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인생
마가복음 4:3-9
(추수감사주일)
I. 감사의 씨앗
한 음악회에서 연주자들이 우리나라에 “숭어”로 알려진 슈베르트의 「송어」를
연주했습니다. 어느 팬이 감동을 받고 송어 10마리를 선물로 지휘자에게 보
냈습니다. 이 팬에게 지휘자가 감사편지를 보냅니다. 편지 말미에 “다음 연주
에 꼭 초대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제가 하이든의 황소를 연주하게 될 것입
니다.” 라고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그렇지요.
내가 감사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받을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사와 불평은 씨앗과도 같습니다.
불평을 심으면 불평을 거두고 감사를 심으면 감사를 거둡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즉 영혼의 풍년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며 신앙생활에 영혼의 풍년을 원한다면-
풍년인생이 되길 원한다면 감사의 씨앗, 기쁨의 씨앗, 은혜의 씨앗, 행복의 씨앗을
많이 심어야 합니다. 심는 법, 농사 법을 잘 배워야 합니다.
고대 한 가게에 행복을 파는 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을 사기 위해
찾아오면 가게주인이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행복은 완제품으로 팔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씨앗을 사서 심어야 합니다.
가꿔야 합니다. 이 씨앗의 이름은 감사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풍년인생」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천국비유 가운데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한 농부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집니다. 어떤 씨앗은 골짝밭에
떨어졌습니다. 또 어떤 씨앗은 가시떨기에 떨어졌고 많은 씨앗들이 옥토에 떨어져
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이 비유의 마지막 결론이 퍽이나 재미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4:9)
다같이 귀를 가지고 있지만 들어서 복을 받는 사람이 있고 듣기는 들었지만 들리
지 않는 사람, 또 열매맺지 못하는 인생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II. 길밭, 돌짝밭
마가복음의 설명에 의하면
여기 길가에 떨어졌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악한자가 뿌려진 씨앗을 다 주워먹었다는 겁니다.
돌짝밭이란 처음엔 기쁨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 말라버리는 밭도 있다고 했습니다.
산들바람만한 환란에 부러지기도 하고 폭풍우 같은 핍박에 넘어지는 사람도 있다
는 것입니다.
가시떨기는 무엇일까요?
본문의 설명에 의하면 세상염려의 가시, 물질문제가 엉겅퀴가 되어, 유혹이 찔레
가시가 되어, 감사를 삼키고 기쁨을 빼앗고 말씀을 짓눌러 자라지 못하게 하는 인
생도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좋은 씨, 생명의 씨앗을 받아서 잘 뿌리고 잘 가꾸어 영혼의 풍년을 맺
는 사람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요즘 은행이자가 얼마정도 될까요? 2%정도 되나요. 사채도 25%를 넘지 못하도
록 법으로 규정해 두고 있습니다. 천국은행에는 3000% 6000% 1만%의 열매를
맺는다 말씀을 합니다.
첫째 밭은 길바닥 인생입니다.
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입니다. 옛날에 수레 요즘엔 자동차가 다니는 곳입니다.
여기에 씨앗이 떨어지면 사람들에게 밟히겠지요. 수레바퀴, 자동차 바퀴에 짓눌려
터집니다.
우리 어릴 때 꼬부랑 학교 길을 가다보면 밭모퉁이로 길이 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돌아가면 되는데 귀찮아서 밭 가운데로 지나가서 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농토엔 농부나 일꾼들이나 드나들며 곡식을 가꾸어야 하니다. 그런데 아무나 들랑
거렸으니 농토가 길이 된 것입니다.
우리 영혼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의 비가 내리고 말씀이 들랑거려야 하는데 품을
것 품지 말 것 구분하지 않고 들랑거립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분별을 못합니다. 좋은 생각, 나쁜 생각 가려서 해야 하는데 나쁜
생각 더 많이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4:23)
아이들이 다녀 길이 되어버린 땅은 다시 일구어야 됩니다. 물을 주어야 됩니다. 거
름을 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씨를 뿌릴 수 있는 옥토가 됩니다.
