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는 “인간은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존재”라는 말을 합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만큼의 세계를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세모 같은 생각을 하면 세모 같은 삶을 사는 것이고, 네모 같은 생각을 하면 네모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이지요.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 절망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은혜로운 생각을 하면 은혜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거예요.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은 흥하는 생각, 잘 되는 생각, 은혜로운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하셔서 승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하면 승리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가
있을까요? 쉬울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만 있다면
신앙생활이 너무나 쉬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기만 하면 누구든지 형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비결을 알려주십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나 유행에 끌려 다니지 말라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가지 말아야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자기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합리주의입니다. 공통점은 육신 중심으로, 자기중심으로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예전만 못합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충만해서 인격도 없고 생명 존중사상도 희박해 갑니다. 육체의 쾌락을 위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아이들 만화영화를 가만히 보면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만화였는데, 요즘은 난폭해지고 과격해지고 파괴적이
되었습니다. 디즈니 만화도 달라졌어요. 자극적인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 육신을 따라가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사망이라고 했어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된다고 했어요. 육신에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고
했어요.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어요. 세상을 따라가면 죽는다는 거예요. 영적으로 죽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려면 세상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합리주의를 따라가지 말아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민수기 6장에 나실인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요. 나실인은 세상의 욕망에서 자신을 구별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나실인이
지켜야 할 규칙이 세 가지가 있지요. 첫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 것이나 함부로 먹거나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먹을 것이 있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먹고 마시는 것도 구별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머리를 자르지 말아야 합니다. 머리를 깎으면 안 됩니다. 외형을 중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외형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가서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티를 내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유행에 따라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경건생활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따라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는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 곳이나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들은 가도 되는 장소가 있고 가지 말아야 하는 장소가 있어요. 썩는 냄새 나는 곳,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곳은 가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저는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하는데
못 이깁니다.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지만 한번 보고 들은 것은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게이 퍼레이드에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
봐야 볼 것도 없고, 가서 보면 그 장면에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심심하면 생각납니다. 벌써 내가 장악당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을 따라 사는 것이
편리해 보이고, 이 세상을 따라 가지 않는 것이 미련해 보이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지 않으면 융통성 없어 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취급당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민감해야 성공하는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가야 행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바보 같은 생각 같고 옳지 않은
생각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고집했습니다. 세상에 동요되지도 않았고 세상을 따라 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녀들에게 율법을 가르쳤고,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풍습도
따르지 아니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구약에 말씀하신 음식만을 먹었고,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만 살았습니다. 그 결과 비행기의 음식
문화를 바꾸었습니다.
요즘은 이슬람 사람들도 비행기를 타면 자기들의 음식을 요구하지만, 제일 먼저 한 것이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비행기에서 자기들이 먹는 음식을 요구했어요. 그 음식을 주지 않으면 그 비행기를 안타겠다는 거예요. 결국은 항공사에서 그들의 요구를
받아드렸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항공사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시대를 본받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흐름에 관대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합리주의를 받아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거룩이나
구별이나 하나님의 생각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대해서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데 왜 세상
사람들보다 못하게 사느냐, 예수를 믿는데 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느냐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시각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고 비신앙적인 생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려면 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잖아요. 저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것에 승부를 띄우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것에 승부를 걸면
좋겠습니다.
금요기도회 때에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성도들이 예수 정신으로 살면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 주시고 부요하게 해 주실 것이
아니겠어요. 그 때에 Costco를 인수하면 좋겠어요. 예수 정신으로 인수해서 주일에 문을 닫는 거예요. 돈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복음의 영향력이 있지 않겠어요?
예전에 ‘페니’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고 이름을
바꾸었어요. Jesus Christ Penny로, 그것이 JC Penny입니다. 월마트의 샘 월튼이라는 사람이 주일에는 문을 닫고 예배드렸어요.
수요일에 사람하고 약속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러 교회에 나왔어요. 미국의 초기에는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많았어요.
요즘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주일에 문을 닫는 기업이 거의 없지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업은 종업원은 일을 시키고 주인만 갑니다. 성경에는(출 20:11) 짐승까지도 일하지 말라고 했지요.
교인들이 세상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지금부터 하나님의 생각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잘 믿어서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해서 하나님의 생각대로 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승부수를 띄어야겠다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으면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런 축복의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챨스 린드버그는 분이 있습니다.
1927년 5월에 25살의 나이로 뉴욕에서 파리까지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33시간 30분이 걸렸어요.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했으니 얼마나
대단했겠어요? 하루아침에 유명한 스타가 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보도가 나오고 전 세계가 난리입니다. 린드버그가 얼마 뒤에 영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영국 국민들도 열렬히 환호하고 언론들도 먼저 취재하려고 야단입니다.
