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수칙: 주 안에서 기뻐하라 * 본문/ 빌립보서 3:1-3

공사장에 가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주의표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전제일이라고 하는 푯말입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안전을 위하여 꼭 지켜야 할 수칙들이 붙어 있는 것을 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고는 이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경우들입니다. 만약 수칙을 준수했다면 안전할 것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입니다. “기쁨은 본 서신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최악의 감옥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기뻐하라!”고 네 번씩이나 강조하여 권면합니다.

* 1: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2:17-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 3: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바울 사도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계속하여 말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 또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안전한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왜 그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재삼재사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안전하다는 의미는 무슨 뜻일까요?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립보서 3장에서는 1-2장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일반적인 권면의 말씀들의 결론적인 말씀으로 마지막으로, 종말로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말씀을 빌립보 교회의 상황 속에서 꼭 하시고 싶은 말을 구체적으로 하기 위합니다.

흔히 기뻐할 때가 언제일까요? 원하던 것이 이루어 졌을 때입니다. 상황이 정말로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졌을 때입니다.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지금의 바울이 처해 있는 상황이나, 빌립보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은 물리적으로나 외형적으로 볼 때 기뻐할 처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있는 기쁨도 앗아 갈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바울은 언제 순교 당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빌립보교회는 외부적으로는 핍박으로 인한 환란이 임박한 상황이며, 내부적으로는 분파적인 분쟁과 갈등이 내재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기뻐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요? 그것은 그들의 삶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특별히 주 안에서!” 라는 조건은 무작정 억지로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는 성도가 처해있는 그 신분의 위치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께서는 성도들이 기뻐할 근거요, 조건이요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구약 성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존재의 이유요 근거요 목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 32: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는 수고롭지 않은 일일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안전한 행위라는 것은 그 주님이 성도들의 존재의 근거요,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안전합니다. 그 이유는 그 주 예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즉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의 기쁨의 근거입니다. “주 안에서 (in Christ)”라는 표현은 성도가 누릴 기쁨의 기초요, 근거요, 이유입니다. 기뻐할 범위입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 있으면 모든 근심과 걱정과 문제들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455,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여기서 안전하다(de aspares)”뒤집어 엎지지 않는, 떨어지거나 넘어지지 않는, 안전한(not to overthrow, not to cause to fall or stumble, to safe)는 의미입니다. 즉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신앙을 갖고 실족하지 않고 안전하게 설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 G. F. Hawthorne, “ 만약 빌립보교인들이 이 사도 바울의 권면을 받아드려 기뻐하고 또 기뻐하면 그들의 교회 내에 잠복하고 있는 고질적인 병적인 문제들 즉 중상과 모략과 거짓된 행위들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증상들이 해소되고 치료되고 그것들로부터 성도들을 안전하게 지켜지는 결과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같이(2:3-4)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기쁨은 세상의 기준에서 보는 기쁨이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는 마음가짐, 행위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또한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 가운데서 영적인 겸손과 온유함으로 고요하고 기쁨을 유지하고 그 기쁨을 사모하는 영적 겸손이 악한 세상 가운데서 가장 안전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는 그러한 기쁨을 추구하고 살아가야 함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 딤전 2:1-3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을 실만한 것이니

2.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할 이유들

좀 더 주 안에서 기뻐해야할 구체적인 이유들을 살펴봅니다. 왜 사도바울은 여러 차례 주 안에서 기뻐하라!” 고 하실까요? 그것은 장차 경험하게 될 어떤 상황에 대한 준비를 시키기 위합니다. 또한 당시의 영적지형도가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말씀드린 대로 환란의 시기였고 내부적으로 심각한 위기가 있는 상황으로 성도들은 마땅치 그 상황을 극복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의해야 할 세 가지와 적극적으로 기뻐해야할 이유 세 가지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전자의 교훈을 살펴 보고 다음 시간에 후자의 교훈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A. 주의해야할 세 가지 상황(2)

* 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

여기서 삼가라(brepete)”라는 말은 조심하라(to watch out) 경계하라(beware of)”는 말입니다. 즉 빌립보교회를 위해하려는 세력들을 경계하고 그들을 조심하고 잘 감시하여 대처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대상은 누구들입니까? 세 부류입니다. 첫째 개들, 둘째 행악하는 자들, 마지막으로 손 할례당입니다.

1) 개들 이 개들이 누굴까요? 유대인은 이방인들을 낮추어 부를 때 개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방인 여자 수로보니게 여인을 개라고 불렀음을 봅니다.

* 7:27-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음식규정으로 볼 때 개라는 동물은 부정한 존재입니다.

* 22:31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지니라.

