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조율(막1:35~39)
여러분,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네, 조율입니다. 아무리 경력이 쌓이고 기량이 출중해도 먼저 조율해야 합니다. 초등학생이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도 먼저 조율해야 되고, 명연주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도 먼저 조율해야 됩니다. 만일 조율하지 않으면 아무리 악기가 좋아도 연주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이 없습니다. 음악을 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심한 경우 소음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연주자에게 조율은 기본이고 필수입니다. 이런 원리를 우리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조율이 무엇입니까?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로운 뜻에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승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그런 겁니다.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삶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는 옛 자아(old self)입니다. 이제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의 뜻대로 살아가는 나’는 새 자아(new self)입니다.
그러니까 새 자아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한 마디로 주님의 뜻에 맞추어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영적 조율’(spiritual tuning)을 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코 실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 조율이 안 돼서 그렇지 영적 조율만 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고 그 결과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왜 실패합니까? ‘내 뜻’대로 살아서 그런 겁니다. 만일 내 뜻대로 살아서 승리할 수 있다면 세상에 실패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왜 실패하는 걸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내 뜻대로 살아서 그런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새 자아가 되어 이제는 내 뜻은 죽이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옛 자아가 자꾸 꿈틀거립니다. 주님의 뜻을 거스르고 내 뜻대로 살려는 욕망이 솟구칩니다. 그럴 때는 여지없이 실패하고 맙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하나님은 명연주자이시고 나는 악기입니다. 내가 비록 부족해도 명연주자이신 하나님께 영적으로 조율되면 얼마든지 내 인생이 좋은 인생으로 연주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승리하는 인생의 비결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부디 오늘 말씀을 통해 날마다 주님께 영적으로 조율되어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영적 조율 :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최우선순위(first priority)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에 기간 중에 있었던 사건의 기록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말씀도 전파하시고 병도 고쳐주시는 등 여러 모양으로 사람들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에 앞서 중요하게 여기며 실천하셨던 게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영적 조율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습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가장 먼저 실천할 최우선순위가 바로 영적 조율임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막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의 하루 일과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해가 뜨기 전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에 예수님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어디로? 한적한 곳(Quiet Place)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조용한 장소에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조용한 시간을 가지신 겁니다. 이런 시간을 가리켜 경건의 시간(Quiet Time)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간단히 말해서 큐티(Q.T.)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매일 아침 이런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전날 스케줄을 감안하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어김없이 그 시간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앞에 막1:21부터 그 전날의 하루 일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침 안식일이었는데 오전에는 예수님이 회당이 들어가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셨습니다. 오후에는 시몬(베드로)의 집을 심방하고 몸져누워있던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특히 32절~33절을 보면 낮 시간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수고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각종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겁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일일이 면담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아마 밤늦도록 그렇게 하셨을 겁니다. 막1:32~33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제일 먼저 경건의 시간을 가지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요즘 현대인들이 얼마나 바쁘고 분주합니까? 아이들도 어른들도 너도 나도 다 바쁩니다. 오죽 하면 “요즘 바쁘시죠?”라고 인사하는 게 상대방을 존대하는 말이 됐을까! 예수님도 그에 못지않게 바쁘고 분주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과 예수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현대인들은 뭔가 열심히 하고 분주하기는 한데 생활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다 보면 삶이 고달프고 공허해지기 십상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분주한 가운데서도 질서 있고 알찬 승리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경건의 시간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매일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도 하면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진짜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뢰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셨습니까? 청각적인 음성은 들어보기 힘듭니다. 아주, 아주 특별한 체험으로 일생에 한두 번 혹은 두세 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그런 음성을 못 듣는 게 오히려 당연합니다. 간혹 그런 음성을 날이면 날마다 듣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둘 중의 하나입니다. 