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리스도

(요 14:6)

 

       오늘이 전 세계 개신교교회가 함께 지키는 ‘종교개혁개념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면서 부터입니다. 이 사건 이후 종교개혁의 거대한 흐름이 요원 불길처럼 번져갔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개혁되었고, 세상도 새롭게 변했습니다.

   

        이 종교개혁이 내세웠던 핵심 강령은 ‘다섯 가지 오직’(five solas)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루터가 강조했던 세 가지 오직으로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 (Sola Scriptura)입니다. 그리고 후에 칼뱅이 첨가한 두 가지 오직으로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오늘은 이 다섯 가지 오직 중에 네 번째인 오직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왜 오직 그리스도인가?

   

        먼저 왜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강령으로 택해야만 했을까요? 당시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 외에도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다른 중보자들이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그리스도 이외의 가장 대표적인 중보자는 성모마리아입니다. 가톨릭 교회교리서 969항을 보면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이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어 당신의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 주신다.……그 때문에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라는 칭호로 불리신다.”

       

        지금 하늘에 있는 성모마리아가 이 땅의 믿는 신자들을 위해서 전구 즉 중보기도를 드림으로써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가 중보자라고 불린다 라는 뜻입니다. 마치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예수님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마리아의 중보역할을 공식화한 최초의 교황입니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중보자이며, 하늘의 은총의 중보자인 동정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구속에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없다”

   

        더 나아가 이 교황 레오 13세는 ‘로사리오기도’를 가르쳤습니다. 로사리오기도란 묵주를 돌리며 묵상하며 성모송을 부르는 기도를 말합니다. 특히 그는 이 로사리오기도를 성모상 앞에서 드리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 때 부르는 성모송이 바로 “아베마리아”입니다. 대표적으로 슈베르트, 구노, 그리고 카치니 같은 사람들이 작곡한 아베마리아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잘 아는 성모송입니다. 그 가사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 되시도다!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그렇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중보자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를 이루는 중보자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 주는 중보자라고 믿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저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모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청을 드리는 기도요 노래가 아베 마리아인 것입니다.

 

       한 번은 어느 교회에 설교 청을 받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헌금시간인데 헌금찬양을 부르는 사람이 이 아베마리아를 부르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마리아를 찬양하고,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는 노래를 개신교회 안에서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영적인 무지입니다. 마리아도 우리의 중보자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가톨릭교회에서는 지금도 마리아를 중보자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인류의 ‘공동중보자’(co-mediatrix)로 추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딤전 2:4-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결코 마리아도, 천사도, 성인도, 그 어떤 존재도 결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 7:2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해 저 천국에서 중보기도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를 강조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이단들이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는 자기들의 교주를 중보자라고 가르치면서 우리들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한 언론에 만민중앙교회 교인들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도대체 교인들을 성폭행하고 그 많은 교회 헌금을 유용한 이재록같은 사람을 아직도 따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신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30년 넘게 이재록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병도 고치고 능력도 행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기도하면 기도가 이루어지고, 이 사람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만민중앙교회 교인들은 이재록을 예수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중보자로 믿고 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에 나타난 이단 현상의 핵심입니다. 여기에 신천지 이만희, 통일교의 문선명, 천부교의 박태선 저들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중보자는 한 분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무슨 뜻인가?

 

        그러면 오직 그리스도란 무슨 뜻일까요?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중보자라는 뜻은 무슨 뜻일까요?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중보사역을 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화해를 이루신 것입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의 중보사역

 

          먼저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중보의 사역을 수행하셨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 중보사역을 구약의 ‘화목제’를 비유로 설명합니다.

   

        화목제는 원어를 보면 ‘쉘라밈’(ש֝למים)이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평안이라는 뜻의 ‘샬롬’(ש֝למ)에서 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화목제는 하나님과 제사 드리는 사람사이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 드리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 대부분 비슷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희생제물 전체를 화제로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는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먹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님과 화목이 깨졌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보면 인간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후 하나님과의 화목이 깨졌고, 이 세상으로 쫓겨나 하나님과 불화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런 인간의 상태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1:18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롬 5:10을 보면,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가 샬롬이 완전히 깨져버린 처참한 상태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일전에 본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Youth in Revolt]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한 문제아가 한 여자 친구를 만나서 교제하면서 변화된다는 줄거리의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원래는 모범적인 아이였습니다. 부모가 이혼한 뒤에 엄마와 함께 살게 됐습니다. 엄마는 이혼한 아버지가 보내주는 양육비로 근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엄마의 남자친구는 주인공을 학대합니다. 그리고 엄마는 자기를 몰라라하면서 남자친구와의 연예에 빠져듭니다.

  이 주인공 아이는 엄마와의 관계가 깨지고, 새로 나타난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엄마의 남자친구와의 갈등 속에서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삶이 망가지고 문제아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우리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 부모와의 관계가 깨지면서 삶이 힘들어진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힘겨워진 것입니다. 우리가 갈 길을 잃고 헤매게 되고, 인생 자체가 불행해 지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불화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셔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샬롬을 회복시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구약의 화목제를 비유로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일 2:2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하나님과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3:25에서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사역의 하이라이트는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이 중보사역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천상에서의 중보사역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면서 계속 중보사역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바로 지금도 이 사역을 계속 수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지금 저 하늘보좌에서 두 가지 중보사역을 수행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변호사역입니다.

   

        욥 1장을 보면, 사탄이 하나님을 찾아가 욥을 고소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소하는 자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리고 계 12:10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이것 역시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허물과 잘못을 밤낮으로 고소하는 자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저와 여러분의 허물과 죄를 고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법정에서 검사가 재판장에서 피고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고 밝히는 것처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일 2:1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여기서 대언자란 변호인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고소할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법정에서 변호사가 피고인을 위해 재판장에게 변론하는 것처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변호하고 계십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낱낱이 고하여 우리를 곤경에 빠뜨릴 때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그 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다 용서받았다고 변호하십니다. 그리고 아직 회개하지 않은 죄들은 앞으로 회개할 것이니 기다려달라고 변호하십니다.

 

  다른 하나는 중보기도 사역입니다.

  

         롬 8:34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뒤에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 중보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도록 중보기도하십니다. 우리가 넘어져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중보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갈등하며 다투고 분열하지 않고 하나 되도록 중보기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사역 때문에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시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사역 때문에 오늘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비록 연약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중보자가 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게 됐다는 것,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도 하늘보좌에서 중보자로 사역하시기에 우리가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위한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본문 말씀처럼 우리가 아버지께 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톨릭이 말하는 것처럼 마리아가 중보자가 될 수 없다는 점, 이단들이 말하는 그 어떤 사람들이 중보자가 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 어떤 다른 피조물이나 천사와 같은 그 어떤 영적존재도 중보자일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