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효도와 작은 효도(잠23:22~25)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효도는 항상 실천해야 마땅한 것인데 굳이 이렇게 정해놓고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평소에 우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엄벙덤벙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각성하고 잘 하기 위함입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사랑하고 효도하는 것은 백번 생각해 봐도 지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옛날에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며 효도를 잘 실천했습니다. 100년 전 이 땅에 왔던 서양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정말 그랬습니다. 독립운동에도 공헌했던 헐버트 선교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계에서 관습적인 노인 복지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는 바로 조선이다.” 또 미국 공사였던 샌즈는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고, 의료 선교사였던 알렌은 “조선은 노인 천국이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사실 전통적인 관습 몇 가지만 살펴봐도 그런 평가들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노부모가 아침에 일어나실 때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아들과 며느리를 비롯해서 자손들이 문안 인사를 드렸습니다. 햇과일이나 별식이 생기면 노부모에게 먼저 드린 후 다른 식구들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는 남남이라도 출타했다가 돌아오면 먼저 마을 노인들에게 인사를 올렸습니다. 마을에 잔치가 있으면 아무 연고가 없어도 마을 노인들을 상석에 모시고 대접했습니다. 나라에서도 부모가 늙으면 그 자식에게 벼슬을 내릴 때 고향 가까이 배치해서 봉양케 하고, 부모님이 더 늙으시면 봉양을 잘 하라고 유급 휴직까지 허락했습니다. 또 회갑이 지나면 고을 현감이, 고희가 지나면 감사가, 백수가 지나면 임금님이 봄가을로 주식과 옷을 내려 장수를 치하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노인 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들이 문자 그대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년 전 자료지만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통계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17개 국가의 청소년들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 정도를 면접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국 청소년들의 경우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가 20%(17개 국가 평균 2%), ‘존경한다’가 13%(17개 국가 평균 72%)였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지만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패륜과 배은망덕의 현상은 앞으로 세상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점점 더 심화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예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의 징조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딤후3:1~2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구구절절 오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성이 극도로 타락해가는 모습입니다. 그 중에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부모 거역입니다. 이런 현상이 점점 더 심화된다니 정말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세태를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효도는 권위 질서의 근간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사회 질서, 더 나아가 국가 질서가 다 무너집니다. 성경은 효도를 가리켜 인간의 기본 도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마땅한 도리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는 물론이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반드시 효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게 나 자신이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더 나아가 이 나라와 온 세계가 사는 길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효도를 실천하고 자녀들에게도 효도를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심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실천할 효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큰 효도와 작은 효도입니다. 효도는 기본적으로 부모님과 함께 사랑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큰 효도는 신앙을 공유하는 것이고, 작은 효도는 생활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1] 큰 효도 : 신앙의 공유

먼저 큰 효도를 살펴봅니다. 효도에 관해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는 성경 구절들 중에 대표적인 말씀이 에베소 6장에 나옵니다. 그 중에 엡6: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in the Lord)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주 안에서’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되 주님 안에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신앙을 공유하라 겁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겁니다. 만일 부모님이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최우선적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최고의 사랑이요 최선의 선행입니다.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헛된 효도입니다.

간혹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완고해서 감히 전도하지 못하면서 그게 부모님을 존중해 드리는 효도인 줄 압니다. 착각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님이 암에 걸렸는데 만일 그 사실을 알면 크게 실망하실 게 뻔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을 실망하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 쉬쉬하고 병원에도 모시고 가지 않는다면 그게 효도입니까?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말씀드리고 설득해서 병원에 모시고 가서 치료받으시게 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이 기분 나빠 하신다고 암보다 더 심각한 죄와 영원한 사망 이야기를 알려드리지 않고 쉬쉬합니까? 그것은 효도가 아니라 최악의 불효입니다.

제 친구 중 한 사람이 있는데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 중의 효자입니다. 그런데 전도할 때마다 되풀이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너무 싫어하시니까 돌아가시면 너희 교회로 나갈게.”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어머님이 남으셨는데 지금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도 모르니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아직 주님을 모르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꼭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효도 중에서 제1순위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가정에 연로하신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예배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따님이 얼굴이 환하신 겁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하나도 슬프지 않나?” 그런데 나중에 사연을 듣고 이해가 됐습니다. 오랜 세월 전도해도 완고하게 거부하던 어머니가 임종 전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 시신이 얼마나 깨끗하고 주무시는 것처럼 평안해 보였는지 너무 기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최고의 효도는 하셨네요!”

