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 8
시대를 초월하여 사용받는 은혜 (마태복음 17:1-8)
엘리야 시리즈의 마지막 설교
엘리야의 삶은 그렇게 주목 받고 시작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디셉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시작을 하였고, 혼자서 외롭게 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요.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특별했습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열왕기하 2:11)
그런데 그는 오늘 읽은 신약시대에서도 모세와 함께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에 등장을 하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엘리야는 세례 요한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선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1:13-14)
성경에서 환생(reincarnation)을 말하는 것은 아님
엘리야가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을 하여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설명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과 메시아를 준비함 - 시대가 지나도 영향력은 계속 남게 됩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라는 옛말이 있는 것처럼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싶고 누군가 우리를 기억해 주기를 원합니다.
이름, 포지션, 명함 문화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지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크고 작은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좋은 영향력이든, 안 좋은 영향력이든 흘러갑니다. - 엘리야의 영향력
엘리야의 영향력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유대인들의 생각을 지배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엘리야의 탁월함은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할례를 받을 때 항상 그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고, 각 가정에서 매년 유월절 절기가 되면 그가 마실 포도주를 준비하였습니다. 그가 메시아의 강림을 알리기 위해 다시 올 것이라고 모든 유대인들은 믿었습니다.” (F. B. Meyer)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메시아의 강림을 알리기 위해 다시 온 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성경적이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라기 4:5-6)
그래서 그랬는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후,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어보셨을 때,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돌아왔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 예수님 – Eloi, Eloi, lemasabachthani
군중들은 그 때 예수께서 엘리야를 부르는 거라고 생각하였지요. (마가복음 15:35)
그런데 그 말라기의 말씀이 오늘 이 본문에서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수백 년, 거의 천 년이 되어서. 그토록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엘리야가 다시 등장을 합니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마태복음 17:3)
- 아합과 이세벨의 영향력
반면에 안 좋은 영향력도 그 다음 세대에 계속 흘러 내려갑니다.
아합
“그가 (여호람)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열왕기하 8:18)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역대하 22:3)
아주 큰 저주 가운데 하나가 아합의 집과 같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이세벨 (요한계시록 2장)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요한계시록 2:20-21)
아니 얼마나 악한 영을 소유하고 있었으면 요한계시록에서 두아디라 교회를 가장 심하게 책망하시는 표현으로 이세벨의 영이라고 말하겠습니까? - 행음과 우상숭배를 꾀하는 영, 회개치 않는 영
- 사탄의 영을 이세벨의 영이라고 칭함
부모의 영향력
약 40년 전에 예일 대학에서 7년에 거쳐 사람의 일생이 그 다음 세대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가 조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두 인물의 삶을 집중해서 추척해 보았다고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낸 바 있고 미국의 영적 대각성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던 인물입니다. 그의 부인 역시 신앙이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후손을 추적하여 그의 가계를 5대에 걸쳐 연구하였습니다. 그의 직계 후손 가운데 대학 총장을 지낸 사람이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성직자 100명, 군인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무원 80명, 하원의원 3명, 상원의원 2명, 미국 부통령 1명이 배출되었고 나머지도 신앙인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대단한 명문 집안 아닙니까?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지요.
한편, 조나단 에드워즈에게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맥스 쥬크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함께 교회 주일학교에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맥스 쥬크는 어느 날부터인가 교회를 떠나 방탕한 생활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없는 여자와 결혼해서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연구했던 사람은 그의 친구인 맥스 쥬크의 후손들도 5세대를 추적해 보았습니다. 그의 후손은 1,292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유아사망 309명, 거지 310명, 사회 활동 불구자 440명, 매춘부 50명, 도둑 60명, 살인자 70명, 별볼일 없이 산 사람 53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날 수가 있을까요? 조나단 에드워즈의 자손들이 가문의 축복을 받았다면 맥스 쥬크의 자손들은 가문의 저주를 받은 겁니까? 저는 이 것이 악의 습관과 영향력이라고 봅니다. 이 두 가계의 대조는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제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경건한 영향력을 미칠 때, 자녀들과 그 다음 세대들에게 어떠한 열매를 맺게 하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의 삶이 마감된 후에도 계속되는 영향력- 할아버지의 인생철학과 습관, 할머니의 기도
- “어떻게 그렇게 아빠를 똑 닮았니?”
-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다 vs. 절대로 아버지와 조금만 비슷한 사람
- F. B. Meyer, Arthur W. Pink 와 같은 영적인 거장들이 책으로 주는 영향력
- 가정뿐만이 아닙니다. 과연 여러분은 공동체 안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며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나요?
어떤 분들은 가정이나 자라온 환경에서 그렇게 좋은 영향력을 받지 못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악의 영향력을 끊을 수 있는 비밀은 예수 안에서 감추어지는 삶 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은 인생의 반전을 가져다 줍니다.
예수만 보이더라 (8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8절)
성도 여러분, 예수만 보이는 삶이 결국 남는다는 비밀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모세, 엘리야, 아무리 쟁쟁한 사람이라도 결국 예수를 보여드리는 삶
자신의 삶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만 보이는 삶
마찬가지로 변변치 못하고 과거의 악한 영향력도 예수 안에서 가려지며 이제부터 선한 영향력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렇다면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남길 수 있을까요?
- 십자가의 구속된 삶이 남는 삶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엘리야
구약시대의 두 인물이 신약시대에 나타납니다. (모세와 엘리야)
모세는 율법의 대표,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
여러분, 역사를 막론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시겠습니까?
예. 스티브 잡스, 히틀러, 세종대왕, 예수님, 돈 떼 먹고 도망가다 죽은 사람
유대인들에겐 모세와 엘리야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인물이었을 겁니다.
지금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이 토론을 하고 있는 광경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 GKYM Chicago Panel)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 꼭 물어 보고 싶은 것은?
그런데 여기에서 주제가 뭡니까?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누가복음 9:30-31)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 그들의 관심은 십자가의 구속이었음
그들은 구약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그 것에 투자하는 삶
힘든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하곤 합니다.
과연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천국의 상급을 위하여? 머리로는 알지만 그 것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가 솔직히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이 마감될 때에… 만약에 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이지요?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모세의 율법과 엘리야 예언의 완성, 그들의 모든 삶의 의미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구속 안에 있다는 겁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 우상숭배, 쾌락을 위해서 살아갔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시렵니까? 하루를 살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십시오!
의미 –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엘리야와 같이 예수님을 예비하는 삶, 그 분의 십자가의 비밀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8절)
모세도 그렇고 엘리야도 결국 하나님 역사의 조연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의 역할을 알고 살아가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몸부림치며 한 평생 살아간다고 해도 남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열매는 예수 안에서 남게 됩니다.
영원한 열매, 시대를 초월해서 맺는 열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삶은 영원한 삶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구속된 삶은 영원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구속으로 save 되는 것 (컴퓨터에 글을 쓸 때에)
save 한 것과 save 하지 않은 것- 영혼에 대한 투자
- 영혼을 위한 기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기도 – 시대를 초월해서 응답되는 기도의 열매
- 제자를 세움 – 프로그램을 세우지 말고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 엘리야가 엘리사를 세운 것같이
모세, 엘리야도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가는 것을 변화산 사건을 통하여 본 것 같이 저와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게 되면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영광과 기쁨
처음 만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품, 천국에서 함께 그 교제를 누리고 있었고 그 모습이 증거로 표출된 것임
우리 하나님은 시대를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알파와 오메가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엘리야가 누린 영광을 함께 누릴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