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사사기(35)/타락

제목 :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

본문 : 19:16~30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인간이 과연 어느 정도 악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답변으로 인간의 악함에는 상한선이 없다고 단정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죄악된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처럼 추악하고 끔찍한 형태의 죄악도 찾아보기 드물 것입니다. 이제 본문에 나타난 노인까지 포함하여 기브아 사람들의 악함이 어느 정도인지, 특별히 그들 범죄의 특성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위인을 영접한 사람

 

곤경에 처해 있어 그 곳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이 레위인에게 호의를 보여 준 자는 기브아 안에단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악한 백성들이 날이 어두우므로 그와 그의 첩을 초대하는 것처럼 가장하고서 그들에게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이 도리어 의문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음모를 계획할 만한 재치를 갖고 있지 않았거나 또는 그들을 속일 만큼은 사악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혼자서는 할 수 없으므로 밤이 으슥해 오자 서로 모여 어떻게 처리할까 공모했는지도 모릅니다. 혼자서 죄를 행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공모해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더욱 나쁜 재앙을 초래합니다. 레위인과 그의 아내, 그리고 종이 길에서 밤을 새울까 봐(그것은 마치 사자의 굴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두려워하고 있을 때, 마침내 한 사람이 그들을 초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초대한 친절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온 사람으로 단지 기브아에 거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16).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들은 초라한 여행자들에게 친절히 해 주어야 할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인 베냐민이 그의 어머니와 여행하는 도중 이 곳 가까이에 있는 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35:16, 17). 그러나 그들은 곤경을 당한 여행자에게 냉담했습니다. 한편 이 성실한 에브라임 사람은 그들을 동정해 주었고, 그 여행자가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는 그의 고향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더욱 친절히 대했습니다. 기브아 사람보다도 기브아에 단지 체류하고 있던 외지인인 그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동정해 주었는데, 그것은 그가 나그네의 정경을 알기때문이었습니다(23:9; 10:19).

선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이 세상에 잠시 거하는 나그네라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 친절히 대합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더 좋은 나라에 속해 있으며 이 세상은 그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소멸되어 가고 있던 덕행을 지니고 있던 노인이었습니다. 당시 자라나는 세대들은 모두 타락해 있었고, 그나마 미덕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늙거나 죽어 버렸습니다.

 

그는 밭에서 일하고 저녁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녁은 수고하는 자들을 집으로 부릅니다(104:23). 그러나 기브아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자는 바로 그 사람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소돔 사람들과 같이 쾌락과 나태에 빠져 있었으며 그들의 악이 또한 소돔에서와 같이 많이 행해지고 있었으리라는 것은(16:49) 의심해 볼 여지가 없습니다. 낮 동안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일한 자는 이렇게 밤에 만난 불쌍한 나그네에게 너그러운 호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행하도록해야 합니다(4:28). 21절의 내용으로 보아 그는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들에서 그 자신이 손수 일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게을러야 하는 특권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20-21

 

그는 얼마나 관대하고 후하게 그들을 맞아들였습니까! 그는 그들이 하룻밤 재워 줄 것을 간청할 때까지 세워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만났을 때(17), 상황을 묻고 친절하게 영접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응답해 주십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구태여 도울 일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며, 그 때마다 남을 돕는 일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한 눈을 가진(22:9)의 태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기브아를 소돔으로 비유한다면, 이 늙은 사람은 성문에 앉았다가 나그네를 맞아들인 롯(19:1)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욥도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고 행인에게 그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31:32).

 

그는 레위인이 한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기꺼이 그들을 신뢰했습니다. 사랑은 남을 의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바라며(고전 13:7), 다윗에게 인색해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많은 종들을 떠나게 했던나발(삼상 25:10)의 잘못을 범하지 않습니다. 레위인 일행은 지금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으며(18), 자신들이 거기에 머무르게 된 것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만일 기브아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영접하기를 더욱 꺼려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9:53). 그러나 이 선한 노인은 그가 레위인으로서 하나님의 집을 향해 가는 길이라는 것을 듣고는 더욱 기뻐하며 많은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종인 이 레위인을 제자의 이름으로”(10:42) 영접했습니다.

