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생활을 배우라(마가복음 1:35-39)
 박찬길   
 
   이런 의미 있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합니다" '제자입니까'라는 책으로 유명한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쓰셨는데,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는 개봉되지 못한 채 창고에 쌓여있는 고물 우편물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90% 이상은 잘못되어서 응답 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잘못된 동기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서 응답 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저자는 90% 이상의 기도가 쌓여있는 고물 우편물과 같다고 말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면 요즘은 이와 같은 기도조차도 게을리 한다는 겁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기도가 많이 줄었어요. 사실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주 말하고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기도인데, 제일 안 되는 것도 기도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잘 안 한다는 겁니다. 마음은 원인데 육신이 약해서 그렇겠지요.

   어느 통계에 보니까 한국 교회 성도들의 하루 평균 기도 시간이 나와 있어요. 일반 교인들은 하루에 5분에서 10분 사이이고, 직분을 가진 이들은 10분에서 15분 사이, 목회자들은 20분이랍니다. 별 차이가 없지요.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 기도 많이 하는 교회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통계를 보니까 부끄럽습니다. 이민교회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를 게을리 하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을까? 올바른 기도생활을 통하여 신앙생활의 성장과 성숙을 이룰 것인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2천년 전에 기도 생활의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생활의 완전정복을 이루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예수님은 바쁘게 사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하루 일과를 보면 한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1장 21절을 보면 가버나움에 가셔서 안식일에 가르치십니다. 설교하시는 겁니다. 설교 도중에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니까 고쳐주십니다. 예배가 끝난 다음에는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으로 가십니다. 스크린에 나오는 마가복음 1장 29절을 보세요. 마침 시몬 베드로의 장모님이 열병으로 누워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기도해서 고쳐주십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됐습니다. 32절을 올려주세요.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님께 데려고 옵니다. 얼마나 많이 왔는지 온 동네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동네에 있는 각종 병자들이 다 온 겁니다. 내과, 외과, 치과, 소아과, 피부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별별 환자들이 총 출동해서 모인 거예요. 예수님이 마음도 좋으시지요. 모두 고쳐주셨어요. 귀신도 쫓아주셨어요.

   예수님의 하루가 얼마나 바빠요.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설교하신 것을 편의상 오전이라고 가정하면, 오후에는 베드로 장모님의 열병을 고쳐주신 것이고, 저녁에는 각종 병자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해하시겠지만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진을 뺍니까?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선포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강의는 준비해 온 것을 그대로 하면 되지만 설교는 준비해온 것 그냥 하면 안 됩니다. 설교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나타내야 하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신경이 예민해지는지 모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시기 때문에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피곤해서 오후에 좀 쉬려고 베드로의 집에 갔더니 열병 환자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저녁에는 예수님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들고..., 이 정도의 일정이면 그 다음 날은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쉬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35절을 봅니다.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여러분, 예수님의 하루 스케줄이 이렇게 빡빡함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기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쁘게 지내면서도 기도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일어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대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 교인들이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바쁘기 때문입니다. 너무 바빠서 쉴 시간이 없다고 하잖아요. 바쁘다 보면 피곤합니다. 피곤하면 기도할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설령 낸다고 해도 졸기만 합니다. 사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바쁘게 살면 피곤도 하지만 삶이 한쪽으로 기울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에 바쁘게 살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반드시 소홀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면 결국은 일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쁜 것은 지혜롭게 조절해야 하고, 바쁠수록 기도하는 시간을 내야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루터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요즘 내가 바빠진다. 더 기도해야겠다." 우리는 비슷하게 말하다가 나중에는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요즘 내가 바빠진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 루터는 매일 한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바빠졌을 때는 두 시간으로 늘렸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도 기도 시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쁘기 때문에 기도 시간을 내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바쁘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바쁘지 않으면 기도 시간을 내지 않아도 삶이 크게 영향받지는 않지요. 바쁘지 않으니 할 일이 없잖아요. 할 일이 없으니 기도제목도 없지 않겠어요.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만날 노는데 뭐라고 기도할 거예요. '하나님, 잘 놀게 역사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수는 없잖아요.  

   바쁠 때에 기도제목도 많이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은 바쁘면 바쁠수록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정하시는 지혜를 얻게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언제 어느 때나 할 수가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기도하기에 최고로 좋은 시간은 언제입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기도하기에 최고로 좋은 장소는 어디입니까? 예수님은 이른 새벽 시간을 선택하셨습니다.

