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지킵시다. 고후10:3-6/ 잠4:23
고후 10:3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생각의 변화를 통하여 사람을 치유하는 치료법을 '인지치료'라고 부릅니다. 이 치료로 생각이 바뀌면 감정도 바뀌고 그 결과 행동과 생리적인 반응도 바뀌게 된다는 것이 이 치료법의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 생각이 왜 중요합니까? ◀
생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드는 예화가 있습니다.
"사막에 두 사람이 조난을 당했습니다. 구조를 받기 위해서는 더 긴 시간을 견뎌야 하는데 두 사람 다 수통에 물이 반병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사람은 아직도 반병이 남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은 반병밖에 남지 않았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까요 ?"
답은 이렇습니다. "반병밖에 남지 않았네" 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 생각으로 인해 불안해 질 것이고 그러면 그 결과 생리적으로 입이 타고 가슴이 뛰는 등, 불안에 대한 반응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물을 더 자주, 더 많이 먹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물이 줄어들수록 그 사람은 더 불안해 져서 일반인이 그 물로 만약 12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이 평균이었다면 이 사람은 2-3시간도 견디질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그 생각으로 마음이 느긋할 수 있어 자신이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디고 그리고 꼭 필요할 때만 조금만 마시고 그렇게 먹고 나서도 이 사람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보통사람이 12시간을 견딜 수 있다면 이 사람은 24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두 사람의 상황은 꼭 같았습니다(수통에 물 반병의 조난상황). 그런데 생각의 차이(아직도 반병이 남아있네/ 반병밖에 안남았네)가 감정의 차이(느긋함/ 불안감)를 만들고 그것이 생리적 반응(참을 수 있는 갈증/ 참을 수 없는 갈증)과 행동의 차이(조금 물을 마시고 참는 것 / 자주 물을 마시고 참지 못함)를 만들어 결과(구조를 받고 / 구조를 받지 못하고)가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생각의 차이는 커다란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경험을 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인지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 자체보다는 어떤 사람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였나(인지했나)가 그 사람의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게 하는가에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이렇게 잘못된 경우를 인지왜곡이라고 합니다) 상황에 대한 반응도 잘못되기 때문에 그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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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청년이 힘들게 알프스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던 이 청년은 마지막 물 한 모금을 마셔버린 후에 심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을 더 오르던 중 그는 계곡 사이를 흐르고 있는 맑고 깨끗한 호수를 발견하였습니다. 단숨에 달려간 청년은 쉴 새도 없이 물을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정말 시원한 물이었습니다.
그런데,물을 실컷 마시고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그는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경고판을 보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영어로 "포이즌(poison)"하면, '독이 있는, 해로운', '독약'이란 뜻입니다. 결국, 그 청년이 마신 물 속에 독이 들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청년의 몸에서는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고, 심한 구토를 일으키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온 몸은 떨리고 얼굴은 창백해져만 갔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그는 즉시 인근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진찰 도중에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경고판을 잘못 보았군요. 그말은 영어로는 독약이라는 뜻이지만,불어로 그것은 낚시금지라는 뜻입니다.“
이 청년은 <낚시금지>라는 말을 <독약>으로 잘못보고 야단법석을 떤 것입니다.
결국,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청년은 열이 내리고 구토도 멈추고,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시사해주는 의미는 아주 깊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수필가 에머슨은 생각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습니다.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
수학자 데카르트(Descartes)의 유명한 명제가 있지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파스칼도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희랍말로 "호모사피엔스" 즉, "생각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수많은 상황 가운데에서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때에는 아무런 갈등없이 수월하게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무수한 갈등과 고민속에서 어떤일을 선택할때도 있습니다.여하튼 생각이 먼저이고 그다음에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길,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들이 입으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잠언 23:7절에도 보면“대저 그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런한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마음이 옳으면 그의 행위도 옳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음욕을 품고 있으면 이미 간음을 시작한 것입니다.마음속에 미움을 품고 있으면 이미 살인을 시작한것입니다. 마음속에 욕심을 품고 있으면 이미 도둑질을 시작한 것입니다.오리가 알을 품고 있으면 오리가 나옵니다. 독사가 알을 품고 있으면 독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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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속담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젖소는 물을 마신후에 그 물로 아름다운 젖을 만듭니다. 그러나 뱀은 물을 마신 후에 그 물로 독을 만듭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사건, 똑같은 일이 주어졌다해도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그 위인도 달라질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생각을 먼저 바꾸어야합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말이 달라지고 우리의 말이 달라지면 우리의 행동이 다랄집니다. 그리고 행동이 달라지면 습관이 바뀌어지고,마침내 그 습관은 우리의 인격이되고 운명이 되고 우리의 천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은 말을 낳고 /말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인격을 낳는다는/ 말이 생긴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나는 어제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어제의 나의 생각이 오늘의 나를 결정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을 보십시오.렘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당한 것은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의 경우에도 보면 그가 당한 고통도 그의 생각의 결과라고 할수 있습니다.
