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26-27 성도가 버려야 할 것들 - ➂분노

 

비둘기 한 쌍이 가을이 되어 과일이 익자, 그 과일들을 물어와 둥지에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쨍쨍한 가을 햇살에 과일이 말라 부피가 반으로 줄었습니다. 수비둘기가 화를 내며 암비둘기에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고생해서 모은 과일인데, 그걸 혼자서 먹어버리다니.” 그러자 암비둘기는 “내가 몰래 먹은 것이 아니라 저절로 줄어든 거예요.”라고 하였지만 이 말을 믿지 못한 수비둘기는 분을 참지 못하고 암비둘기를 쪼아 죽여 버렸습니다. 며칠 후 큰 비가 왔습니다. 과일이 물기를 머금어 다시 본래의 크기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수비둘기는 비로소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크게 원통해 하였다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말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알렉산드로스 3세]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막역한 친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클레토스입니다. 한 번은 이 친구가 술에 취해서 알렉산더의 많은 군졸들 앞에서 대제를 모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난 알렉산더는 옆에 있던 병사의 창을 빼앗아서 클레토스에게 던졌습니다. 한 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창은 자기의 유일한 친구의 가슴에 박혔고 자기의 친구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이 일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그 후회와 죄책감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다 옆의 사람들의 만류로 실패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분노가 가져오는 비극과 결말을 생각 해 보게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머리가 명석하고 비상한 통찰력을 갖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너무 화를 잘 낸다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비위를 조금만 상하게 해도 분노를 터뜨렸기 때문에 부하들은 제대로 보고를 하지 못하거나 허위보고를 할 정도였습니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하였을 때 소련을 향하던 기갑사단[機甲師團, panzer division]만 동원했어도 독일은 폐전하지 않았을 것이랍니다. 그런데 그의 부관은 낮잠 자는 히틀러를 겁내어 깨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잠을 깨웠다가는 벼락같은 화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화를 잘 내는 히틀러의 성품, 그의 분노가 전쟁에서 패배한 근본 이유라는 역사가들의 색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쉽게 분노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쉽게 화를 내고 분노합니다. 그만큼 가진 상처들이 많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다"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실감날 정도로 상하고 병들어 있는 상처의 시대입니다. 상처받은 인간이 토해낸 상처의 파편이 가정과 사회 구석구석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인간은 상처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존심의 아성이 더욱 견고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토치카(Totschka 국경이나 군사상 요지에 두꺼운 철근 콘크리트 등의 견고한 자재로 만든 항구적인 방어진지.)에 홀로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성경에서는 분노라는 단어가 600번 이상 언급되고 있습니다. ‘분노 한다.’, ‘화를 낸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프’인데, 아프란 말은 사람의 코에서 나왔습니다. 즉 사람이 성을 내면, 속에서 열을 받아 코로 홧김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도 화가 나면 ‘열 받는다.’, ‘끓는다.’, ‘뚜껑 열린다.’ 열 받아 끓으면 뚜껑이 열린 것처럼 화가 크게 났다는 뜻의 표현을 쓰곤 합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 두 주에 걸쳐 분노에 대해서 정리하면서 함께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도가 버려야 할 것들로 첫째는 원망과 불평, 둘째는 탐심 셋째는 분노입니다.)

 

분노한 사람들

 

분노는 감정을 폭발시키고 때론 이성을 잃게 합니다. 행동을 자제하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➀가인의 분노는 살인까지 가져왔습니다.(창4장) 형제를 죽이는 최초의 살인입니다. 동생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자기의 예배는 받지 않음에 대한 상처를 받고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분을 크게 내었습니다.(창4:5) 분을 낸 가인을 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느냐, 네가 잘하였다면 어째서 내가 네 제물을 받지 않았겠느냐? 죄가 네 마음의 문 앞에 도사리고 있다. 잘 다스려라.” 그러나 가인은 다스리지 못하고 결국 동생을 들로 불러내어 쳐 죽였습니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교훈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왜 분을 내느냐? 는 하나님의 질문에 옳고 바른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➀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한 사람들을 보시고 분을 내셨습니다. 채찍을 휘둘리시며 다 쫓아 내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왜 강도의 아지트[(러시아어)agitpunkt]로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안식일 문제로 생긴 예수님의 의분(막3:1-6) ➁사도바울의 의분(행17:16) ➂느헤미야의 의분(느6장. 13장)