   목회하면서 보니까 기도하기에 좋은 시간은 새벽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고요한 시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시간..., 기도하기에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새벽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벽을 깨우는 주인공에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새벽에 열심히 나오는 교인들이 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새벽에 출근하시는 분들은 저녁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금요철야기도회가 얼마나 은혜롭고 좋은지 모릅니다. 아침저녁으로 바쁘신 분들은 주일에 중보기도회에 참여하셔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아무 곳에서나 기도하면 되지 반드시 교회에 나와야 하느냐고 반문하시지만... 예, 기도는 아무 곳에서나 해도 됩니다. 하나님이 어디든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성도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부는 어디에서 하는 것이 잘 됩니까? 학교나 도서관에서 하는 것이 잘 됩니다. 일은 어디에서 하는 것이 잘 됩니까? 직장에서 하는 것이 잘 됩니다. 기도는 교회에서 하는 것이 잘 됩니다. 교회에 오면 기도하는 분위기도 되고 방해하는 것도 없고...,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시간을 새벽에 내셨는데, 오늘 우리들도 가장 좋은 시간에, 가장 좋은 장소에서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구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구하는 기도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마태복음 7장 7절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나님께는 구하는 이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의 다른 하나는 교제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가리켜서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말합니다. 대화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통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지요. 기도는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는가? 하나님께 물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는 구하는 기도와 교제하는 기도가 모두 중요합니다. 구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기도와 교제하는 것이 목적인 기도가 모두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고 싶으셔서 구하라. 구하면 내가 줄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서 교제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구하는 기도도 해야하고 교제하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어서 좋고, 교제하는 기도를 하게 되면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요청하는 기도, 구하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슬퍼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올 때마다 저에게 요구 사항만을 적어서 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목사님, 오늘 설교는 짧게 해 주세요. 소리는 지르지 말아주세요. 기도는 적당히 해 주세요. 축복에 대한 말씀은 길게 해주세요. 손을 들고 찬양하지 말아주세요. 여러분이 매주 교회에 올 때마다 이런 것을 요구한다면 저는 슬퍼할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신앙이 초보일 때에는 구하는 기도를 해야지요.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의 목적이 문제해결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보면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이 본문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것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지만, 가만히 묵상해 보면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골방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골방은 작잖아요. 골방에는 나만 들어갈 수 있잖아요. 하나님은 골방에서 나와 단 둘이 만나서 교제하고 싶어하신다는 겁니다.

   연애할 때에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있고 싶잖아요. 토요일 예배가 끝나고 차를 마시러 갔어요. 다른 사람은 집에 갔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남아 있는 거예요. 얼마나 미운지..., 빨리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인데..., 눈치도 없이 남아 있어요. 때려주고 싶잖아요. 하나님은 나와 단 둘이 만나 교제하기 원하셔서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할 때에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요? 38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예수님은 이른 새벽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목적이 무엇이지요?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통하여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기도를 하면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본질에 충실하게 된다는 겁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으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하면 나의 영혼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날마다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기도하는 사람이 지도자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종 시청각 교육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셔서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꽤 오랜 시간을 하신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예수님을 찾을 때까지 기도하셨으니까 상당한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의도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다 보니까 제자들이 보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변화산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셔서 기도하십니다. 26장에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올라가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사람이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 주셨고, 제자들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서 복음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더욱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멜렉이 전쟁을 할 때에 모세가 작전을 세우지요. 여호수아는 군인들을 데리고 전방에 나가서 싸우고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겁니다. 작전 같지 않은 작전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모세가 팔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모세가 팔을 내리면 아멜렉이 우세한 겁니다. 전쟁에 나가 싸우는 것은 분명히 여호수아인데 성경은 여호수아가 능력 있어서 이겼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손이 내려가느냐 올라가느냐에 따라 전쟁이 달라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인 모세가 기도해야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아닙니다. 직분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행정이나 사무를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싸인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아무리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지도자가 아닙니다. 목회하는 목사라고 해도, 장로나 권사라고 해도, 선교회장이라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무늬만 목사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무늬만 장로이고, 무늬만 권사이고, 기도하지 않으면 무늬만 회장이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기도하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일꾼을 선출할 때에는 기도하는 사람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주일도 성실하게 지켜야하고, 십일조도 온전히 드려야 하고, 헌신도 해야하지만, 그 외에 기도하는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세워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겁니다. 주님의 일은 경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나이로 하는 것도 아니고 직분으로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교회 일은 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교회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지도자가 되시려고 하는 분들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기도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에 보면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은 습관적이라고 할만큼 자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기도생활이 습관 될 정도로 자주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야구 선수가 야구하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의 지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자네 신앙 생활에 성공하고 싶은가?" 그 말에 귀가 번쩍 띄었어요. "예,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가 있습니까?" 교회의 지도자가 세 가지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첫째는 날마다 15분 기도하게. 둘째는 날마다 15분 성경을 읽게. 셋째는 날마다 15분 동안 전도하게. 아주 단순하지요. 이 야구선수가 단순하게 받아드렸어요.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단순하게 받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단순한 사람이에요. 복잡한 사람은 하나님이 안 쓰십니다. 이 야구선수가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 다음날부터 15분 동안 기도하고, 15분간 성경을 읽고, 15분 동안 만나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겁니다. 다음 날도 했어요. 다음 달도 했어요. 다음 해에도 했어요. 그렇게 평생을 살았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빌리 그래함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전도자로 부상하기 전까지 미국 땅에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큰 각성의 일으킬 때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분이 '빌리 썬디'입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크게 쓰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의 시간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느냐 하는 겁니다.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너무 귀하고 아름다워서 다른 사람에게 전했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교회, 그런 사람이 있는 가정, 그런 사람이 있는 나라는 절대로 흔들리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 우리는 제8차 전도축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7월부터 세 달 동안을 하고 있는데, 9월은 마지막 달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서 구원한다는 것은 너무나 값지고 보람된 일입니다. 성도들이 하는 일 중에 이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구원하는 것을 천사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도 기도가 필요했다면, 연약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기도의 목마름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계획하십시오.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최상의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시기를 바랍니다. 굳이 교회가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로 인하여 하늘의 문을 여시면 여러분의 삶에 새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통하여 주신 사명을 감당하여 생명 구원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나타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에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내어 하나님과 교제하기 원합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복음을 증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