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믿는 사람들의 특권 중에 하나가 항상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인생을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살면서 크고 작은 결정, 중요한 선택을 하며 살게 되는데, 감사하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자가 양을 인도하시듯이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해 주십니다. 양은 시력이 나쁘고, 다리도 짧고 걸음이 느려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동물입니다. 약해서 맹수의 공격도 스스로 막아 없는 동물입니다. 스스로는 결코 생존할 없는 이상한 동물입니다. 반드시 목자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양에게 선한 목자만 있으면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먹을 풀도, 마실 물도 찾을 있습니다. 양에게 목자가 있느냐 없느냐는 천양지차입니다.

중요한 것은, 양이 자신의 무지, 무능을 인정하고 목자를 철처히 의지하며 따르기로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여 목자와 양무리를 떠나면 당장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후에 곧장 지름길로 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셨을까? 1차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피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중요한 이유는 광야에서 해야 일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받아야 했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야 했고, 영적으로  훈련받아야 했습니다.

 

본문 13:17-18절을보세요.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이집트에서 팔레스틴 땅으로 오는 지름길, 가장 쉬운 길은 지중해변을 타고 올라오는 길이었습니다. 걸어서 열흘 정도면 충분히 당도할 있는 쉽고 넓은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간에 전쟁에 능한 블레셋 사람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전쟁을 감당할만한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나님께서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어렵게 이집트에서 탈출해 나왔는데,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하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넓은 길이 아닌 좁은 , 지름 길이 아닌 돌아가는 홍해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강한 믿음으로 연단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여호와에게서 마음을 돌이키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도 원하는 목표에 바로 도달하게 하시기 보다 광야 훈련을 통해 천천히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인도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속히 이루어지지 않고, 바로 가지 않고 돌아서 가는 것과 같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심한 보살핌 때문에 일이 지연되고, 응답이 늦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중해변을 따라 블레셋 땅으로 직행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 했을 것이고, 많이 죽임을 당하였을 것이고, 이집트로 되돌아와서 다시 노예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최선의 (광야 ) 인도하신 것입니다.

)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맘대로 안된 것이 감사할 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되었으면, 여러분 중에 여기에 있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름 길이 아니라 돌아가는 같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었던 것입니다.

창세기의 요셉 인간적으로 형들의 시기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 일할 때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인생에서 편하고 넓은 길보다는 좁고 힘든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사랑만 받아서 가나안 땅에서 살고,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가지 않았다면, 보디발의 집에서도 일이 풀려 오래 오래 가정 총무로 살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코 시대 이집트의 총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7 풍년 후에7 흉년이 들었을 , 중동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되었을 것이며, 이스라엘이 이집트 고센 땅에 자리잡고 살게 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신앙인들 중에 광야 길을 지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압 여인으로서 행복을 꿈꾸며 이스라엘 청년과 결혼하지만, 남편이 일찍 죽습니다. 청상 과부가 됩니다. 룻은 신앙 때문에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인 보아스를 만나서 재혼을 하는데,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는 축복을 누립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도 들어갔습니다.

에스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사촌 모르드게 손에 의해 양육을 받았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비가 되어 민족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출하든데 귀한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 속에 찾아오는 고난, 불행한 사건들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있으십니다.

 

이용규선교사님의 <내려놓음> 몽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강은 직선으로 흐르는 법이 없고, 꾸불꾸불 낮은 곳을 찾아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강이 꾸불꾸불 돌아가면서 여러 지역의 땅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에는 항상 푸르름이 있습니다. 미시시피 강을 생각해 보세요. 미국 북쪽 주들로부터 뉴올리엔즈지역까지 미국의 중부 여러 지역의 땅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변에 여러 도시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이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돌아가게 하시는 것은 더욱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 우선적으로 깨달아야 것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쉽고 편한 길로 인도하시기 보다 고생의 , 인내의 길로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에는 최선의 , 생명의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보화처럼 귀하여 여겨서 챙겨가지고 나온 가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금은 보화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궁금한 이야기입니다. 수백년된 유골을 가지고 떠났을까요?

13:19절입니다.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유골을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와 이삭과 야곱은 가나안 땅을 너희 후손에게 주리라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증거로서 죽어 가나안 땅에 묻히길 원했습니다. 야곱은 죽기 전에 이집트 총리였던 요셉에게 자기가 죽으면 이집트에 묻지 말고 반드시 가나안 , 조상들이 묻힌 곳에 묻어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바로왕에게 말하여 허락받아 아버지 야곱을 가나안 마므레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 요셉도 늙어 죽을 때가 되었을 , 자손들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에, 자기 해골도 가지고 올라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죽자 그의 몸에 재료를 넣고 입관까지 하는데, 장례식을 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장례식을 생략하였다가 400 후에 모세가 유골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가게 것입니다. 실제 장례식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세겜이란 곳에서 이뤄졌습니다.(24:32)

50:25-26절을 보세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아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해골을 매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이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갖고 죽으며 그런 유언을 남긴 것은 그의 믿음이 어떠했는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요셉의 유언 속에 그의 믿음이 들어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다 했습니다.(11:22)

모세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요셉의 유골을 들고 오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잊지 않으시고 나타나셔서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할렐루야 찬양하면서 나왔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뤄주십니다.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되게 하십니다. 약속에 근거한 믿음은 그대로 이뤄집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11:1)

하나님의 약속은 불을 보는 것보다 분명히 이뤄집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의심이 많아서 하나님의 약속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약속도 믿지 못하고,죽어봐야 알지 어떻게 아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의 약속은 이런 저런 이유로 무효가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지는 것입니다.