 

그는 마음을 터놓고 그들을 대접했습니다. 레위인 일행은 모든 필요한 물건들을 빠짐없이 가지고 있었지만(19), 이 관대한 주인은 자기의 물건으로 그를 대접하려 했습니다. “안심하시오. 필요한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하겠으니 길에서는 묵지 마시오.”라고 말하고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나 사역자들이 버림받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여러모로 도와주는 친구들을 보내 주십니다.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

 

오늘 본문을 보면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비극이 일어난 시각은 그 노인과 레위인 객이 서로 마음을 즐겁게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노인은 동향에서 찾아온 레위인을 만나니 할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 소식도 들을 겸 즐겁게 대화하며 먹고 마시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성읍의 비류들이 레위인을 상관하겠다고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색(男色-sodomy)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소돔은 이러한 죄악으로 심판을 받은 도시였습니다. 이런 소돔의 악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까지 퍼진 것입니다. 이방 나라가 심판 받은 이런 악행을 하고도 하나님의 백성이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노인은 레위인을 보호하려고 나섰습니다. 자기의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어 주겠다고 제시하였습니다. 기브아 불량배들의 완악함을 알았기에 궁여지책으로 그런 제안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인의 제안은 최선의 방책은 아니었습니다. 즉 하나의 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악을 범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다면 악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고 끝까지 당당하게 불량배들을 대했어야 옳았습니다.

 

레위인은 자기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호의를 베푼 노인의 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첩을 붙들고 밤새 행음하고 새벽 미명에 놓았는데 동 틀 때 알아보니 집 문 앞에 엎드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주석가 매튜헨리는 지옥도 타락한 이스라엘 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손을 문지방에 올리고 집문 앞에 엎드러진 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과거에 범한 죄를 회개하고 남편에게 용서를 비는 태도로 죽었는지 모릅니다. 남편은 그녀를 용서하였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은 그러한 여자의 죄악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값을 받은 것입니다.

 

레위인 남편은 첩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자기가 사는 곳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칼을 들고 자기 첩의 시신을 잡고 그 마디를 잘라서 열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온 지역에 보냈습니다. 그 첩의 시체 토막을 받아본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그야말로 큰 충경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19: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19:30 그것을 보는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난 적도 없고, 또 본 일도 없다. 이 일을 깊이 생각하여 보고 의논한 다음에, 의견을 말하기로 하자."(표준 새번역)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은?

 

1)두려움이 없는 죄악입니다.

 

누구라고 사람이라면 죄를 지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독 인간에게만 준 양심이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브아 거민들은 추악한 죄를 저지르면서도 결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모습은 어처구니없게도 너무나 당당했을 뿐 더러 아무 거리낌도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임에 분명하였습니다(딤전 4:2). 하나님의 백성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교훈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이러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분임을 알고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을 때 기브아 사람들처럼 끔찍한 죄악 가운데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죄악입니다.

 

성경은 분명 욕심은 죄를 낳는다고 말씀합니다(1:15). 즉 모든 죄악의 시작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 한 우리도 이러한 죄악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서 실로 정욕과 탐욕의 노예였습니다. 한 여인을 철저하게 짓밟고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패역한 기브아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은 그들 자신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실로 멸망을 재촉하는 짐승들처럼 가증한 죄악의 길만을 사랑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의 존귀함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더러운 무리였습니다. 얼마 전에 희대적인 살인마 강호순이 사형언도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는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장모와 아내도 죽이고 불까지 질렀으며 수많은 여인들은 죽음에 이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끝없는 욕망과 극단적인 이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고 그러한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3)상황논리에 급급한 죄악입니다.

 

이제 노인에 관해 생각해봅시다. 그의 행동 또한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는 하나의 범죄를 회피하기 위하여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지극히 상황에 급급한 노인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선한 의지의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신뢰하며 끝까지 대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레위인을 살리기 위하여 그의 부인을 희생시킨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노인은 기브아 거민들이 저지른 죄악의 방조자 내지는 동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급박한 상황을 빙자하여, 그리고 가부장적인 권위와 이기심으로 인하여 인간을 금수와 버러지로 여긴 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악과 선은 분명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은 그들 거민 전체의 의식 속에 내재한 하나님 앞에서의 방자함, 극단적인 이기심, 철저한 상황주의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기브아 거민과 노인을 정죄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 우리 안에도 이러한 방자함, 이기심, 상황을 빙자한 죄악 등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9:9 기브아 사건이 터진 그 때 못지않게, 이 백성이 더러운 일을 계속한다. 주님께서 이 백성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그릇된 행실을 다 벌하실 것이다.(표준 새번역)

9:9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일 매일 우리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을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