그리고 울타리를 두르고 파수꾼을 세워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예수님 보혈의 피로 자기 생각과 마음에 울타리를 잘 쳐야
합니다. 마음에 성령의 단비가 늘 촉촉이 적셔져 있도록 살아야 됩니다. 말씀과 은
혜의 거름을 주어야 좋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고 했는데, 이 새가
무엇인가? 마태는 악한 자, 마가와 누가는 새를 마귀라고 단언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먹을 말씀을 자기가 빼앗아 먹습니다.
누가는 거기에 주석을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라고.
내가 말씀을 먹지 않고 토해내면 땅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워 먹는
다는 것입니다. 내가 받을 은혜, 내가 불평 원망으로 토해내면 마귀가 그것을 주워
먹고 내영혼의 양식을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구원얻지 못하도록 나를
방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 받을 때 은혜 받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울 때 울 수 있는 것, 기도할 때
기도할 수 있는 것, 감사할 때 감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은혜의 생활입니다. 이
게 농사짓는 법입니다.
두 번째는 돌짝밭 인생입니다.
흙은 얕고 돌멩이로 가득찬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 돌밭에 씨앗이 떨어졌다는 말은 말씀을 들을 때는 ‘감동도 받고 눈물을 흘리
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사, 가정생활, 사회생활, 신앙생활의 고생, 고난, 환란,
핍박을 견디지 못해 받은 은혜가 말라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복음에는 마가의 돌짝밭을 바위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위에 씨앗이 떨어졌다고요? 움푹패인 바위에 흙이 조금 쌓였습니다. 여기에 씨
앗이 떨어졌는데 뿌리를 내리는 듯 싶더니 아침 햇빛에 바싹 말라버립니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
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눅8:13)
누가복음 8:13에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교회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시련이 있
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가정사에 어려움이 생깁니
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고 시험 들어서 넘어지고 배반자가 되는 사람들, 이 사람들
이 바위돌멩이로 농사짓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농사지어 보셨습니까?
논에서 잘 자라는 곡식이 있습니다. 벼는 논에다 심는 것입니다.
황토 흙에서 잘 자라는 콩이 있습니다. 모래에도 메밀은 농사가 됩니다.
그러나 돌밭, 바위 위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돌짝밭을 일구다 농부의 발이 찢어지기도 합니다.
호미질 괭이질하다가 농기구가 망가지기도 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교회생활 하다가 시험에 드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앞장 서 봉사하는 사람을 찌릅니다. 교회의 발을 찌릅니다.
회개하지 못한 심령은 이곳저곳에서 괭이와 돌이 부딪히는 잡음을 내기도 합니다.
예배시간, 여러 집회에서, 여러 수련회 장소에서 꼭 같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한달 두달 가지 못해서 또 시들시들 말라갑니다.
넘어져 시험 들고 신음하는 소리를 냅니다.
자식으로 인한 조그마한 시련, 부부간의 조그마한 고통과 핍박이 있으면 넘어졌다
일어 났다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도무지 깊이가 없는 인격과 신앙 – 이것이 돌짝밭이라고 해석합니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변덕이 없는 인격, 신앙생활 이것이
옥토입니다. 평생 봉사의 자리에 있어도 잡음이 없는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귀하디
귀한 사역자들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교회가 세워지는 것
입니다.
III. 가시밭
셋째는 가시밭 인생입니다.
창세기 창조 때는 가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난 다음
창세기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가시가 그때 등장합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잡초, 가시떨기는 가만히 두어도 잘 자랍니다.
그러나 곡식은 매일같이 애써서 가꾸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멸망의 길은 쉽다. 지옥 가기는 어렵지 않다는 얘기
입니다.
지옥 가는 법 가르쳐 드릴까요?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저절로 가집니다.
그러나 천국 가는 것은 애써서 가꿔야 됩니다. 힘써야 됩니다.
해방이후 우리나라 모든 산이 벌거숭이였습니다. 독일 산림학자가 번식이 강한 가
시나무를 권장해 주어서 심었습니다. 그래서 산이 푸른산이 되었는데 나중에 이
가시나무를 제거하는데 심기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게 악입니다. 잡초는 가시떨기는 번식력이 강합니다.
우리마음 밭은 매일 매일 가꾸지 않으면 가시밭 됩니다.
내 성품, 내 신앙, 내 언어 다듬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초라한 인생이 됩니다.
땅에는 언제나 일정량의 영양분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의 심령에도 일정량의 에
너지가 있습니다. 가시가 다 먹어 치우면 곡식은 자라지 못합니다.
