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신학(2) 성경이 기준이다

 

● 우리는 주님이 한분이시고, 하나님이 한분이시며, 믿음과 세례가 하나임을 믿는다. 그러나 이 땅의 교회들 가운데는 서로 갈라지고 다투는 일이 많다. 서로 다른 주의와 주장들을 내세우면서 저마다 자기가 정통이라고 한다. 별스런 이단들까지 일어나 우리를 너무나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래서 십자가를 달았다고 다 교회라고 하기 어렵고, 신자라고 하여 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성도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이것은 대부분 잘못된 성경의 해석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실로 기독교의 모든 진리와 교훈은 성경을 토대로 하고 있다. 즉 기독교의 기준은 곧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에 관해서, 세상에 관해서, 그리고 인간과 삶에 관해서 성경은 표준과 그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독교 신학의 기준은 성경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신도신학을 공부하는 첫 단계로 성경에 대해 바로 알아야만 한다.

 

그러면 무엇이 과연 올바른 성경 해석인가? 성경의 정확한 해석은 성경 그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 성도들은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큰 목소리로 확신감 넘치게 말하면 거기에 감동을 받고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겉모양에 현혹되지 말고, 그 내용을 잘 살펴야 한다. 이단, 사이비도 얼마나 열심이며 논리적이고 매력적인지 모른다. 누가 처음부터 알고서 이단, 사이비, 미신, 우상숭배하는 신앙에 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건전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게 된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배워야 하며, 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데 보다 적극적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영원한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어떤 책일까?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일가? 아무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명한 걸작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져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이 전파된 나라인 경우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일상생활과 목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즉 성경에는 사람의 한계를 초월하여,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강퍅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만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를 모든 일에 능치 못함이 없는 자로 만든다. 사악하고 불의하던 자를 어린 양처럼 유순하고 순전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경은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다. 심령골수를 찔러 쪼개는 좌우의 날선 검이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떡이요 생수이다. 달콤함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송이꿀이다.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실 때, 약 40명에 달하는 사람을 사용하셨다. 그들은 신분이나 직업이나 경험이나 학식에서 매우 다양했다. 그 중에는 왕도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다. 서기관이나 학자도 있었다. 그리고 목동, 농부, 어부, 의사도 있었다. 맨 처음에 기록된 책과 맨 마지막에 기록된 책 사이에는 무려 1500년의 시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천오백년은 너무도 긴 시간이다. 이처럼 여러 인물들과 여러 시대에 걸쳐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라는 한 인물과, 그로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통일이 되어 있다. 마치 다양한 악기가 하나의 관현악을 조화있게 연주하고 있는 것과 같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능력의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이 이 모든 조건들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씌어진 말씀임을 알게 된다.

 

성경은 오랜 기간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성경을 불태우거나 찢어버리거나 깊은 지하에 처박아 두거나, 읽는 자를 핍박하고 죽이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었다. 성경은 사람이 기록한 글이므로, 결국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힘으로 없앨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18세기 프랑스의 문필가인 볼테르는 앞으로 100년 이내에 성경이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의 책을 펴낸 바로 그 인쇄소는 25년 후에 성경을 인쇄해 내었다. 성경은 사람으로서는 만들어낼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는 하나님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언의 책이라고 할만큼 예언들로 가득차 있다.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에 대한 예언, 한 인물이나 가문에 대한 예언, 자연의 징조들에 대한 예언 등 수많은 예언들이 있다. 그 가운데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구약에만 무려 456회 등장한다. 수백년에서 1천년 이전에 예언되었던 내용들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들은 빈틈없이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돌이나 나무로 깎고 새겨서 만든 죽은 우상이 아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은 온 인류와 모든 피조물들을 그 근원부터 종말까지 다 알고 계시다. 그리고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사람은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에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한계가 있다.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여 부모님과 불화하고 불효하는 경우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아오셔서 자신에 관하여 여러 가지 것들을 알게 해 주신다. 사람이 모르던 것, 또 알 수 없던 것을 하나님께서 밝히 드러내어 알게 해 주시는데, 이것을 우리는 계시라고 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자연현상이나 인류의 역사 등을 통해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시인들은 낮의 해와 밤의 달을 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많이 노래했다. 족장들과 열왕들의 행적은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와 선한 자를 각각 어떠한 결과에 이르게 하시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일반계시는 하나님이 삼위일체 되심과 구속주 되심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뿐만아니라 죄를 범한 사람의 눈은 흐려지고 귀는 어두워져서, 보기는 보고 듣기는 들어도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배로 하나님을 대신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계시, 즉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는 특별한 계시를 주셨다. 성경에 등장하는 특별한 계시는 꿈이나 환상, 우림과 둠밈, 제비뽑기, 불기둥 구름기둥 등이 그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때로 여호와의 사자나 천사를 통해서 전달하실 때도 있었다. 그밖에도 수많은 이적들이 사용되기도 했다. 요즘도 교인들 가운데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애굽의 술객들처럼 신기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을 미혹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죄인의 구원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혹시 계시를 받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그것이 이미 성경에서 주어진 구원의 진리와 어떻게 연관되어지는지를 조심스럽게 시험해 보아야 한다. 사단의 속임수를 피하기 위한 영분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분별이 어렵다면 조용히 그 결과를 기다려 보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선을 이룬다. 그러나 사단의 역사는 선을 이용해서라도 죄악에 이르게 할 뿐이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의 어떠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이다. 여기에는 시간이나 장소나 인종이나 성별이나 노소에 따른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다. 구원의 유일한 길에 관한 계시가 모든 사람들에게 오류나 와전이 없이 똑같이 제시되기 위해서는 잠깐 있다가 잊혀지는 말이나 현상이 아닌, 글로써 기록되고 보존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바로 성경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예언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 계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그 계시를 성경으로 기록하게 하셨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영감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의 글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거나 영적으로 치우쳐서 해석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 지나친 문자적 해석은 대부분의 율법주의적 오해를 생겨나게 하고, 지나친 영적 해석은 많은 신비주의를 만들어낸다.

