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vs. 칠병이어(마15:32~39)

성경을 보면 이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리켜 ‘이적의 책’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특히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적(異蹟)이란 말은 기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뜻이 있는 기적(miraculous sign)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이적은 공통적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구주임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각 이적마다 그 외에 이런 저런 뜻을 증거합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을 생각해 봅니다. 많은 무리가 모여 있었지만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떡 5개(5병)와 물고기 2마리(2어)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인 사건입니다. 이 이적 역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주임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수님이 생명의 떡임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오늘 본문에는 이와 비슷한, 그러나 분명히 다른 이적이 나옵니다. 한번은 무리가 모여 있는데 굶주린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떡 7개(5병)와 물고기 2마리(2어)를 가지고 배불리 먹인 이적이 나옵니다. 그러면 뭐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요? 칠병이어(七餠二魚)의 이적! 이것 역시 오병이어의 이적과 동일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주이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심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이적을 비교하면서 얻는 교훈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이런 이적이 일어났느냐 하는 겁니다. 그 과정을 알면 오늘 우리도 예수님이 함께해 주시는 가운데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 오병이어 이적 vs. 칠병이어의 이적 : 5천 명 vs. 4천 명

먼저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히 다른 두 이적의 내용을 자세히 비교하면서 살펴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5천 명을 먹였고, 칠병이어 이적은 4천 명을 먹였습니다.

본문 37절~38절을 보십시오. 마15:37~38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그 당시에는 사람의 숫자를 셀 때 여자와 아이들은 빼놓았습니다. 그래서 ‘여자와 어린이 외에’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7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과 비교해 봅니다. 마14:20~21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여기서는 5천 명이 배불리 먹고 12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칠병이어는 오병이어보다 많은데 오히려 적은 수의 사람들을 먹였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나눠주었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을 먹여야 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무엇을 받든지 받지 않든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능력이란 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능력 vs. 인간의 능력 : 전능(무한) vs. 무능(유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 자신으로 그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반면에 인간의 능력은 유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무능함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이든 항상 전능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능력이 약화되어 역사가 덜 나타나고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간에게는 기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실력 발휘를 잘 합니다. 그런데 컨디션이 나쁠 때는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부진합니다.

혹시 예수님도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병이어 때는 능력이 더 크게 나타나서 5천 명을 먹었는데 칠병이어 때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도 능력이 덜 나타나서 4천명 밖에 먹이지 못한 게 아닌가 하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 전에는 5천명이 모여서 5천 명을 먹인 것이고, 이번에는 4천명만 모였기 때문에 4천명을 먹인 겁니다. 중요한 것은 전원 배불리 먹였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1만 명이 모였다면 역시 전원 배불리 먹였을 겁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능력에 기복이 없습니다. 항상 무한하십니다. 전능하십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러니까 인간의 능력은 큰 변수가 되지 않습니다. 오병이어든 칠병이어든 예수님 앞에서는 별 게 아닙니다. 그게 그겁니다. 가정해서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해도 예수님을 모인 사람들을 동일하게 배불리 먹이셨을 겁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 편에서 오병이어보다 칠병이어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예수님 편에서 보면 그게 그겁니다.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높은 고층빌딩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어떻습니까?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 보입니다. 큰 차나 작은 차나 장난감이 굴러다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수학 기호로 설명하면, 무한대(∞) 앞에서 1이나 10이나 별 차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굳이 제자들에게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능력이 조금 모자라서 보태달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파트너십을 가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요구하십니다. 인간은 가만히 있고 예수님이 다 해줄 수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4]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 : 믿음, 순종, 최선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자세를 요구하실까요?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능력을 나타내 주실까요? 크게 3 가지를 꼽아볼 수 있습니다.