욥 3:25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지만 그는 행복한 순간에도 불행해지면 어떻게 하나? 하고 많은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의 행복과 불행도 생각에 의해 결정 됩니다. 삶의 만족과 불만도 따지고 보면 생각에 의해 결정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의 소유가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전셋집에 살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10억이 넘는 고가의 고급빌라에 살면서도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달 생활비 500불을 가지고도 자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50,000불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생각입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는 일본입니다. 그러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필리핀입니다. 일본과 필리핀은 삶의 환경으로 보나 사는 수준으로 보나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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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에 가보면 집니가 뿜어대는 매연 때문에 눈도 코도 뜰수가 없습니다.날씨는 무덥고,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일본에 가보면 모든 것이 풍족하고, 편리하고 깨끗하고 안전합니다.그런데 일본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별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대답했고, 필리핀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많은 성도들조차 어떤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그렇게 신경을 쏟으면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일에는 소홀하다는 점입니다.
자기들의 명예를 지키고, 재산을 지키고, 세상 지위를 지키고, 육체의 건강을 지키고, 집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면서도 가장 소중한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일에는 너무 무지하고 게으르고 소극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할까요?
첫째로,우리의 생각은 원수 마귀가 침입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치열한 영적전쟁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기 때문입니다.여기에서 이미 승리와 패배가 결정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때 먼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공격합니다.그러므로 마음과 생각이 바로 영적 전쟁터 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서 6:12).
고후 10:3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사단은 철저한 전략과 간교한 속임수로 우리 마음속에 㰡견고한 진㰡을 구축하려고 애를 씁니다. 견고한 진이란 어떤 그릇된 사고 방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속박하고 거기에 우리를 가두는 그런 영역을 말합니다.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사탄의 거짓말에 속고있는 것이 인류의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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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마귀가 어떻게 공격했습니까? 네가 이것을 먹으면 네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습니다.그리고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면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가롯유다를 보십시오.요13:2절에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가롯유다도 자기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지 못했습니다.
아나니야 삽비라를 보십시오.행5:3에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세상것들에 의해 우리의 마음이 점점 둔감해지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부단히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떤 생각을 할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성경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골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신 4: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할수 있어야 합니다.잘 간직하지 않은 생각들은 쉽게 잊혀 집니다.마리아처럼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눅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말씀을 힘써 지키지 않으면 곧 빼앗기는 날이 올것입니다.재산보다 명예보다더 신중하게 보존하고 지켜야 합니다.
눅 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말씀과 기도에 깨어있어서 악한 욕망이 마음과 생각속에 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정욕을 자극하는 것들이 거기에 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교만을 부채질하고,화내고 미워하는 것들이 거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야합니다.
전갈은 새끼라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죽여 버리듯이 모든 악은 그 초기단계에 분쇄시켜 버려야 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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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허풍쟁이 남편이 있었습니다. 이 남편은 위엄과 체면은 강하지만 용기는 없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밤에 도둑이 담장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이때 그의 아내가 소리칩니다.<여보, 큰일 났어요,도둑이 담장을 넘어오고 있어요>
남편은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일어날수가 없었지만 남편으로서의 위엄은 세워야 겠기에 말하길<알았소. 이놈의 도둑 어디 넘어 오기만 해봐라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려 놓을게다>
그런데도 도둑이 들어와서 현관 문을 열려고 합니다. <이 놈의 도둑 문을 열기만 해봐라 다리 몽둥이를 뿌려 뜨려 놓을 테다>
이 도둑이 이제는 집안으로 들어와 방문을 엽니다.<이 놈의 도둑,어디 방에 한발자국만 들여놨다봐라,다리 몽둥이를 부려뜨려 놓을 테다>
이 도둑이 방으로 들어옵니다. 이제는 도저히 무서워서 어찌할바를 알지 못하고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자는척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도둑이 장롱 을 뒤지기 시작합니다.이 남편은 이불안에서 속삭입니다. <이 놈의 도둑 어디 물건을 꺼내 가기만 해봐라,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을테다>
그런데 이 도둑이 물건을 다 챙겨서 나가더니 유유히 대문을 열고 사라집니다.이때 남편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더니 크게 소리지릅니다.
<이 놈의 도둑 다시 한번만 더 와봐라, 다리 몽둥이를 부려뜨려 놓을테다>
이런 큰소리는 누구든지 칠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에게도 이런 식입니다.<한번만 다시 와봐라,다리 몽둥이를 뿌려뜨려 놓을테다> 그러나 끊임없는 마귀의 공격에 <다시 오기만 해봐라>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아예 생각부터 차단 시켜야 합니다.
