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임하시오며” (마 6:9-13)


 매일 아침 신문을 보면 참으로 끔찍한 사건들이 연일 거기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수십억에 달하는 경제사범의 기사라든지, 몰인정하고 야수와도 같은 살인강도 사건들, 가정을 파탄으로 내몰아 넣는 가정 파괴범들, 각종 공무원들의 비리, 농약이 묻은 식품들과 가짜 식품들, 부실 건축물의 붕괴, 마약사범, 각종 유괴범들과 사기범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비인간적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불 때마다, 우리 마음속에는 울분 같은 것이 치솟게 마련입니다.  ‘어째서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계속 일어나는가?’ 하고 말이지요.

 어떤 아이가 물에 빠진 친구를 건지려다 힘이 미치지 못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사람 살려요! 누구 좀 어떻게 도와주세요!” 하고 말이지요.  그 때 그 소리를 듣고 어떤 어른이 뛰어 들어가서 구하여 줍니다.
 마찬가지지요.  이런 사건들을 목격할 때마다, 적어도 이런 일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절규하게 마련입니다.  “누가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우리를 향하여 ‘이럴 때 이렇게 부르짖으라,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옵소서!” 하고 말이지요.
 따라서 오늘의 이 세대가 험하면 험할수록, 거기에 대해 우리가 안타까움을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는 더욱 더 간절히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시고, 그리고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어서, 오늘의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며 절규하게 마련인 우리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하는 이 기도는 주기도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그 자체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눅 4:43, 막 1:15,38).

 그런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를 함에 있어서, 먼저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할 때, 그 ‘하나님의 나라란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우리는 “나라”라고 했을 때, 지도상에 나타나는 ‘영토’를 연상하게 됩니다.  가령 한국, 미국, 영국, 중국 같은 나라들을 말할 때, 우리는 먼저 그 나라가 위치한 ‘땅’을 연상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한국!’ 하면 한반도를 떠올리게 되고, ‘미국!’ 하면 찻잔 모양처럼 생긴 북미 대륙에 위치한 미국 땅을 연상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나라”란 단순히 그 ‘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허허벌판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무슨 나라”라고 깃발을 꽂아 놓았다고 해서, 그게 어디 ‘나라’가 됩니까?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나라가 되는 것이지요.  ‘나라’란 거기 거주하는 ‘주민’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나라”란 ‘땅’과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깨닫게 됩니다.
 옛날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점령 하에서 36년간을 보내었습니다.  그 때에 이 세상에는 ‘대한민국’이라고는 없었습니다.  바로 이 땅 ‘한반도’에 그 백성 ‘한민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소위 ‘일본제국’의 속국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캐나다 퀘벡 주에 가보면,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이 주종을 이루고 살고 있고, 또 거기서 쓰이는 통용어도 프랑스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프랑스 사람이 살고 프랑스 말을 쓴다고 해도, 여전히 그곳은 ‘캐나다’이며 ‘대영제국 연방’의 하나일 뿐입니다.

 결국 여기서 우리는 ‘나라’라고 하는 것은 ‘주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땅,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어떤 주권이 다스리느냐—지배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원어로 ‘나라’라는 말에는 ‘바실레이아’란 단어가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지역’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특정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주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 ‘하나님의 다스림’이 받아들여지는 사람들! ―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그런 지배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그곳은 어느 곳이든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고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하나님의 지배하심이, 하나님의 주장하심이, 온전히 이루어지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사실을 그대로 여러분에게 한번 적용시켜보세요.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지배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하나님의 주장하심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한번 살펴보세요.  왜 이렇게 불의와 악독함이 가득 차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인 것입니까?
 아니지요. 성경은 결단코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합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와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바다와 땅을 나누시고, 거기에 각종 식물을 만드셨습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물에는 각종 물고기가 놀고 공중에는 새들이 날게 했습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온갖 짐승들을 만드셨습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의 모습입니다. “심히 좋았더라!!”
 그런데 그와 같은 세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입니까?
 바로 우리 사람들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형상’을 떠날 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지배와 다스리심에서 벗어낫기 때문입니다.

 이점에 대해 로마서 1장 28절에서 32절의 말씀은 이렇게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p. 240)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였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마음,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반드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모시지를 않고, 또 그의 다스림을 받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한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때, 그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과히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따먹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줄로 알고 말이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면 자유스러울 것 같고, 기쁠 것 같고, 잘될 것 같고, 돈도 많이 벌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배를 떠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날’도 범하며 말이지요.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없이 더 잘될 것 같아서 한 짓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늘날의 이와 같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바와 같이, 범죄와 파멸이 우리 주위에 우글거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제 어떻게 하여야만 하겠습니까?
 무엇이 이 세상을 파멸에서 건짐을 받게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오직 한 길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에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그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의 이 세상에서 유일한 구원의 수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지배를, 그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이 세상을 주장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그 원래의 모습 ― 그 선하시고 그 기뻐하셨던 ‘나라’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열심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하고 말이지요.


