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규정된 희년의 규례는 단순히 인권 존중이나 부의 평등한 분배와 같이 ‘인도주의’(Humanitarianism)에 근거한 사회적인 의미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어떤 공동체인가?” 하는 문제와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1)희년의 선포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짐멀리(W. Zimmerli)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모든 백성을 다스리시는 주인이시며, 억눌린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사상은 희년의 규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희년의 규례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사상은 양면성이 있는데, 그것은 ‘창조주’와 ‘구속주’라는 것입니다.

①희년이 안식일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과 토지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만물의 주인이 되심을 나타냅니다.
신10:14절을 보면, “하늘과 모든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이 본래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에 대한 통치권과 소유권도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통치권과 소유권은 토지는 물론이고, 우리의 육체에도 미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확장 보완된 것이며, 안식년은 안식일이 확장 보완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안식일은 안식년과 희년의 기초가 되는 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사람과 짐승 모두가 육체의 노동을 중단하고 안식하라고 하신 것은 창조주와 주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선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후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기 때문에 “너희도 남종과 여종, 집안에 머무르는 식객은 물론이고 짐승까지도 일을 시키지 말라”고 한 안식일 사상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라는 창조주 사상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 사상을 기초한 희년에 모든 토지를 원래의 주인에게로 환원시키고, 토지를 쉬게 하라고 한 것 역시 하나님이 모든 것의 창조주요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②희년이 속죄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속주가 되심을 나타냅니다.
희년는 속죄일에 나팔을 전국에 부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속죄일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과도 연관이 있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레25:38에 보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속주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희년의 규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구속주가 되신다는 사상을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일에 나팔을 불어 희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게 한 것입니다.
사실 출애굽 사건은 단순히 이스라엘 역사의 한 부분에 속하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활동을 보여 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그의 구속 역사의 준비, 전개, 완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전히 계시한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출애굽 사건은 구약의 신앙고백의 근원이 되었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 현존하심을 인정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정치적, 종교적 해방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구원 사건인데, 이 사건은 이스라엘 전 역사의 핵심이요, 이스라엘 공동체를 새롭게 출발시킨 창조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였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기억하고서 희년에는 모든 종들을 무조건 해방시켜 주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종을 해방시킬 때 빈손으로 나가게 하지 말고 생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물질도 충분히 주라고 하였습니다.(신15:13-14) 이와 같은 희년의 규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속자가 되신다는 역사적 체험과 신앙적 고백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어떤 사람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토지를 팔았을 경우에는 희년이 되기 전이라도 본인의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판 토지를 무를 수가 있으며, 본인의 형편이 여의치 못할 경우에는 가까운 친족 중에서 대신 토지를 무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동족을 위해 대신 기업을 무르는 사람을 ‘고엘’(לאַꔿ)이라고 하는데, ‘구속자, 보수자, 복수자’란 뜻입니다. 고엘은 토지 무르는 일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종이 된 가난한 친족의 몸값을 대신 지불해 주고 속량 시키는 일도 했습니다.(레25:47-49) 그런데 이사야서(사43:1, 44:21-23, 52:9 등)에서는 ‘고엘’이라는 명칭을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칭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그의 백성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속할 의무가 그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린드불럼(J.Lindblom)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속자라고 말할 때, 이것은 그가 자기 민족을 특히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하심으로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자로부터 구출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소유에 대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고엘이 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 자신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엘이 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기업 무를 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최종적으로 구속할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속죄일에 희년을 알리는 나팔을 불어 전국 거민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라고 한 것입니다.

(2)희년의 수혜자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희년을 선포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창조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 희년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년의 수혜자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나 희년의 수혜자인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선포된 희년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자신들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희년의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의무가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①희년의 선포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의 창조 질서를 지켜야 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26-27)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며, 인간 본래의 자유를 누릴 권한이 있습니다. 희년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평등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희년의 규례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런 질서들이 결코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창조의 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1:27-28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오토 밥(Baab)은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다른 여러 생물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윤리적 판단력, 동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인격의 특수한 신적 성질을 인간이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특별한 존재로 창조된 인간은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며, 땅을 다스려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들 중에서도 이스라엘을 그의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며,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신7:8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이스라엘이 특별히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런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요청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출19:5에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 내 소유가 되겠고”라고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 준수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충성심을 요구하시고, 거룩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결속되며 충성을 서약하는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신앙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모든 것, 즉 토지, 가옥, 몸 등을 하나님의 청지기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모든 율법을 준수해야 할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한 마을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선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부자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웃 마을의 구두쇠 노인이 그 부자 노인을 찾아와서는 “난 당신이나 별 다를 바 없이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는 구두쇠라고 따돌림을 당하고 당신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지 모르겠소. 뭐, 귀한 물건이라도 숨겨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좀 알려주시오. 나도 그것을 사게 말이오”라고 하였습니다.
