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한 몸으로 있으라        창세기 2:22-25

I. 둘이 한 몸으로

어느 교회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첫 사람의 이름이 뭐지요?” “아담이예요

그러면 아담 아내의 이름은 뭐지요?”

다른 아이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자신있게 손을 들고 큰소리로 대답 을 합니다. “마담~”

오늘 본문은 아담과 마담 즉 하와가 부부가 되는 인류 최초의 결혼식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에 아담 하와 가정에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아무리 읽어봐도 명령형이 없습니다.

본문 24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원문에서는이루다동사가 아니라있다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둘이 한 몸으로 있으라입니다. 둘이 한 몸으로 존재하라는 것입니다. 명령이요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둘이 한 몸으로 있으라입니다.

인류 최초의 구성원은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부부였습니다. 부부 에겐 1 2촌수가 없습니다. 둘이 한몸 무촌입니다. 하나님께서둘이 한 몸으로 있으라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은 아담의 집이었고, 일터였고, 선교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좋지 않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에덴은 기쁨의 동산, 행복의 동산이었는 데 혼자 있으니 기쁨이 없었습니다.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십 니다. 에덴동산안에 가정이 있지만 사실은 가정안에 에덴동산이 있습니다. 기쁨의 동산, 행복의 동산은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을 위해서 직장도 있고, 사업도 있고, 심지어 교회도 있는 겁니다. 가정을 위해 학교가 있고 사회가 있고 국가가 있는 겁니다.

솔제니친은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는 분명하다. 가정을 소홀히 생각하고 파괴했기 때문이 다라고 말했습니다. 직업을 얻고 가정을 잃었다면 그 직업은 버려야 합니다. 명예, 권력, 사업... 따위들이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아담을 위하여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22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결혼식장에서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가서 신랑에게 인계하듯 하와를 아담의 손에 맡깁니

. 예식장에서 아버지가 딸을 사위손에 넘기는 것은 이제 이 딸을 너에게 맡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딸은 물건이 아닙니다. 맡기는게 아닙니다.

-    보라! 그대의 가슴 갈비뼈에서 나온 신비한 존재다.

-    그대는 이 여인의 기쁨이 되어라.

-    이 여인은 그대의 행복이 될 것이다.

-    지금까지 나뉘어져 살았으나 이제 둘이 한 몸으로 살아라! - 그대 가정은 이 여인과 함께 에덴동산, 기쁨의 동산을 이루고 살아라!

  엄중한 명령의 순간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성경을 몰랐을 터인데 송강 정철은 훈민가에서 이런 시를 썼습니다. 한몸 둘로 나누어 부부를 만드시니 (성경귀절을 읽는 것 같아요) 있을제 함께 늙고 죽으면 함께 간다. 어디서 망령된 것이 눈 흘기려 하느뇨.

(에덴동산에서 가정을 파괴한 사탄을 꾸짖는 듯 합니다.)

II. 중매쟁이는 하나님

하나님이 ... 그를(하와)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2:22)

인류 처음 가정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하심으로 비롯되었습니다. 한 가정의 출발결혼이라는 것은 어느날 우연히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오고 가다가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간섭과 계획으로 이루 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진정한 중매쟁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손을 잡고 이끌어 내 배우자에게 인도한 것입니 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에스더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란 단어는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장 매절 강력하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손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나게 하시고 가정을 이루고 복되게 이끌어 주시는 그 손이 하나님의 손입니다.

가정의 불행은 바로 이 하나님이 빠져 버린데서 시작이 됩니다. 만나게 하신 분도, 가슴 설레이게 하신 분도, 행복을 느끼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마음을 빼앗고 서로 핑계하게 하고 유혹하고 원망하게 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와를 애기나 어린아이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처음부터 혼인적령 기 성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도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이 나이로 가는 것 같습니다.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언제나 온전한 완성품이었습니다. 진화론은 처음부터 창세기 모든 곳에서 거부됩니다. 닭이 먼저요 달걀이 먼저요? 강정버거가 먼저지~. 장성한 성인 하와, 알 낳을 수 있는 닭으로 만드셨지요.

