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우리가 힘써야 할 일

 

골 4:2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길가에 각종 광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대부분이 상품광고와 기업광고입니다. 그리고 가끔 공익광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라서 그런지 몰라도 제 눈길을 사로잡는 광고문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라는 일종의 신앙광고입니다.

   한 편으로 반가웠습니다. 전도도 광고형태로 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궁금했습니다. “과연 누가 이 문구를 관심을 가지고 볼까?”, “이 문구가 일반인들에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일종의 회의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광고에 대한 반응들이 있었습니다. 한 인터넷 블로그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7년 전쯤이었을까요?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쉽사리 저를 인정해주지 않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뿐이었지요.

  그렇게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창밖 멀리 간판이 하나 보였습니다. "왜 걱정하십니까?“ 나에게 하는 말일까? 밑에 문구가 하나 더 있더군요. "기도할 수 있는데"

  그리고 그 주에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가끔 삶이 힘에 겨울 때면 이 문구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할 수 있는데 걱정만 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지 못하고 염려만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나름대로 기도하다가 삶에 쫓겨 기도를 쉬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저는 이런 분들께 오늘 본문 말씀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기도를 계속하고

   이 말씀은 “기도를 계속하고”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기도를 계속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글자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도만 계속하라는 뜻일까요? 물론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뜻일까요?

   우선 성경원어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계속하고”라는 말은 “프로스카르테레오”(προσκαρτερέω)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동안’이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스’(προσ)라는 말과 ‘참다’, ‘견딘다’라는 뜻의 동사 “카르테레오”(καρτερέω)라는 말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래서 그 뜻은 ‘참으며 지속하다’, ‘계속 노력하다’, ‘변함없이 충성하다’입니다.

   그러니까 원어 뜻으로 볼 때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은 ‘힘들어도 참고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경에서 이 말은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행 6:4에도 나옵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는 말씀 가운데 ‘힘쓰리라’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갑자기 부흥하게 됐습니다. 교인들이 늘어나고 교회 안에 복잡한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행정적인 일과 특히 구제하는 일 때문에 신경 쓸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사도들이 담당하며 이끌어야 했습니다. 원래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념하던 사도들이 행정적인 일과 구제하는 일까지 담당하게 되면서 몹시도 바빠졌습니다. 그러는 중에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을 예전과 같이 전념할 수 없게 되었고, 교회의 영적인 역사가 크게 위축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며 방법을 찾게 됐습니다. 7집사를 세워서 저들에게 구제하는 일을 비롯하여 교회의 봉사에 관한 일들을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다시 영적인 일에 전념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들이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적으로 볼 때 기도를 계속한다는 말은 기도의 소중함을 깨닫고 기도하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기도를 계속한다는 말은 힘이 들더라도 기도를 계속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소중함을 깨닫고 기도하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교우 가운데 건강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은 분이 있었습니다. 건강을 자신했는데 각종 건강 지표가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지방간에 당뇨 수치와 고혈압 수치가 위험수위까지 와있다는 것입니다. 담당의사가 복부비만이 이 속도로 증가하면 6개월 안에 심각한 질병이 발생할 것이라고 거의 위협에 가까운 진단을 내리더랍니다. 그러면서 6개월 안에 체중을 10킬로나 빼야한다고 협박에 가까운 처방을 내리더랍니다.

  이 분이 집에 와서 눈물겨운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체중계 위에 올라서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식사 때마다 칼로리를 계산했고, 식단도 확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운동도 시작 했습니다. 출근할 때 차를 두고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정말 체중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매 주일 제게 자랑스럽게 보고 했습니다. “목사님! 이번 주 1킬로 뺐습니다.” 제 눈에 참 안쓰러웠습니다. 제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애쓴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이어트 때문에 이렇게 애써보신 일이 있으시지요? 그런데 기도 때문에 이렇게 애써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육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라 영적인 일에 이렇게 애써보신 일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4:7-8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이어트 때문에 애쓰는 일도 유익하지만 영적인 일 때문에 애쓰는 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일에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힘이 들지만 그래도 잘 참고 계속해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정말 소중한 일임을 깨닫고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를 계속하라고 말씀한 뒤에 이어서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계속해 갈 때 특히 두 가지를 빼놓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감사고 다른 하나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우선 본문은 우리가 기도할 때 감사를 빼놓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왜 감사가 중요할까요?