 

둘째, 분을 다스리지 못하면 마귀로 틈을 주어 범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분을 내지 말라고 하기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고 있지 말라”고 합니다. 화를 내는 것은 피할 수 없는데 죄를 짓는 데까지 발전하도록 버려두지 말고 또한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품지 말고 빨리 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계속 분을 품고 있었고 마귀가 그 틈을 타서 가인으로 살인이라는 죄를 짓게 한 것입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요일3:12) 그는 사단에게 예속되어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품고 있는 분노가 무서운 것은 마귀가 그 틈을 타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리 분을 풀어 그 틈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울 왕 역시 다윗을 향한 분노의 감정을 죽을 때까지 풀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을 만만이라는 여인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기분이 상한 것입니다. 그 때부터 다윗을 향한 좋지 않는 감정을 갖고 삽니다. 그런 사울을 마귀가 가만히 두겠습니까? 틈을 타서 지배합니다. 마귀에게 유린을 당한 사울 왕의 모습을 보시면 어떠합니까? 창을 던지고 칼을 휘두르고 반미치광이 짓을 합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말에 너무 상처를 쉽게 잘 받으면 결국 자신에게 좋지 않습니다. 상처 그 다음은 분노입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을 때, 가능하면 화를 내지 마시고 자기 자신을 부서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 화가 나던가요? 분석해보면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겁니다.’ 자존심 때문에 화가 나는 겁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상처 받을 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부서뜨리는 쪽으로 생각하고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영국 시인 E. 그레이의 시입니다.

 

부서진 것을 통해

 

부서진 대지에 곡식이 자라고 무르익습니다.

부서진 구름이 넓게 퍼져 신선한 비를 뿌립니다.

그 곡식이 우리의 양식이 되고

그 양식이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살아가는 모든 날들 속에서

그 양식이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살아가는 모든 날들 속에서

부서진 것들에 의해 새로워집니다.

부서진 마음은 회개하는 마음

주님은 결코 멸시하지 않으시니

뉘우침으로 부서진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주님께 귀중한 향기가 되는 것은

부서지고 회개하여 비어있는 마음입니다.

 

깨끗이 씻겨야 하리(복음성가)            김소엽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다 버리고

다 고치고 겸손히 낮아져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거예요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내가 부서질수록 내 가슴은 병든 것이 아니라 새 마음, 새 성품, 새 인격으로 아름다운 작품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고 내 자신을 부스러뜨려 분노라는 감정을 다스리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인의 분노를 통해 주목할 만한 교훈 세 번째는, 분노는 자신의 건강을 잃게 하고(다음 시간에 설교)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성을 파괴시킨다는 것입니다. 분노는 종종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아픔과 상처만 남깁니다. 이런 파괴적인 분노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가족들에게나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잃게 하는 것이 분노입니다.

노아의 분노는 자식을 불행하게 했습니다. 창9:18절 을 보시면 세 아들을 소개하는데 굳이 함을 ‘가나안의 아비’라고 부연하여 설명합니다. 셈과 함과 야벳이 있었다. 그러면 소개가 끝날 텐데 함은 굳이 가나안의 아비라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가나안 아비란 뜻은 천한 자 낮은 자의 조상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후대가 종으로 살았습니다. 술 마시고 옷을 벗은 아버지를 흉보았다는 이유로 분노하여 아들을 저주했기 때문에 함이란 아들의 이름 앞에 꼭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가나안의 아비, 비천한 자, 저주 받은 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나닙니다. 아버지 노아의 분노는 저주로 이어졌고 자식과 후손의 불행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역사의 또 하나의 비극을 가져오는 역사의 오점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분노는 슬픔과 비극 그리고 아픔과 불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분노는 많은 것을 깨고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혜서 잠언의 말씀대로

 

지혜자가 말합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씀입니다.