기억하세요.
악한 생각, 나쁜 생각, 음란한 생각, 추한 욕심 품고 나면 선한 생각이 안듭니다. 생
명의 생각, 믿음의 생각은 불가능해집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말하는 가시떨기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4:19 ① 세상의 염려 ② 재물의 유혹 ③ 욕심
누가복음 8:14 ④ 향락(쾌락) 도합 4가지입니다.
공관복음서가 공히 첫 번째 가시떨기로 들고 있는 것은
「세상의 염려」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이 살림을 안해봐서 하시는 말씀이시지.’
‘정기적으로 출근을 안해봐서 하는 말씀이시지.’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요.
어떻게 벌까? 어떻게 쌓을까? 하는 염려가 가시입니다.
“염려”라는 헬라말은 우리 심장을 물어뜯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을 물어뜯는다. 그래서 아픕니다. 정상적인 생각과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의욕
을 상실합니다. 극단적인 판단과 행동을 합니다. 염려가 지나치면...
때로 의식주 직장생활 등에 대한 염려가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것은
은혜의 생활, 믿음의 열매를 앗아갑니다.
쇠에 녹이 슬 듯 우리 영혼이 녹슬게 만드는 것이 염려입니다.
두 번째 가시떨기는 재물의 유혹입니다.
재물 자체가 가시는 아닙니다. 그러나 염려는 가시입니다. 유혹은 분명 가시입니
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를 속입니다. 돈만 있으면 존경받을 거야.
품위를 지키고 있단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속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만든 죄악입니다.
물질의 유혹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에 보면 부에는 일종의
중력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을 끌어 당기는 힘입니
다. 돈을 가지면 돈을 더 가지게 됩니다.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이 있습니다.
돈을 가지면 점점 더 많이 가지고 싶어집니다. 적게 있을 때 욕심과 많이 있을 때
의 욕심이 다릅니다. 그래서 비우고 나누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추한 세상,
속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유혹, 신앙으로 이겨야 됩니다. 1원을 속이는 사람은 1억을 속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결단하십시오. 깨끗하게 살리라. 정직하게 살리라.
특별히 국가든 회사든 교회든 단체든 공공의 자금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주님앞에
이 결단을 하고 살아야 됩니다.
나는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 돈의 주인이 되겠다.
나는 돈이 저주가 되지 않게 하겠다. 축복이 되게 하겠다.
나는 돈 때문에 마귀에게 절하지 않는다. 돈이 내게 절하는 인생을 살게 만들겠다.
돈이 나를 존경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도둑질 하고 살지는 않겠다. 하나님의 것을, 남의 것을, 공적인 것을.
돈이 천국 가는 걸림돌이 되지 않으리라. 내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 없이
쌓아 놓은 것이 있는 삶을 살겠다. 믿음생활 시작하면서부터 결단해야 됩니다.
재물의 유혹에 마음이 말씀이 막히면 신앙생활의 열매는 없습니다.
하나님 먼저, 진리 먼저, 우선순위를 잃어버리면 열매는 없습니다.
돈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하고 맞짱을 뜰 만큼 힘이 있습니다.
크든 작든 돈 문제로 시험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인
색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천국에 열매가 맺혀집니다.
세 번째 가시떨기는 쾌락, 향락입니다.
좋은 장소에서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락은 약과 같은 것이지 양식은 아닙니다.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본문을 잘 보세요.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막4:7)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다.
쾌락 추구가 생기면 여러분의 영적인 기운을 막아버립니다. 기도를 막아버립니다.
신앙생활이 게을러집니다. 교회봉사의 자리를 떠나고 싶어집니다.
쾌락을 위해 돈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면 그때부터 이웃과 하나님을 섬
기는 일은 불가능해 집니다. 나만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서 부끄러움
을 모릅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것 가지고 내가 사는데 누가 뭐라 그
래. 법이야 여러분을 감옥에 가두지는 않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책임
을 묻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수능고사 있었는데 여러분 인생 수능고사에 1번 문제를 가르쳐 드리겠
습니다. 항상 먹는 것, 돈에 관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첫 번째 인생에게 던져진 시험문제가 무엇입니까?
