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4:1~17)

 

어느 중학교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여러 마리의 벼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얼마나 높이 뛰는지 관찰해 보았습니다. 저마다 열심을 내서 제법 높이 뛰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위에 유리그릇을 엎어 놓고 관찰해 보니까 유리에 부딪칩니다. 잠시 후에 보니까 그릇에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 낮게 뜁니다. 그 다음에는 그릇을 치웠는데도 그 이상으로 높이 뛰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해 놓고 그만큼만 뛰는 겁니다. 벼룩이 똑똑한가요? 멍청한가요? 멍청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한계를 정해 놓고 그 이상은 할 수 없다고 제한시켜 버립니다. 그렇게 살면 어떤 인생이 되겠습니까? 벼룩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와 같은 인생을 살 뻔했던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구인가요? 모세입니다.

 

여러분, 보통 모세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얼른 떠오릅니까? 위대한 영웅의 이미지입니다. 찰톤 헤스톤이 주연한 영화「십계」를 보신 분들이라면 더더욱 그런 이미지가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와 관련된 사건 몇 가지만 떠올려도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들, 홍해가 갈라진 사건 등. 실제로 모세는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는 위대한 영웅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왜소하고 초라한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초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유리그릇 속에 있던 벼룩과 같은 이미지입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이 광야로 끌어내서 영웅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요? 지팡이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손에 들려주신 지팡이 하나 때문에 그는 영웅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그랬다면 우리도 가능합니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 모세와 비교해 볼 때 우리가 뒤질 것도 없습니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지팡이를 하나씩 들려주신다면 얼마든지 영웅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팡이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 지팡이를 굳게 붙잡고 승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봅니다. 연대는 B.C. 15세기입니다. 당시 애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이민 갔을 때는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으로 갔고 바로 왕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대우가 달라지더니 급기야 노예로 전락하게 됐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할 계획을 세우십니다. 이를 위해 모세를 준비시킵니다. 당시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번식을 억제하려고 남아산아제한법을 공포했는데 여의치 않자 아예 남아살해법을 공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일 강에 띄워진 아기 모세를 바로 왕의 공주 하셉수트(Hashepsut)가 발견하도록 역사하십니다.

 

공주는 무남독녀인데다 본인도 자식을 낳지 못한 가운데 모세를 보자 탐이 나서 양자로 삼습니다. 남아살해법이 있었지만 공주니까 초법적인 행위가 가능했습니다. 왕위는 공주의 남편 투트모스 2세(Thutmose II)가 이었는데, 공주가 아이를 낳지 못하니까 궁녀를 통해 아들이 낳게 됩니다. 그 아들이 투트모스 3세(Thutmose III)입니다. 그러니까 공주의 양자인 모세와 투트모스 3세가 정적 관계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러던 중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살인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투트모스 3세로서는 모세를 제거할 좋은 구실을 얻게 됩니다. 궁지에 몰린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피했는데 그 때 나이가 40세였습니다. 그 후 40년이 지난 80세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는데 본문이 바로 그 때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지팡이가 등장합니다.

 

[1] 모세의 지팡이 :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삶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이미 말씀하셨는데 그가 계속 핑계대면서 거절합니다. 본문에도 계속됩니다. 출4: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cf. 출3:11,13, 출4:10,13)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핑계를 대는데 이적을 본 후까지 도합 5번이나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답답하셔서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출4: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목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는 마른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모세 자신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는 왕궁에서 40년 동안 최고의 학문을 배우고 자신이 꽤 잘 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광야 40년을 통해서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임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왕자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쫓기는 신세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 조건이 조금 괜찮으면 스스로 대단한 존재일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보다 더 잘 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벌레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서울대 졸업생으로 해외에서 오래 세월 거주하다가 최근 귀국한 분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귀국 소회를 밝힌 글인데 그 중에 한 토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에 유학 갔을 때의 일화입니다. 1970년대였으니 유학을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였습니다. LA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지언을 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서 갔다가 충격적인 일을 당했습니다. 면접관이 이력서를 보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Seoul National University? Where is it?” 속으로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니, 서울대는 모른다는 거야? 그러면 뭐라고 설명하지?”그래서 “South Korea에 있는 대학인데, 북위 37도에 위치한 수도 서울에 위치해 있고 … ”라고 대충 설명했더니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지나치더랍니다. 그 때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자랑하고, 가문을 자랑하고, 학벌을 자랑하고, 직업을 자랑하고, 이것저것을 자랑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게 아닙니다. 넒은 세상에서,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실상을 알아야 온전한 신앙생활이 가능하고 인생도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팡이를 바라보도록 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신 겁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모세 자신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왜 굳이 그러셨을까요? 심술궂은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찮은 존재라도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면 얼마든지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시청각적으로 교훈해 주고 싶으셨던 겁니다.