잠언29:11에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인간은 누구든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그 분한 감정을 다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분한 감정에 너무 정직하게 빨리빨리 반응하게 되면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분을 지혜롭게 잘 절제하는 것입니다. 지자와 우자의 차이입니다.

 

잠언29:22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 함이 많으니라.”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씩씩거리는 사람은 싸움만 일으키는 싸움꾼입니다. 또한 범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발적 범죄는 거의 모두 화를 참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생긴 것입니다. 분이 죄로 이어짐으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잠언14:17에 이르기를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화를 버럭 내고 분노를 나타내는 일에 빠른 사람은 지금 본인이 어리석은 처신을,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잠언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육체적으로 힘이 센 자를 용사라 합니다. 노를 더디 내는 자는 힘 센 용사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가 진정한 힘이 있는 자인 줄 믿습니다.

어떤 부부가 싸움을 많이 해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가 남편에게 노란 약물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남편께서는 만일 화가 나게 되면 이 약을 3분 동안 걸쳐서 천천히 마십시오.” 한 달 후에 그 부부가 밝은 얼굴로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 약 약효가 아주 좋으니 한 달 분량을 더 주십시오.” 이 말을 듣던 의사는 달라는 약물의 성능을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설탕과 비타민 가루였습니다.” 성질 날 때 3분 동안 그 물을 먹으니 자연히 화가 누그러지고 싸움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을 더디 내는 방법이 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7:9절에서도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전7:9절) 또 야고보서 1장 19절에서도 “성내기를 더디하라.”(약1:19절)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분을 더디 내기 위한 좋은 방법들을 찾아 말씀대로 순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불을 끌 때 기름이 끼얹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물이 아닌 기름으로 불을 끌려 합니다. 화가 난 사람에게 과격한 말을 해서 분노의 불을 끄려고 시도하지만 오히려 노를 더 격동하게 만든 뿐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자는 상대의 분노를 식힐 수 있는 유순한 말, 선한 말을 하여 분노의 불을 끕니다. 여러분, 지혜서 잠언의 말씀대로 분을 절제하고 더디 내며 분을 내는 자의 분까지라도 쉬게 하는 지혜자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시37:8)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4:31)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103: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로서 버릴 것은 버려야겠습니다. 원망과 불평, 탐심을 버리고 오늘 말씀처럼 분노를 버리고 승리하시고 축복된 삶을 사시기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노를 더디 내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오랫동안 분을 품지 말고 빨리 풀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엡4:26-27 성도가 버려야 할 것들 - ➂분노 2

 

미국의 엘마 케이츠라는 과학자는 사람의 호흡하는 숨을 유리관을 통하여 액체공기로 냉각시켰습니다. 그 결과 약간의 침전물이 생기는데 만일 그 사람이 고통과 슬픔을 느낄 때는 그 색이 회색이 되고, 후회하는 상태에 있을 때는 분홍색을 띠고 화를 심하게 내고 있을 때는 그 침전물의 색깔이 갈색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갈색 침전물을 물에 녹여 쥐에게 주사를 한 결과 몇 분 만에 쥐가 죽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시간 동안에 화를 내면서 생성하는 독소는 80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의 독입니다. 아기 엄마가 화를 낸 뒤에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 아기가 중독현상을 보이고, 심지어 지나치게 격분한 체 아이게 젖을 먹이면 젖을 먹은 아이가 젖을 물고 죽은 일도 실제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격한 분노는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말처럼 분노는 타인에게 유해하지만, 분노에 휩싸인 당사자에겐 더욱 해로운 쓴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는 성도가 반드시 버려야 할 것들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분노의 해악성

 

우리가 분노하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좋지 않는 영향을 줍니다.

