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분은 :『세상의 빛』 (요 8:12)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꽃놀이 중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헐리우드의 영화개봉 축하연과, 중국의 설날 불꽃축제, 그리고 미국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입니다.

그야말로 그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온 동네, 온 나라를 연일 연야 밝게 비췹니다.


이런 불꽃축제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초막절"에 행해 졌습니다.

초막절의 첫 날 저녁이 되면 『성전의 조명』이라는 축제가 시작되는데, 밤마다 큰 등불들을 성전 뜰에 밝혀 놓았습니다. 그 불빛이 얼마나 밝은지 예루살렘 도시 온 지경을 밝혔고, 여인들은 그 불빛 밑에서 뜨개질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즉 광장 한 복판에 큰 봉화대를 만들어 높이 세워놓고 불을 밝히므로 예루살렘 구석구석까지 두루 비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이 축제 기간 동안 밤새도록 춤을 추며 놀았습니다.

그 등불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와 시나이 광야를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셨던 은혜를 상기시키기 위한 멋진 축제였습니다.

그러다가 초막절 축제가 마치는 날이 되면 그 등불도 서서히 명멸하기 시작하여 예루살렘 도시는 또 다시 캄캄하게 어두워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초막절 마지막 날 저녁쯤 되어서, 마치 올림픽의 성화가 꺼지듯 성전의 봉화가 가물가물 꺼져 가고있을 때, 그리고 춤추는 소리와 음악 소리가 멈추어가고 있던 아쉽고도 엄숙한 시간에, 한 젊은이의 힘찬 목소리가 군중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내가 곧 세상의 빛이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굉장히 중요한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I am the Light).

잠시 잠깐 후면 꺼지고 명멸하는 그런 일시적인 불빛이 아니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참 빛이시라고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불빛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빛"이라는 말이 신약성경에서 72번이나 반복되는데, 그 중에서 요한복음에만 33번이나 부각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요한은 그이 서신서나 계시록에서도 "빛"이라는 말을 15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의 빛으로 오시는 메시야이심을 표명하는 중대한 선언입니다.

구약 시대의 이사야 선지자는 빛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이렇게 예언합니다(사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시는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 :15,16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미 요한은 요한복음 1장 9,10절에서 이렇게 선언해줍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분은 창조 때부터 세상에 계셨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는 한 큰 별이 나타나서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한 것입니다.

1. 사랑과 축복의 구원자이십니다


여기 『세상의 빛이시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광명한 빛으로 밝게 비추시는 참 빛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부터 창조하셨습니다(창 1:3).

왜 빛부터 만드셨을까요? 이 세상에서 "혼돈과 어둠"을 몰아내기 위함이었습니다(창 1:2).

그래서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일서 1장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우리 마음속에서 어두움과 무지와 잘못을 다 몰아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둠을 몰아내시는 의의 태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의 짐으로 억눌린 인생들에게 해방의 광명을 찾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정죄하고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사랑하여 축복하러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새로운 전환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떤 잘못이 발견되기만 하면 그 즉시 얼마나 크게 정죄하며 손가락질하고 또 침소봉대하며, 그 사람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듭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을 끌고 와서 단호하게 정죄하며 돌로 쳐서 죽이자고 단언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

그리고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 떠나가고 없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11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사랑과 축복의 구원자이십니다.

정죄와 심판 대신에 사랑과 축복의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요한은 이런 복된 구원의 메시지를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오,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사도 바울도 우리의 복된 구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골 1:13)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옭기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암흑의 나라에서 사랑과 축복의 나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구원을 받는 비결은 너무나 간단하고 쉽습니다.

세상의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바울은 이렇게 놀라운 해방의 축복을 선언합니다.

사실 그는 중천의 태양보다 더 밝은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 참된 해방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얼마나 감격스럽고 가슴 벅찹니까!

예수님은 사랑과 축복의 구원자이십니다.

어느 날 영국의 계관시인인 테니슨이 친구와 같이 후원을 거닐며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테니슨에게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테니슨은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가장 아름다운 꽃 앞에 와서는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나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이 꽃과 저 태양의 관계와 같다네. 이 꽃은 태양의 빛과 열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네] 할렐루야!


오늘 우리도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과 축복의 구원자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세상 길의 인도자와 동행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는데,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akolouthein】인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군인이 지휘관을 따를 때 쓰는 용어입니다

특히 장거리 행군이나 전투지에서 사병은 지휘관을 따르면 안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내가 믿고 따라야할 인생의 사령관이십니다.


⸂종이 주인을 따를 때 쓰는 용어입니다

로마 식민지 통치시대에 종은 함부로 나돌아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은 언제나 주인과 함께 가야만 안전하고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따라야만 안전합니다.