그 때에 어느 담배회사 사장이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린드버그가 담배 한개 피를 손에 들고 것을 사진 찍으면 되겠구나. 그렇게 되면 자기 회사의 담배가 전 세계에 선전되어서
사업이 잘 되겠구나 생각한 거예요. 그래 린드버그에게 얘기를 했어요. “당신이 영국에 도착할 때에 우리 회사의 담배를 손에 들고 있어도 좋고,
입에 물고 있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담배 든 사진을 한 장만 찍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5만 불을 주겠습니다.” 요즘도 CF 한 장
찍는데 5만 불이면 많은 돈인데, 1920년대의 5만 불은 엄청난 돈입니다.
이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린드버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장님,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긴 합니다. 그런데 저는 세례교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서 담배 선전하는 것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요즘은 미국 사회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굉장히 경건했습니다. 거룩했습니다.
일체 술 담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린드버그가 5만 불을 준다고 해도 예수 믿는 이유 때문에 거절한 거예요. 믿음의 승부수를 띄운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거슬러 가서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고 그럴듯해 보여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방식으로 살면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사람이 새롭게 변화되는 계기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도덕적인
마음을 가지고도 변화 받을 수도 있고, 윤리적인 마음을 가지고도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금욕적인 생활을 가지고도 변화될 수도 있고, 지식을
소유하고도 변화 받을 수도 있습니다.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변화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능합니다. 내 마음이 확실히 변화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 밖에는 없습니다. 내 생각과 내 의지로 변화 받는 것 같은데 얼마 있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새해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결심을 했어요. 작심삼일로 끝나잖아요.
내
의지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도덕적인 마음으로도 안 됩니다. 윤리적인 마음, 철학적인 마음, 수련을 통해서 얻은 마음도 안 됩니다. 책을
통해서도 안 됩니다. 잠깐 뿐입니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마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올 때에 내가 온전히 변화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도덕적인 마음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한다면 나는 도덕적인 수준에 있는 사람입니다. 윤리적인 마음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한다면 나는 윤리적인 수준에서 머무르는 사람입니다.
철학적인 마음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한다면 나는 철학적인 수준에서 끝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나를 변화시켰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믿음을 좋게 보셨는지 중요한 곳에 데리고 다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26: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호언장담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결단하는 겁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한 여종이 와서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하니까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부인합니다. 다른 여종이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하니까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에는 변화된 것 같았는데, 중요한 시기에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성령이 강림한 후에 하나님의 마음이 베드로의 마음에 들어오니까 완전히 변화됩니다. 병자를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을 치료합니다. 대제사장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호통을 치니까 베드로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완전히 변화된 베드로를
봅니다.
여러분,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변화될 때에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소유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있어야 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자꾸 들을 때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채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큐티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역대상 16:25,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하나님을 뜨겁게 찬양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내 심령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매일 같이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찬양하는 시간, 하나님과 내가 골방에서 일대일로 독대하는 시간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내 심령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음에도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지혜가
없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묶여 있는
나귀를 풀어오라고 말씀하시지요. 제자들이 가서 묶여 있는 나귀를 풀어서 주님께로 가지고 옵니다. 나귀가 묶여 있을 때에는 한 마리의 나귀
불과했지만, 풀어서 예수님께로 가지고 왔을 때에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위험한 일이 많이
있지만 내가 변화되는 시기를 놓치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내가 은혜 받아야 할 시기에 은혜 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시기 위하여 부르실 때에 응답하여 여기에 오셨으니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하시고 변화하셔서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게으르고 자기 생각을 합리화시키느라고 변화가 되지 않아요. 하나님의 생각을
거부합니다. 그러다보니까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지 못하지요. 이집트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솰라’라는 말인데, “신의 뜻,
하나님의 뜻㰡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인솰라’ 그럽니다. 사람을 만나도 인솰라, 비가 오지 않아도 인솰라, 이사를
가도 인솰라 그럽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아요.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늦게 와도 인솰라, 가난한 생활을 해도 인솰라. 한 남자가
여러 명의 부인과 함께 사는 일부다처제인데, 그것도 인솰라 입니다. 어느 가정은 짐승과 함께 살면서 짐승 냄새를 맡고 살면서도 인솰라 그럽니다.
그들은 가난을 이기려고 하지 않아요. 게으름은 인간의 무능함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인솰라 그럽니다.
여러분,
우리가 내 뜻대로 하면서 주의 뜻입니다. ‘인솰라’ 할 때가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섞으면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나에게 들어오면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성화 중에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굳게 닫힌 문 밖에서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다른 손에는 문을 두드리는 모습의 그림입니다. 그 문은 연지가 오래 되어서
풀이 나 있고 이끼가 끼여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계신 문의 바깥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이 문은 안에서만 열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문은 자신이 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드리기 위해서는 나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내 마음의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먹고 마시면서 내 삶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되고, 변화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게 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암송하시고 이
말씀대로 살아가셔서 이 말씀의 주인공 되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을 따라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