➀분노는 가벼운 감기에서부터 큰 병에 이르기까지 감염에 취약하게 만들어 감염이 잘되게 합니다. ➁분노하면 면역체계를 통해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질병들에도 쉽게 노출되어 병에 잘 걸리게 됩니다. 이 좋은 예입니다. 몸이 정상인 사람에게 하루에 암세포가 3,000~5,000개까지 생깁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암에 걸리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혈액 속에 있는 NK세포(Natural Killer cells:자연살해세포-면역세포의 하나로 체내에는 총 약 1억 개의 NK세포가 있다.)가 혈관을 따라다니면서 암세포를 다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NK세포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면 우리는 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성적인 분노는 NK세포의 기능을 억제하여 암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NK세포가 암세포를 다 잡아먹지 못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암세포들이 암세포 군을 만들어 결국 사람 몸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암세포들은 스스로 혈관을 만듭니다. 만든 혈관을 몸에 있는 기존의 혈관에 연결합니다. 그리고 영양분을 다 빼앗아 먹습니다. 그래서 암환자는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그 영양분이 암세포로 가기 때문에 암덩어리만 커지고 결국 빼빼 말라서 영양실조에 걸리게 됩니다.

이처럼 분노는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병에 걸리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식품을 섭취합니다. 면역력을 높여주는 식품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오쿠무라 교수는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식품 중 요구르트만큼 싸고 간편한 것이 없다. 많이 섭취해도 부작용이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고 말합니다. 메이지유업 기능과학연구소의 연구원도 "유산균이 풍부한 요구르트를 먹인 쥐는 물만 먹인 쥐보다 NK세포의 활성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또한 사가현 아리타에서 고령자에게 하루 90g의 요구르트를 매일 먹도록 하자 8~12주 만에 NK세포가 눈에 띄게 활성화된 것이 확인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삼림욕이 있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 들어서면 특유의 시원한 향이 코는 물론 마음까지 상쾌하게 뚫어줍니다. 이것은 나무가 발산하는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휘발성 물질 때문인데요. 피톤치드는 ‘식물’이라는 뜻의 '피톤(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사이드(Cide)'가 합쳐진 말입니다. 나무가 해충이나 병원균 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항생물질의 일종입니다. 주성분은 테르펜(terpene)이라는 유기화합물입니다. 피톤치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선물한 천연항생제인 것입니다. 공기를 정화하고 살균하는 작용이 있어 각종 감염질환과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에 좋을 뿐만 아니라 혈압을 낮추고 콜레스테롤 합성을 막습니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떨어뜨려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피톤치드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면역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피톤치드는 인간에 기생하는 병원체 활동을 억제해 인체 면역력을 높여 줍니다. 인체에서 가장 강한 면역세포로 알려진 NK세포를 활성화해 인체 면역기능을 높여 줍니다. 산림욕보다 더 진보한 것이 ‘숲(산림) 치유(forest healing)’입니다. 병을 고치는 차원까지 진보 한 것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방법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웃음입니다. 웃음은 심장병과 동맥경화 등을 예방하며 항 스트레스 기능이 있습니다. 또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의 수치를 낮춰 건강에도 매우 좋습니다. 특히 웃음은 암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인데, 웃으면 혈액 속의 NK세포가 활성화되고 면역 기능이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웃음은 기쁨의 외적표현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너희를 향한 내 뜻이니라.”라는 말씀의 깊이를 여러분 깨달기를 바랍니다. 저는 살전5:16-18절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설교를 준비하다 잠시 이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는”이라는 단어 때문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항상 기뻐해라 쉬지 말고 기도해라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이는, 이유가 있다. 너의 건강을 위해, 신앙을 위해, 너의 행복을 위해서다. 이것이 나의 뜻이다. 아멘입니다 아멘하면서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그래 기뻐하자. 그래 기도하자. 그래 감사하자. 여러분, 우리 하나님 얼마나 좋으십니까? 우리 체질까지 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처방전입니다. 최고의 의사가 주신 처방전대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분노하면 ➂혈액 속의 특정 염증성 세포를 증가시키게 됩니다. (혈압이 크게 증가하면 동맥벽이 손상을 입게 되어 인터류킨이 분비가 되고 인터류킨-6은 간으로 가서 CRP(C반응세포)를 분비시킨다는 것입니다. CRP는 현재 심장 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입니다. 만성적으로 분노 수준이 높은 사람은 그래서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증거입니다. CRP는 다시 혈류로 들어가서 백혈구 등에 작용하면서, 인터류킨-6 등의 세포들을 더 많이 만들어 냅니다. 이런 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분노는 감염에 대한 저항력 저하, 체내 이로운 세포의 저항력 저하, 면역체계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과도하게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함으로 분노는 자신의 건강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적인 것입니다. 또한 격심한 분노의 부작용은 1주일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국제저널 ‘정신 생리학’에 게재된 연구 결과를 인용, 한바탕 화를 내면 혈압이 급상승할 뿐 아니라 1주일 후에도 당시의 분노를 기억하는 한 여전히 혈압 상승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소동이 끝나면 ‘분노 부작용’도 사라진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UC버클리·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이 같은 반응은 심장 혈관 체계에 손상을 입히며 스트레스 상황이 종료된 뒤에도 잠재적 위험을 끌어안고 사는 셈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분노가 해롭고 나쁜 또 다른 이유는 중독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화를 내면 계속 화가 납니다. 원망과 불평도 마찬가지입니다. 못되고 나쁜 것들은 거의 중독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한 분노의 해악은 배워지고 전염이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내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잠22:24) 그러므로 성도는 분노를 버려야 합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37:8)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처방전처럼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멘입니다.