 

첫째로 감사가 기도의 문을 여는 열쇄와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도는 누구나 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타종교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불신자들까지도 저마다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엡 1:3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롬 1:21-2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롬1:21~22)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사하지 않음으로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마음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하지 않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셨는데 기도하지 못하고 기도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기도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기도 줄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잘 모르고,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몰라서 기도하다가 허둥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럴 때 감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드리고 그동안 받은바 기도의 응답에 대해 감사해 보십시오. 기도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기도의 문을 활짝 여는 열쇄와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감사가 믿음의 기도를 드리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의 시가 참 많이 나옵니다. 이 시들은 대부분 기도입니다. 특히 인생의 절박한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호소하는 기도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들 안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후반부에 반드시 감사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 54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숨어 지낼 때 쓴 시입니다. 한 번은 유다 땅 십이라는 지역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지파 사람인 십 사람이 사울 왕에게 밀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보낸 병사들이 수색하며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습니다. 이제 체포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다윗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선 이 시의 전반부를 보면 하나님께 자기의 현재 상황을 다급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이 위기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지금 병사들이 자기를 잡으려고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 가운데 기도하면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위기에서 건져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신학자들은 다윗의 이런 감사를 ‘선취적 감사’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린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이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감사가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믿음으로 기도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감사가 믿음으로 응답을 기다릴 수 있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에 힘쓰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우리의 기도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사가 우리의 기도를 믿음의 반석 위에 든든하게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깨어있으라

   다음으로 오늘 본문을 보면 기도할 때 깨어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깨어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겉사람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속사람의 측면입니다.

 

첫째로 겉사람이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깨어있다는 것은 우리의 겉사람이 기도에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 2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기도의 자리에 가셨습니다. 38절을 보면 이렇게 세 사람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잠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4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이 말씀을 보면 깨어있다는 것은 일단 겉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잔다는 것은 그냥 자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하지 못하고 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에 깨어있다는 것은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하고자 할 때 기도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기도에 잔다는 것은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려는 마음이 들 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기도할 때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속사람이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깨어있다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이 기도에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 6: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할 때가 있습니다. 쓸 데 없는 소리를 반복합니다. 시간 보내기 위해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중해서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속사람이 기도에 깨어있지 못한 것입니다.

   약 4: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기도할 때 정욕을 따라 기도하면 응답받지 못하게 되고, 그리고 이것이 잘못된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정욕에 따라 기도하게 되는 것을 까요? 우리의 속사람이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깨어있으면 성령을 따라 기도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이 깨어있지 못하면 마귀의 미혹에 넘어져서 기도하게 되고, 그래서 정욕을 따라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속사람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의 방해를 떨쳐버리고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내일부터 기도대행진을 시작합니다. 온 교우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의 대행진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교우들 모두가 함께 기도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기도를 멀리했던 분들, 기도하다가 잠시 쉬고 있던 분들 다시 기도의 자리로 달려 나오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시작하십시오.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할 때 깨어있으시기 바랍니다. 겉사람이 깨어 기도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리고 속사람이 깨어 참된 기도를 드리십시오.

 

골 4:2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길가에 각종 광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대부분이 상품광고와 기업광고입니다. 그리고 가끔 공익광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라서 그런지 몰라도 제 눈길을 사로잡는 광고문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라는 일종의 신앙광고입니다.

   한 편으로 반가웠습니다. 전도도 광고형태로 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궁금했습니다. “과연 누가 이 문구를 관심을 가지고 볼까?”, “이 문구가 일반인들에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일종의 회의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광고에 대한 반응들이 있었습니다. 한 인터넷 블로그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7년 전쯤이었을까요?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쉽사리 저를 인정해주지 않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뿐이었지요.

  그렇게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창밖 멀리 간판이 하나 보였습니다. "왜 걱정하십니까?“ 나에게 하는 말일까? 밑에 문구가 하나 더 있더군요. "기도할 수 있는데"

  그리고 그 주에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가끔 삶이 힘에 겨울 때면 이 문구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할 수 있는데 걱정만 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지 못하고 염려만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나름대로 기도하다가 삶에 쫓겨 기도를 쉬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저는 이런 분들께 오늘 본문 말씀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기도를 계속하고

   이 말씀은 “기도를 계속하고”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기도를 계속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글자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도만 계속하라는 뜻일까요? 물론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뜻일까요?

   우선 성경원어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계속하고”라는 말은 “프로스카르테레오”(προσκαρτερέω)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동안’이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스’(προσ)라는 말과 ‘참다’, ‘견딘다’라는 뜻의 동사 “카르테레오”(καρτερέω)라는 말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래서 그 뜻은 ‘참으며 지속하다’, ‘계속 노력하다’, ‘변함없이 충성하다’입니다.