 다음으로, 우리가 이 기도를 함에 있어서 꼭 깨닫고 있어야 할 두 번째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간구 할 때, 어디서부터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까?
 영어성경으로는 이 말씀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Thy Kingdom Come! (당신의 나라가 오시옵소서!)
 여러분, 이 말을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예수님께서는 결코 Thy Kingdom GO 라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Thy Kingdom COME!

 무슨 말인고 하면, 여러분, 말뜻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나라가 오시옵소서’하고 기도하라 하셨는데, ‘오시옵소서’ 할 때 그러면 ‘누구’에게로 와야 ‘오는 것’이 됩니까?
 ‘내게로’ 와야 ‘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게 먼저 오소서!’ 하는 의미가 바로 이 말이 뜻하는 바의 첫 시작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코 저 사람에게, 저들에게, ‘임해 가셔야 되겠습니다’가 아닙니다.
 Thy Kingdom COME!  내게로 임해 오시옵소서!!
 “하나님! 내가 먼저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들입니다. 나를 주장하시옵소서!”  이것이 이 기도의 출발인 것입니다.

 가끔 설교를 들을 때에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저 설교는 꼭 누구누구가 들어야 할 설교라고요.  저 장로님이 들어야 되는데, 저 권사님이 들어야 되는데, 오늘 설교는 꼭 우리 며느리가 들어야 되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들어야 되는데, 남편이 들어야 되는데…!
 그러나 여러분, 그런 마음이 드는 한, 설교를 잘못 들은 것입니다.
 “아, 저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럴 때에 은혜가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주님의 나라가 먼저 ‘내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우리는 이 세상의 죄들에 대하여 말하기는 쉽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기도 쉽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부정부패라든지, 마약과 음주에 따르는 범죄라든지, 퇴폐적인 영화나 소설이라든지, 아직도 복음이 미치지 않은 불신자나 이방세계들! ― 물론 이런 곳들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필요로 하는 그런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가기를’ 기도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게 먼저 임하기를, 그리고 내 가정에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직장에, 내 사업체에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마음에 새기도록 하십시오. ‘Thy Kingdom GO’가 아닙니다.  ‘Thy Kingdom COME!’ 이것이 우리의 기도여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그러면 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기도함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16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여기서 ‘침입한다’는 말의 성경 원어는 ‘비아제스타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군대가 상대방의 성으로 침투해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한 도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필사적인 노력을 기우려야만 합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필사적으로, 전투하듯이, 열심히 구하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우리가 또한 깨달아야 할 중요한 점이 등장하게 됩니다.  “침입한다”는 이 말은 양쪽 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침입한다’는 것을 우리 편에서 본다면, 이것은 ‘쳐들어가는 것—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천국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침입을 당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졌다’는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우리가 야곱의 예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 올 때, ‘얍복강’ 나루에서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의 사자를 꼭 붙잡고는,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기까지 씨름을 하면서 복을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고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뜻이 바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이겼고 하나님이 졌다는 말인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지 않습니까?

 우리들도 아이들이 계속해서 칭얼대고 조르면, 마지막에는 “그래, 내가 졌다!” 하면서 그 아이의 요구대로 들어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힘이 모자라서 지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나의 사랑 때문에 져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천국이 어디 빼앗길 천국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빼앗겨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약해서 지시는 것입니까?  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마땅하겠습니까? 
 우리는 힘써 노력하고 간구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룩해야만 합니다.  마치 전쟁에 임하듯이, 천국을 위해서는 내 생명을 바치는 노력이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그저 안일하게 앉아서 주일날 한번 교회에 왔다 갔다 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온 삶을 통해 전쟁하듯이 달라붙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이룩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빼앗는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1:12)

