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습니다
마가복음10:13-16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시면서 안고 축복기도를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어린아이들을 믿음으로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어린아이들 같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1.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예수님
오늘 말씀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래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 아이들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이들의 축복해주기를 바라는 믿음에서 일어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재잘거리며 시끄럽게 구는 아이들을 귀찮게 생각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사람들을 꾸짖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하는 제자들의 행동에 대해 노하시면서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가복음10:14
예수님은 왜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을까요? 어린 아이들이야말로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깨끗한 영혼을 사랑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기초를 세우는 그 백지 같은 그들의 영혼에 믿음 넣어주기 원하셨고, 그들의 미래를 축복해주기 원하셨습니다.

2. 어린 영혼의 양육을 중요하게 여기신 예수님
어린아이의 심령은 순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서 들은 한 마디의 말씀이 그 평생을 좌우하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말씀을 넣어주고 믿음을 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를 축복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영혼의 기초를 바로 세워주는 것이요, 그것이 말씀과 믿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사는 바른 가치관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신명기 11:18-21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른으로서 낯을 들 수 없다는 느낌입니다. 매뉴얼이 있었지만 아무도 매뉴얼 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매뉴얼은 아주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재난이 올 때, 누구는 왼쪽 갑판으로, 누구는 오른 쪽 갑판으로 가라. 거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 다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매뉴얼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실제로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몸에 밴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몸에 밴 행동은 여러 번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 자기도 모르게 움직여지는 행동입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 속에는 대충대충의 버릇이 들어있습니다. 평소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위급상황에서는 아주 큰 위험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 위급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교육이요, 매뉴얼의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매뉴얼은 성경말씀입니다. 우리는 물건을 사면 거의 매뉴얼을 읽어보지도 않고 대충 필요한 부분만 이렇게 저렇게 만져서 쓰곤 합니다. 그래서 믿음생활도 매뉴얼인 성경은 거의 읽지도 않으면서 감각적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전혀 믿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다른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도 기초가 중요합니다. 어려서부터 아주 작은 기초를 만들어주고, 삶의 기초를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중에 크면 잘 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기초가 없고, 매뉴얼이 몸에 배어있지 않은데 어떻게 나중에 그런 행동이 나오겠습니까. 배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어떤 풍랑가운데서도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서게 하는 복원력이라고 합니다. 그 복원력을 위해서는 그 배의 보이지 않는 가장 밑바닥에 평형수를 채워넣는 것입니다. 짐을 많이 싣기 위해, 그리고 빨리 가기 위해 그 평형수를 빼버리면 무게 중심이 높아져서 복원력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보이지 않는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인생의 기초, 어떤 위험과 파도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복원력, 그것이 믿음이요, 말씀입니다.
월버트 챠프만이라는 분이 크리스챤 3000명을 조사를 해 보니 대부분 14세 이전에 예수를 영접하였고, 1000명은 16-20세 사이에 예수를 영접하고, 겨우 24명이 36세 이후에 신앙을 가졌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린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전도도 사실 그렇습니다. 굳을 대로 굳은 어른보다 어린아이에게 전도하는 것이 훨씬 귀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앞서 챠프만 박사의 통계를 보지 않아도 실제로 어른이 전도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른이 전도되는 경우도 거의 80%는 어렸을 때 교회에 나갔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전도해야 합니다. 어린이는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그림을 그려주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어린아이의 심령은 순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서 들은 한 마디의 말씀이 그 평생을 좌우하는 말씀이 됩니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그의 인생을 항상 일어서게 하는 평형수의 역할을 가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린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어렸을 때의 신앙훈련이 얼마나 필요한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3. 어린 아이같이 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이렇게 어린이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예수님은 다시 너도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가복음10:15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른인 우리들이 어떻게 어린아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겉모양이나 행동을 가리키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그 마음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어떤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어린 아이의 마음이겠습니까?
• 겸손한 마음입니다. 사무엘하6:20-23의 말씀에 보면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성으로 가지고 올 때에 기뻐하며 법궤 앞에서 옷이 벗어지도록 춤을 춘 말씀이 나옵니다. 그 때에 왕궁에서 이를 내려다 본 그 부인 미갈이 나중에 이를 체통없는 짓이라고 나무라자 다윗은 이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기쁘게 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믿음이야말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낮아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처럼 받드는 것입니다.
• 순결한 마음입니다. 모든 어린것들은 귀엽고 예쁩니다. 돋아나는 새싹도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왜 어린것은 귀엽고 예쁜 것일까요.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결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 마음이란 그러한, 때 묻지 않은 초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첫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를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면
지금도 나의 가슴은 뛰노니
내 어린 날에도 그러하였고,
어른이 된 지금도 또한 그러하여라.
나이 들어 늙었을 때에도 그러하기를!
그렇지 않다면야 나는 죽은 것이리!
어린이야말로 어른의 아버지
원컨대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순진한 경건으로 이어지기를.....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

어린이야말로 어른의 아버지--어른은 어린이로부터 왔으니까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적인 표현이 나오는 것일 것입니다. 무지개를 보면서 가슴이 뛰던 그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가슴을 왜, 언제, 우리는 잃어버린 것일까요? 험한 세상 살아가느라 이리 저리 부대끼고, 상처받으면서 각박해지고, 냉정하며, 욕심스럽고, 닳고 닳은 모습으로 변하여 버린 우리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라는 의미에서 이런 어린이 주일도 만들어진 줄 압니다.
•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잘 보면 하나님 나라를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라는 말씀은 주님께 열심으로 찾아와서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어린아이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가까이 나오고자 하는 마음, 주님의 만져주심을 바라는 마음--그것은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믿음은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곧 믿음의 마음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식으면 그 자리에 의심과 게으름과 세속의 마음이 들어옵니다. 냉냉한 마음,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듯한 시큰둥한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만져주심을 바라고 주님께 나아오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믿음입니다.

어린이날이 되면 모든 아빠들이 고달픈 날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붐비는 사람들 속 어딘가에 데리고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쁘게 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때는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금방 아이들이 훌쩍 커버릴 것입니다. 만약 내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면 해주고 싶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말하리라.
더 많이 안아주리라.
더 많이 축복하고 칭찬해 주리라.
더 믿음 중심으로 키우리라.
나는 그렇게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여러분, 나의 이 말을 마음 깊이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들을 축복하시고 존귀한 영혼으로 여겨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어린 영혼들을 존귀히 여기기 바랍니다. 존귀히 여겨질수록 믿음과 말씀으로 양육하는 부모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되새기면서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