쇼이거나 사탄의 마귀의 악령의 역사이거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어렵죠. 하지만 꾸준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 보면 성령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성경을 기록할 때도 간섭하셨고(성령의 영감), 성경을 읽을 때도 간섭하십니다(성령의 조명). 자꾸 해보면 성령님의 인도받는 법이 습득됩니다. 육신적은 훈련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자꾸 해 봐야 습득됩니다. 예를 들어 운전하는 것이 처음에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운전대를 붙잡고 벌벌 떱니다. 그러다가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자동차가 마치 내 몸에 딱 붙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직접 소통하고 교제하셨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소통하고 교제합니다. 그러다 보면 ‘깨달음과 확신’의 과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때로는 여러 차례 반복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마음에 평안이 임합니다. 그러니까 ‘깨달음 – 확신 – 평안’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그 뜻을 실행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공급받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일치된 뜻을 가지셨고 그 뜻대로 실행할 때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매일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큰 문제 앞에 놓일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매일 가지는 경건의 시간보다 더 깊이 간절하게 하나님 아버지와 만나는 시간을 가집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공생애를 막 시작하기 직전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광야 40일 금식기도입니다(마4:1~11). 굶주린 예수님에게 사탄이 접근해서 시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조율되어 있었기 때문에 넉넉히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 공생애 3년 내내 어떤 문제 앞에 처할 때마다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또 어떻게 하셨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마26:36~46). 그 때 기도의 요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갖고 계시지만 동시에 인간으로 와 계셨기에 인성도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는 십자가를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사형 틀로 최악의 수치와 고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영광의 주님으로서 도저히 참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인류의 죄악을 대속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뜻과 하나님의 뜻이 대립되고 상충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영적 조율을 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맞추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결과 부활하셨고 인류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게 된 게 아닙니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영적 조율이 우리 삶에서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이게 우선입니다. 오히려 바쁠수록, 문제가 클수록 이게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정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보니까 문자 그대로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여러분,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바쁜 게 반드시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바쁜 것들을 위주로 살아가면 삶이 뒤엉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들을 위주로 살아가야 합니다.
경영학자요 리더십 컨설턴트였던 스티븐 코비의 베스트셀러「성공하는 사람들의 7 가지 습관」을 아실 줄 압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책보다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First Things First)」는 책을 더 좋아합니다. 거기서 그가 지적하는 대로, 사람들은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두 가지 기준 중요성(importance)과 긴급성(urgency)을 고려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긴급성에 쫓기며 살다 보니까 자칫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낭비합니다. 결국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셈이 됩니다. 당장 긴급해 보이지 않아도 정말 소중한 일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때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게 방향이고 시계보다 중요한 게 나침반입니다. 경건의 시간을 통해 영적으로 조율되는 것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나침반을 보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2] 영적 조율의 결과 : 하나님의 뜻대로 승리하는 삶
예수님을 이와 같이 영적 조율을 함으로써 매일, 그리고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승리하셨습니다. 본문을 계속 보면 예수님의 승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한적한 곳에 가서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있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막1:36~37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they exclaimed-NIV)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이러 저리 찾아다셨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발견하고 어떻게 합니까? ‘이르되’라는 말이 영어성경에는 ‘exclaim”이란 단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소리치다’ 혹은 ‘외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입니다. 반가워서 흥분하며 말했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찾았다고 했는데 과장된 표현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니까 제자들이 흥분해서 으스대며 난리가 났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영적 조율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십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인간적인 생각대로, 욕심대로, 세상 풍조대로 이리저리 충동적으로 밀려다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런 모습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군중을 피해 다니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막1: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귀신을 쫓아주신 후 함구를 명령하신 이유는 사람들의 그릇된 메시야 관(觀) 즉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야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적만을 좋아하고 흥분했습니다. 