요셉의 유골이 이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400 전에 죽으면서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임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400 후에 모세를 통해서 이뤄진 것입니다.

 

현대의 특징은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점입니다.  앞을 없습니다. 모세 시대보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 우리를 인도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분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믿을 없지만,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고 신뢰하실 있는 분이심을 믿으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13: 20-22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기둥으로 앞서 가시면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기둥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가시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표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계 계십니다.

(2)    가야 때와 서야 때를 알리는 신호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제 출발하고 언제 멈추고를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였습니다.

구름 기둥과 기둥 이야기는 본문 외에도 성경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9장에 보면, 성막이 만들어진 이후엔 성막과 함께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은 철저히 구름 기둥의 인도에 따랐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면 이스라엘은 행군을 시작하고, 구름이 멈추면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어떤 일정한 규칙을 따라 구름이 움직이거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떨 때는 구름이 성막에 오래 머물기도 하였고, 어떨 때는 구름이 잠깐 멈추었다가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날마다 계획대로 일정한 구간을 행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름이 하루동안 머물다가 떠날 때도 있고, , 혹은 1 곳에 머물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9:15-23)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실 , 가고 서는 것는 철저히 하나님께 달려 있었지, 인간에게 달려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면 가야 했고, 서라면 서야 했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오직 주님이 인도해주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구름 기둥, 기둥은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기능도 하였습니다. 사막에서 낮에는 굉장히 뜨겁기 때문에 구름이 있어야 보호를 받을 있고, 밤에는 추위로 고생할 밖에 없는데, 불기둥이 곁에 있어서 역시 보호를 받을 있었습니 .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해 주실 아니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십니다. 121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밤낮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십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 못하도록 지켜주십니다. 영혼을 지켜 주시고 출입을 영원까지 지켜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4)    광야 시대의 구름 기둥은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의 완벽한 모형이 된다고 있습니다. 구름 기둥이 나타난 후에 떠나지 않고 항상 이스라엘과 함께 하고 앞서 가며 인도해 주신 것은 믿는 자들에게 오셔서 함께 하시고 인도해주시는 성령님을 연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할 것입니다. 14:16-17,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게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게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구름 기둥은 이스라엘과 함께 했지만, 그들 속에 오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오셔서 영원히 함께 계시며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완전한, 영원한 인도자가 되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신약 시대에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1)      우선적으로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은 발의 등이요, 길의 이라고 했습니다.(119:105)

어두운 길에 등불이 있다면 길을 잃지 않고 걸을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바른 방향으로 나갈 있도록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닙니다.

 

2)      성령님은 우리가 기도할 ,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면서 인도해 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는 말하고 듣는 것입니다. 기도 시간에 간구하는 못지 않게  듣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할 있는가? 무슨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기도로써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목소리를 어떻게 알수 있나요? 전화로 마디만 들어보고도 누구의 목소리인지 금방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평소에 그와 자주 통화하였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어떻게 알아 듣고 주의 뜻을 분별해 있을까?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듯이, 우리가 기도 생활을 통해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면, 주의 음성을 듣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가장 자주 쓰시는 방법입니다.

 

3)      성령님은 때로는 꿈이나 환상과 같은 신비로운 방법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꿈을 통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다시 고향으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2) 바울 사도는 마게도니아 사람 환상을 보고, 선교의 방향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16)

 

4)      어떨 때에는 성령께서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을 부르실 ,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런데 그에게 눈을 뜨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고,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주실 때에는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다메섹의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일하셨습니다.

서도행전 13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할 , 교회가 성령의 지시를 받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떨 때에는 교회의 다른 지체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고 지시를 주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상담을 통해 인도를 받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인도 방법인 것입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 여러 조언을 구하는 것은 굉장히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그러나 조언을 구할 조심해야 점은 -조언을 구했지만 결정과 결정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상식을 통해서도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상식을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32:9절에서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말이나 노새와 같은 짐승과 인간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생각할 있는 존재, 양심이 있고, 상식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상식을 버리지 않고 상식을 활용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합니까? 안해도 됩니까? 주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결혼-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합니까? 아무나 하고 하면 됩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10장에 보면, 모세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주셨지만 사막을 알고 있었던 처남 호밥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6)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실 환경을 통해서도 인도하십니다. 길을 막으시고, 다른 길은 열어두심으로써,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블레셋 땅의 길은 막고, 홍해 광야길은 열으셨습니다.

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룻기에 보면, 룻이 시어머니와 베들레헴에 돌아와서 먹고 살기가 막막해서 보리 이삭이라도 줍겠다고 나섰습니다. 룻은 우연히 어떤 밭에 가서 이삭줍기를 하였는데, 밭이 나중에 결혼할 보아스의 밭이었던 것입니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인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룻이 보아스를 만나도록, 그래서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들어가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통해서 룻을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저도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통해 인도해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원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으로 여기까지 오게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나와서 광야를 행진할 ,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에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길을 인도해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8:14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성령의 인도를 받을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인도는 내가 원하는 대로, 크고 넓은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놀라운 섭리 속에 좁고 힘든 길로 돌아가게 하실  있음을 오늘 깨달으실 있기를 바랍니다. 강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것이 넓은 곳이 풍요로움을 주듯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을 보는 것같이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수백년이 흘러도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뤄집니다. 요셉의 유골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구름 기둥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야 했으며, 멈추고 숙영하라고 하면 구름이 오를 때까지 머물러야 했던 것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한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도를 받으시고, 기도와 성령을 통해, 교회와 상식과 환경을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실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1:15절에서 다윗은 나의 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날이 불확실하지만 우리는 아무 염려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날이 우리 주님 손에 있고, 주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