먹는 문제입니다. 물질문제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
도 한 나무인지라”(창3:6)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가지고 싶을만큼 탐스럽고... 이게 시험문제입니
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당하신 첫 번째 시험문제가 무엇입니까?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4:3)
돌을 명하여 떡을 만들어 먹으라. 하나님이 너에게 능력을 준 것은 인생을 구원하
라고 준 것인데, 세상을 섬기라 준 것인데, 그것이 지식이든 권력이든 세상의 어떤
위치든 그것을 가지고 너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4:3)
돌을 명하여 떡을 만들어 먹으라. 아무도 너를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배고픈데, 먹는 것 가지고 누가 너를 비판하겠느냐. 마귀의 유혹은 참으로 근사합
니다.
IV. 가시의 유혹?
내 농토에 자리잡은 가시떨기, 쭈삣쭈삣 날카롭게 자리잡고 있는 돌멩이들을 어떻
게 할까요? 열매를 원하는 농부는 가시떨기를 제거해야 됩니다. 잡초를 뽑아 주어
야 합니다. 돌맹이 골라내어야 합니다. 굳은 땅을 일구어야 됩니다.
그런데 영적 눈이 먼 인간은 가시나무를 심습니다. 가시나무를 즐깁니다.
염려를 즐깁니다. 돈의 유혹에 빠져보고 싶은 생각이 생깁니다. 어느날 갑자기 무
심코 하는 말이 “돈벼락이나 한번 맞아 봤으면 좋겠다”
돈벼락 맞아서 그 돈벼락에 죽으면 좋겠습니까?
그런 세상 없습니다. 세상은 정직합니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복 받고 싶다면 불평을 아껴야 합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알았으면 많은 것을 가졌으면 신앙생활의 연조가 더해지면 책임
감이 커진 것입니다. 그런데 불평, 비판의 고수가 되어버립니다.
재산이 늘어날 때 감사가 늘어나야 하는데 욕심이 커집니다. 자기 욕망 채우기에
만 급급합니다. 건강한 몸을 주셨으면 이웃과 하나님을 섬겨야지요. 교회 봉사자리
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정욕이 앞서고 향락이 앞서 버립니다.
여러분의 재물은 열매가 되셨습니까? 아니면 가시가 되셨습니까?
여러분의 건강과 시간과 재능은 열매가 되셨습니까? 아니면 가시가 되셨습니까?
제가 어릴 때 가시막대기를 가지고 놀다가 숨박꼭질하다가 나를 못잡게 하기
위해서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칩니다. 만지다가 손톱밑에 가시가 들어갑니다.
그러면 가시를 집어던지고 엄마~ 울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엄마는 달려와
서 바느질통에서 바늘 하나를 끄집어 내십니다. 손톱밑 가시를 뽑아서 “우리
아들, 귀한 아들 찌른 이 못된 가시” 질근질근 씹어서 땅바닥에 뺕어서 발로
싹 문질러 버리십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시랑 놀다가 돌멩이 들고 놀다가 찔리면
천부여 의지할 곳 없어서 두손들고 갑니다. 하나님 앞에 손들고 나아가는 것입니
다. 이게 가시의 유익입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갑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 버리려고 주께로 갑니다.
세상에 힘든일이 생기면, 기도했는데 뭔가 막히면, 고깃덩어리가 내 앞에 나를 유
혹하면, 마귀가 내게 절하면 세상 모든 것 주겠다 유혹하면, 가시줄 알고 집어던지
고 주님께로 달려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V. 옥토인생
오늘 말씀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심령, 옥토입니다.
세상의 썩을 것들 때문에 천국을 잃어버리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똑같이 앉아 예배드린다고 다 천국 알곡은 아닙니다.
말씀 들었다고 은혜 받았다고 다 열매맺는 삶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것 아닙니다.
“더러는” 두 사람이 함께 맷돌질을 하다가 한 사람은 들리는 알곡이 되는 것이고
한 사람은 땅에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그 밤에 한
사람은 들리움을 받고 한 사람은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똑같이 예배 드리다가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무서운 가능성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진다”
예수님의 천국비유 가운데 농사비유가 참 많습니다. 왜 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농사짓는 일이 인생과 비슷합니
다. 신앙생활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단언코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내 영혼이 옥토가 아니면 열매는 없다. 굳은 마음 가지고 복받지 못한
다. 마음에 돌을 품고는 열매 못 맺는다.