⸃제자가 스승의 조언이나 결정을 따를 때 쓰는 용어입니다

현명한 학생은 훌륭한 스승의 지도나 결정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며 잘 따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내 인생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선한 목자요, 특별히 인생의 훌륭한 상담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기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은 구약 성경에 매우 생생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시나이 반도를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던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사막 길을 걷는 그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출 13:21-22).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 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그렇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그 길이 그 길 같고, 어디로 가야할지 분별하기 어려운 정황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의 현실도 비슷합니다.

요즘 이 세상은 살아가기가 참 어둡고 암담합니다. 앞길을 알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게 그것 같고, 무엇이 옳은지 구분하기가 힘들고 어렵습니다.

진학과 진로의 문제, 취직과 결혼의 문제, 특히 명퇴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 어떤 회사, 또 회사에 그냥 남아있을 것인지, 사표를 낼 것인지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삶의 현장의 인도자가 되시고, 안내자가 되시고, 또한 동행자가 되시려고 세상의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이점을 시종일관 강조합니다(1:23. 28:20).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 라 하시니라』


지금은 우리가 잘 모르지만, 우리 예수님은 반드시 내 앞길에서 보이지 않게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3. 생명과 기쁨의 창조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간단한 말씀에서 매우 심오한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달은 발산체가 아니라, 반사체입니다.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께서 달처럼 빛을 반사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세상은 너무나 어둡습니다. 언제나 암담하고 암울하고 슬픔 소식뿐입니다.

옛날부터 이 세상이 얼마나 어두웠으면 희랍의 철학자 Diogenes는 대낮에도 들불을 켜서 들고 다녔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생명의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처럼 살기가 힘들고 험난하고, 특히 박해의 시대에도 언제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과 함께 밝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선교사였던 Stanley Jones는 이런 글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도들은 폐허를 보지 않고, 그 폐허를 재건해주실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죄악이 팽창하는 사회의 어두운 모습만을 본 것이 아니라, 그 흑암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이미『아침』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밝게 비춰주시려고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내 심령이 어두우면 다른 사람도 어둡게 만듭니다. 내 마음이 밝으면 남도 밝게 보입니다.

예수님은 영을 밝히시는 분이십니다. 빛의 영이십니다. 우리를 빛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태양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구 어디에서나 빛만 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만 따라가면 우리는 언제나 빛 가운데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에 있는 어둠의 영을 몰아내야 합니다. 천국은 밝은 곳입니다.

요즘같이 어두운 시대일수록 밝은 면을 먼저 보는 긍정적 신앙자세가 필요합니다.

심리학자들이 쥐를 가지고 실험했습니다. 독 속에 쥐를 넣고 빛을 완전히 차단한 흑암 속에 두면 쥐는 3분밖에 생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포기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 속의 쥐라도 빛을 계속 비춰주면 36시간이나 생존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당신은 흑암 속에서 어둡게 살고 계신가요, 빛 되신 예수님 안에서 밝게 살고 계신가요?

우리는 지난날의 실패나 어두운 과거에 붙들려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단점과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게도 역시 장점이 있고 좋은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밝은 면을 기억하며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내일을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성공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달은 햇빛을 보는 만큼만 밝게 비췹니다. 그래서 햇빛을 전면으로 받으면 보름달이 되고, 측면으로 받으면 반달이 되고, 후면으로 받으면 초생달이 됩니다.

우리는 초생달 신자나 반달 신자가 되지 말고, 보름달 신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월 신자! 얼마나 멋지고 행복합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영이 밝아야 하겠습니다.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의 밝은 빛으로 비춰지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형제가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마귀와 예수님과의 거리는 얼마나 멉니까?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며 또 우리에게서 떠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그 질문을 받은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깜깜한 방에서 불을 켜보십시오. 순식간에 방안이 밝아집니다. 그렇다고 어둠이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다시 불을 끄면 순식간에 어두워집니다. 빛과 어둠간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사라지면 어둠이 나타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오는 시간은 순식간입니다. 마귀는 결코 구만리장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이 있으면 마귀는 그 즉시 사라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빛이 없으면 마귀는 순식간에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밝은 빛 가운데서 살아가려면 빛 되신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밝은 신앙을 상기시켜 줍니다(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기도초청) (찬 96장)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사랑과 축복의 구원자이시기에 당신을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흑암의 세력에서 건져 빛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만 하면 당신을 인도해주시고, 갈 길을 밝혀주시고, 평생을 동행해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빛 되신 예수 안에서 생명과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의 어둠 속에서도 아침의 여명을!

지난날의 흑암 속에서 해방되어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의 빛으로 넘치는 보름달 신자, 만월 신자!

당신의 영이 밝으면 밝을수록 어두움의 마귀는 멀리멀리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의 영은 어두운가요, 밝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