   그러니까 원어 뜻으로 볼 때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은 ‘힘들어도 참고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경에서 이 말은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행 6:4에도 나옵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는 말씀 가운데 ‘힘쓰리라’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갑자기 부흥하게 됐습니다. 교인들이 늘어나고 교회 안에 복잡한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행정적인 일과 특히 구제하는 일 때문에 신경 쓸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사도들이 담당하며 이끌어야 했습니다. 원래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념하던 사도들이 행정적인 일과 구제하는 일까지 담당하게 되면서 몹시도 바빠졌습니다. 그러는 중에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을 예전과 같이 전념할 수 없게 되었고, 교회의 영적인 역사가 크게 위축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며 방법을 찾게 됐습니다. 7집사를 세워서 저들에게 구제하는 일을 비롯하여 교회의 봉사에 관한 일들을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다시 영적인 일에 전념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들이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적으로 볼 때 기도를 계속한다는 말은 기도의 소중함을 깨닫고 기도하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기도를 계속한다는 말은 힘이 들더라도 기도를 계속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소중함을 깨닫고 기도하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교우 가운데 건강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은 분이 있었습니다. 건강을 자신했는데 각종 건강 지표가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지방간에 당뇨 수치와 고혈압 수치가 위험수위까지 와있다는 것입니다. 담당의사가 복부비만이 이 속도로 증가하면 6개월 안에 심각한 질병이 발생할 것이라고 거의 위협에 가까운 진단을 내리더랍니다. 그러면서 6개월 안에 체중을 10킬로나 빼야한다고 협박에 가까운 처방을 내리더랍니다.

  이 분이 집에 와서 눈물겨운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체중계 위에 올라서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식사 때마다 칼로리를 계산했고, 식단도 확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운동도 시작 했습니다. 출근할 때 차를 두고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정말 체중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매 주일 제게 자랑스럽게 보고 했습니다. “목사님! 이번 주 1킬로 뺐습니다.” 제 눈에 참 안쓰러웠습니다. 제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애쓴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이어트 때문에 이렇게 애써보신 일이 있으시지요? 그런데 기도 때문에 이렇게 애써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육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라 영적인 일에 이렇게 애써보신 일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4:7-8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이어트 때문에 애쓰는 일도 유익하지만 영적인 일 때문에 애쓰는 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일에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힘이 들지만 그래도 잘 참고 계속해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정말 소중한 일임을 깨닫고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를 계속하라고 말씀한 뒤에 이어서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계속해 갈 때 특히 두 가지를 빼놓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감사고 다른 하나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우선 본문은 우리가 기도할 때 감사를 빼놓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왜 감사가 중요할까요?

 

첫째로 감사가 기도의 문을 여는 열쇄와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도는 누구나 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타종교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불신자들까지도 저마다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엡 1:3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롬 1:21-2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롬1:21~22)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사하지 않음으로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마음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하지 않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셨는데 기도하지 못하고 기도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기도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기도 줄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잘 모르고,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몰라서 기도하다가 허둥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럴 때 감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드리고 그동안 받은바 기도의 응답에 대해 감사해 보십시오. 기도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기도의 문을 활짝 여는 열쇄와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감사가 믿음의 기도를 드리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의 시가 참 많이 나옵니다. 이 시들은 대부분 기도입니다. 특히 인생의 절박한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호소하는 기도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들 안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후반부에 반드시 감사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 54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숨어 지낼 때 쓴 시입니다. 한 번은 유다 땅 십이라는 지역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지파 사람인 십 사람이 사울 왕에게 밀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보낸 병사들이 수색하며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습니다. 이제 체포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다윗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선 이 시의 전반부를 보면 하나님께 자기의 현재 상황을 다급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이 위기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지금 병사들이 자기를 잡으려고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 가운데 기도하면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위기에서 건져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신학자들은 다윗의 이런 감사를 ‘선취적 감사’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린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이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감사가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믿음으로 기도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감사가 믿음으로 응답을 기다릴 수 있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에 힘쓰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우리의 기도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사가 우리의 기도를 믿음의 반석 위에 든든하게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깨어있으라

   다음으로 오늘 본문을 보면 기도할 때 깨어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깨어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겉사람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속사람의 측면입니다.

 

첫째로 겉사람이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깨어있다는 것은 우리의 겉사람이 기도에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 2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기도의 자리에 가셨습니다. 38절을 보면 이렇게 세 사람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잠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4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이 말씀을 보면 깨어있다는 것은 일단 겉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잔다는 것은 그냥 자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하지 못하고 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에 깨어있다는 것은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하고자 할 때 기도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기도에 잔다는 것은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려는 마음이 들 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기도할 때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속사람이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깨어있다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이 기도에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 6: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할 때가 있습니다. 쓸 데 없는 소리를 반복합니다. 시간 보내기 위해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중해서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속사람이 기도에 깨어있지 못한 것입니다.

   약 4: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기도할 때 정욕을 따라 기도하면 응답받지 못하게 되고, 그리고 이것이 잘못된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정욕에 따라 기도하게 되는 것을 까요? 우리의 속사람이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깨어있으면 성령을 따라 기도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이 깨어있지 못하면 마귀의 미혹에 넘어져서 기도하게 되고, 그래서 정욕을 따라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속사람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의 방해를 떨쳐버리고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내일부터 기도대행진을 시작합니다. 온 교우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의 대행진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교우들 모두가 함께 기도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기도를 멀리했던 분들, 기도하다가 잠시 쉬고 있던 분들 다시 기도의 자리로 달려 나오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시작하십시오.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할 때 깨어있으시기 바랍니다. 겉사람이 깨어 기도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리고 속사람이 깨어 참된 기도를 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