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제를 드림 같이(레1:1~9)

 

 

 

신구약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잘 읽혀지지 않는 책들이 몇 권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를 읽어보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내용들도 가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서 불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중요합니다. 특히 레위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잘 연구해 보면 신구약을 통틀어 십자가에 관한 메시지가 가장 많이 나오는 책입니다. 혹시 이 말씀을 듣고 구약성경인데 무슨 십자가 메시지가 있느냐며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다. 성경은 66권이지만 동시에 한 권입니다. 모든 책들이, 그리고 각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중에 구약은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예언이고, 신약은 그 성취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 예수님의 십자가 예언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법 등 여러 말씀에 십자가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약의 율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율법에는 대개 세 가지가 있는데, 도덕법(moral law), 의식법(ceremonial law), 그리고 시민법(civil law)입니다. 도덕법은 십계명 같이 하나님 앞에 지킬 인간의 마땅한 도리 즉 도덕에 관한 규정들입니다. 아무리 시대와 문화가 바뀌어도 변치 않습니다.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시민법(혹은 사회법이라 부르기도 함)은 구약 이스라엘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구체적인 지침들을 규정한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한 경우나 상해를 입힌 경우 보상법 같은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 상황과 다르므로 그대로 지킬 필요가 없지만, 그 안에 있는 법정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원리를 배우면 됩니다. 의식법은 제사법이나 절기법 등 종교의식에 관한 규정입니다.

레위기에는 바로 의식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후 1년이 지난 B.C. 1445년경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여기 보면 5대 제사가 나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관이 있습니다. 물론 오늘 이 시대에 그 제사들을 그대로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제사들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십자가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십자가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번제 :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삶 상징

5대 제사 중에 가장 기본적인 제사가 번제(燔祭 burnt offering)입니다. 번제는 양이나 소 같은 짐승 제물을 전부 불에 태워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 해방된 출애굽은 구원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출애굽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시내 산 언약(출애굽기 19장)을 통해 하나님의 선민이 됐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번제는 그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번제를 꼬박꼬박 드리게 함으로써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체험 학습을 시킨 것입니다. 혹은 역할극(role play)을 통해 교훈을 얻게 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번제를 직접 드리지는 않지만, 번제의 절차나 내용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유념하면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를 묵상하시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레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누구든지’라는 말은 모든 백성이란 의미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는 아무도 차별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남녀노소 혈통 등 그 어느 조건도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 같은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이어서 3절을 봅니다. 레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그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번제를 드림같이’ 살아야 합니다.

[2] 번제를 드림같이 사는 법 : 구원의 감격, 예수님을 닮은 인격, 온전한 헌신

번제를 드림같이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① 구원의 감격 :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구원의 감격 속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게 바로 이겁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사라지면 신앙생활이 시들시들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번제를 직접 드리게 함으로써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말씀을 보면서 마음속에 그 장면을 그려보면 그 느낌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레1: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번제물은 양이나 소 같은 짐승입니다. 특별히 3절에서 언급한 대로 흠 없는 수컷입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역서 ‘그’(he)는 누구일까요? 제사를 드리는 백성 즉 헌제자(獻祭者)를 가리키는데, 헌제자가 직접 안수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헌제자의 죄가 짐승 제물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흠 없는 짐승 제물의 의(결국은 예수님의 의)가 헌제자에게 넘어갑니다. 말하자면 맞교환(exchange)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를 가리켜 ‘이중전가’(二重轉嫁 double imputation)라 부릅니다. 이런 원리를 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어서 5절~6절을 봅니다. 레1:5~6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헌제자가 안수한 후에는 직접 짐승을 도살합니다. 그리고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뜹니다. 각을 뜬다는 것은 토막을 낸다는 뜻입니다. 피는 제사장이 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헌제자 즉 죄인의 죄를 대속하는 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대속의 원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데(롬6:23) 피 흘림으로 속죄할 수 있습니다. 히9:22 “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헌제자는 자신이 기르던 짐승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데리고 옵니다. 그것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토막을 냅니다. 헌제자는 그 과정 속에서 특별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겁니다. 죄 없는 짐승이 애매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구속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절절이 느낄 겁니다. 아마 그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될 겁니다.

그러나 구약의 짐승 제물의 피 흘림은 예표에 불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이 실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직접 오시기까지 구약의 짐승 제사가 계속 반복된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예고편을 계속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본편이 상영되면 예고편은 그저 참고용에 불과합니다.

