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코카콜라라는 기업이 있습니다. 이 회사는 미국의 외교관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도 들어간 대표적인 기업 중에 하나입니다. 코카콜라는 세계 어디든지 들어가 있지요. 미국의 적성국이든 공산권이든 상관하지
않고 구분 없이 세계 모든 나라에 들어가 있습니다. 예전에 소련이나 중국이 개방되기 이전에 코카콜라가 먼저 들어갔다고
하잖아요.
코카콜라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원액의 비밀에도 있고 조직에도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사장이 집중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느 회사의 사장들이 모두 같겠지만, 이 회사의 사장은 코카콜라를 판매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정열과
노력을 쏟아 붙는다는 겁니다. 얼마나 집중하는지 자나 깨나 코카콜라만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코카콜라만 생각하고, 언제어디서나 코카콜라를
마음에 품고 다니고, 누구를 만나든지 코카콜라만 말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어느 사장은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㰡내 혈관 속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릅니다.㰡집중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 주위에 어떤 분야에서든지 뜻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집중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 고집스러울 만큼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가뿐만이 아니라
위대한 작품을 남겼던 예술가들도 집중했고, 노벨상을 받았던 과학자들도 집중했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던 사람들도 집중했습니다. 사회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은 집중의 능력이 탁월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무엇에 집중하면 좋을까요? 저는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신앙생활의 기초요 중심이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예배처럼 중요한 기초가 어디 있어요. 기초가 튼튼하면 건물이
견고해지는 것처럼 예배를 잘 드리면 신앙생활이 형통합니다.
예배처럼 신앙생활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요? 중심이 바로 서면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예배가 바로 서면 인생이 바로 세워지게 됩니다. 예배가 미국 생활의 중심이 되면 여러분의 인생은 뛰어나게 됩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신앙생활은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나는 거예요.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을 보면 일만 있으면
예배를 드리잖아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것을 잘해서 우리나라가 복을 받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예배는 신앙생활의 기초요 중심이요 전부인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이사야 43:7,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이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레위기에 가면 여러 종류의 제사가 나옵니다. 번제, 화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의 다섯 가지 제사가 있습니다. 인생은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번제를 드릴 때는 이렇게 드려라. 화제를 드릴 때는 저렇게 드려라. 죄를 지었을 때에 속죄제는 이런 방식으로 드려라. 하나님과 성도들과
화목이 깨졌을 때는 이렇게 드려라. 예배의 방식을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를 잘 드렸으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던 사람이 있지요.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자기 인생의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다윗은 자신도 예배를 소중하게 여겼고, 백성들에게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시편에 보면
예배하라. 찬양하라는 표현이 참 많이 나옵니다.
시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 22:27,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시 29: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 96: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 132: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여러분, 성도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집중하면 좋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37-38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합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표현이 무엇일까요?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마음을 다하여 집중하고, 목숨을 다하여 집중하고, 뜻을 다하여 집중하여 예배를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예배에 집중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도록 예배를 성공시켜야 합니다. 요한복음 4:23,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는데, 흠 없는 예배를 찾으신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흠이 없는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 하나님께 열납 되는 예배, 하나님이 움직여 주시는 예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승부를
걸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레위기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흠 없는 제물입니다. 레위기 1:10, “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3:1,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레위기의 다섯 가지 제사의 공통점은 흠 없는 제물입니다. ‘흠 없는
수송아지, 흠 없는 숫염소, 흠 없는 암염소’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제사장도 흠 없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레위기 21:17,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면서 흠 있는 자를
말씀하시지요. 맹인, 다리 저는 자, 코가 불완전한 자, 지체가 더한 자, 발 부러진 자, 손 부러진 자... 열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흠이 없는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한 시간의
예배를 드려도 흠 없는 예배가 되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에 집중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100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재주가 많아서 5군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능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20의 능력밖에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록 50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한 가지에 집중하면 50의 능력이 나옵니다. 100의 능력을 가진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집중의 파워입니다.
목회하면서 보면 두 종류의 교인이 있는 것을 봅니다.
오목렌즈형으로 교인이 있고, 볼록렌즈형 교인이 있어요. 어릴 때에 볼록렌즈로 햇빛을 모으면 검은 종이가 탑니다. 그런데 오목렌즈는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종이가 타지를 않아요.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볼록렌즈형으로 교인은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예배에 집중합니다.
이 사람은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오목렌즈형 교인은 예배에 집중하지 않아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
몸은 여기에 있는데 생각은 오후 일정을 관리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볼록렌즈형으로 교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집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한 밤중에 바다 위로 걸어오십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유령이라고
소리치면서 무서워합니다. 베드로는 만약 주님이시거든 나도 걷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되는데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다가 바다에 빠집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마태복음 14:31,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무슨 말입니까? 왜 예수님께 집중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 나에게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예배의 영광스러움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한국에 갈 때에 우리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던 성도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최근에 간 사람을 만나든지, 교회를 정하지 못한 사람을 만나든지, 여기서는 신앙생활을 잘 했는데 가서는 신앙생활하지 않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들을 스타 박스에서 만나는데, 한국에 스타 박스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국보다 더 많은 것 같고,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제가 한국의 길을 잘 모르니까 먼저 가서 있습니다. 한국의 스타 박스에는 의자를 좁게 배열해 놓아서 여기 같지
않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옆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떤 연애하는 친구들이 별것 아닌 얘기를 하면서 웃으면 저도 함께 웃습니다.
