신경을 외우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영어로 사도신경을 고백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하자고 하니 상당히 당황스러웠고, 한국말로 해보려고 했는데 완전히 헷갈려서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헤매다가 그냥 자리에 앉은 기억이 납니다.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다른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강의를 하시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시며 학생들을 웃겼다 울렸다 하면서 열정을 다해 강의를 하신 , 수업이 끝난 다음 학생들이 강의실을 나가기 전에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내 아내가 암에 걸렸으니 아내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저는 그때 놀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휴강을 해도 되는데, 오히려 열정을 다해 강의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강의를 하실 있는가 놀랐습니다.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하여 하시는 모습을 보며, 정말 프로페셔널(professional)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배웠습니다.

 

얼마 결국 교수님의 사모님이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장례식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교수님을 위로했습니다. 저도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몰랐지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그분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상 땅에서 아내를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픕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하는 신앙고백을 정말로 믿습니다.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는 것을 정말로 믿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지금 슬픈 것이 사실이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고등부를 다닐 친구들과 사도신경을 누가 빨리 외우나 시합을 하곤 했습니다. 아무 의미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빨리 외우기만 했던, 철없던 시절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의미를 깊이 새기고 진짜 내용을 믿으며 사셨던 것을 보고, 말로 줄줄 외우기만 하는 아니라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도전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1.   사도신경의 유래와 의미

 

거의 대다수 교회에서는 주일예배 사도신경(Apostles' Creed)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영어의 creed 라틴어 ‘크레도(credo)’에서 나온 말인데, ‘크레도’는 ‘내가 ~~~ 믿는다(I believe in ~~~)’는 뜻의 동사로서 1인칭 단수입니다.

 

신경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신앙고백이지만, 동시에 전체 교회가 역사적으로 인정하는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예배에서 이렇게 공동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이러한 공동체적 의미가 있습니다. ‘신경 교회의 공식적 신앙고백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시작이 1세기의 초대교회( 번째 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 사도신경이고, 그보다 앞선 니케아 신경도 있습니다.

 

교회의 신앙고백에는 신경 외에 ‘신조(confession)’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조는 종교개혁 이후 시작된 개신교의 주요 교파들이 자기 교파의 교리적인 독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신앙고백 문서로서, 신경보다 종류가 다양하고 내용도 자세합니다. 우리 미국장로교의 헌법이 1부와 2부로 되어 있는데, 2부가 <규례서(Book of Order)>이고 1부가 <신앙고백서(Book of Confessions)>입니다. 거기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대요리문답 여러 신앙고백들이 있습니다.

 

신경과 신조에는 가지 차이가 있는데, 먼저 가장 차이가 뭔가 하면, 신경은 개인의 신앙고백이고 신조는 신자들의 그룹이나 전체 교회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신경은 1인칭 단수를 써서 “내가 ~~~ 믿는다”고 고백하고, 신조는 1인칭 복수를 써서 “우리가 ~~~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신경은 처음부터 교회의 예배 순서에 넣으려고 만들었지만, 신조는 예배보다는 교육용으로 만들었습니다. 신경은 내용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만을 언급하지만, 신조는 내용이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다른 견해들을 설명하고 상세히 논박함으로 자기 교파의 입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신경은 신앙의 핵심 사항만을 언급하기 때문에 아주 간략한 반면, 신조는 신경에 설명된 진리의 내용에 대해 광범위하고 자세한 설명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신경은 역사적으로 교회가 일치되었다는 표시인데, 신조는 종교개혁 당시와 이후에 교회가 분립되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이라고 하니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인 사도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들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신앙의 전통 아래 후대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2세기 말에 로마의 교회에서는 소위 로마신경(The Old Roman Creed)’이라는 것이 있어서 세례 받을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사용했는데, 이것이 사도신경의 바로 모습이라고 있을 정도로 비슷한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390년경에는 신앙고백이 처음으로 사도 신경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725년경에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사도신경이 확정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이 필요하게 역사적, 시대적 요인들이 있습니다. 가지로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설교나 전도를 위해 기독교 신앙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둘째, 교회가 처음 시작되고 예배에 합당한 예배 의식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교회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 신앙에 대한 체계적 교리 내용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기 전에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 확실히 알아야 했고 그것을 고백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 이단적 가르침에 맞서서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지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잘못된 교리에 대처하려면 올바른 교리가 체계화되어 있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2.   사도신경의 구조와 내용

 

사도신경을 보면 크게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고백이 12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성부에 대한 부분을 보십시오.