이런 원리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십자가 구원은 영단번(永單番 once for al) 제사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인이 속죄 받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가게 됐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번제의 과정을 보면서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 감사와 감격이 넘치게 됩니다. 바울은 평생 그 감격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게 바로 바울의 승리 비결입니다.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아프리카의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교사님이 현지인들에게 C.C.C.에서 제작한 영화「예수」를 보여주었습니다. 많은 현지인들이 모여들었고 스토리가 점점 실감나게 진행됐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매달리려는 순간 뒤에서 꼬마가 울면서 외쳤습니다. “예수님! 안 돼요.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나요? 얼른 내려오세요!” 순진한 꼬마의 말에 어른들도 울면서 눈물바다가 됐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순절에, 아니 일평생 “죄는 내가 지었는데 왜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셨나?” 십자가 은혜를 묵상함으로 늘 구원의 감격 속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② 예수님을 닮은 인격 :

본문 9절을 보십시오. 레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제물을 물로 깨끗이 씻어냅니다. 모든 오물을 씻어버립니다. 깨끗한 제물은 예수님의 성결한 인격을 상징합니다. 깨끗이 씻은 제물은 이제 불에 태워져 향기로 올려드려집니다. 이 향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인격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제물은 양, 소, 염소, 비둘기 등 순한 초식동물로 예수님의 온유한 인격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의로우신 분입니다. 거룩하시고 성결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사랑이 충만하신 분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께 드려졌음을 증거합니다.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예수님을 본받아 점점 성화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번은 TV에서「히든 싱어」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가수와 그를 흉내 내는 모창 가수들이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는 프로입니다. 커튼을 가려놓고 5명이 노래하고 난 후에 판정단이 투표해서 평가하는 겁니다. 그 날의 주인공은 변진섭 씨였는데, 3라운드에 보니까 5명 중 4위였습니다. 다행히 마지막 4라운드에서 1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5명 중에서 도저히 진짜를 가려낼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았습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창 가수들은 유명 가수를 닮으려고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는데,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닮으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닮지 않았다면 모순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나, 그런데 나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이 수치를 당하신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아무쪼록 기도와 말씀 가운데 늘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나 때문에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③ 온전한 헌신 :

다시 본문 9절을 봅니다. 레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여기서 ‘전부’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번제의 특징은 오물만 씻어내고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죄만 빼고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헌신이 중요합니다. 모든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모습으로 드려야 합니다. 고전6:19~20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바울은 또 롬12:1에서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NIV)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구약에는 죽이는 제사가 있었지만, 신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 이후 더 이상 죽이는 제사는 필요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삶 자체가 제물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느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지가 퇴근길에 가족들의 선물을 한 보따리 사왔습니다. 가족들이 각자 선물을 하나씩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의 선물이 없었습니다. 그 때 미안한 마음에 막내딸이 얼른 선물 상자에 묶여 있는 리본을 풀어서 자기 머리에 매고 말합니다. “아빠! 나를 보세요. 내가 아빠를 위한 선물이에요.” 그러자 아버지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자신을 드릴 때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롬12:2에 이렇게 증거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세상 풍조를 따라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사는 삶 자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고 선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레위기 1장 전체를 읽어보면 제물의 종류가 소, 양, 염소, 비둘기 등인데 어느 것으로 드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경제력이나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드리면 됩니다. 예수님의 아이 시절 성전에 올라가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눅2:24). 예수님의 가정이 그만큼 가난했음을 보여줍니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고를 요구하시시자 않습니다. 우리의 형편 가운데 최선을 요구하십니다. 마25:14~30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가 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1달란트, 2달란트, 그리고 5 달란트를 맡기고 먼 데 갔다고 오랜 후 돌아와 결산합니다. 1 달란트 받았던 종이 책망받았는데, 적어서 그런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 달란트와 5 달란트를 맡았던 종들은 갑절로 남겼습니다. 세상의 논리라면 1등와 2등으로 순위를 매겼을 겁니다. 그러나 주인(하나님의 상징함)은 두 사람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똑같이 칭찬해 줍니다. 그 말은 최선을 다했다는 겁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이 모든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내 모든 것들을 통해 예수님에게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3] 번제 같은 삶의 원동력 : 성령의 불

그런데 번제를 드림같이 사는 삶이 단순히 우리가 노력한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원동력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인지라 늘 넘어집니다. 실수합니다. 그 원동력은 오직 성령입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레1: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여기서 불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불은 번제의 필수 요소입니다. 모든 절차가 잘 진행되어도 불이 없으면 헛것입니다. 이 불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레9:24 참조)로 항상 제단에 꺼지지 않게 보존해야 합니다. 레6:13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떤 겁니까?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살전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 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항상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구원의 감격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임을 기억하고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한 헌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남은 인생 성령 충만한 가운데 번제를 드림 같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