그들이 몰려온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그들을 피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막1:38~39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전도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고 신유와 축사는 그저 전도의 수단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영적 조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하나하나 이루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마지막 외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19:30 “다 이루었다!” 한 점의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승리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영적 조율이 우선입니다. 시128:1을 보면 복된 삶의 비결이 나오는데 영적 조율이 된 사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길은 말씀입니다. 영적 조율이 된 상태라야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치즈로 유명한 미국의 식품회사 크래프트 푸드(Kraft Foods, Inc.) 설립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회사는 스위스의 네슬레와 함께 세계 식품업계의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155개국에 걸쳐 9만 8000명의 임직원 근무하고 있고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입니다. 설립자 제임스 L. 크래프트의 간증입니다. 지금은 여러 종류의 식품을 제조하지만 처음에는 직접 치즈를 만들어 마차에 싣고 다니며 팔러 다니는 일종의 행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형통합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그 비결을 불었습니다. 그때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하는지라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출근 이전에 하나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오늘은 어디로 가야 될지, 그리고 어떻게 장사를 하는 게 좋을지 … 그때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고 그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는 얼마 안 돼 도매상 차리고 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1903년 크래프트 푸드가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인물들의 시행착오가 나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훌륭한 인물들도 그랬습니다. 잘 관찰해 보면 영적 조율이 안 된 상태로 행동하다 실패한 겁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큰 민족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자꾸 가는데 자식 소식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친 자식을 줄 테니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조율하니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부부 사이에 의논하고 하갈을 첩으로 들입니다. 하나님과 조율하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감행한 겁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나요?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가정불화의 불씨가 되었고, 그 후에는 인류 역사상 큰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영적 조율을 마쳤을 때 아들 이삭을 주었고,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는(실제로는 하나님이 예비한 숫양으로 번제를 드렸지만)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그 후 아브라함의 인생은 탄탄대로였습니다. 영적 조율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 겁니다.
다윗의 경우 사울의 핍박 피해 망명하다 현실만 보고 실수한 적이 있습니다. 하도 힘드니까 인간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국경을 넘어 블레셋으로 망명하면 사울이 추격하지 못할 것으로만 계산한 겁니다. 삼상27: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 ” 그러나 육신적으로는 평안하지만 아기스 왕의 부하가 되어 수모를 당합니다. 이스라엘과 싸우는 전쟁에 출전할 뻔했습니다. 블레셋 장수들이 반대해서 돌아갔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만일 참전했다면 동적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고 사울이 전사한 전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왕의 추대를 불가능하게 됐을 겁니다. 거주지 시글락에 돌아간 다윗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잠시 자리를 빈 사이에 아말렉 족속이 침노해서 약탈하고 불을 지르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끌어갔습니다. 그 상황을 목격한 부하들이 다윗에게 돌을 들어 쳐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다윗이 하나님 앞에 엎드렸는데 이게 바로 영적 조율입니다. 삼상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새 힘을 얻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아말렉을 공격했고 결국 승리함으로 모든 것을 되찾아옵니다.
신앙 성숙의 과정은 영적 조율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가장 성숙한 것은 주님께 붙어 있는 겁니다. 영적인 연합!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특히 요15:7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말씀과 기도 가운데 주님과 하나가 되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승리한 인물의 대표 중에 에녹이 있습니다. 히11:5에 이렇게 당당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he was commended as one who pleased God-NIV)” 그가 하나님께 칭찬받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Enoch walked with God-NIV)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다른 것은 모두 평범하고 특별히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칭찬하신 이유입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함께 걷는다는 뜻입니다. 함께 발을 맞추는 것은 곧 마음을 맞추는 것입니다. 암3: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하나님의 마음과 에녹의 마음이 하나였음을 의미합니다. 완전한 영적 조율입니다. 그런 에녹을 하나님이 몹시 기뻐하셨던 겁니다.
윌로우크릭 교회 빌 하이벨즈 목사의 책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Too busy not to pray).” 기도가 최선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도는 아침을 여는 열쇠요 저녁의 자물쇠이다.” 하루의 시작도 마침도 영적 조율로 하라는 겁니다. 매일 이렇게 살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부디 분주한 일상생활 중에, 그리고 어떤 문제에 처할 때 무엇보다 영적 조율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승리하고 평생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