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신명기(37)/배반
제목 : 주제 : 신명기(37)/배반
제목 : 광야 사건을 기억하라!
성경 : 신 9:7-29
모세는 가나안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가나안을 주심은 너희에게 어떤 의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받는 축복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거역한자가 받는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만에 빠질 때가 어느 때입니까? 공로가 자기에게 있다고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할 때 사람들은 무서운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동아 출판사에서 나온 국어사전에서 교만이란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것’이라고 뜻풀이 한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지식과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더하신다는 성경 말씀과 내용을 같이 합니다.
어떤 부자가 시장에서 아주 노래를 하는 카나리아 새 한 마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부자 주인은 카나리아를 무척 사랑했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했고 또 온 동네 사람들은 카나리아 노래를 매우 좋아했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카나리아의 마음속에 교만한 마음이 들어갔습니다. 카나리아는 우쭐해져서 주인이 노래를 부르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밤낮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주인은 카나리아의 노래 소리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주인은 카나리아를 누구든지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시끄럽게 하는 카나리아를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카나리아를 길가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잠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도 교만 때문에 망했고, <왕하20:13>에 보면 히스기야 왕도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가지고 자기가 얻은 양 바벨론의 사자에게 자랑하다가 망했고, 다윗도 솔로몬도 하나님의 축복을 교만의 기회로 삼다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모세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교만해 질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어떤 백성인지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을 거역하던 백성
본문 <7절하>에 보면 “ 애굽 땅에서 나오는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던 자 ” 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 년 동안 줄곧 하나님을 거역하고 격노케 하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낳아 길러보면 자녀가 태어나는 날부터 지금까지 부모를 기쁘게 한 날이 더 많습니까 ? 아니면 부모를 거역하거나 속상하게 한 날들이 더 많습니까 ? 자녀들은 태어나는 날부터 그 부모가 죽는 날까지 그 부모를 속상하게 하거나 그 부모의 염려 거리가 되는 것이 자녀들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좀 컸다고 말대꾸하면 속상하지 않습니까?
모세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거역했던 대표적인 다섯 가지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호렙산 금송아지 사건(7-21)
8절에 보면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므로 ......” 라는 말을 했습니다. 호렙산의 사건은 출32:1-35에 나오는 것으로 모세가 계명을 받으려 호렙산에 올라간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입니다.
8-10절은 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시점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애굽 400 년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후 시내 산에 도착한 때로서 그들이 신정 국가로 공식적인 출범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수여받는 가장 엄숙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나라가 존립하려면 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7월 17일이 제헌절입니다. 그날 우리나라의 헌법이 제정되어 공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같은 제헌절이 12월 25일이라고 합니다. 대만은 크리스마스가 없기 때문에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여사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성탄절에 맞추어 헌법을 공포하게 하므로 제헌절이 되어서 그날은 모두가 쉬는 휴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1-17절은 그와 같은 순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고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특히 12절을 보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일단 스스로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속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망하는 것은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납니다.
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내가 이 백성을 보았다(I have seen this people)’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거역하는 백성들을 보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을 보면 우리 주님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상황을 다 알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에 “나를 막지 말라”(let me alone/나를 상관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데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고 너로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십계명을 그들에게 주려고 두 돌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갔는데 그 순간에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 손에 들려진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이것은 크나큰 범죄였습니다. 그들이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까?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우상숭배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상의 영광을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하여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십계명 두 돌판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들과 계약을 맺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약혼식을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혼식을 하기 전에 여자가 딴 남자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랑이 가지고 간 언약의 패물을 다 집어 던져버린 것입니다. 이미 계약을 위반하였는데 그런 백성들에게 그 계약이 새겨진 두 돌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두 돌판을 깨뜨린 것입니다.