 

구약성경은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신약성경은 희랍어로 기록되었다. 처음에는 대부분 소나 양의 가죽, 혹은 파피루스라는 수초를 펴서 말린 것 위에 기록되었다. 여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번역되어야 했기 때문에, 라틴어, 수리아어, 콥틱어, 독일어, 영어, 한국어 등의 번역본들이 생겨났다. 또 인쇄술이 생겨나기 이전에는 사람의 손으로 베껴 써서 옮겼기 때문에, 많은 사본들이 생겨났다.

 

최근 일부에서는 어떤 특정 사본이나 역본을 원본처럼 여기거나, 오직 그것만을 절대적인 것처럼 여겨서 다른 사본이나 역본들을 소홀히 하는 일이 있는데, 그같은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물론 최초의 원본에 해당되는 말이다. 사본이나 역본을 일점이나 일획의 가감이 있을 수 없는 완전한 책으로 보는 것은 사실 무리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를 주신 하나님께서 사본과 역본의 과정에도 역사하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구원에 이르는 바른 지식을 깨닫도록 계시를 주시고, 또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그것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내용이 바로 전달되도록 사본과 역본의 과정에서도 당연히 간섭하셨을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집된 약 80만 가량의 역본들을 비교해 보면 이 사실이 잘 이해되어진다. 약 80만의 역본들 중에서 약 79만 5천 역본들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리고 그 나머지도 특별한 구절의 의미나 표현을 수정했거나 생략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특정한 사본이나 역본을 절대시 할 것이 아니라, 여러 사본들과 역본들을 서로 비교 연구하여 원본의 정확한 의미를 밝히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 사람의 생각이나 생활에는 일정한 기준이나 규범이 있어야 한다. 일정한 기준이 없이 닥치는 대로, 또는 상황에 따라서 적당하게 대응하면 방종에 이르게 된다. 신앙생활과 신학의 기준은 오직 성경의 토대 위에서 마련되어져야 한다. 주님께서도 친히 하늘에서 아버지에 대하여 보고 들으신 바를 전하실 때, 성경의 교훈을 들어 설명하셨고, 마귀를 물리치실 때도 성경을 이용하셨다. 이 점에서는 선지자와 사도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성경이 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이 가면 함께 가고, 성경이 멈추면 함께 멈추어야 한다. 성경이 66권으로 기록된 것은 종이가 모자라거나 남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주신 계시를 다 기록하려면 이 세상이라도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부분만을 기록한 것은 그만큼은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기에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서 지나기 때문에 이단이 생겨나고, 혼란이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성경 아닌 것을 더 하려거나 덜 하려는 일이 적지 않음을 본다. 구약을 경히 여기고 신약만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 신약 중에서도 복음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다. 성경은 각종 신화들로 각색되어 있음으로, 그 속에서 원래의 복음만을 찾아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요한계시록에만 매달리는 사람도 있다. 주관적인 선입관이 성급하게 내린 결론들이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사두개인들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사람의 눈으로 성경을 판단하려 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조용히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복음서나 율법서에서 뿐만 아니라, 예언서나 시가서나 역사서에서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더욱 위험한 것은 성경에다 무엇을 더하려고 하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크게 보면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첫째는 개인의 경험, 특히 신비적인 체험을 더하는 유형이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다. 성경도 내 자신의 체험 속에서 효험이 되어질 때에라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체험으로 확인되지 않는 성경은 한낱 하나의 책에 불과하고, 그 안에 있는 약속들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그러나 체험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어서 보편화시킬 수가 없다. 어느 신령한 목사님의 체험을 나도 똑같이 가져야 한다거나, 내가 한 체험을 반드시 다른 사람도 가지도록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체험은 성경을 대신할 위험이 매우 높다. 마치 사람들이 멀리 있는 법보다도 가까이 있는 주먹을 더 무서워하는 것처럼, 개인의 체험은 성경보다 더위에 오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성경으로 자기의 체험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체험으로 성경을 판단하려든다. 자기보다 더 많은 체험을 한 사람에게는 비굴함을 느끼고, 자기와 같은 체험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우리는 남달리 삼층천에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체험했던 사도 바울께서 14년 동안이나 그 사실을 침묵하고 있었고, 그 내용을 자랑스럽게 들어놓지도 않았던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는 성경 이외의 다른 책이나 전통을 더하는 유형이다. 고대 랍비나 교부들의 기록 또는 교회의 결정들을 성경와 같은 권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것들은 때때로 성경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설로 여겨져서, 성경보다 이러한 것들의 가르침을 더 중시하는 경우를 생겨나게 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성경에 개인적인 체험을 더하는 것 못지 않는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불건전한 권위주의와 교권주의가 쉽게 자라난다. 마치 주님께서 크게 책망하셨던 바리새인들의 경우와 같은 태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경 66권에 외경을 더하는 경우를 잠시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들은 성경 66권 이외에 15권(에스드라 상·하, 토빗, 유딧, 에스더 첨가서,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 또는 시락의 아들 예수의 지혜서, 바룩, 예레미야의 편지, 아자리아와 세 청년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 사·하)을 더하는 일이 있다. 이 책들은 성경을 이해함과 도덕적인 생활을 하게 함에 상당한 도움이 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역사는 이러한 책들을 성경(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 성경과 관련된 다른 포스트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관련 명언