이들은 교회 내에서 추하고 더러운 짓을 일삼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마치 교회를 사회의 일부분으로 알고 교인답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들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2) 악행 하는 자들- 이들은 누구일까요? 두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아주 열정적으로 복음 전파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뭐가 문제일까요? 이들이 복음사역을 열심히 하는 데 뭐가 문제일까요? 문제는 이들이 악하게 (kakos-badly)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만이 가장 열심히 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선전하고 독점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따르지 않고 돕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비방하고 비난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당시 앞서 경쟁심을 갖고 바울을 비난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 1:17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이들은 자기도취에 빠져 주님의 몸된 교회와 신앙공동체를 생각지 않고 경쟁 심리로 사역을 열심히 하는 자들입니다. 주위의 모든 교인들을 자기의 교회로 모으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사역이 시끄럽고 요란합니다. 이들은 일만 만드는 자들이요(살후 3:11), 거짓 사도요 간교한 사역자들로 그리스도의 거짓 사도들(고후 11:13)입니다. 그들은 신앙공동체를 파괴하면서 자신들의 전파를 받아드리도록 강요합니다.

* 고후 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 살후 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오늘날 각종 이단 사설들이 이런 자들입니다. 이들은 극단의 종말론자들, 이단 사설들을 집요하게 가르치고 퍼트리는 부류들입니다. 미주 교포 사회에도 이단 사설들이 판을 치고 있으며 교포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고국의 교계에서 배척받아 암암리에 독버섯과 같이 교포 사회에 숨어 들어와 있습니다. 이곳 덴버에서 이런 부류의 집단들이 버젓이 신문 광고를 하고 전도를 하며 교인들을 현혹하고 있음을 봅니다. 한국교회 내에도 집요하게 교회를 파괴하는 세력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최근에는 한국교회에는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도들을 꾀어 성도들을 이간시키고 교회를 파괴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주의하라고 경계하라고 명합니다.

두 번째 부류는 유대주의에 열심당원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사역을 펼치는 자들입니다. 사실 바울이 예전에 이런 일을 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울이 그랬습니다. 당시 권력을 빌어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잡아 감옥에 처넣는 못된 짓을 한 것입니다.

* 9: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은 이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바울이 되어 예수의 복음을 전하자 그를 끝까지 추적하며 가는 곳 마다 바울을 괴롭혔습니다. 이 광신적인 유대교도들은 사악한 의도를 갖고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를 찾아다니며 그의 사역을 방해하고 심지어 그의 목숨까지 노리며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손할례당입니다.

여기서 손 할례당이란 말(ten katatomen)몸에 칼자국을 내는 행위(mutilation)”를 하는 자들을 뜻합니다. 물론 할례(peritome)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mutilation)은 이들만이 강조하는 할례 행위를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3절 초두에서 우리가 할례당이라는 주장과 대비되는 말입니다. 이들은 육체의 할례 즉 칼로 몸을 벤 흔적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아시는 대로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으시면서 유대인 대대로 시행하도록 명하신 거룩한 행위입니다.

* 17: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그런데 유대인 사회에서 할례는 선민의 표시로써 유대인들만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할례가 없는 개 같은 자들이라고 경멸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세가 이 할례를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시행할 때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쳤다는 데 있습니다.

* 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즉 참된 할례는 육신의 몸에 칼로 흔적을 내는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할례를 받은 자들이 인식해야할 진정한 선택의 의미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이 할례의 진리를 망각하고 할례 형식만을 강조하고 마음으로는 온갖 죄를 짓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역하여, 마침내는 배교하는 일들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면서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며 구원받은 자라고 자랑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결국 그들은 나라를 잃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육체의 할례보다 마음의 할례를 더 강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메시지는 형식적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 즉 회개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전파한 것입니다.

* 4:4a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자들을 삼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한 무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특권의식과 세상적인 분파행위로 자신들의 말을 듣고 자신들의 모임에 들어와 특정한 의식과 방식으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괴롭히고 파괴하는 행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들을 조심하고 경계하고 제거하라는 명령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날 이러한 세력들이 교회 내에 잠복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건전하고 성경적인 신앙을 문제 삼고, 교회의 행사를 문제 삼고, 분위를 문제 삼아 교회를 어려움에 빠트립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세력들을 주의하고 경계할 것을 사도 바울은 지적한 것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성도의 영광스러운 신분을 강조하며 진정한 할례당이 바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며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강조합니다.

*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세밀하게 살펴보도록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가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온갖 죄로부터 깨끗하게 씻음 받아 거룩하게 된 십자가의 군사들입니다.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출세와 성공의 조건인 그 어떤 형식과 조건들과 상관없는 즉 육체의 조건들에 구애받지 않고 주눅 들지 않는 구원의 확신을 담대하게 갖고 있는 거룩한 하나님나라 백성들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 4:4-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성도여러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고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 안에서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고귀한 피값으로 추악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주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그 구원의 진리를 굳게 붙잡고 항상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시길 바랍니다. 바로 이러한 주 안에서 기쁨의 의식과 삶이 악한 세상 가운데서 가장 안전하게 살아가며 구원을 누리는 방법이요 비법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