또 다른 가정은 부모님이 지방에 계셔서 전도하기가 여의치 않아 늘 마음이 걸렸는데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버님이 병환에 생겨 서울의 대형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연락을 주셔서 급히 달러갔습니다. 완고하셨지만 잘 설득해서 복음을 전해드리자 결국 성경책에 손을 얹고 결신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천국 가신 후 이번에는 어머님이 병환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도 연락을 주셔서 역시 복음을 전해 드리자 다행히 어머님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가족들도 기뻐하셨지만 복음을 전한 저도 얼마나 기쁘고 보람이 있던지! 이런 게 목회하는 맛입니다.

우리가 만일 부모님에게 전도하지 못한 채 돌아가시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됩니다. 나중에 만회가 안 됩니다. 그러면 영적인 이산가족이 되는 겁니다. 세상에서 이산가족은 만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신앙을 갖고 있으면 천국에 가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신앙을 갖지 않으면 영영 헤어지고 마는 겁니다. 육신의 이산가족도 얼마나 애가 탑니까? 그래도 혹시 세월이 가면 만날 수도 있고, 영영 못 만나도 신앙이 있으면 천국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이산가족은 영원히 결별하게 됩니다. 그러면 얼마나 슬프고 후회 막심하겠습니까? 예수님도 영적인 이산가족에 고나해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24:40~41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영원한 이산가족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육신보다 귀한 것은 영혼입니다. 그리고 현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세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신앙이 없는 부모님에게는 꼭 십자가 복음을 전해 드려야 합니다. 최고의 효도입니다. 아무리 육신적으로 잘 해 드려도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면 천추의 한이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신앙이 좋은 분이라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신실하게 하는 게 효도입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가장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신앙의 부모님에게 자손들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2] 작은 효도 : 생활의 공유

작은 효도는 육신의 생활을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항상 염려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제공해 주셨습니다. 평생 그런 마음입니다. 성경도 부모님의 사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물론 이 구절은 하나님의 무한 사랑을 증거하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사랑을 증거해 줍니다.

간혹 가다 자식을 소홀히 하고 학대하는 부모도 있기는 합니다. 말세에는 그런 일들이 좀 더 빈번해질 겁니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 아동학대 방지법이 제정되고 있습니다. 영국은 과거에 신사의 나라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동을 돌보지 않고 학대하는 부모 15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급기야 신데렐라 법이라는 아동학대방지법을 제정해서 시행하게 됐습니다.

이런 예외적인 인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사랑은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사랑 중에서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랑입니다. 어느 치매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부삼 서부경찰서 관내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한 할머니가 남루한 행색에 보따리 2개 들고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를 목격한 한 시민이 경찰서에 신고해서 경찰관이 출동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를 만나고 보니 자신의 이름도 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환자였습니다. 그저 보따리만 꼭 끌어안고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딸이 아기를 낳고 병원이 있어요.” 그런데 그 할머니가 슬리퍼 차림인 것으로 보아 동네 부근에 사는 분으로 판단하고 사진 찍어 동네에 배포해서 수소문했습니다. 결국 딸이 입원한 병원 찾아냈고 순찰차로 모시고 갔습니다. 할머니가 병실에 들어서자 갓난아기와 함께 누워 있던 딸이 보고 눈물 섞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엄마~!” 할머니는 딸을 보고 환한 웃음을 짓더니 보따리 풀었습니다. 미역국, 나물 반찬, 흰밥 등 갖가지 음식을 펼쳐놓더니 딸에게 말했습니다. “어서 무라!” 딸은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경찰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치매도 모성애는 이길 수 없나 봅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다 이렇습니다. 그 사랑을 외면하면 불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큰 불신앙의 죄를 짓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님과 생활을 공유해야 합니다.