 

분노의 유형

 

우리 둘레에 분노를 지나치게 표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➀‘분노표출형’이라 합니다. 이런 유형은 분노 표출로 인해 지금껏 말씀한 것처럼 다양한 질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인 관계가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를 지나치게 표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노표출형은 대인 갈등으로 인해 회사에서 왕따나 퇴출을 당하기 쉽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불이익을 당합니다. 이처럼 지나친 분노 표출은 개인 건강도 해치고, 대인관계도 나빠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분노표출형이 변명처럼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뒤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화를 통해 그 해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분노에 대해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한 성도가 목사님께 다가가 자신을 고백하기를, 자기가 성질이 너무 급해서 고민이라며 목사님에게 자기 문제를 자랑이라도 하듯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작은 일에 가끔 폭발을 하지만, 뒤끝이 없습니다. 금방 풀어버립니다. 마음에 두고 꿍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 일분도 안 걸려 그 사람하고 그 자리에서 다 툭툭 털어버리고 끝납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목사님께서 그 성도를 바라보면서 정중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성도님, 엽총도 그렇습니다. 한 방이면 끝나지요. 오래 안 걸립니다. 그러나 한 방만 쏘아도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다 박살나지요”

다음으로, 분노를 잘 표출하지 못하는 사람 ➁‘분노억제형’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분노를 억누른 사람 역시 질병에 잘 걸립니다. 왜냐하면 분노를 억압하는 것 자체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속에서는 신체적, 생리적 반응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분노를 억누름으로 병을 일으키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고혈압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우울증이란, ‘내면화 된 분노이다.’라고 합니다. 분노가 해소 되지 않고, 쌓이고 쌓이면 우울증이 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무작정 참고 사는 아내가 남편과 악다구니(기를 써서 다투며 욕설을 하는 짓.)하는 아내보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4배 높다는 보스턴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 밖에 뇌졸중을 비롯해 두통, 소화 질환 등이 많이 발생합니다. 분노를 잘 표출하지 못하는 이런 유형은 평소에 분노를 잘 표현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하게 되는 또 다른 위험이 있습니다. 이처럼 분노란 참 무섭고 희한한 감정입니다. 너무 표출해도 문제가 되고, 그렇다고 너무 억압해도 문제가 되는 아주 고약한 녀석입니다. 그러므로 상황과 시점에 맞추어서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➂분노통제형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겠습니다. 성경 잠언 29:11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잠언29:11)