18-21절은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도말 하시려까지 한 하나님의 진와 이때 중재 사역에 나섰던 모세 자신의 역할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수여’라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우상숭배’라는 백성의 큰 범죄를 생생하게 대비시킨 것은 금송아지 사건 당시 20세 미만이었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출애굽 제 2 세대들에게 크나큰 교훈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금송아지 사건의 중대한 의미
1>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출19:5,6)을 즉각적으로 깨뜨려 버린 범죄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하겠다고 약속하고서도(출 19:8), 미처 그 약속을 잊기도 전에 범죄한 것입니다.
2>이는 하나님을 두려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분의 신성과 영광을 담대히 모독한 죄였다는 것입니다. 즉 금송아지 사건은 지금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그 종 모세와 말씀하고 계시는 가운데서도 주저하지 않고 저지른 담대한 죄악 행위였던 것입니다.
3>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믿지 아니한 불신앙의 죄악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출애굽 이후 시내 산에 이르기까지 애굽 군대의 위험과 광야의 더위 및 추위 그리고 각종 어려움 가운데서 지켜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고서도 모세가 산에서 지체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쉽게 하나님을 불신한 경솔한 죄악이었습니다(출 32:23).
2)다베라의 사건입니다.
이것은 <민11:1-3>의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한 사건입니다.
민 11: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민 11: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민 11:3 그곳 이름을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고였더라
“다베라”-‘불타는’
3)맛사사건입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맛사와 므리바를 한 장소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근 학자들은 거의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던 서로 다른 두 장소로 보기도 합니다. 곧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이 솟아나왔던 사건이 맛사와 므리바 두 곳에서 일어났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호렙산 근처 신광야의 르비딤(모세가 이곳 이름을 맛사와 므리바라고 다시 지었다)에서 일어났습니다(출 17:1-7, 신명기 6장 16, 9장 22절에는 ‘맛사’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광야 생활이 끝날 때쯤 신 광야의 므리바(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민 20:1-13/신 9:23).
신 33: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이스라엘의 배반과 므리바 물에서 행한 모세의 거역 때문에 아론과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4)기브롯 핫다아와에서의 사건입니다.
민 11:31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민 11:32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민 11:33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민 11: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 11:35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진행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5)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입니다(신 1:19-46).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은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온 12 정탐꾼들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가나안에 들어가면 모두 죽는다고 백성을 선동한 죄입니다.
모세는 불평의 죄, 불신의 죄, 선동하는 죄를 짓고 하나님을 격노케했던 일 들을 상기시키면서 너희는 하나님을 거역하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거역한 자는 상을 받아야 합니까? 저주를 받아야 합니까? 본문 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격노케 하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14절에서도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를 멸하여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리라.”고 했으며, 19절에도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구태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옛날 죄 들을 들쳐 내면서 진노를 받을 자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말은 가나안이 주어지는 것이나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의 공로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역한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받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축복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므로 교만해 지기보다는 더 낮아져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진노를 쉬게 한 모세의 간절한 기도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격노케 하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할 때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40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본문 <9절>에도, <18절>에서도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도록 40일간을 금식하면서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모세는 진정으로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때로 모세에게 욕을 하고 돌을 던지며 불신했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지 않도록 두 번씩이나 산에 올라가서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사십 주야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모세와 내가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같았으면 자기를 배반하고 돌을 던지는 자들을 망하라고 차마 기도는 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에게 진노를 내리지 말아 달라고 40일씩이나 금식하면서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또 어쩌면 그들이 한번쯤 하나님께 혼나는 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구원의 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용서받을 수 없는 크고 무서운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에게 돌을 던지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 가나안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3.거역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본문 <19하>에 보면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셨고 .... >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 여호와께서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하루에도 여러 차례 용서합니다. 만일 자녀가 잘못하는 횟수대로 매를 들어보십시오. 아마 세상에 남아 남는 아이들이 있겠습니까? 자녀들의 첫 돌이 오기 전에 무슨 일이 날 것입니다. 어머니는 왜 자녀들을 용서합니까?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용서를 낳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마음속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게 합니다. <요3:16>을 잘 아시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를 주셨고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을 이와 같이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나 우리가 지금 누리는 축복은 그 원인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보다는 멸망을, 축복보다는 저주를 받을 자들이지만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우리가 축복을 받고 사는 줄을 알아서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시는 참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 : 신 9:7-29
모세는 가나안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가나안을 주심은 너희에게 어떤 의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받는 축복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거역한자가 받는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만에 빠질 때가 어느 때입니까? 공로가 자기에게 있다고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할 때 사람들은 무서운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동아 출판사에서 나온 국어사전에서 교만이란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것’이라고 뜻풀이 한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지식과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더하신다는 성경 말씀과 내용을 같이 합니다.