 

1 -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아버지, 전능, 창조)

 

사실 이것만 정말로 믿고 고백할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믿을 것이 없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큰지 수도 없을 정도로 큰데, 그런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어떤 것도 어려운 것이 없으십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나님께는,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도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보겠습니다.

 

2 -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외아들, 우리 )

3 -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성령 잉태, 동정녀 탄생)

4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박혀 죽으시고, (고난, 십자가, 죽음, 장사)

5 - ‘지옥에 내려가셨으며’ (지옥 강하)

 

영어 사도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고백을 하는데, 한국어 번역에는 부분이 들어가 있지를 않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이것이 들어 있고, 어떤 것에는 들어가 있는데, 한국 교회에서는 논쟁거리가 있는 부분을 빼고 사도신경을 하도록 했습니다.

 

6 - 장사된 사흘 만에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부활)

7 -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승천 재위)

8 -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심판)

 

그리고 성령에 대한 부분은 이렇습니다.

 

9 - 나는 성령을 믿으며 (성령)

10 -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교회, 성도의 교제)

11 - 죄를 용서 받는 것과 (사죄)

12 -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부활, 영생)

 

그런데 “거룩한 공교회”라고 영어로는 Holy Catholic Church라고 합니다. ‘카톨릭’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로마 카톨릭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사도신경 사용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카톨릭’이라는 말은 universal(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Catholic이라는 대신 Holy Universal Church 또는 Holy Christian Church라고 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3.   신앙생활을 위한 사도신경의 사용

 

1)  교리적 목적을 위한 사용

 

사도신경의 가장 특징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가장 기본적이자 본질적인 가르침들을 아주 간단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표현한 교리적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교리가 그렇듯, 사도신경도 교리 체계이기에 체계화 작업과 개인의 신앙 성장과 신앙 교육과 기독교 신앙의 변호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있습니다.

 

 

2)  예배의 목적을 위한 사용

 

사도신경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예배와의 연관성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교회의 기본적 교리는 예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도신경과 예배와의 연관성을 살펴봄에 있어 ‘신경’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경(creed)’ 전통적으로신앙의 상징이라고 불렸는데, ‘상징’(symbol) 그리스어로표시’(sign)라는 뜻입니다. 어떤 것이 표시의 역할을 자체보다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에게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이 상징, 표시라고 , 그것은 신앙 대상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경이라는 말의 라틴어크레도’(credo)마음주다 합쳐진 말로서, ‘자신의 마음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어표시 라틴어마음을 주다 연결시켜 보면, ‘신경이란교리적 표현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릴 있겠습니까? 가장 그것을 잘할 있는 것이 바로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3)  생활의 목적을 위한 사용

 

사도신경을 교리고서 배우고 예배 중에 고백했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만일 예배 중에 입으로 신앙을 고백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삶을 산다면, 그것은 신앙고백을 제대로 했다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교리 지식은 진실한 것이 아니고 신앙고백은 단지 종교적 형식일 뿐입니다.

 

 

4.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이유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우리는 매주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까?

 

1)  믿는 바를 돌아보게 해줌

 

신앙의 고백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신앙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 믿는 내용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지 중에서 ‘믿는 내용에 대한 바른 이해’는 없이 무조건 ‘하나님, 믿습니다’만 하게 되면 맹목적인 신앙(blind faith) 되어 버립니다. 반대로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없이 믿는 내용에 대해서만 따지며 머리로 생각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명목적 신앙(nominal faith), 이름뿐인 신앙이 되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고백과 관련하여 오늘 본문인 로마서 10 9-10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주 중요합니다.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9-10)

 

먼저, 진정한 신앙고백에는 ‘믿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9절에 나온 것처럼, ‘예수님은 주님이시다(Jesus is Lord)’라는 내용과,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이 믿음의 내용으로 나옵니다. 이것을 , 우리의 신앙고백의 핵심적 내용이 그리스도의 되심과 부활이라는 것을 있습니다.