 그러므로 여러분,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이다’ 하고 말이지요.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하는 말은 ‘주님의 주권’이 완전히 내 마음에,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사회에, 내 나라에, ‘행사되게 하시옵소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어둠의 권세, 사탄의 권세, 더러운 권세가 다 무너져버리고, 주님의 권세만이 오로지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온전히 주장하시며 지배를 하시게 될 때, 그러면 그 결과로서 어떤 변화가 자연히 일어나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므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그 결과로서 자연히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령 여기 귀신들린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면, 그 사람의 흐린 정신이 물러가고 맑은 정신이 이룩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면, ‘용서’하는 마음이 되고 ‘화평’하는 마음이 되어 ‘미움’이 다 사라짐을 의미합니다.
 병이 들었을 때에 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면, 병이 물러나고 건강하며 명랑하여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기도 내용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우리는 다른 그 어떤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하는 간구들보다도, 더욱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배’가 내게 이루어지고, 내 가정에 이루어지고, 내 직장 내 사업체에,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이루어지게 하려면, 나의 인간적인 ‘욕망’과 ‘소원’들을 먼저 버려야만 합니다.  나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온전히 주님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게 하는 대로 ‘목적’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이렇게 매달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져주시겠다고—이룩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저 막연히 우리를 향해 ‘힘쓰고 노력하라’고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룩해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져 주신다! ― 야곱에게 져 주시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이것은 얼마나 영광된 일입니까?!!

 여러분, 바로 여기서 우리는, 내가 크리스찬이란 이 사실에 크나큰 긍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에서 크나큰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세요!!

 혹 여러분 가운데는 내가 전투하듯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지 못했다고 낙심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지시대로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대로 살지 못했다고 괴로워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용기를 가지십시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나라가 ‘지극히 작은 겨자씨가 뿌려져,   자라나, 큰 나무가 되는 것과 같다’고 여러 차례 하나님의 나라를 ‘자라는 씨앗’에 비유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주저함이나 고민함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처럼 되기까지 고민하시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서, 우리는 특별히 다음의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에 대해 말씀하심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과 관련하여 말씀하실 때에는 그 시제(時制)에 있어서 ‘과거형으로, 현재형으로, 또한 미래형으로’ 다 아울러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이면서 동시에 현재이며, 또한 미래라는 말씀입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먼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란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자연히 우리 하나님의 ‘존재의 속성’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시작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 역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아우르며 또한 초월하는 그런 나라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또한 우리 인간의 시간적 개념으로 볼 때에도 그러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항상 인간과 역사를 다스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이루어진 ‘과거적 형태’로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또한 현재적인 사건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기 이 지상에 오심과 함께, 그 나라는 지금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적과 권능을 행하시면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들 앞에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지금 그들과 함께 계시니,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이루어지는 ‘현재형’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주님은 심판주로서 다시 오십니다.  그래서 이 지상의 모든 불완전한 나라들과 악의 권세들을 다 소멸시키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이룩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또한 ‘미래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아주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인간과 연관시켜 말씀하실 때에는, 그 시제(時制)가 ‘현재형’과 ‘현재진행형’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우리 인간이 주님을 영접할 때, 그 순간 하나님의 나라는 그 사람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께 복종하는 모든 마음과 생활에, 주님을 신앙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형인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지상 최대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명령을 최우선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한 우리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어서도, 우리 마음속에 떨어진 복음의 씨앗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계속 자라나고 있습니다.  비록 처음은 미약하였지라도, 또한 지금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있을지라도, 그러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그 분량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계속 성장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 보혜사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항상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시며, 우리를 도우시며 역사하여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그리스도인과 연관시켜 말씀하실 때에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자라나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우리가 집중해서 생각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에 임하면,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나의 생각’을 통하여 자라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랄 때 우리의 생각도 자라며, 나의 이 생각하는 방식부터가 계속 바뀌어지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서, 결국 하나님의 온전하신 그 분량에까지 우리의 믿음과 생각이 이르러야 하며, 이와 같은 성장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며, 또한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바로 내게 그 씨가 뿌려졌습니다.
 그것이 내게서 계속 자라납니다.  100%에는 아직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내게 ‘심어지고 자라난 그것을’ 귀하게 보아주십니다.  그래서 내게 져 주십니다.  들어 주십니다.  더욱 더 자라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하루 이만큼 기도하며 살았습니까?  못 다한 것에만 눈을 돌리지 마세요.  여러분이 한 것에 눈을 돌려보세요.  여러분을 통해 그만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만큼 임하여 졌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오늘 이만큼 했으면, 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만큼 이미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은 내가 오늘보다도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큼 더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며,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나는 ‘이룩하는, 더욱 더 이루어 나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한 만큼, 내가 힘쓴 만큼,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는 나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 크리스찬의 긍지요, 우리의 보람이요, 우리의 자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생각’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기만 하면, 그 때부터 우리는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날마다 나의 이 ‘죄성’을 도말 시키시며,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나와 함께 역사 하여 주십니다.
 나로 늘 이기게 해 주십니다.  나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더 임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더욱 열심히 일하며, 더욱 열심히 기도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 이렇게 늘 기도하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축복을 여러분이 기도하시는 대로, 여러분이 힘쓰시는 대로, 여러분의 믿음대로,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이 사실을 꼭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행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