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은혜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은혜와 행위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은혜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 아닌 오직 은혜로만 주어진다는 원리를 내세웠습니다. 오직 은혜는 오늘 말씀과 부합합니다. 에베소서 말씀은 우리가 얻게 된 구원에 대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고 말씀합니다. 다 반복하여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반대는 선행입니다. 중세교회의 구원관은 단순화하면 선행으로 구원받는다 입니다. 인간의 자기노력이 필요합니다. 내 안에 의를 쌓아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그에 합당한 구원을 받습니다. 이는 지난번에 말씀 드렸듯이 루터의 경우를 이해하면 쉽습니다. 루터의 고민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하고 선행을 쌓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불안감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가 성경을 읽고 깨달은 진리는 구원은 인간 편의 그런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단번에 또 완전한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오직 믿음이 인간 편에서 구원을 얻는 방법을 제시하는 원리라면, 오직 은혜는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인간 편에서의 어떠한 노력도 차단하는 원리입니다. 중세 시대 가장 꿈꾸었던 이상적 인간상은 성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은혜의 원리는 이런 인간적 노력이 불가능함을 선언합니다. 수도원에 들어가서 가서 내가 성결한 삶을 산다고 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완전한 성결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루터나 종교개혁자들이 보았던 것은 인간의 선행 교리가 가지고 있는 교만과 자기기만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자신이 성인인체 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기만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강요하는 것은 오류요 사기입니다.   여기에서 종교개혁자들이 바라보는 인간관이 형성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보았고 원죄론에 주목했습니다. 타락 이후 인간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절대 무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산상수훈 말씀을 해석하며 산상수훈은 다 지키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라 해석했습니다. 산상수훈은 그 말씀 앞에 좌절하라는 의도로 주어졌고 절망 속에서 갈보리 산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는 말씀이라 하였습니다. 중세 가톨릭은 산상수훈의 이상은 실현할 수 있고, 또 실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가톨릭도 단지 인간의 노력만이 아니라 은총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이런 이상을 이룬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오직 은혜의 원리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완전하게 주어지는 길이 있는데 왜 엉뚱한 방향에서 시간과 정열을 허비하겠습니까?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루터에게는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인간적 행위의 불완전함에서 벗어나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면죄부를 살 수 없는 가난한 백성들에게도 이는 너무나 기쁜 소식입니다. 천국은 돈이나 권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활에 매어 수도사가 될 수 없고, 헌신도 보일 수 없고, 순례길을 떠날 수 없는 평신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복음이었습니다. 개혁자들은 인간 선행의 독소를 제거하고 은혜의 교리를 강조하기 위해 인간의 절대타락을 강조하는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개혁교회의 기원이 되는 칼빈의 주요 교리가 그렇습니다. 칼빈의 교리는 다섯 개로 요약할 수 있는데 영어에서는 이것을 T.U.L.I.P.(튤립) 교리라 부릅니다. 이 다섯 가지 교리들은 인간의 무능력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그 핵심입니다. 첫째는 ‘인간의 전적부패(Total Depravity)’입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둘째는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입니다. 인간의 조건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 가운데 아무런 조건없이 선택하셨습니다. 셋째는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사역은 모든 인간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 곧 예정된 백성에게만 주어집니다. 넷째는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입니다. 이는 구원이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주권적으로, 전적으로 주어지는 은혜, 곧 선물임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성하시고 선택하시고 불러주신 자는 평생토록 이 구원의 은혜에서 끊어지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미 믿음을 통해 교회의 일원이 된 자들에게는 이는 무한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벌벌 떨던 사람들에게 오직 은혜의 교리는 얼마나 큰 기쁨의 소식이었겠습니까? 인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 그런데 문제는 인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입니다. 오직 은혜의 원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인간은 완전히 무력한 존재로 취급되어야 했습니다. 원죄론이 인간을 보는 기본적 인식이 되었습니다. 타락한 이후 인간은 절대 악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언제 어떤 식으로 발현할지 모릅니다. 인간은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로 만든 것들은 다 악하여 그대로 수용하면 안 되고 항상 돋보기나 현미경으로 검사해보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해지기 전 이 한반도는 온통 어둠과 마귀가 장악하던 곳입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경계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구원도 의로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과 연대해서 어떤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래서 그 앞에 ‘기독교적’이라거나 ‘복음적’이라는 표가 붙어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항상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창조 - 타락 - 구속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세계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망가졌기에 그대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세례를 주기까지 경계해야 합니다. 