 

또한 신앙고백이라는 말의 그대로,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10절에 보면 이러한 신앙고백에는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내용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믿는 내용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믿음과 입술의 고백은 사실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습니다. 사실은 같은 것입니다. 남을 속이거나 위선적으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은 마음으로 믿는 것을 입으로 말하지 않을 없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은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 사도신경의 내용을 되새기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할 , 10절에 약속된 ‘의’와 ‘구원’이 확실하게 다가오며 확신을 가질 있게 됩니다.

 

 

2)  공동체 의식을 분명히 해줌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고백은 고백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거룩한 공교회의 일원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분명하게 해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신앙을 고백할 , 한국의 교회에서도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세계 다른 곳들에서도 동일하게 고백합니다. 그럴 우리는 비록 지역과 공간이 떨어져 있어도 동일한 하나님께 동일한 내용의 신앙을 고백하며 몸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목사님이 오래 전에 중동과 지중해 연안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을 만났는데, 가장 방해가 무슬림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정교(Greek Orthodox) 동방 정교(Eastern Orthodox)에게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만 인정하는 정도이고, 개신교는 이단이나 사이비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하니까, 그들이 핍박과 오해를 “우리도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라고 했더니 적대적인 태도가 누그러지면서 마음을 열었다고 합니다.

 

사도신경이 완성된 시기가 8세기이고, 동방 정교가 로마 가톨릭과 분리된 것이 1054년이니까, 분리되기 전에 이미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고백한다고 하니까 태도가 바뀌면서 부드러워진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신경은 교회의 하나 됨을 가져오는 신앙고백이라고 있습니다.

 

 

3)  세상을 향한 선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신앙고백을 통해 세상에 선포하는 역할을 합니다. 매주 예배로 모일 때마다 하나님께 고백하는 신앙 내용은,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과 동시에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됩니다. 사도신경을 통해 우리가 믿고 고백하고 살아가는 진리의 핵심을 알림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과 생활 방식에 도전하게 되고, 복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되며,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로 초대하는 것이 됩니다.

 

 

[나가는 ]

 

혹시 사도신경의 내용 전체가 믿어지거나,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나는 사도신경을 고백할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고백은 모든 내용을 100% 확신하는 사람들만 고백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믿어지지 않더라도 입으로 고백하는 가운데 믿어지는 일도 일어납니다.

 

요한일서를 보면 ‘형제 사랑’을 강조합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형제자매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요한일서를 읽지 않는 것이 아니며, 형제자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만 요한일서를 읽을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히려 형제자매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이 그런 말씀을 읽고 영적 성장을 이뤄야 합니다.

 

사도신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여러 내용에 대해 믿어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지만, 꾸준한 신앙생활과 반복되는 고백 가운데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백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일부 내용에 대해 믿어진다고 고백하기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사람처럼 해야 합니다.

 

자기 아들이 귀신에 들려서 고쳐달라고 왔는데 예수님이 계셔서 제자들에게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고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신뢰가 떨어진 상태에서 예수님에게 “할 있거든 뭔가를 해주십시오.”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할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때 그가 외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9:24) 우리도 믿어질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도와달라고 외쳐야 합니다.

 

혹시 어떤 부분에 대한 의문이 생기거나 회의를 느끼게 때는, 내용에 대해 따로 설명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생명의 삶” 공부 같은 데서 바로 그러한 내용들에 대해 다루기도 합니다. 다른 데로 이사를 가시더라도 소속 교회의 목회자를 만나 도움을 얻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좋은 기독교 서적을 추천 받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그러한 노력은 하나님께서 내용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의 열망을 가지고서 해야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고백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도록 우리를 자극하는 거의 유일한 형태의 예배 순서입니다. 우리의 믿는 바를 마음으로 확신하고 입술로 시인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찾고 바라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릴 있게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