어떤 부자가 시장에서 아주 노래를 하는 카나리아 새 한 마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부자 주인은 카나리아를 무척 사랑했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했고 또 온 동네 사람들은 카나리아 노래를 매우 좋아했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카나리아의 마음속에 교만한 마음이 들어갔습니다. 카나리아는 우쭐해져서 주인이 노래를 부르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밤낮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주인은 카나리아의 노래 소리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주인은 카나리아를 누구든지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시끄럽게 하는 카나리아를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카나리아를 길가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잠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도 교만 때문에 망했고, <왕하20:13>에 보면 히스기야 왕도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가지고 자기가 얻은 양 바벨론의 사자에게 자랑하다가 망했고, 다윗도 솔로몬도 하나님의 축복을 교만의 기회로 삼다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모세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교만해 질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어떤 백성인지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을 거역하던 백성
본문 <7절하>에 보면 “ 애굽 땅에서 나오는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던 자 ” 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 년 동안 줄곧 하나님을 거역하고 격노케 하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낳아 길러보면 자녀가 태어나는 날부터 지금까지 부모를 기쁘게 한 날이 더 많습니까 ? 아니면 부모를 거역하거나 속상하게 한 날들이 더 많습니까 ? 자녀들은 태어나는 날부터 그 부모가 죽는 날까지 그 부모를 속상하게 하거나 그 부모의 염려 거리가 되는 것이 자녀들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좀 컸다고 말대꾸하면 속상하지 않습니까?
모세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거역했던 대표적인 다섯 가지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호렙산 금송아지 사건(7-21)
8절에 보면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므로 ......” 라는 말을 했습니다. 호렙산의 사건은 출32:1-35에 나오는 것으로 모세가 계명을 받으려 호렙산에 올라간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입니다.
8-10절은 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시점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애굽 400 년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후 시내 산에 도착한 때로서 그들이 신정 국가로 공식적인 출범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수여받는 가장 엄숙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나라가 존립하려면 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7월 17일이 제헌절입니다. 그날 우리나라의 헌법이 제정되어 공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같은 제헌절이 12월 25일이라고 합니다. 대만은 크리스마스가 없기 때문에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여사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성탄절에 맞추어 헌법을 공포하게 하므로 제헌절이 되어서 그날은 모두가 쉬는 휴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1-17절은 그와 같은 순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고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특히 12절을 보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일단 스스로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속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망하는 것은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납니다.
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내가 이 백성을 보았다(I have seen this people)’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거역하는 백성들을 보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을 보면 우리 주님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상황을 다 알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에 “나를 막지 말라”(let me alone/나를 상관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데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고 너로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십계명을 그들에게 주려고 두 돌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갔는데 그 순간에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 손에 들려진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이것은 크나큰 범죄였습니다. 그들이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까?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우상숭배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상의 영광을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하여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십계명 두 돌판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들과 계약을 맺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약혼식을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혼식을 하기 전에 여자가 딴 남자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랑이 가지고 간 언약의 패물을 다 집어 던져버린 것입니다. 이미 계약을 위반하였는데 그런 백성들에게 그 계약이 새겨진 두 돌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두 돌판을 깨뜨린 것입니다.
18-21절은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도말 하시려까지 한 하나님의 진와 이때 중재 사역에 나섰던 모세 자신의 역할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수여’라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우상숭배’라는 백성의 큰 범죄를 생생하게 대비시킨 것은 금송아지 사건 당시 20세 미만이었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출애굽 제 2 세대들에게 크나큰 교훈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금송아지 사건의 중대한 의미
1>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출19:5,6)을 즉각적으로 깨뜨려 버린 범죄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하겠다고 약속하고서도(출 19:8), 미처 그 약속을 잊기도 전에 범죄한 것입니다.