 

[2] 하나님의 지팡이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은 지금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모세의 지팡이지만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굳이 지팡이를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출3:11~12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이러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그런데도 계속 핑계를 대고 거절하니까 그에게 확신을 주시려고 이리저리 애쓰신 겁니다. 3절~7절을 보면, 두 가지 이적이 나옵니다.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니까 뱀이 되고, 뱀을 잡으라고 하니까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뱀은 바로 왕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바로 왕의 왕관을 보면 뱀 장식이 달려 있죠. 바로 왕의 권세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손을 품에 넣으라고 하니까 나병에 생기고, 다시 넣었다 빼니까 원상대로 회복됩니다. 나병은 이스라엘이 속박 가운데 고통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능히 구원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이 두 가지 이적을 보여주신 후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출4: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miraculous sign-NIV)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기적으로 보여주신 증표가 두 가지나 되니까 승리를 확신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모세가 머뭇거리니까 나일 강물을 피로 변화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일 강은 애굽의 생명줄이고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데 피로 변하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 겁니다.

 

모세가 참 질깁니다. 그래도 또 거절합니다. 10절에 보면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 ”람 계속 핑계를 댑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11절에서 입을 만드신 분으로 책임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가라고 말씀합니다. 출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해 주신다는 증표로 지팡이를 주십니다. 출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miraculous signs-NIV)을 행할지니라”그런데 잘 보면 모세의 지팡이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반지를 끼워 주며 결혼을 약속합니다.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그러면 그 반지는 금은방에 있는 반지들과 전혀 다른 반지입니다. 왜 그렇죠? ‘그대가 끼워 준 반지’로 언약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그 반지를 볼 때마다 사랑의 언약을 기억하며 영원히 함께해 줄 것을 확신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금지팡이가 된 게 아닙니다. 나무 지팡이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늘 함께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증표입니다. 모세는 그 지팡이를 볼 때마다 뱀이 지팡이로, 지팡이가 다시 뱀으로 변했던 이적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이제부터 모세는 혼자 몸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해 주십니다.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가 지팡이를 들면 홍해가 갈라지고 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면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지팡이에 마력이 생긴 게 아니라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동행할 때 능력이 나타난 겁니다.

 

숫자로 표현해 보면 이런 겁니다. 연약한 인간을 1로 표시해보죠. 조금 잘 났으면 2 혹은 3 정도이고, 아주 잘나봤자 10 정도 되겠죠. 그런데 하나님은 ∞(무한대)입니다. 인간들끼리의 능력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1 + ∞ = ∞이고, 10 + ∞ = ∞입니다. 반면 1 – = – ∞이고, 10 – ∞ = -∞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별 의미가 없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느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자신에게서 유래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유래합니다. 얼른 보면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있는 것 가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모세를 잡고 있는 겁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성경 교사로 불리는 헨리에타 미어즈가 모세의 120년 생애를 세 단계로 구분했습니다. 흥미롭게도 40년씩 구분됩니다. 1단계 40년은 모세가 하나님 없이 자신만만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I am somebody.) 그 뒤에 ‘하나님이 없이’(without God)라는 말이 생략됐겠죠. 2단계 40년은 하나님 없이 보잘것없는 자신을 비관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I am nobody.) 역시 그 뒤에 ‘하나님이 없이’(without God)라는 말이 생략됐겠죠. 3단계 40년은 자신은 보잘것없지만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대단한 사람이다.”(I am somebody in God.)