가정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을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에덴동산행복의 동산을 건설해 가는 것입니다. 왜 결혼을 합니까?

- 편안하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기 위해 결혼을 합니다. - 출세하고 성공하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 결혼을 합니다. - 부자로 살기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맛보기 위해   결혼합니다.

어느날 부모님 사랑받고 살던 아이가 자라 사랑하는 짝을 만납니다.

부모에겐 관심이 없어지고 짝에게만 마음이 있습니다. 이때 부모는 섭섭해지기 시작합니

. 자식 키워놔도 소용이 없구나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마음을 들켜버린 자식도 지혜롭지 못하고 못난 자식이지만 부모도 섭섭해 하면 아니 됩니다.

기뻐해야 합니다. 부모의 짝사랑만 받더니 이제 장성하여 자기 사랑을 할 줄 알게 되었구 나. 축복해야 합니다.

 꼭 너같은 자식 하나만 낳아라저주합니다. 저주하지 않아도 꼭 저 같은 자식 낳아 언젠가


는 부모의 섭섭함을 또 느낄 겁니다. 이게 인류역사입니다. 저주하지 마세요. 축복하세요.

예수님도 우리를 짝사랑만 하십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 도, 자식된 인간은 그 예수님의 사랑을 다 느끼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사랑도 해보고 상처도 받아보고 섭섭도 해보고 이제 그 예수 사랑 그리워하다가 신랑되신 참된 사랑 맛보려 천국 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    천국에 금은보석으로 지은 집에 살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    수고하기 싫어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닙니다. - 아프고 병들고 늙는 것이 싫어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닙니다.

예수님 사랑하러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미움도 상처도 원망도 없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 님 만나 사랑하기 위해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가정은 바로 그 사랑을 연습하는 곳입니다.


저는 주례하는 가정에 꼭 가정천국을 이루라 권면하며 예언을 합니다. 주례를 하면 애기를 낳을 텐데 남자 아니면 여자 아기를 낳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엄마 아빠 천국이 어떤 곳이예요.” “천국이 뭐예요?” 물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천국은 우리 집인 것 같아. 엄마 아빠가 사랑하며 행복한데, 너희들이 엄마 아빠를 좋아하며 잘 자라주는데 여기가 천국 아니겠니.” 이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권면을 합니다.

오래전 故 이중표 목사님이 우리교회 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이 직접하신 말씀이니 사실일 것입니다.

크리스챤아카데미 하우스에서 목사님들과 타종교의 승려, 사제들이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한 사제가 묻기를어찌 목사님들은 한결같이 설교를 잘 하십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묻길래 한 마디로 요약해서 가르쳐 주었답니다. “장가 가!” 성경은 모두 가정으로 설명되어졌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 우리는 신부. 사랑해 보고 자식도 낳아보고 부모도 되어 봐야 하나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가르칠 수 있지요.

 일리가 있다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제게류목사님 장가가는 신부님, 승려님 생 기게 함께 기도해 줘!” 하더라구요.

III. 사랑의 고백

드디어 아담 앞에 하와라는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 진기하고 아름다운 곤충과 새들, 온갖 동물을 볼 때 느낀 마음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이 여자를 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의 체온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피조물 가운데 뒤로 갈수록 아름답게 만들어졌습니다.

예술가들의 말이 이 세상에서 그랜드캐년이 아름답고 이가수폭포가 아름답다고 해도 최고의 아름다움은 여성이랍니다.

사회적 명성이 있는 부부들이 미술관에 갔더랍니다.

한 남자가 여자 나체 그림 앞에서 넋을 잃고 서 있습니다. 팔등신 미인에 중요부분 세 곳만 낙엽으로 살짝 덮어 놓은 그림이었습니다. 부인이 옷자락을 끌며 말합니다. “여보, 올겨울에 한번 더 옵시다. 그땐 저 낙엽도 떨어져 있을 거예요.” 예술은 예술일 뿐이지요. 예술을 감상하는게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초등학교도 못 나온 아담이 프로포즈 시를 읊어 댑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2:23)

시중의 시요, 프로포즈 가운데 최고의 프로포즈입니다. 섹스피어도 못 읊어본 시입니다.