① 믿음 :

예수님은 우리에게 인간 조건이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무한한 능력에 접속되는 통로입니다. 비유하면 파이프라인과 같은 겁니다. 수원지에 아무리 물이 많아도 파이프로 연결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가 너무 배가 고프니 뭘 좀 먹여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제자들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마15: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그들의 불신앙을 여실히 드러낸 말입니다. 얼마 전 오병이어의 이적이 있었습니다(마14:15~21). 그뿐이 아니라 다른 이적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의 무한한 능력을 믿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야 마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형편과 상황만을 보고 인간의 머리로 계산하고 판단하는 제자들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격려하며 떡이 몇 개나 있는지 찾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믿음을 일으키시고 그 믿음을 통해 역사하셨던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의 그릇에 부어집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이 최고입니다. 옛날에 한 부자가 보물을 잔뜩 가지고 있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오자 재산 정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랜 세월 수고한 종들이 생각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 이제 보물을 나눠줄테니 자유롭게 나가서 살게. 그러니 빈 그릇을 하나씩 가져와.” 첫째 종은 “정말일까? 혹시 너무 큰 그릇 가져갔다 야단맞는 건 아닐까?”하고 망설이다 대접을 가져갑니다. 둘째 종은 별 생각 없이 옆에 있던 바구니를 준비해 갔습니다. 그리고 셋째 종은 주인의 말을 가감 없이 그대로 믿고 큰 항아리를 준비했습니다. 그 부자는 각각 준비해온 그릇에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그러자 첫째 종이 볼멘소리를 합니다. 그때 그 부자가 한 말입니다. “누가 대접 가져 오랬나? 더 주고 싶어도 너는 그릇이 그것밖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 할 수 없잖아.” 이와 같이 믿음의 그릇이 중요합니다.

막5:25~34 보면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잃던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병을 고쳐 보려고 용한 의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돈은 돈대로 허비하고 차도가 없이 오히려 위중해졌습니다. 이제는 절망의 상황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 쇠약한 몸이지만 겨우겨우 예수님이 계시다는 곳으로 갑니다. 막상 예수님에게 다가갔더니 주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고민이 됐습니다.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끝이라는 절박한 마음에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살짝 잡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그 여인에게 흘러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막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사실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된 것인데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그녀 자신의 믿음에 의해 치유됐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믿음대로 받는 겁니다. 부디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그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② 순종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것저것을 명령하십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황당합니다. 먹을 것을 찾아보라고 하지를 않나, 떡 7개와 물고기 2마리밖에 없는데 무리를 그룹별로 앉히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5:34~35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제자들은 처음엔 예수님 뭐 하시나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상기하고 순순히 순종합니다. 처음에는 믿음이 없어 부정적인 대꾸를 했지만 이제는 믿음이 생겼고 순순히 따르고 순종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칠병이어를 손에 들고 축사(감사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주고 또 주셔도 계속 떡과 물고기가 새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4천 명이 먹고도 남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적들을 보면 공식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믿음 + 순종 = 기적. 요2:1~11 보면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이적이 나옵니다. 가나 혼인 잔칫집에 손님들이 많이 몰려와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식수가 부족해서 포도주가 주된 음료였습니다. 그런데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큰 낭패입니다. 당황스런 상황에서 모친 마리아가 마침 그 집의 친척인지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나섭니다. 예수님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이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때를 보고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그때를 기대하면서 하인들에게 지시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셔도 순종하라! 때가 되자 예수님이 하인들을 불려 말씀하실 때 어떻게 됐나요? 요2:7~8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어느 순간 변화됐는지 모르지만 연화장이 받아들었을 때 포도주가 되어 있었고 그 맛을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극상품이었습니다. 보통은 좋은 것을 먼저 내고 나중에 질이 낮은 것을 내놓는 게 상례인지라 크게 감탄합니다. 마리아의 믿음, 그리고 하인들의 순종의 결과 놀라운 이적이 일어난 겁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죠. 왕하5:1~14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치유 사건입니다. 그는 아람 왕의 총애를 받는 공신으로 제2인자였습니다. 그런데 나병에 걸려 절망합니다. 그때 전쟁 통에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소녀가 부엌에서 일을 하다 마님에게 전도합니다. 이스라엘에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 받을 수 있다고. 그동안 백방으로 노력해도 소용이 없어 이제 절망에 짜져 있던 터라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서 불원천리 하고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나와 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7번 몸을 씻으라고 명령합니다. 나아만은 불쾌해 하며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때 신하들이 만류해서 마음을 고쳐 먹고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됐나요?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일곱 번 온전히 순종할 때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프란체스코(이탈리아 출신으로 12세기~13세기 중세 수도원 운동의 주역 중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경건과 청빈을 실천한 분으로 유명합니다. 한번은 그가 수도원에 있을 때 수도사가 되겠다며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마침 배추 모종을 심고 있었는데, 그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리 와서 배추를 심어 보시오. 뿌리를 하늘로, 줄기를 땅으로 향하게 심어야 합니다.” 비상식적인 명령이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은 프란체스코의 말대로 순종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심었습니다. 그 결과 거꾸로 심은 사람만 수도사로 입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코는 농사꾼을 뽑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뽑는 것이기에 믿음과 순종을 기준으로 결정한 겁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앞세우지 말고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③ 최선 :