경계와 의심의 세계관이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이런 배타적인 방식이 세상과 타협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적인 영역이라 하여 외면하다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말았습니다. 과학과 문화는 이제 하나님 없이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직 은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알기에 행함의 길이 아닌 믿음의 길로 인간을 구원하시길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 개혁자들은 지나친 인간비하로 나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설명하기 위해 한 사람 아담의 범죄를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고 사망이 왕노릇 하였는데 그 반대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아담은 배경이고 하이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배경에 더 주목하고 배경을 주인공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런 예가 타당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왕비가 된 창녀입니다. 우리는 도무지 왕비가 될 수 없는 사람인데 과거나 능력을 보지 않는 왕의 놀라운 선택으로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왕비가 된 사람이 그 은혜가 너무 크고 놀라워 자신이 과거에 창녀였다고 하며 감사해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왕의 은혜를 찬미하는 데 관심을 갖기보다는 왕비의 과거에 더 주목합니다. 과거에 더 연연하고 이것을 비방의 계기로 삼습니다. 물론 제가 인간의 타락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강조점은 타락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 제목이 맞습니까?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보다는 탕자라는 과거에 더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틸리케란 신학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어 ‘기다리는 아버지’라 제목을 정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가 어떠한 사람이었건 상관없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집에 같이 살던 형은 이 아버지의 사랑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동생을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눅15:30)이라 부릅니다. 그는 여전히 동생의 과거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사랑도, 그 기쁨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인간의 죄성에 주목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그러해 보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이제는 의심과 배타의 눈이 아니라 사랑과 포용의 눈이어야 합니다. 값싼 은혜 오직 은혜는 잘못하면 싸구려 은혜가 됩니다. 공짜니까 가볍게 여깁니다. 본회퍼라는 신학자는 이를 ‘값싼 은혜’라 하였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책에서 본회퍼의 말입니다. “은혜를 값싸게 보는 우리의 견해는 교회의 대원수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은혜를 귀하게 얻으려는 싸움이다. 값싼 은혜는 싸구려로 팔아버리는 상품과 같은 것으로, 억지로 내맡기는 죄의 용서요 위로요 성만찬이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산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한 은혜가 값싼 은혜다.” 은혜는 값싸지 않습니다. 은혜는 매우 비쌉니다. 너무 비싸서 공짜로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공기나 물을 공짜로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공기와 물이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상에서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이 값쌉니까? 자기 아들의 생명을 주고 바꾼 구원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값싸게 취급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키에르케고르나 본회퍼가 썼던 예화입니다. 괴테의 책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가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말은 그가 일생동안 노력해서 얻은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이 책 한 권 슬쩍 읽고는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면 과연 옳은 것입니까? 파우스트에게는 진리이지만 신입생에게는 교만이고 자기기만입니다. 은혜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루터가 자기 곁을 때리는 번개에 두려워하고, 수도원에서 하루 종일 고해하고 고행하며, 교황청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또 비텐베르크 고탑에서 성서와 씨름하여 얻은 오직 은혜라는 말하고, 갓 세례를 받은 청년의 입에서 나온 오직 은혜가 같겠습니까? 은혜는 매우 값진 것인데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하여 나태하게 살 수 없습니다. 믿음의 교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며 하나님을 협박할 수 없습니다. 인간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은혜 받은 자는 선한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본회퍼의 말입니다. “은혜에 의하여 순종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순종이 은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로 부르신 까닭은 우리가 다시는 과거의 삶을 답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왕비로 삼았으니 이제는 왕비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창녀 때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면 신랑 되신 예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루터가 수도원을 나오는 순간 성결의 삶이나 경건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를 얻은 것입니까? 종교개혁자들은 수도원을 없앰으로써 오히려 싸움을 우리 생활 전선으로 확대시켰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백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본회퍼의 평가입니다. “그의 싸움은 백병전이었다. 예수를 좇는 일을 세속 생활 중심에 세워 놓은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올바른 순종의 시작입니다. 전에는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면, 이제는 천국 백성이 된 자로서의 합당한 태도나 위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값없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부르신 분의 뜻에 맞게 이 땅에서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며 우리는 다시 ‘오직 은혜’라는 방탄막 안에서 안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량없는 은혜를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참된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