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신학(18) 성령의 은사

 

 

1. 성령의 은사

◆ 은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은사에 대한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은사에 대한 바른 개념이 정립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사 운동을 주창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성경적 입장에서 은사에 접근하기보다는 현상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은사(恩賜, Gift)의 정의

▪ 카리스마(χαρισμα) : 롬1:11, 고전12:4. 바울에 의해 사용된 단어. 대표적인 단어. 카리스(χαρις, 은혜)

에서 파생된 단어 - 은사와 하나님의 은혜 사이에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 도시스(δοσις) : 약1:17

▪ 도레아(δωρεα) : 고후9:15, 히6:4.

은사는 성령께서 각 성도들에게 그 스스로의 신앙의 유익은 물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된 이웃 성도들에게 헌신봉사하게 하기 위하여 선물로서 주신 특정 능력이나 교회의 설립과 발전을 위한 직분과 직임 등을 가리킨다.

성령의 은사는 성도 개인의 공로나 욕구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에 봉사토록 성도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무조건적, 불가항력적 은혜의 선물이다.

2)은사의 기준

성령의 은사를 은혜나 재능과 분별하기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은사와 외형적으로는 유사하나 실제적으로는 인간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닌 사단에게서 비롯된 거짓된 것도 있다. 따라서 성경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타났음이니라(요일4:1).’ 하고 경고하고 있다.

바른 신앙고백 : 외견상 아무리 그 능력이 놀랍더라도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에서 떠난 것은 결코 성령의 은사가 아니다(고전12:4-6).

바른 봉사 :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지체인 성도에게 봉사하기 위해 은사는 주어졌다(엡4:12). 따라서 교회와 성도에 대한 바른 봉사의 유무가 성령 은사의 진위를 구분하는 주요 척도가 된다.

건덕과 평화의 추구 :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평화의 주이시다(고전14:33). 따라서 교회에 어지러움과 분열을 가져오는 것은 결코 성령의 은사로 볼 수 없다.

사랑과 겸손 : 은사는 개인의 유익이나 자랑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마땅히 이웃을 섬기고 사랑으로 봉사하며 자신의 수고나 공로를 드러내지 않고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벧전4:11). 사랑과 겸손의 봉사 유무가 참 은사를 구분하는 중요한 표지이다.

3)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주시는 은사는 참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고전12:8-10, 롬12, 엡4). 그런데 이토록 다양한 은사이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에서는 모두 통일성을 갖고 있다. 첫째, 기원에 있어서 통일성을 갖는다. 모든 은사는 한 성령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다(고전12:4-6,11,히2:4). 둘째, 목적에 있어서 통일성을 갖는다. 개인의 신앙 확신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고전12:7), 나아가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서만 은사는 사용되어야 한다(엡4:12,13).

4)은사의 바른 활용

①은사는 모든 성도에게 주시되 특히 사모하는 자에게 우선적으로 주신다. 은사를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능동적으로 갈망한다는 뜻이며, 그것은 부르심을 받은 종으로서의 정당한 응답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은사를 사모해야 하고 풍성히 받아 충성스럽게 일해야 한다.

②은사를 받은 자는 그 은사를 조심 없이 행사해서는 안된다(딤전4:14). 은사를 성도의 유익과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행사하지 않고 자신의 신적 능력의 과시, 또는 물질적 욕망의 충족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무절제하게 사용함으로써 교회의 덕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③은사는 계속 향상 발전시켜야 한다. 은사의 활동은 신적 생명의 활동이므로 계속 성장하고 계속 개발되어야 하며 계속 향상되어야 한다. 성장하지 않는 생명이 죽은 생명인 것과 같이 향상되지 않는 은사는 죽은 은사이다.

◆ 은사의 분류

1)이적적 은사

믿음(고전12:9) : 이것은 모든 성도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 구원의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일반적인 성도의 믿음을 능가하여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것도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확신과 타인에게도 믿음을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믿음을 가리킨다(마17;20, 약5:15).

예언(롬12:6, 고전12:10) : 이 은사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장차 되어질 특정 사건을 교회에 미리 알리는 것과 더불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가르치며 강론하는 것까지 가리킨다. 예언은 구원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되어지며, 사람의 뜻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지는 것이므로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된다(벧후1:20). 한편 신구약 성경 66권으로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종결된 현재에 있어서 성경 말씀처럼 절대적 권위를 갖는 특정 사안에 대한 예언의 은사는 종결되었으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가르치고 강론하는 일은 계속된다.