① 공경 :

먼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잠23: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청종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은 공경하라는 뜻입니다. 엡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순종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성경 원어로 ‘휘파쿠오’(uJpakouvw)인데, ‘아래에서’라는 뜻의 ‘휘포’(uJpo)와 ‘듣다’라는 뜻의 ‘아쿠오’(akouvw)의 복합어입니다. 그러니까 ‘아래에서 듣다’ 즉 ‘귀를 기울이다’라는 뜻입니다.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여기서 ‘공경하다’라는 말은 헬라어성경 원어로 ‘티마오’(timaw)인데, ‘가치를 인정하다’ ‘존귀하게 여기다’ 등의 뜻입니다. 이 말이 구약성경(출20:12, 신5:16)에서는
히브리성경 원어로 ‘카베드’(כבד)인데, 본래 ‘간’(肝)이란 뜻이 있습니다. 간은 인체 가운데 크기에 비해 아주 무거운 부위여서 ‘무거움’이란 뜻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부모를 무겁게 여긴다, 귀중하게 여긴다, 존대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훌륭한 신앙인은 예외 없이 효자였습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지만 어머니 밧세바가 행차하면 왕좌에서 일어나 절을 드린 후 오른 쪽에 앉혀드렸습니다(왕하2:19).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애굽으로 이민 올 때 수레를 갖추고 멀리 고센까지 가서 영접합니다(창46:29). 그리고 평생 공경하며 잘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미리아와 요셉의 구세주임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부모로 깍듯이 모시고 순종했습니다. 눅2: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서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리고 십자가에 들려 운명하실 때 극한 고통 가운데 계시면서도 모친 마리아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모시도록 부탁하셨습니다(요19:26~27). 부디 저와 여러분도 부모님을 공경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바랍니다.

② 봉양 :

봉양한다는 말은 받들어 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봉양을 무엇보다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이 젊을 때 한창 날리던 분이라도 노인이 되면 물질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궁색해집니다. 과거의 모습이 화려했을수록 역설적으로 더욱 더 의기소침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감정을 느끼시지 않도록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잘 돌봐 드려야 합니다. 육신적으로는 물질이 궁핍하지 않도록, 건강을 살펴드리고, 또 가고 싶은 데 보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손들이 서로 우애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가족 간의 불화, 갈등으로 걱정을 끼치면 안 됩니다. 아마 이게 물질적으로 잘 해 드리는 것보다 더 나은 효도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살아계실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효도해야 됩니다.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아계실 적엔 그렇게 소홀히 하더니, 돌아가시고 나니까 효자 난 것처럼 야단인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후회돼서 그렇다면 이해가 가는데 은근히 자기 체면치례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부모 공경이 아닙니다. 부모님은 오래 기다리실 수 없습니다. 지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직 살아 계시다고 생각 없이 지내다가, 막상 돌아가시면 얼마나 후회 막심하겠습니까?

국제구호 전문가 한비야 씨에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래 전 세계 일주를 할 때 국제전화요금이 너무 비싸고 전화하기기 힘들어서 어머니에게 몇 달에 한 번 기본 통화만 했다고 합니다. 용건을 급히 말하는데 어머니가 우시면 윽박지르곤 했답니다. 그리고 여러 번 일본 여행을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아쉬워합니다. “지금 딱 3분만 전화할 수 있다면 엄마에게 다정하게 말할 텐데 … ”

부디 지금 우리의 효도를 받아주실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신 것을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생활을 공유하고 섬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효자의 불효자의 인생 : 축복과 저주로 갈림

이러한 효도는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성경에 적극 권면하시면서 포상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효자와 불효자의 인생이 완전히 갈린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효자의 인생은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반면에 불효자의 인생은 하나님이 저주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엡6:2~3에서 부모 공경에 관해 이렇게 교훈합니다.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cf. 출20:12, 신5:16) 십계명 중에 대인계명(제5~10계명) 중에서 첫 번째 계명입니다. 여기 보면 유일하게 축복의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형통과 장수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불효자를 철저히 저주하신다고 경고하십니다. 신27: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출21: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TV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 「K팝 스타」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재미교포 청년인 버나드 박이 우승한 적이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합산 점수로는 2위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시청자 문자투표가 우세해서 종합 1위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그 배경에는 감동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본인에게는 알리지 않고 미국에서 응원하러 오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세탁소는 어떻게 하시고요?”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들게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이 문을 닫고 비싼 비행기 삯을 내고 오신 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한편 염려가 돼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청년의 효심을 본 시청자들이 몰표를 던졌던 것입니다. 그 청년의 미래는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하나님께서 필히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녀들도 이렇게 살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보내면서 하루짜리 1회용 어버이주일로 끝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치 행사를 치르듯 부모님에게 선물이나 해 드리고 그것으로 효도를 다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예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부모님께 큰 효도와 작은 효도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으로 자자손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