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신명기(74)/언약
제목 : 모압 평지에서 세우신 언약
성경 : 신29:1-13
학자들은 신명기 29장을 요약된 신명기라고 부릅니다. 모세의 첫 번째 설교와 두 번째 설교 그리고 축복과 저주가 요약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동안 선포한 말씀을 서서히 마무리 지으면서 곧 가나안에 입성할 새로운 세대들과 모압 평지에서 새로운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적어도 세 종류의 언약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이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걸쳐서 계속 말씀하신 것인데, 이 언약은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신약과 맥을 같이 합니다. 믿음으로 축복받는 언약입니다.
2)시내산 언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벗어나 홍해를 건너 광야로 인도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시는데, 그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두 번째 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모압 평지에서 세우신 언약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언약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압 평지에서 세우신 언약은 잘 모릅니다. 오늘은 바로 세 번째 언약, 즉 모압에서 세우신 언약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언약이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면 1절 말씀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신 29:1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 언약이 분명 호렙산에서 세운 언약과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신약의 언약과 맥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이끌어서 율법의 언약을 주신 것은 그들이 스스로 얼마나 부패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그 율법을 받은 사람들은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순종하고 거역함으로 광야에서 다 죽었고 지금 모압 땅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다음 세대입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세대를 놓고 그들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생활 할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언약이 비교적 율법에 속한 것이고 도덕적인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 것이라면 모압 평지에서 세우신 언약은 보다 통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신명기라는 말씀이 다만 출애굽기의 율법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새로운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의 축복(2-8절)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과거의 축복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과거의 역사는 은혜로 점철된 역사였습니다. 즉 출애굽 구속사건(2-4), 광야 인도 사건(5-6), 아모리족속 정복 사건(7-8) 등을 들 수 있습니다.
1)출애굽 구속사건
신 29: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신 29: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각종 재앙을 내리셨던 때는 40년 전의 일입니다. 따라서 이 재앙을 목도했던 사람들은 최소한 40세 이상인 자들이고, 모세의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50세 이상 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➀여호와는 과거 막강한 애굽의 바로를 제압하고 이스라엘은 구원해 내신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➁이스라엘은 그 놀라운 출애굽 사건을 친히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비록 새로운 세대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켜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그러나 문제는 그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토록 놀라운 구원을 체험하였거니와 아직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까? 깨닫는 마음, 보는 눈,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2)광야 인도 사건
신 29:5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신 29:6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 40년은 한마디로 은혜와 기적의 현장이었습니다. 40년 동안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인도로 인하여 그들은 옷 걱정하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거나 신발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별로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딱 한 벌 옷과 한 켤레의 신발로 지냈다는 말은 아닙니다.
특별히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농사하거나 과실을 가꾸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굶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농경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드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주는 바로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 40년 동안 떡과 포도주 대신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와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주어 먹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3)아모리 족속을 정복한 사건
신 29:7 너희가 이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신 29:8 그 땅을 취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땅에 이르러 가나안에 들어가려 할 때, 그곳 길목을 지고 있었던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있었습니다. 이 두 나라는 강력한 왕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강력한 두 왕국을 격파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한 사건이었으며, 향후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시켜 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 큰 순종을 요구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조건 순종만을 강요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언약을 지키는 자의 축복(9-15)
신 29: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의 결론이 되겠습니다. 애굽 땅에서 모압 땅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하나하나 말해 주는 이유는 결국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모압 땅에서 언약하신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형통의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순종하면 모두 형통케 되는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몇 사람만 축복받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모든 백성이 다 축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신 29:10 오늘날 너희 곧 너희 두령과 너희 지파와 너희 장로들과 너희 유사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신 29:11 너희 유아들과 너희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무릇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선 것은
지도자 뿐 아니라 집안일을 하는 여자들과 아이들과 집에 거하는 객과 나무를 패는 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어떤 특정 계층만 누릴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조건만 만족시켜 주면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언약에 참여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야 할 점은 두 가지입니다.
1)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백성이라’는 것은 정체성을 규정짓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할 때에 한 마디로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놀랍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만족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성공하는 삶을 삽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신묘 막측하게 창조되었다는 점을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진 존재인지 그 영혼이 잘 알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우리는 주 안에서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 안에서 기쁘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 때 불행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만민의 욕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왕이 되시면 좌의정과 우의정을 시켜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요한과 야고보의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이 아주 분하게 여긴 것 또한 무엇입니까? 그들도 같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그런 청을 한 데 대한 분노를 느낀 것입니다.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특별하게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2)여호와께서 친히 우리 하나님 되시기 위함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다.”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쉽습니다. 아주 간단명료한 진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나름대로 해석하여 아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적인 축복은 당대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맹세에 참여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이어지는 진리이자 유산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애굽 땅에서도, 광야에서도, 가나안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시오,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과 맺은 언약은 영불변합니다. 끝까지 언약을 지켜 행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