-    사랑할 사람을 만난 감격이요 감탄입니다.

-    그 여인에게서 또다른 자신을 본 것입니다.

-    하나이었으나 나뉘어진 분신을 본 것입니다.

-    몸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    이것이 부부입니다.

둘이 한 몸으로 있으라!”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미치도록 사랑할 만한 사람을 만나면 평생 행복할 수 있답니다. 미치 도록 좋아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만나면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IV. 결합하여

아담의 프로포즈를 받고 하와가 응답을 했겠지만 생략이 되었습니다.

내 몸은 당신에게서 나왔습니다. 내 뼈는 당신의 것입니다.   내 살 또한 당신에게 속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 거라예아마도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제 상상일 뿐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주례사가 시작됩니다. 하객으로 온갖 동물을 대표하는 피조물들이 참석했습니다. 결혼식후에 피로연 잔치는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축가는 누가 불렀을까요? 자유롭게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의 주례사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본문 24절 하나님의 주례사는 세 가지 동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떠나라입니다. 우리 문화는 여자가 부모를 떠나 남편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부모가 있던 그 자리에 아내로 채우라는 거지요. 대가족제도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도 영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떨어져 살아도 떠나지 못하고 부모에게 매여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떠나라말씀하십니다. 떠나라고 하니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함께 살던 따로 살던 공경해야 하지요.

둘째 동사는결합하다동사입니다. 이 말은 접착제로 붙여 하나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 있으면 안됩니다. 결합하기 위해서는 상처나 죄 그리고 잘못 된 모든 것을 깨끗이 닦아내야 합니다. 물기 하나도 없어야 하고 녹이 슬어서도 아니됩니

. 먼지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끼어 있으면 접착제는 제대로 붙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이 있으면 곪고 터집니다. 고백되어지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치유되어야 연합 즉 접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먼지 한톨까지 씻어냈으면 이제 접착제를 발라야지요. 사랑과 용서라는 접착제입니다. 씻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요, 접착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제가 어린시절 운동을 하다가 왼팔이 부러졌습니다. 운동하다 거울에 비춰보면 오른팔보


다 왼쪽팔이 훨씬 뼈가 굵어져 있습니다. 접착하면 부러진 뼈는 더 단단해지고 나누어진 나무는 더욱 견고해집니다.

이것이 접착제 - 사랑의 힘입니다.

셋째 동사는있다동사입니다. 있으라. 둘이 한 몸으로 있으라입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있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할래요~ 하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를 듣다 말고 물었습니다. “당신 다시 태어나도 나랑 살래?” 물어보면미쳤어하는 사람 이 있고당신 좋은 사람이지만 한번 살아보았으면 되었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무조건 다시 산다고 대답하십시오. 질문이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

절대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당신 만나 살거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래야 노후가 편합니다. 자꾸 반복하면 진실이 됩니다.

이때 옆에 있던 친구가지난번 우리끼리 있을 때는 치매 걸린 사람이나 네 마무라 내 마누라 구별 안되어 다시 산다매?”이런 친구를 보고 요즘 젊은이들은넌씨눈이라고 합니

. 넌씨눈이 뭡니까? “넌 씨 눈치도 없냐?”의 생략어입니다.

55일은 어린이날, 58일은 어버이날, 515일은 스승의 날, 521일은 둘이 하나 된 부부의 날입니다. 부부의 날 서울시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남편은 73.2%, 아내는

62.9%가 현 배우자에게 만족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다행이지요. 우리교인들 대상으로 조사하면 90%는 넘게 나올 수 있지요? 아니예요? 말해봐! Yes or No.

V.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러분, 결혼식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생활입니다. 결혼생활 잘 할 생각하지 않고 결혼식만 자꾸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식은 평생 한번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주례 아래 아름다운 결혼예식을 치룬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살았을까요? 밥은 누가 만들어 어떻게 먹었을까? 취미생활은 어떻게 했을까? 부부싸움을 했을까? 안했을까? 창세기 저자는 아담과 하와 가정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짧으나 임펙트 있게 전해줍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2:25)

그렇습니다.