영 분별(고전12:10) :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정말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인지, 속임수인지, 착각인지, 아니면 악령의 역사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악령도 역사하며,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성도와 교회를 미혹하므로, 성도는 선과 악을 바로 구별하여야 하고 의와 불의를 분명히 구별하여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로 영안이 열리지 않고서는 이러한 분별을 바로 하기 어렵다. 오직 성령께서 특별히 영 분별의 은사를 주신 자들만이 이러한 일을 바로 할 수 있으며 양의 옷을 입었으나 실제로는 노략질하는 이리인 거짓 선지자를 식별해 낼 수 있다. 한편 이상의 영분별의 능력은 오늘날에도 가능하나 행5:1-11에 나오는 것과 같은 사람의 속마음까지 꿰뚫는 직관력과 같은 의미에서의 영분별은 종결되었다.

능력 행함(고전12:10,28) : 이 은사는 자연의 일반 법칙을 초월하여 기적적인 일을 일으키는 능력을 말한다. 즉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능력을 일으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악령을 지배하고(행5:16) 자연을 지배하고(마21:18-22) 동물을 지배하고(민22:28) 심지어는 사망조차 지배하는(눅7:11-)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킨다. 이 역시 신유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나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며(행2:22) 말씀을 보다 효율적으로 확실히 증거하기 위한 표적으로서 많이 필요했으며, 완성된 계시인 성경이 없었던 초대교회 당시 더욱 활발하였다(롬15:18).

병 고침(고전12:9,28) : 신유(神癒)라고도 하는 이 은사는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인생의 질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케 하시는 역사를 성삼위 하나님의 영광과 환자의 구원을 위하여 수행하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신유의 주체는 매개자인 인간이 아니라 능력의 근원이신 성령님이시다. 이러한 신유의 역사는 육체적 질병 뿐 아니라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병에도 몯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모든 병이 항상 신유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신유로 치유되지 않는 것이 해당 환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작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병에 걸린 당사자야 누구나 회복을 원하겠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당장의 치유보다 그가 질병과 더 오래 싸우며 심지어 죽기까지 하는 것이 더 큰 은혜의 지름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병이 다 신유의 역사로 치유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병 고침의 은사가 강력하였던 사도 바울조차도 자신의 병을 치유하려는 기도가 응답되지 못했으며(고후12:7-9) 제자 디모데에게는 약을 쓰게 하였고(딤전5:23) 드로비모에게는 요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딤후4:20). 이로 볼 때, 신유는 이 은사를 행하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강한 믿음이 요구되며, 강한 믿음이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만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은사는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하여 성령께서 교회에 주신 영구적인 은사이기는 하나 특히 예수 지상 사역 당시나 초대 교회 시대에 강력하게 역사되었다.

방언(고전12:10,28, 14:1-40) : 성경은 두가지 종류의 방언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초대 교회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에 가장 결정적으로 나타났듯이 성령의 능력을 입은 자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방 나라의 실제 방언(그 나라 말)을 구사하는 것이고(행2:5-),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 안에서 황홀경의 상태에 든 자가 하나님과의 개인기도 내지는 교제의 차원에서 신비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고전12:10,28). 후자의 경우는 오늘날에도 나타나지만 전자와 같은 만국 방언의 경우는 초대교회 당시에만 한시적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 할지라도 모든 성도에게 임하는 보편적 은사이거나 또는 모든 사람이 필히 받아야만 하는 은사는 아니므로(고전12:30) 모든 사람이 다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한편 초대교회 시대부터 방언과 관련된 문제가 많았으므로 성경 가운데는 방언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즉 성경은 방언은 방언하는 사람들 자신의 덕을 세우는 것으로서, 질서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절제하며 차례에 따라 해야 하고 방언보다 더 나은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고 교훈하는 것이다.

방언 통역 : 방언은 일상 생활 가운데서 사용하는 언어와 다른 신비한 언어이므로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즉 방언은 성령의 신령한 역사로 되어지는 것이므로 필요한 경우에 그 방언을 알아듣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성령의 은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방언의 은사를 주시고 또한 방언 통역의 은사를 주신 것은 방언은 통역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고전14:23). 따라서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고전14:13).’ 하고 권고하고 있다.