 

㰋®성경의 가치는 단순히 아는데 있지 않고 순종에 있다.

㰋®성경은 기도의 책이다. 기록된 667 기도 중에서 545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㰋®읽지 않는 성경을 산다고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순종치 않는 성경을 읽는다고 구원을 얻을 수 없다.

㰋®성경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책들을 합친 것과도 같은 가치를 가진 책이다. - 패트릭 헨리

㰋®악마는 먼지가 앉아 있는 성경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㰋®성경은 인류가 경험한 것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축복이다. - 칸트

㰋®이 위대한 책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다. - 링컨

㰋®죄는 당신을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며, 성경은 당신을 죄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 무디

㰋®성경의 가르침보다 더 확실히 검증된 과학은 없다. - 뉴턴

㰋®하나님의 도로 지도, 그것이 성경이다. - 팔머

㰋®중요한 것은 당신이 몇 번이나 성경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성경이 당신을 몇 번이나 그리고 얼마나 철저히 읽었느냐이다.

   - 스미스

㰋®어느 누구도 성경보다 더 지혜로와질 수 없다. 우리의 눈이 더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성경의 지혜는 더욱 더 깊어지고 넓어진

   다. - 스펄전

㰋®죽음을 모르는 책인 성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커다란 위험을 이겨 왔다. 성도들의 망각, 성경에 대한 잘못된 신학 체계, 성

   경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공격. - 테일러

㰋®성경이 만일 진리가 아니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나는

   온전한 정신의 사람입니다. - 웨슬리

㰋®성경만이 오직 개혁교회의 기초이다. - 워스

㰋®사람들이 성경을 거부하는 것은 성경의 내용이 모순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성경에 모순되기 때 문이다.

㰋®성경은 당신에게 미래를 확실히 알게 해 주는 유일한 책이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내가 왜 여기 에 있나, 나는 어디로 가고 있

   는가 등의 질문들에 만족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㰋®육십년 이상 거의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매일의 변하는 필요들에 따라서 성경이 늘 새롭고 놀 랍게 나에게 다가왔던 경험

   을 잊을 수가 없다.

㰋®성경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디킨스

㰋®성경은 이 세상의 감옥에 달려 있는 창문이다. 이 창문을 통해 우리는 영원을 바라본다.

㰋®인류의 마지막 시대가 오기까지 성경은 닫혀질 수 없다. - 에머슨

㰋®성경은 우리들에게 가장 훌륭하게 사는 길, 가장 고귀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길, 가장 평안하게 죽 은 길을 가르쳐 준다.

   - 플라벨

㰋®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그러나 나의 경 우에 있어서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성경 구절들은 바로 내가 이해하고 있는 구절들임을 나는 늘 발견한다. - 마크 트웨인

㰋®성경에 대한 이해가 자라면 자랄수록 성경도 더욱 아름다워진다. - 괴테

㰋®성경을 읽는 민족을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노예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 그릴리

㰋®인도에든지 영국에든지 미국에든지 있는 당신 기독교인들이 당신들의 책과 같다면, 당신들은 5년 내에 인도를 기독교국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인도의 한 브라만이 선교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㰋®온갖 훈련과 겸허로써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여야 한다. 그래야 복음의 진리를 상실하지 않는다. - 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