2>이는 하나님을 두려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분의 신성과 영광을 담대히 모독한 죄였다는 것입니다. 즉 금송아지 사건은 지금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그 종 모세와 말씀하고 계시는 가운데서도 주저하지 않고 저지른 담대한 죄악 행위였던 것입니다.
3>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믿지 아니한 불신앙의 죄악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출애굽 이후 시내 산에 이르기까지 애굽 군대의 위험과 광야의 더위 및 추위 그리고 각종 어려움 가운데서 지켜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고서도 모세가 산에서 지체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쉽게 하나님을 불신한 경솔한 죄악이었습니다(출 32:23).
2)다베라의 사건입니다.
이것은 <민11:1-3>의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한 사건입니다.
민 11: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민 11: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민 11:3 그곳 이름을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고였더라
“다베라”-‘불타는’
3)맛사사건입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맛사와 므리바를 한 장소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근 학자들은 거의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던 서로 다른 두 장소로 보기도 합니다. 곧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이 솟아나왔던 사건이 맛사와 므리바 두 곳에서 일어났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호렙산 근처 신광야의 르비딤(모세가 이곳 이름을 맛사와 므리바라고 다시 지었다)에서 일어났습니다(출 17:1-7, 신명기 6장 16, 9장 22절에는 ‘맛사’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광야 생활이 끝날 때쯤 신 광야의 므리바(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민 20:1-13/신 9:23).
신 33: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이스라엘의 배반과 므리바 물에서 행한 모세의 거역 때문에 아론과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4)기브롯 핫다아와에서의 사건입니다.
민 11:31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민 11:32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민 11:33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민 11: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 11:35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진행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5)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입니다(신 1:19-46).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은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온 12 정탐꾼들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가나안에 들어가면 모두 죽는다고 백성을 선동한 죄입니다.
모세는 불평의 죄, 불신의 죄, 선동하는 죄를 짓고 하나님을 격노케했던 일 들을 상기시키면서 너희는 하나님을 거역하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거역한 자는 상을 받아야 합니까? 저주를 받아야 합니까? 본문 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격노케 하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14절에서도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를 멸하여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리라.”고 했으며, 19절에도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구태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옛날 죄 들을 들쳐 내면서 진노를 받을 자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말은 가나안이 주어지는 것이나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의 공로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역한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받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축복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므로 교만해 지기보다는 더 낮아져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진노를 쉬게 한 모세의 간절한 기도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격노케 하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할 때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40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본문 <9절>에도, <18절>에서도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도록 40일간을 금식하면서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모세는 진정으로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때로 모세에게 욕을 하고 돌을 던지며 불신했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지 않도록 두 번씩이나 산에 올라가서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사십 주야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모세와 내가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같았으면 자기를 배반하고 돌을 던지는 자들을 망하라고 차마 기도는 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에게 진노를 내리지 말아 달라고 40일씩이나 금식하면서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또 어쩌면 그들이 한번쯤 하나님께 혼나는 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구원의 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용서받을 수 없는 크고 무서운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에게 돌을 던지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 가나안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3.거역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본문 <19하>에 보면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셨고 .... >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 여호와께서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하루에도 여러 차례 용서합니다. 만일 자녀가 잘못하는 횟수대로 매를 들어보십시오. 아마 세상에 남아 남는 아이들이 있겠습니까? 자녀들의 첫 돌이 오기 전에 무슨 일이 날 것입니다. 어머니는 왜 자녀들을 용서합니까?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용서를 낳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마음속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게 합니다. <요3:16>을 잘 아시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를 주셨고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을 이와 같이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나 우리가 지금 누리는 축복은 그 원인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보다는 멸망을, 축복보다는 저주를 받을 자들이지만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우리가 축복을 받고 사는 줄을 알아서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시는 참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