예수님은 사람들은 많은데 광야에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5:34을 다시 보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떡 몇 개 있냐고 물으십니다. 없는 것 같았은데 찾으니까 칠병이어가 나왔습니다. 물론 한 사람이 먹어도 간에 기별이 갈까 말까 하는 소량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기쁨으로 받으셨고 축사하신 후 나누어주십니다. 그러자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가정해서 칠병이어가 없었다면 이런 이적이 불가능했을까요? 아니죠. 없어도 됐을 것이고, 적어도 됐을 겁니다. 굳이 요구하신 것은 믿음을 보려고 하셨고, 더 나아가 최선을 요구하신 겁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크든 작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실은 예수님 앞에서는 이러나저러나 별 게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런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이리와 사랑을 나누고 교제를 나누고 함께하고 싶어 하십니다. 잠23: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 ”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능력이나 조건이 크다고 교만할 것도 없고 적다고 기죽을 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겸손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교만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그래서 오히려 적은 것을 통해 역사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전1:27~29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부족하지만 겸손히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역하사하십니다. 그래서 오히려 세상에서 큰소리치는 자들의 입을 막아 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조건을 갖추는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나 바울 같이 인간 조건이 대단한 자들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는 그들을 꺾으시고 낮추셔서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화려한 조건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있기에 그렇게 하신 겁니다.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고후12:1~10). 그것은 평생 그를 괴롭혔던 안질이었습니다. 그는 치유를 위해 사력을 다해 기도했지만 주님이 그대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그가 깨닫고 뭐라고 고백합니까?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러므로 절대로 조건이 좋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조건이 나쁘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새 정부 들어서 임명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상고 출신으로 대표적인 흙수저였습니다. 소년 가장으로 은행에 취직했고 야간대를 다니다 행정고시를 패스해서 공직 생활을 한 분입니다. 그리고 계속 공부해서 미국 대학 박사학위도 땄습니다. 직전에는 아주대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청빈한 삶을 살며 기부를 많이 하기로 소문난 분이라 별 탈 없이 청문회를 통과했습니다. 수년 전 그가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재직할 때 고졸 출신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38년 전 제 모습입니다. 그때 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콤플렉스였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꽃입니다. 언젠가 핍니다! 결코 기죽지 마십시오.” 일반인들에게 강연한 것이라 그랬지 아마 그는 이렇게 간증하고 싶었을 겁니다. “저는 그 콤플렉스를 저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부족했지만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셔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됐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전능자로 역사하십니다. 그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셨고 또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인생 살면서 어려움도 있고 힘들 때가 많지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고 주님이신데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문제는 바로 우리의 자세입니다. 부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순종의 사람 되십시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그 놀라운 능력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