 

이렇게 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비로소 위대한 생애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해 떠나는 모습을 보십시오. 출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여러분, 한번 그 장면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십시오. 멋집니까?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기에,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기에 위대한 출발입니다. 그 앞에 바로의 큰 권세도 애굽의 큰 장벽도 무너집니다. 앞을 가로막는 홍해도 갈라집니다.

 

[3]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 하나님과 동행하는 승리의 삶

 

오늘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겉으로 보이는 인간 조건이나 환경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우월감에 우쭐거리기도 하고 열등감에 움츠러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승부는 거기서 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세상이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을 그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면 세상 앞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면 내 앞에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의 능력에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기 전 자랑했던 가문과 학벌, 신분과 재산에서 나왔습니까? 아니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질그릇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안에 보배가 담겼기에 보배 그릇이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나는 얼마든지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마28:20(하)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부활체로 올라가시는데 어떻게 우리와 함께해 주십니까? 승천하신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을 통해 함께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보혜사는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성령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또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요14:18,2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우리를 영적인 고아처럼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성령으로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오신다는 말은 말은 재림이 아니라 성령강림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포함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모세처럼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지만 성령이 내주하시기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면 지팡이를 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말씀이 있죠.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나님이 나와 함께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확신할 때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의 동행을 확신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인간 조건이 보잘 것 없어도 괜찮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바울의 간증이 나옵니다. 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는데 많은 신학자들이 바울이 평생 고질병으로 달고 살았던 안질로 추정합니다. 그가 온갖 병자들을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행했지만 정작 자신의 질병 하나 치유하지 못하니까 육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사도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질병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세 번씩이나 기도합니다. 하지만 주님에게서 돌아온 것은 이런 응답이었습니다. 고후12:9(상)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 ”바울에게 나타는 능력은 그 자신에게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혹시라도 인간 조건을 자랑하고 교만해질까봐 하나님이 영적인 안전장치로 육체의 가시를 그대로 두신다는 겁니다. 인간 조건을 자랑하는 순간 주님의 능력은 사라집니다. 바울은 그 원리를 깨닫고 오히려 기뻐하며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고후12:9(하) “ …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같은 맥락으로 또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전1:27~29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요즘 식으로 말하면 흙수저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면 오히려 금수저를 부끄럽게 할 만큼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감리교 창설자 존 웨슬리는 자신의 가리켜 ‘불 속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화재가 났을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초인적인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기에 모든 게 가능했음을 고백한 말입니다. 그는 임종 시 손을 번쩍 들고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몇 달 전 백수를 하고 소천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미국의 여러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감당했던 그는 문자 그대로 시대의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동네의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부모조차 부끄러워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할머니가 늘 격려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빌리야, 장차 하나님이 너를 분명히 쓰실 거야.”정말 하나님이 그와 함께해 주실 때 믿음의 영웅이 됐습니다. 그가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에게서 성령의 능력이 떠나가면 나는 진흙 덩어리에 불과하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세기의 연인’이란 별명을 얻은 오드리 햅번은 영화배우로 유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말년에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아프리카 각지에 다니며 섬겼던 그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의 사역은 후손들을 통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지독하게 가난했습니다. 물로 배를 채운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기아 직전까지 갔지만 유니세프에서 구호품을 제공해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은혜를 기억하며 섬김을 실천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불가능(impossible)은 없다. 그 단어 자체가 ‘나는 가능하다(I’m possible)’고 말하고 있다.”그는 아마도 그 말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in God)라는 말을 넣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의 생애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승리할 수 있었음을 증거한 고백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물으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금 지팡이입니까? 우리의 인간 조건이 대단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별 게 아닙니다. 자랑할 수 없습니다. 나무 지팡이입니까? 우리의 인간 조건이 초라해 보여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붙잡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잡은 것은 사실은 하나님이 그를 붙잡아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붙잡힌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지팡이가 없지만 그보다 더 좋은 성령과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성령과 말씀으로 하나님께 붙잡힘으로 험악한 세상이지만 항상 승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