생각속에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면 그 다음 부터는 걷잡을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의 존재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악의 뿌리가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의인은 아예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하고,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의 길목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 시켜야 할까요?
둘째는,생명과 평안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생각은 육신의 생각이 있고,영의 생각이 있습니다.육신의 생각이란,죄의 소욕을 따라 살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고,영의 생각이란,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생각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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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사망이고,근심과 염려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은 결국에는 불행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생명과 평안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생명이 없는 것은 그 모양이 아무리 화려해도 죽은 것입니다.조화가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거기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값어치가 없는 것입니다.
평안이 없는 축복도 진정한 축복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소유했더라도,아무리 높은 지위를 차지 했다고 해도,아무리 인기가 높은 사람일지라도 그안에 평안이 없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하나님의 축복과 기도의 응답은 먼저 환경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성경의 약속에 의하면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평강으로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감옥안에 갇혔으나 한없이 평안했던 요셉의 경험이었고,깊은 잠을 잤던 베드로의 체험이었으며,바울과 실라의 마음속에 임했던 놀라운 평안과 찬송의 경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의 생각을 말씀에 복종시키므로 사자굴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평안을 만끽할수 있었습니다.
왜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생각을 따라살면 생명과 평안의 축복이 우리 가운데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평안과 축복의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의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까?
마지막으로,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킨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내안에 끓어오르는 불타는 욕망, 나를 사로잡을려는 미움의 생각,복수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음란한 생각이나 게으름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단호하게 물리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군사적인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 사탄의 요새를 쳐부순다는 말입니다.
생각을 사로잡는다 <<<< 전쟁터에서 적군을 생포 하듯이 정신을 바짝차리고 내게 들어오는 생각들을 살피고 이것이 사탄이 주는 생각이라면 예수의 이름으로 단단히 물리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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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케 한다 <<<< 싫어도 무조건 순종하는것입니다.어떤때는 그 생각이 너무나 달콤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물리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때도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군인들은 자기들의 감정이나, 자기들의 생각과는 상관 없이 복종해야 하는 것처럼 그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글을 쓰고 있는 사도 바울은 어떻게 자기의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 시켰습니까?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그는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로 육신의 생각을 죽였고, 말씀의 능력으로 육신의 생각들을 다스렸고, 성령으로 세상적인 것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매사에 절제하며 하나님의 뜻앞에 육신을 굴복시켰습니다.
고전 9:27의 사도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복종하지 않는 군인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어떤 군인이 자기 생각과 고집대로 하는 군인이 있습니까? 그것은 이땅에서도 통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나라의 용사들에게 있어서 불복종이 될말입니까?
우리 주님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아버지여 할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런 간절한 기도 속에서 주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애쓰시는 가운데 자기의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아버지앞에 복종 시키셨습니다.
자신의 체면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켰던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명령에 화를 내면서 자존심이 상했다고 기분 나빠하던 나아만 장군은 다행히 종의 권유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자기의 고집과 생각을 묶어서 요단강에 던졌습니다. 이것이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을 일곱 번 사로잡아 하나님의 뜻앞에 복종시켰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치료될수 없는 문둥병이 치유되고 피부가 어린아이의 살같이 깨끗하게 되는 기적을 체험 하게 된것입니다.
내체면이나 위신이나 내감정이나 이성이나 상식이나 환경이나 상황을 초월하여 내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너무 중요합니다.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지 못하므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어 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가면 사탄의 견고한 진을 파괴 시킬수 있습니다.생명과 평안을 누릴수있습니다.놀라운 기적을 경험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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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문>
다같이<<<<<<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
구하는 것도 응답이 되지만 생각만 해도 넘치도록 능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주님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하신 말씀을 항상 간직하고 주께서 주시는 생명과 평안의 삶을 지속적으로 누릴줄아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소에 선한 생각을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하시고, 성도들을 생각하게 하시고,
하늘의 일을 생각하게 하시고, 믿음의 생각,사랑의 생각, 소망의 생각을 하게 하소서.
부정적인 생각을 쫒아내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게 하소서.
소극적인 생각을 사로잡아 쫒아내고 적극적이고 발전적이고 소망적인 생각을 하게 하소서.
어두운 생각을 버리고 밝고 아름답고 빛된 생각을 하게 하옵소서.
비극적인 생각을 하지말게 하시고 축복된 생각을 하게 하소서.
허무한 생각을 물리치게 하시고 참되고 경건한 생각을 하게 하소서.
더러운 생각을 버리게 하시고 깨끗하고 거룩한 생각을 갖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병든 생각과 사고 방식을 고쳐주시고 건강한 생각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 시키므로 마귀 침입을 처음부터 차단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 시키므로 생명과 평안의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 시키므로 날마다 기적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