2)비이적적 은사

사도(고전12:28, 엡4:11) : 사도란 특별히 예수께서 당신의 공생애 동안 직접 선발하여 같이 생활하시면서 진리의 말씀으로 교육시키셨으며 부활 승천시에 복음 전도자로 파송한 열두제자와 사도 바울 등을 가리킨다(행1:21,22). 따라서 이러한 사도직은 초대교회 시대를 지나서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사라져버린 한시적 직무였다. 하지만 오늘날 참된 성도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따라 사도들의 신앙을 전수받은 자로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옛날 사도들처럼 복음 전파에 힘쓰고 있는 바 사도 정신은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하겠다.

선지자(고전12:28, 엡4:11) : 여기서 선지자는 초대교회 당시 활약했던 일종의 순회 설교자를 가리킨다. 주로 사도들을 도화 복음의 참 뜻을 풀어서 선포하는 일에 힘썼다.

교사(고전12:28, 엡4:11) :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며 성도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맞게 적용시켜 주는 직무이다. 오늘날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의 각극 학교 교사들도 직무상 이러한 은사를 부여받은 자들이다.

목사(엡4:11) : 각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양육하며 교회를 중심으로 성도의 신앙생활 전반을 지도하는 직무이다. ‘목사’라는 용어는 성경에 단 한번만 사용되었으나,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양떼를 치는 자’, ‘목자’, ‘목양자’가 이와 동일한 의미이다(행20:28-). 초대교회에서는 동일한 직책으로 감독, 장로로 표현하고 있다.

지혜의 말씀(고전12:8) : 이 은사는 하나님의 뜻을 직관적으로 분별하여 이의 실천을 촉구하는 능력 있는 감동적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은사이다.

지식의 말씀(고전12:8) : 지식의 은사는 지혜의 은사와 유사한 측면이 있으며 상호보완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으나 엄격한 의미에서는 구분된다. 왜냐하면 지혜는 우주와 인생 전반에 대한 통합적이고 직관적인 성찰 전체로, 근본적이고 내적이며, 영적이며 영원한 것과 관계된 반면, 지식은 개별적 대상에 대한 단편적이고 분석적이며, 외적이고 이론적인 것으로 사물이나 복음을 이해하는 또다른 방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 전하는 것(엡4:11) : 초대 교회 당시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곳에 사는 여러 사람들에게 회개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를 믿게 하던 자들의 직무와 관련된 은사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가르치는 것(롬12:7) : 믿음의 선진으로서 후진을 교육하는 자질 또는 소명과 관계된 은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파악하고 깨닫는 능력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3)생활과 관계된 은사

섬기는 것(롬12:7) : 집사의 봉사 직무에서 비롯된 은사. 오늘날 교회에서 진정으로 요구되는 은사이다.

구제하는 것(롬12:8) : 섬기는 일 중의 하나로 특히 공동체 내에서 뿐 아니라 대사회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며 물질적으로 돕는 능력 및 소명과 관련된 은사이다.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질적으로 증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스리는 것(롬12:8, 고전12:28) : 특히 교회의 치리와 운영 책임을 맡아보는 장로의 직무 및 소명과 관련된 은사이다.

권위하는 것(롬12:8) :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 개개인에게 적용시켜 그 가르침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장려하고 권고하며 또 위로하는 사명 및 직무와 관련된 은사이다. 이는 성도 각자가 받은 구체적 직분에 관계없이 믿음이 앞선 자가 뒤처진 자에게, 또는 믿음이 강한 자가 실의와 오류에 빠진 자에게 성도 모두가 행해야 할 의무인 권면과 위로를 위한 은사이다.

긍휼을 베푸는 것(롬12:8) : 단순한 물질적 구제 뿐 아니라 각종 어려움에 처한 자를 돌아보며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소명 및 직무와 관련된 은사이다. 환난을 당하여 곤고한 처지에 빠진 자를 돌아보는 것은 초대 교회 당시부터 교회가 힘써 온 미덕 중 하나이다.

서로 돕는 것(고전12:28) :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가 된 성도가 서로 사랑으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성도에게 주신 근원적 소명과 관련된 은사이다. 이 은사는 만인이 이웃 성도에게 그 어떤 형편에서도 할 수 있고 또 행해야 하는 상호 호혜적 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