에덴의 가정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서로 감출 것이 없었습니

. 가정은 병풍, 가리개 가리고 사는 곳이 아닙니다. 가정은 훈장 달고 계급장 붙이고 사는 곳도 아닙니다. 모자로 대머리 가리고 넥타이 매고 분장하고 사는 곳이 아닙니다. 다 씻고 다 벗고 사는 곳입니다. 혹 집에 들어가서도 완전 무장하고 사시는 분 계십니까?

제가 가정에 들어갈 때 목사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내 어머니의 아들로 아내의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빠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넥타이 풀고 옷을 벗는 일입니다. 혹시 저희 집에 오시는 분들 집에서 제가 정장 입고 넥타이 매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부부가 벌거벗고 산다는 말은 서로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허물이 많이 보이면 지옥이 되고 허물이 가리어지면 천국이 됩니다. 실수와 약점이 자꾸 보이면 지옥이 되고 장점과 좋은 점이 드러나면 천국이 됩니다. 비판과 저주가 난무하면 지옥이 되고 칭찬과 격려 그리고 축복이 풍성해 지면 천국이 됩니다. 그래서 가정은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 인간이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습니까?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부터입니다. 죄가 들어오고 나서부터입니다. 그래서 가정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넘쳐야 천국이 됩니다. 용서와 치료가 넘쳐야 천국이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천국이 됩니다.

그때 가정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넘치고 허물이 덮여지는 속죄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벗고 살아도 부끄럽지 않는, 허물과 실수가 있어도 부끄럽지 않는 천국의 신비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약한 자를 싫어합니다. 세상은 죄지은 자를 저주합니다.

그러나 가정은 허물이 가리어지고 서로 의롭다, 거룩하다, 소중하다 인정해 주는 곳입니

. 가정은 서로의 아름다움을 찾아 즐거워해 주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의롭다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설 때마다 예수님은 나의 크고 작은 죄를 다 아시지만 덮어 주시고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그래서 어디서도 고백할 수 없는 죄를 주께 모두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이요 천국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성인이 되어 만났는데 서로 뜯어 고쳐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 부모도 나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서로 인정해 주고 덮어주고 사는 겁니다.

사랑해 주면 자기가 자신을 고쳐갈 것입니다. 잔소리에 고친 자도 없고 구박에 바뀐 자도 없습니다. 칭찬, 격려만이 그를 바꿉니다. 칭찬은 잘 할 때 하는 것이고, 격려는 모자람을 덮어주는 소리입니다.

제 눈에 교인들의 허물이 보이면 나는 불행한 목사입니다.


교인들의 눈에 목사의 허물이 보이면 교회 생활이 불행해지기 시작합니다. 가정에서 내 부모의 허물이 보이면 존경이 사라집니다.

내 부모 존경하면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식의 못난 점만 눈에 들어오면 부모는 그때부터 불행해 집니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이것이 천국입니다.

남으로 생긴것이 부부같이 중할런가 사람의 백가지 복이 부부에게 달렸으니 이리 중요한 사이에 화목하지 않고 어찌하리.

                 (박인로, 오륜가 - 부부유별)

다정하기만 하던 어느 부부가 싸움을 했습니다. 늘 말싸움에 밀릴 수밖에 없는게 남편이지요. 남편은 화는 나지요. 말은 딸리지요.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장 나가!” 아내는내가 못 나갈 줄 알고!” 휙 나가더니 금방 집으로 들어옵니다.

남편은 왜 들어오느냐고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내가 하는 말이뭘 두고 나갔어요” “?” “집안에 소중한 보석를 두고 나갔어요.”  그 보석이 뭔데? 우리 집에 보석이 어디 있어?” “바로 당신이 내 보석이지요.” 두 사람은 껄껄대고 웃다가 함께 나가 산보를 했더랍니다.

사실 보배는 아내가 보배입니다.

여보란 말은 같을 여(), 보배 보() 자를 써서 보배와 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어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여자는 남편을당신이라 부릅니다. 마땅할 당(), 몸 신() 자를 써서 당연히 내몸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여보 당신이란 말 속에도 성경적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둘이 한 몸으로 있으라 !

서로 고백하세요. 당신은 나의 보배입니다. 당신은 내 몸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