저절로 들리잖아요.
시간이 지나서 약속한 사람이 오면 얘기합니다. 어떻게 지냈냐? 직장은 어떠냐? 얘들은 잘 자라고 있느냐
등등을 묻고 대화를 나누는데, 신기한 것은 조금 전까지 그렇게 잘 들리던 옆의 커플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습니다. 스타 박스의 음악 소리가 보통
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집중하니까 만나는 사람의 음성이 들리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집중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서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하나님께 집중하니까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니까 영적인 능력을
얻습니다. 그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고 전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면서 교회를 부흥시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니까 영적인 에너지가 임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집중해서 예배를 드리면 주님의 음성이 나에게 들려지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예배에 집중하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집중해서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겁니다. 찬송을 집중하여 부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겁니다. 기도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겁니다.
예배에 집중하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집중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풍성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집중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려고 집중하면 방해하고 유혹하는 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4백여 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이
애굽의 바로 왕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출애굽기 5:3,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 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서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출애굽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방해합니다. 출애굽기 8:25,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이 땅에서
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예배드리면 되지 뭐 교회까지 드릴 것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8:28, 내가 보낼 테니까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교회에 가도 되는데 멀리 있는 교회까지는 가지 말라는 겁니다. 10:11, 장정만 섬기라고 말합니다. 어른들만 예배드리다가 죽으면
아이들은 예배드리지 않게 되니까... 10:24, 양과 소는 여기에 머물러 두고 어린 것들은 데리고 가라는 겁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예배는
드리지만 헌금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몸만 갔다가 오라는 겁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합니다. 사탄은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하찮은 것에 방해받을 때도 있고 사사로운 것에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전화가 와 보세요. 괜히
궁금해집니다. 누굴까? 목사가 저쪽을 볼 때에 살짝 쳐다봅니다. 급한 것인가 보다. 문자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목사는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우리는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물 먹는 하마입니다. 설교하면서 얼마나 많이
먹습니까? 생긴 것이 그렇게 생기기도 했지만, 설교하다 보면 긴장이 돼서 입이 바짝바짝 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잘 전달해야 되는데,
하나님의 마음이 성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서 성도들을 밀어주셔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을 마시고 입을 닦는
것이에요.
어떤 목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물을 많이 마시고 하면 괜찮다는 거예요. 당신도 예배드리기 전에 물을 한
바가지를 마시고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래 저도 교회에 오기 전에 물을 반 바가지를 마시고 옵니다. 설교하기 바로 전에 500ml를 마십니다. 그
이후에는 훨씬 좋아졌어요.
지난주일은 너무나 바빴어요. 점심을 먹고 새로 나오신 성도들과 대화를 나누고 새가족교실에
들어갔어요. 새가족교실이 끝나자마자 2부 예배에 빨리 오느라고 화장실에 가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2부 예배에 설교를 하는데 신호가 오는 겁니다.
설교를 중단하고 갈 수는 없어서 ‘주여, 주여’ 속으로 기도하는데, 지난 주일은 설교가 평소보다도 길었잖아요. 설교를 마무리하고 통성으로 기도할
때에 빨리 다녀와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러면 흠 없는 예배가 되지 않잖아요. 식은땀이 나고, 주여, 주여. 하면서 예배를 마치고 빨리
다녀왔는데, 제가 지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배 전에 1천ml의 물을 마시고 서너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나오잖아요. 제가 미련해서 그런 겁니다.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찮은 것에도 넘어가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가니까 예배드리기 전에 셀폰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교인들이 말을 안 들으면 그렇게 얘기할까 싶어요. 우리 교인들에게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 성도들은 예배 전에 꺼 놓는 지혜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때로는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워서 흠 없는 예배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에 집중할 때에 그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 훈련할 때에 가장 어려운 것이 비행훈련이랍니다. 그들은 어떠한 훈련도 너끈히 이겨나가는데 제일 힘든 것은 하늘에서 비행기가 요동칠
때랍니다. 훈련이기 때문에 때로는 급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180도 360도 회전하기도 하고, 상하좌우 흔들며 날아가기도 하는데 웬만한 담력자도
예외가 없답니다. 비행기가 요동칠 때 멀미하고 울렁증도 있고 토하기도 한답니다.
이럴 때에 안전하게 비행하는 방법이 있답니다.
계기판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여건이라고 해도 계기판에 집중해서 쳐다보고 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급한 상황이라고 해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여 조정하면 추락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행기가 떨어지는 것 같아도 계기판에 집중해서 조정하면 비행기는 다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환란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예배드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왔지만 여러 가지의 근심과 걱정과 고통 때문에 헤어나지 못해서 예배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라도 예배에 집중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계기판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집중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완전하고 완벽하게 깔끔하게 해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잘했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시편 62편에 가면 다윗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난의 삶을 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이 편안하고 형통할 때에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처지를 바라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 본 것입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한 것입니다.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다윗은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모든 권능이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믿고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삶을 형통하게 하셔서 크게 사용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세우셔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습니까?
오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다윗과 같은 신앙을 소유하셔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배에 집중하셔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림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5개월 동안 여러분이 흠 없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까? 흠 없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집중하셨습니까? 흠 없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을 이기셨습니까? 점검해 보시고 남은 시간 동안 흠 없는
예배를 드리는데 집중하셔서 하나님을 움직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흠 없는
예배에 집중하는 신앙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집중하고 목숨을 다하여 집중하고 뜻을 다하여 집중하는 예배를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