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의 잡히심
성경 : 눅22:47-53
♦. 서
론
어렸을 때 놀이는 술래잡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눈에 수건을 감아 안보이게 하여 잡게 하는 놀이나 또는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숨으면 술래가 찾아내는 놀이들을 하였는데 발 빠르지 못한 저는 늘 잡히기를 잘 했습니다.
잡힌 사람은 힘이 없고 그런 놀이에
약합니다. 잡힌 친구들은 그만큼 즐겁게 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잡혀서 자신의 사명을 이루어야 할 때가 다가온 사실을 아십니다.
그래서 기도하신 것이고 그 기도를 통해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안타갑게도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에 의하여 잡히셨습니다. 그는 스승을 배반하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영원히 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사복음서에서 종종 발견합니다.
그 심령에 자리하는 것은 물질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이렇게 욕심은
자기를 만족하게 하려고 무슨 일이든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가리지 않고 하는 사람처럼 유다가 그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에 정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렸던 일도 귀하고, 40년 가까이 병으로 고생하던 자도 고치신 일도 귀하지만 예수님이
잡히신 일은 더 귀합니다. 이는 틀림없이 십자가와 연결되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잡혀본 자는 잡힌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13:3에서“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잡히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완성되어집니다. 이것은 요3:16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이셨습니다.
♣. 인자를 파느냐(47-48)
마태나 마가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잡히심을
비교적 세밀하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잡히시는 상황을 단순하게 기록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대화를 하는
중이셨습니다. 저쪽에서 무리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다의 안내를 받아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왔습니다.
가룟 유다는
동료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 이곳에 여러 번 왔었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러 감람산에 가신 것을 알고 있어서 장로들과 제사장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이미 유다 속에 사단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결정한 내용대로
기회를 잡았습니다. 감람산에 계신 예수님을 잡고자하는 무리들에게 넘겨줄 기회가 좋아서 무리들을 이끌고 감람산에 왔습니다.
유다의 배반은 은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마음에 대한 내용은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눅22:3-5을 보시면 사단이 가룟 유다를 도구삼아 예수님을 잡는 일에 하수인을 삼았습니다.
요12:1-5을 보시면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서 마리아는 향유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을 보고 요12:4-6에서“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함으로 보아서 유다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유다의
탐욕은 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빙자로 하여 그 돈을 자신이 맡아서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는
탐욕에 눈이 가려지고, 마음이 가려졌습니다. 진리를 얻지 못하였으며 생명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탐욕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아마도 유다의
판단은 예수님이 눈에 보이게 로마군을 무찌르고 유대인들 기득권층을 처리하여 자신들이 득세할 줄 알았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보니 자기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일을 처리하시는 것을 보고 실망했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무리들을 데리고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께 인사하는 것으로 예를 갖춥니다.
마태는 마26:49에서“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하는 것을 신호로 하여 예수님을 잡게 합니다. 예수님은 눅22:48에서“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말씀하시는데 유다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유다는 이제 뒤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이미 은전 30을 받았고 거래가 끝났습니다. 이렇게 하여 역사에 남는 배반의 입맞춤의 인사가 끝나고 예수님을 잡히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잡히심에 대하여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었습니다.
♣♣. 이것까지
참으라(49-51)
대제사장과 성전경비대와 로마 군인까지 와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포위하였습니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습니다. 눅22:49에서“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하고 예수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장
칼로 대제사장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칼이 2자루가 있었습니다. 눅22:35-38에서 예수님이 불법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돈주머니와 식량주머니와 칼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모습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잡히시는 현장을 더 생동감 있게 기록합니다. 마26:51-53에서“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라고하십니다.
요18:10이하에서 검은 든 자는 베드로이고 귀가 잘린 자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라고 밝힙니다. 예수님은
요18:11에서“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시므로 이 사건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칼을 사용하지 말도록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은 눅22:51에서“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고 하셔서 제자들에게 인내의
극치를 드러내시고 명하시면서 귀를 베인 자의 귀를 원위치 시키셨습니다.
마26:54에서“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고 하시므로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지는 일에 초점을 맞추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일에 예수님은 자신을 모두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따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도 자기의 말을 하지 않으셨고 아버지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참으심을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이라고 기도하면 열 두 영이나 더 되는
군사가 올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말씀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시면서“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것까지 참으심으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참으심은 말씀을 통한 능력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바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통하여 인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 날마다 너희와
함께(52-53)
예수님을 잡으러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십니다.“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과 같이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왔느냐”(눅22:52)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을 강도취급을 하였다고 지적합니다.
왜 이렇게 많은 군인들을
데리고 왔겠습니까? 이미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잡으려 한다면 예수님께서 무슨 역사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기위해 왔던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방어와 자기 보호를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눅22:53을 보시면“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고 하시므로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 나를 잡지 못하였던 것은 너희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며 어두움의
권세가 아직 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리십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수 오심과 당할 일을 다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심이 인간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26:56에서“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고 소개하는 것은 제자들의 상태를 알리십니다.
선지자의 글을 이루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
세우시고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이루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진 일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무장한 군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평소에 예수님이 성전에 계실 때에는 잡지
않더니 이제 와서 검과 뭉치로 잡으러 온 것은 강도나 잡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온 것도 그들의 생각대로입니다. 예수님은 잡혔고 사단은 가룟
유다의 활약을 통해서 승리하였다고 할 수 있고 또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르지만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십니다.
그 때는 예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참으실 그 때는 유대인의 때요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때요 예수님이 잡혀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는 사단의 때였습니다. 이제는 때가 되어 유대인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둠의 권세가 통치할 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잠간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어둠의 권세가 물러가고 더 이상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예수님의 때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잡히심이 반대가 됩니다. 예수님을 잡았던 무리들이 잡혀 심판의 자리에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았던 무리들이 통곡을 하며
뉘우쳐도 이제는 예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말씀하시기를 눅13:28에서“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 결 론
마26:14-16에서“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고 하여 인류역사의 가장 큰 거래가 아주 작은 돈에 끝나고 맙니다.
그때부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마지막 만찬 때 예수님은 자신이 팔릴 것을 말씀하시고 이제 때가 점점 다가온 것을 알리십니다. 제자들은 초조해 졌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정면으로 부딪혀도 마음의 요동함이 없이 자기
계획을 진행시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26:24에서“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 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도 모두
축하합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하여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는 일에 최고의 공로를 세운 가룟 유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유다의 일을 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잡히심으로 예수님의 고난의 잔을 마시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칼을 가지고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른 제자에게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시므로 예수님 자신이 참으신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인내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참으심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잡히심은 우리의 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 되게 하려하심입니다. 예수님의 잡히심은 우리가 아버지와
연합되게 하려함이십니다. 예수님의 잡히심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은 비밀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만 되는 일입니다. 엡1:9-10을 보시면“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한 일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시려고 잡히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