A fool gives full vent to his anger, but a wise man keeps himself under control(Proverbs 29:11)  영어 성경은 컨트롤(control 통제, 조절)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히브리어로 '예솨브헤나'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가라앉히다.’, ‘잠잠하다.’ 폭풍 따위가 완전히 가라앉거나 잠잠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언어, 표정 등을 통하여 그 분노를 그대로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에 평정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참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분노를 안에 쌓아두는 것도 아닙니다. 잘 조절,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하면 분노를 잘 컨트롤 할 수 있을까요?

 

첫째, ‘분노’라는 감정은 통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분노라는 것도 감정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감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분노는 얼마든지 조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가인에게 다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든지 컨트롤 가능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정하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5:18에서는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말씀이 거하시고 기도와 간구 가운데 성령이 충만하시면 갈라디아서5:22-23 말씀과 같이 성령의 풍성한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 충만한 사람이 맺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가 절제입니다. 곧 ‘self-control’입니다. 성령임의 도우심을 받으면 분노 조절이 더 쉬워집니다. 얼마든지 통제 가능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분을 속히 내지 말고 더디 내야 합니다.

➀"왜 분을 내느냐? 는 하나님의 질문에 옳고 바른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없으면 분을 내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분을 낼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의 효과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호흡기도’를 들어 보셨습니까? 숨을 들이마시면서 좋은 것을 들어 마시고 숨을 뱉으면서 나쁜 것을 뱉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해야지, 용서해야지, 견뎌야지, 이해해야지, 풀어야지, 내가 수용해야지 좋은 것은 들어 마시고, 상처 내뱉고, 복수심 내뱉고, 오기 내뱉고, 울화 내뱉고, 파괴적인 생각을 내뱉는 것이 호흡기도입니다.

사람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와 낙, 즉 기쁨과 즐거움은 표현을 하든지 아니하든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 즉 슬픔 역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는 다툼을 야기하고(잠15:8) 관계와 평화를 깨뜨립니다. 후회와 상처 그리고 실수만 남깁니다. 멀쩡한 사람도 분을 내면 바보가 되어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잠14:17, 29) 그러므로 분을 더디 내기 위해 호흡기도를 잘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일단 30초만 참으라. 눈을 감고 깊은 숨을 한 번 내쉬면서 화가 빠져 나간다고 상상을 하면 효과가 있다 합니다.

-글쓰기를 권합니다. 30분씩, 가능하면 매일 연속해서 쓰라. 당신을 짓누르는 억압과 분노를 글쓰기로 분출하라는 것입니다. 잘 쓸 필요도 없고 솔직히 쓰다 보면 응어리가 풀어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차의 맛과 향에 기분 좋게 몰입해 마시는 것,

-곤한 낮잠,

-부부 사이의 건강한 부부관계,

-신나게 큰 소리로 노래 부르기,

-춤추기,

-친구와의 전화 수다,

-산책,

-과격한 운동 등

 

셋째, 분노를 건강하게 표출해야 합니다.

분노를 파괴적으로 표출하면 위험하지만 건강하게 표출하면 별 탈이 없습니다. 가장 건강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제일 좋은 방법은 하나님 앞에 토로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상처받을 일이 없으시고 오해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다면, 하나님의 위로와 만지심이 있을 것입니다. 시편을 보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분노, 불안, 염려, 좋지 않은 감정 등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름다운 마무리와 이름다운 신앙고백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노를 잘 다스려 축복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분노는 건강을 해치는 무서운 적입니다. 가정,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려 사람을 잃게 합니다. 그러므로 분노라는 감정을 잘 조절하여 분을 급히 내지 마시고 더디 내시기를 바랍니다. 조절해 가면서 건강하게 표출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