구두쇠 노인의 말에 부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특별히 숨겨둔 것은 없소. 단지 나는 내게 있는 재산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지요. 그래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재산을 쓴답니다.” “내가 평생 일해 모은 재산이 내 것이 아니라니, 그리고 그것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다니”, 구두쇠 노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구두쇠 노인은 평생을 따돌림을 당하며 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자 노인에게는 있고 구두쇠 노인에게 없는 것은 바로 청지기 정신이었습니다. 청지기란 하나님의 직분 맡은 자라는 뜻입니다. 내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내 몸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내가 함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가진 재산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낭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게 주어진 능력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된 희년은 바로 이런 청지기 정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희년의 규례를 성실히 준행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백성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기 전에 주신 말씀이 있는데, 바로 출19:5의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낭송했을 때 그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나이다”(출24:3, 7)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응답에 근거하여 시내 산에서 체결된 계약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이는 불가분의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계약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 즉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으며, 이 계약이 순조롭게 준행되고 있는 이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계약 사상은 희년 규례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레25:17-18을 보면,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레위기 25장의 희년의 규례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계약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희년의 규례 역시 율법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 규례 역시 성실하게 준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율법과 마찬가지로 희년의 규례 역시 성실히 준행할 때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이저(W. Caiser)는 “율법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시키는 수단이다”고 말함으로써 율법이 언약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생활 법칙이요,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충성의 표임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텐스(E. A. Martens)는 율법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께 충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 외에 결속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과 종교적 유대감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은 애굽으로부터 구원받은 이스라엘에게 구원 이후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 하의 생활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계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준 율법은 계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법이며, 그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었습니다. 또한 이 율법은 대규모 집회에서 정규적으로 낭송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유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계약 공동체의 결속과 평화, 그리고 거룩함을 유지하는데 요구되었습니다.
희년의 규례는 하나님께서 계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에게 준 율법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속 지속시키는 근거가 되었다는 것은, 곧 희년의 규례도 계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에게 동일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이 계약 공동체라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해야 됨을 의미합니다. 특히 희년 규례의 수혜자인 이스라엘이 계약공동체라는 것은 그들이 희년 규례를 반드시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3)희년의 성취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레25:8-55에 기록되어 있는 희년의 규례와 눅4:18-19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선언은 서로 조화와 대칭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나사렛 회당에서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눅4:18-19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捕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내용은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눅4:18-19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선언은 사61:1-2을 인용한 것으로 자신이 온 것은 ‘주의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선포하기 위함임을 보여 줍니다. 사61:1-2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서 공의를 수행하는 창조주와 주권자로 묘사되어 있는 시편 146편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여기서 희년의 표상을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에 의해서 사신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통치’이며, 다른 하나는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음 선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여러 가지 억압과 포로 된 것에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 표상의 핵심은 희망을 전혀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에 의해 희망이 부여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쁜 소식만을 듣고 살던 가난한 자들이 좋은 소식을 듣고, 갇혀 있는 자가 풀려나며, 앞을 보지 못하는 이가 눈을 뜸으로써 신체의 자유를 획득하고, 노예 상태에 있거나 억눌린 자가 자유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선언은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노예가 된 자를 해방시키는 선언인 것입니다. 또한 본문의 선언은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에게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사역에 헌신할 것을 촉구하는 부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구원의 실현을 위하여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하나님이 인간 사회 속에서 지정하신 ‘해방의 해’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하실 때 사61:1-2의 말씀을 인용하신 후 그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눅4:21에서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應)하였느니라”고 한 말씀은 눅4:18-19의 말씀이 단순히 사61:1-2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성취에 대한 선포임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그 자신이 희년의 성취자로서 희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든 사건이 종말론적인 사건이었던 것처럼 심판과 구속의 은혜로 나타나지는 희년에 대한 현재적 선포이자 실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예수님이 말하는 ‘오늘날’은 이 복음서를 읽는 독자들을 향한 것으로 희년적 구원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은, 가난한 자에게 기쁨의 소식을 선포한다는 차원에서 희년의 선포와 같은 목적입니다.
희년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희년의 사신입니다. 눅4:18-19의 말씀에서 나타나듯이 예수님은 희년의 사신(Messenger)으로서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신의 권위는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에서 나타나듯,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를 보내신 주권자를 대표하도록 위임받은 권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희년의 복음이 선포되었다는 것은,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사상임을 나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의 종이 된 모든 인류에게 죄로부터의 해방을 알리는 희년을 선포함으로써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는 이 희년의 복음을 통해서 볼 때 인간의 삶의 모든 측면과 관련됩니다. 다시 말해서, 희년의 복음을 통해서 미치는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의 영역은 정신적, 내적 세계만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현실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된 희년의 복음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신으로 희년의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그 복음은 내적, 영적,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을 포함한 총체적인 것이었습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토지를 빼앗긴 자(에덴 상실)가 되었으며, 영혼을 팔아버린 자(사단의 종)가 되었으며, 빚진 자(죄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바로 기업 무를 자인데,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업 무를 자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 된 인간들은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희년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사단의 종이 되었던 자리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모든 죄에서 속죄 받을 수 있으며, 하늘의 기업을 회복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희년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 행하여야 할 그리스도의 법(갈6:2)이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게 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롬8:2)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법(롬3:27)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