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교훈Ⅰ

(삼상 17:41-49)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다윗입니다. 구약에 무려 800여회, 그리고 신약에 60여회 다윗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렇게 그 이름이 성경에 많이 나온다는 것은 다윗이 그만큼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특히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삼하 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과의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우선 그 내용은 표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언약대로 다윗과 그 자손들은 22대, 427년 동안 왕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다윗과의 언약 안에 원대한 하나님 나라 통치의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나오고, 이 메시야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마 1장에서 보듯이 다윗의 자손 가운데 예수님께서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바로 ‘왜 다윗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 많은 인물 중에 왜 하필이면 다윗이 그렇게 소중하게 쓰임을 받았을까요? 도대체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렇게 중요하게 쓰셨을까요?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도전을 줍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을 때 기왕이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저 나만 은혜 받고, 나만 복 받고, 나만 천국 가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다윗만큼은 아니어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도대체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 그렇게 귀하게 쓰임을 받았을까요?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을까요?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답이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왜 다윗인가에 대한 첫 번째 답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삼상 1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택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라는 사람의 집에 보내셔서 아들 중에서 한 사람을 왕으로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택할 기준을 말씀하셨습니다.

   

        삼상 16: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이 남다른 것을 보시고 다윗을 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중심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달랐을까요? 삼상 13:14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그리고 같은 의미의 말씀이 행 13:22에도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들여다보셨습니다. 그의 중심에 있는 마음이 남달랐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처음 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를 특별하게 택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맞는다”라는 말은 원어성경을 보면 헬라어 전치사 ‘카타’(κατά)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카타라는 전치사는 ‘무엇의 뒤를 따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말을 직역을 해 보면 내 마음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참고로 영어성경을 보니까 이렇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a man after my own heart” 하나님의 마음을 뒤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려고 힘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기 마음을 앞세우며 살던 사람들과는 그 중심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택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하던 몰간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오랜 세월동안 선교사역을 했는데 변변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정하고 산에 올라가서 두 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맞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이 풍토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주간 금식기도 하느라 지쳐있었지만 다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선교사역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왜 딸에게 풍토병에 걸리게 하셨습니까? 치료해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선교사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이분의 심령에 들려왔습니다. “몰간아, 너는 죽어가는 네 딸 하나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아프냐? 그런데 병들고 먹지 못해 죄로 죽어가는 전 세계의 인류를 바라보는 아버지로서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느냐?”

        이분이 깜짝 놀랐습니다. 함께 기도하던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큰 민족으로부터 작은 민족에 이르기까지 자기들이 아는 모든 민족을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밤새 기도한 뒤 날이 밝았습니다. 그들은 황급히 딸의 침상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서 보니 딸은 열병이 사라지고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선교에 힘썼고, 풍성한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자기 마음을 따라 살아갑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드릴 때도 은혜 받고 싶은 자기 마음을 따라 예배를 드립니다. 기도할 때도 응답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택함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살려고 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 그렇습니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예배를 드리려고 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기도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여겨주시고,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그는 특별한 사람이어서 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을까요? 언제라도 묵상하면 어렵지 않게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차례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한두 번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여러 차례 반복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한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삼하 2: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 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은 10년이 넘는 긴 세월 사울 왕에 쫓겨서 도망자 생활을 해왔습니다. 지금도 시글락이라는 지역에 있었습니다. 이곳은 당시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던 땅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블레셋이라는 곳에 망명 와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제 유다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자기를 맞아줄 유다 땅 헤브론으로 가는 것 역시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두 번이나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유다의 한 성읍으로 올라 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사울이 죽은 후 유다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죄 짓는 일이 아닙니다. 백성들도 원하고 자기도 원하는 일입니다. 그냥 올라가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도 다윗이 원하는 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왜 이렇게 물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일이라도 혹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은 아닌지 살피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물으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일은 물론 하나님께 물으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해 보이는 일이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물으려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태도, 이런 자세를 귀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맞는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앙의 사람

   

        왜 다윗인가에 대한 두 번째 답은 다윗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가 바로 골리앗과의 싸움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간추려보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와 1:1로 맞붙을 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내보낼 장수가 없어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마침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와서 이 장면을 보게 됐습니다. 그가 분개했고 자기가 맞서 싸우겠다고 나섰습니다. 형들이 야단치며 말려도 허사였습니다. 사울 왕도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 다윗과 골리앗이 맞붙게 됐습니다.

   

        당시 다윗과 골리앗의 형편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골리앗은 백전노장의 장수입니다. 그리고 키가 약 290센티가 넘는 거인입니다. 게다가 입은 갑옷의 무게가 60킬로이고, 손에 든 창의 무게만 7킬로나 될 정도로 완전무장을 한 상태입니다. 이에 비해 다윗은 아직 군대에 나올 나이가 되지 않은 소년이었습니다. 갑옷을 입지 않았고, 창이나 칼을 들지 않았습니다. 물매와 물맷돌 다섯 개를 손에 쥔 것이 고작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형국입니다.

   

        그러나 삼상 17:45을 보면 다윗은 이 싸움에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그리고 47절을 보면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싸움에 개입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의 결과도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모해 보이지만 이 싸움에 담대하게 나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대 신앙이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입니다. 특히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입니다. 앞날과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입니다.

  

        일전에 한 권사님의 상담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분이 제게 눈물을 흘리며 후회스러운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딸이 공부를 잘했답니다. 중학교 시절 전교 1, 2 등을 다투었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딸에게 그렇게 말했답니다. “교회는 잠시 쉬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뒤에 다시 나가면 좋겠다.” 딸은 엄마 말을 따랐답니다. 주일이면 학원에 가서 여러 가지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이 딸이 공부를 잘해서 그야말로 국내 최고의 대학 좋은 과에 합격을 했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뒤 교회에 나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더랍니다.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유학 도중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살게 됐답니다. 몇 년 안 돼서 아이 하나 낳고 살다 이혼하여 귀국했답니다. 그 삶이 너무 힘겨워하는 것을 지켜보려니 자기가 견디기가 힘이 들더랍니다.

  그러면서 평생 후회되는 일이 바로 고등학교 들어갈 때 딸에게 교회 잠시 쉬고 대학 들어가서 다니라고 한 것이랍니다. 그 때 딸의 앞날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던 것이 그렇게 후회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 권사님은 딸의 미래를 준비시키는 일을 마치 골리앗을 상대하는 일처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딸의 미래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서 공부하는 일이 우선 시급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일 예배까지도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권사님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그래 그러면 네 뜻대로 네 힘으로 해 보아라”하시면서 손을 놓지 않으실까요? 당장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성공했습니다. 좋은 대학 들어가면 딸의 장래가 성공한 것일까요? 그 뒤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결국 딸은 하나님도 잃어버렸고, 가정도 엉망이 됐고, 미래에 대한 꿈도 접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다윗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하나님께 맡기고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특히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물매에 돌을 장전해서는 던지는 것입니다. 이 일은 지금까지 양을 치면서 맹수들과 싸울 때 늘 하던 일입니다. 열심히 훈련했고 여러 차례 성과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 재능을 사용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다윗이 물매로 던진 돌이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습니다. 골리앗이 쓰러졌고, 다윗이 달려가 골리앗의 칼을 빼서 그의 머리를 베어버렸습니다.

   

        만일 앞에서 말씀드린 그 권사님이 딸에게 하나님께서 네 장래를 책임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리고 주일을 철저히 지키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지도하셨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께서 그 딸의 장래를 책임지셨을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배필을 만나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 아닌 그 어떤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인 교훈을 줍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을 따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절대 신앙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