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교회생활(2): 교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데 그렇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하늘의 복을 넘치게 부어주시기 위해서이며 다른 하나는 그 복을 이웃들에게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하늘의 복이 무엇입니까?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는데 하늘의 복을 세 가지 차원에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 개인적 차원: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닮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공동체(교회)적 차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셔서 마침내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신부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즉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3) 우주적 차원: 만유의 통일입니다. 모든 만물이 회복되고 온전하게 되어 창조주와 구원주
하나님의 풍성한 영광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복을 풍성하게 받은 성도는 그 복을 이웃들에게 나누는 것이 마땅합니다. 즉 성도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또 하나의 목적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엡 2:10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일꾼이 되게 하시려고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일까요? 이미 말씀 드린 대로 하늘의 복을 세상에 나누는 일인데 그 선한 일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위임하신 지상대명령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선한 일이란 뭇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이 선한 일을 달성하기 위해 교회가 중점적으로 행하는 다섯 가지의 사역이 있습니다. 예배와 교제와 교육과 봉사와 전도입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에 관해 살펴보았고 오늘은 교제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교제의 핵심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봉독한 본문의 요지입니다. 부연해서 설명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 하나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모든 민족과 집단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는 뜻입니다.
원래 유대인과 이방인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둘 사이에 적대감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14절에서는 언급한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한 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특별한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자기들처럼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으로 되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서약해야만 했습니다. 그러지 않은 이방인들은 부정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과 교제하거나 식사하는 것은 위법이었습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도 적대감을 가졌습니다. 이유는 유대인들이 별 잘난 것도 없는데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뿌리 깊은 적대감은 두 집단을 분리하는 견고한 담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으며 어떤 누구도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써 적대감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14절). 그리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적대감을 불러일으킨 율법까지 폐하셨습니다(15절). 물론 하나님의 율법은 선하고 거룩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그 율법을 오용함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원수 지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그 율법을 폐하시고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로써 그 둘(유대인과 이방인)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대속의 사건이요 화해의 사건이었습니다(13-15절).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16절).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16-17절).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아주 멀리 있었습니다. 원수 지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한 가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한 가족이 된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동일한 성령님께서 내주하셔서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으며(18절).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함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21-22절).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을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기초를 놓으신 하나됨을 성령님께서 계속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작되었고 지금도 교회가 온 땅에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삼위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싸움과 분열을 일삼고 있는 세상과 만물을 통일하고 계십니다. 즉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삼위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서로 한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는 4:1-6에서 강하게 권면합니다(봉독). 특히 4:3절에서는 성령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에 우리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여기 “힘써 지키라!”는 주동사를 좀 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온갖 노력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즉 수동적인 태도나 방관자적 자세를 배격하고 적극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몸을 다 바쳐 헌신하라는 뜻입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이미 하나된 것을 아는 성도는 그 하나됨을 위해 지금 나서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이 귀한 일을 마루지 말고 네가 먼저 솔선하라! 이것이 너희 속에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간절히 열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열망에 부응하여 너희도 최선을 다하여 하나됨을 추구하라!’라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가 서로 교제하고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이기도 하지만 모든 성도가 열정적으로 이루어내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더욱 끈끈하고 따뜻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가 되는 것, 지체들이 서로 연합하고 교제함으로써 살아 생동하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성전이 되는 것은 우리모두가 열망해야 할 비전입니다. 더욱이 그 비전은 삼위 하나님의 비전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이질 비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삼위 하나님의 비전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조금 전에 말씀 드린 대로 성도의 교제와 연합에 열정적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누구를 채용하겠습니까? 물론 직무에 상당한 지식과 기술이 있는 자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기업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한결 같이 말합니다. 열정과 패기가 있는 자들이 결국 회사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실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더 빨리 승진한다고 합니다. 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자기가 맡은 일에 열정적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오늘의 주제인 성도의 교제도 마찬가집니다.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지 우리는 이미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교제에 열정적으로 동참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세상 기업에서도 열정이 없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듯이 주님의 교회에도 열정 없는 사람을 주님의 합당한 일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3년 동안 열정적으로 일하셨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열정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됩니다. 열정의 불씨를 꺼뜨리는 부정적인 사람, 소극적인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불꽃을 활활 살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불꽃이 꺼져가려고 할 때는 적당하게 부채질을 하는 열정의 사람, 헌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열정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 교회의 일꾼으로 일할 때 그 교회는 살아 생동합니다!
둘째는 평안을 확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4:3). 열정만 과도하게 넘치면 성도의 교제가 산만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즉 평안이 없는 열정은 공동체를 소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열정과 함께 평안이 공존해야 합니다. 여기 평안의 뜻은 공동체의 구성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교회는 목장모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목장모임을 통해 “아! 이게 교회구나! 성도의 교제가 그래서 중요하구나!”라고 생생하게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목장모임을 통해 우리가 최종적으로 누려야 할 것은 평안입니다. 그래야 또 모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교제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평안입니다.