힐링! 우리를 치유하소서. 3주간의 집회를 경험하고서도 아직 돌이 녹아 있지 않
으면 상처가 녹지 않으면 열매는 없다. 가시가 너를 찌르고 남을 찌르고는 열매
맺지 못한다. 고난이 있어도 복이 커지는 그 시간인데 그걸 견디지 못하면 복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호세아 10:12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
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내 인생의 열매가 없느냐. 기도했는데 열매가 없느냐. 몸부림했는데 열매가 없느
냐. 모았는데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느냐. 그러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축복의 장마비가 내리시리라.
닫힌 문을 여십시오. 마음을 열고 사십시오. 부부간에 교우들 간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 좀 여십시오. 입만 열고 살지 말고 귀 좀 여십시오.
제발 넘어졌다 일어섰다 평생 반복하려하지 마십시오. 뿌리를 깊이 내리는 신앙생
활을 하십시오. 환경은 변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지나갈 것
입니다. 문제가 있으나 풀려지게 될 것입니다. 밤잠 자지 못한 고통이 있다할지라
도 반드시 지나갈 것입니다. 믿음생활, 기도생활, 은혜생활, 변덕 부리지 마십시오.
작은 농사도 1년은 기다리고 애를 쓰고 인내해야 딥니다.
과일은 5년 10년이 걸려야 열매를 맺습니다.
부모가 심고 자식이 거두는 고무나무 농사도 있습니다.
고무나무는 내부모가 심고 자식이 거둡니다.
음식은 인스턴트가 있고 공부는 속성, 단기과정이 있지만 사람의 인격, 성품, 신앙
의 열매는 평생이 걸립니다. 때로는 고난의 터널을 지나야 되고 험한 태산준령을
넘어야 합니다.
창세기 강의할 때 흔히 하는 얘기입니다.
아브라함의 비전이 그 복이 요셉을 통하여 펼쳐집니다.
내가 하나님 같으면 방법이 아주 간단합니다.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서 총리대신이
되게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방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요셉을 유학을 보냅니다. 공주랑 같은 자리에 앉혀놓습니다. 연애를 하게 만듭니
다. 임금이 반대하겠지요. 그러나 공주가 요셉한테 반해서 수면제 2번만 먹었다
깨어나면 됩니다. 그러면 결혼해서 총리대신 되는 거예요.
또 방법이 있습니다.
공주를 요셉이 사는 마을로 사냥을 보냅니다. 그래서 굴러 떨어집니다. 요셉이 발
견합니다. 120년 먹은 산삼을 발견해서 먹여서 살려냅니다. 아버지에게 간곡하게
부탁해서 생명의 은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 인생의 운명을 만났습니다. 결혼하는
거예요. 총리대신이 되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형님들의 미움을 당하게 합니다. 미디안 장사꾼에게 팔려갑니다. 종이 됩니다. 보
디발 장군의 종이 되어서 죽을 고생을 합니다. 유혹을 이겼다는 것 때문에 누명을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거기서 장관들을 만납니다. 꿈을 해석해 주어서 그
들이 석방됩니다. 잊혀진 요셉, 이 모든 과정이 열매를 맺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수고를 아까와 하지 않습니다. 왜요?
오늘의 이 수고가 내일의 열매로 갚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앞에, 교회앞에 몸과 마음이 굳어져 토라져 있는 사
람들처럼 보입니다. 저마다 가슴에 돌맹이들이 둘러다니며 자신을 찌릅니다. 가족
을 찌르고 내 곁의 사람들을 찌릅니다. 세상에 대하여 화가 나 있는 사람들 같습
니다. 눈에 평화가 없습니다. 독기가 가득합니다. 입술이 부드러워지지 않습니다.
날카롭습니다. 그 입으로 내 가족을 찌르고 자식을 찌르고 나라와 민족을 찌릅니
다. 가슴에 가시가 돋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겐 행복의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감사대신 불평, 원망이 쏟아집니
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복된 인생은 풍년 인생은 내 영혼이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돌이 빠져야 합니다. 가시떨기가 녹아서 없어져야 합니다. 옥토되면 거기
한톨 씨앗이 떨어져도 은혜가 한톨만 떨어져도 말씀이 한톨만 떨어져도 30배 60
배 100배의 결실을 맺느니라. 100배의 결실을 맺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