주일의 공동예배도 마찬가집니다. 예배 중에 우리의 마음이 하늘의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우리의 마음이 불편했다면 그 예배는 무언가 잘못 되었습니다. 평안이 깃 드는 예배가 되도록, 평안이 가득한 목장모임이 되도록 우리 모두는 서로를 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임과 교제에는 언제나 서로에게 평안이 가득하도록 내가 먼저 헌신해야 합니다.
셋째는 사랑으로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2절에서 사랑 가운데서 서로를 용납하라는 뜻은 서로를 용납함으로써 사랑의 결속을 견고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누구인지를 늘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가능할 것입니다. 누누이 말씀 드렸듯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에는 반드시 동반해야 할 성품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도는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입니다(4:2). 고전 13장 사랑장을 보면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이 사랑의 두드러진 특성임을 말씀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겸손의 기초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생각과 내 고집을 꺾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안이 진리와 크게 상관이 없다면 내 견해를 과도히 주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즉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첩경입니다. 성도의 하나됨과 교제를 진작시키는 최고의 품성 중의 하나가 겸손이며 반대로 공동체의 결속과 교제를 깨트리는 가장 큰 적이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
온유는 상대방을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뜻하며 오래 참음은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잘못에 대해 즉시 분노하고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4:2에서는 ‘모든’ 겸손과 온유와 인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 ‘모든’이란 ‘온전한’이란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가 조금 나으면 되는 정도가 아니라 겸손과 온유와 인내가 최고의 수준까지 자라가야 함을 뜻합니다.
그 최고의 표준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 절정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우리모두는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연합과 교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참된 교제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4:1절에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들에게 하나됨을 권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즉 ‘성도의 하나됨’은 어떠한 고난과 희생이 있어도 성도가 반드시 이루어내어야 할 삶의 고귀한 목표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옳고 가치 있는 일에는 항상 희생과 고난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옳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하나됨이야말로 우리가 이루고 경험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이 모두가 우리의 하나됨을
위해서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이유도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것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됨을 위해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편지를 써서 교회에 보낸 것도 모든 성도들이 하나되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약하면 성도의 연합과 교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내어야 할 최고의 과제입니다. 그러므로 그 과제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열정과 평안과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를 제안하려고 합니다. 기도와 만남입니다.
성도의 바람직한 연합과 교제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강력한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두고 성도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요 17장, 대제사정적 기도).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위대한 꿈을 밝히셨습니다. “너희들부터 하나가 되어라! 내가 없다 하더라도 하나가 되어라! 성령께서 너희 가운데 계셔서 영원히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면 너희와 같은 공동체가 세상 가운데 무수히 생기게 되리라! 이것이 나의 최고 소원이며 나의 가장 큰 기도제목이다! 즉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성도의 연합과 교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우리도 성도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한 것은 지금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이 기도를 계속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광스러운 교회에 대한 꿈은 성취되고야 말 꿈입니다. 예수님의 꿈이며 우리가 꾸어야 할 꿈입니다. 이 꿈에 도전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성도의 교제와 하나됨은 주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살게 하신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와 하나됨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정과 평안과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두 번째 일은 교회의 성도들을 자주 만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신 일차적인 목적은 함께 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막
3:13-15)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신 우선적인 이유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의 방식은 3년간 함께 숙식을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최고의 제자훈련 방식이었습니다. 즉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야 연합과 교제가 일어나고 거기서 제대로 제자훈련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을 여러 번 만나셨습니다. 그 중에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이 하던 제자들을 만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바닷가로 가셨습니다(요 21장). 그때 예수님께서는 손수 아침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고 시달린 제자들에게 따뜻한 조반을 차려주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숯불에는 생선이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생선구이 냄새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고기 잡이를 마치고 해변가로 나온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금방 잡은 싱싱한 고기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바닷가에서 숯불 생선구이 조반을 먹었던 제자들은 그날 아침 참으로 행복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침식사를 차려주신 것, 아주 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유는 배가 고프면 교제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다 마친 다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목자직을 위임하셨습니다. 구태여 순서를 매긴다면 교제가 먼저고 그 다음이 사명
수행을 위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야 가르침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주부들께 부탁합니다. 아침식사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온 가족이
행복해집니다. 여러분의 아침식탁이 행복해야 하루 종일 행복합니다.
그리고 주일의 교회에서 나누는 점심식사 시간도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따뜻한 교회가 됩니다.
목장모임에서 나누는 식탁의 교제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단출하면서도 정겨운 교제가 되도록 정성껏
준비하고 나누는 식탁의 교제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때부터 권장해왔던 식사교제의 바른 모습입니다.
어쨌든 성도의 연합과 교제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자주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예배도 드리고 식사도 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건실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히 10:23-25)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성도 여러분, 분열된 사회를 개선하려면 다른 것 없습니다. 참된 교제의 회복이 대안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일에 앞장설 수 있습니까? 교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목장 안에서 참된 교제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이 예배도 하나가 되어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가 될 때 서로에게서 보고 배우는 실아 있는 신앙 교육도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섬길 때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하나가 될 때 세상 사람들이 거룩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와 선교의 가장 좋은 준비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킴으로써 우리의 가정과 목장과 교회 안에 하늘의 복이 풍성하게 넘쳐 흐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