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성경 : 눅23:26-43
♦.
서 론
구레네 시몬은 졸지에 예수님이 짊어지고 가셔야할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습니다. 이것이 힘든 일인지 아니면 기쁨의
일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강제를 자신에게 지워진 십자가로 인하여 시몬은 힘들뿐입니다.
마가는
막15:21에서“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라고 기록하므로 두 아들을 가진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에서 나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군인에 의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게 합니다.
구레네 시몬은 갑자기 그것도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졌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광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 사건으로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루포는
로마교회에서 귀한 일군이 되었던 사실이 로마16:13에서“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는 바울사도의 문안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요 루포의 어머니는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입니다.
비록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졌지만 그것이 영생에 이르는 길인 줄 누가 알았습니까? 오늘 본문의 등장하는
두 죄수 중 한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죄수는 자신의 죄를 알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죄 없이 십자가형을 받으셨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이 순간 보장되었습니다.
♣.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26-31)
예수님을 평소에 따르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눅23:27을 보시면“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슴을 치면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 이렇게 비참하게 일생을 마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전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고 또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통해서 온 세상을 놀라게 하셨던 예수님이 이렇게 힘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는 일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구레네 사람 시몬을 뒤로 하고 그들을 향하여
눅23:28에서“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울던
자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우는데 그러지 말고 자신들과 그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십니다. 이 무슨
말씀입니까? 왜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십니까?
눅23:29-31에서 그 이유들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날이 이르겠다고
하십니다. 이 날은 무슨 날이겠습니까? 눅21:20이하를 읽어보시면 그 날은 바로 예루살렘의 멸망의 날이요,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요,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기 전의 심판의 날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날이 되면 잉태하지 못한 사람과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하는 젓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눅21:23에서“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라고 하여 눅23:29과 눅21:23은 같은 의미의 말씀을 반대로 표현하신 것뿐입니다.
멸망의 날에 환난이 시작되면 몸이 무거우면 도망가기가 힘들어서 화를 당할 수밖에 없으며 아이가 딸려있으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므로 그것이 화가 되겠지만 임신한 몸도 아니고 젖먹이 아이도 없다면 환난을 피하는 일에 아무래도 빠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또 눅23:30에서 사람들이 큰 산과 작은 산들이 우리위에 무너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시는데 이는 큰
환난과 심판으로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서 차라리 산들의 우리 위에 덮쳐서 빨리 세상을 떠나는 것이 복이 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눅23:31에서“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고 하시므로 푸른 나무 같은
예수님에게도 고난이 임하고 십자가에 매이는 일을 당하시는 일이 있다면 마른 나무 같은 예루살렘과 그 백성에 대하여 어찌 환난이 없겠느냐는 의미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푸른 나무로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심판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이 피할 수 없는 심판을 생각해서 예수님을 위해 울지 말고 너희들과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하시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심판의 무서움을 예고하고 계십니다.
♣♣.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32-38)
예수님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다른 두 사람이 사형언도를 받고 함께 형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명의 사형수들은 ‘해골’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좌우에 두 사람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형장에는 승리의 기쁨을
가진 이스라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눅23:34에서“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용서자로서, 죄를 대신하는 어린양으로서, 구세주로서, 사랑자로서,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은 자기의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무리들을 영으로
보시고 성령을 따라 그들이 아버지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중보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영으로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아래서 육을
따라 사는 자들이“그들이 그의 옷을 제비 뽑을 새”라는 모습이 비교됩니다.
이어서 눅23:35-38에서“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고합니다. 사람은
모르면 무슨 일을 해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육에 가려 영의 일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빌라도에 의하여 죄 없음이 드러났고 또 헤롯도 예수님에게 죄를 찾을 수 없어서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외치는 군중들은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먼저는 성경을 이루기 위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인데 침례요한은 요1:29에서“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여 말씀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요15:13에서“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하여 더 큰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를 대신하는 일입니다. 즉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못 박히고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아버지께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용서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영으로 하는 기도이기에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자신을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는 무리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에 의한 기도가 아닙니다. 사람의 기도였다면 저들을 향한 기도내용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의
기도였다면 당연히 저들을 향하여 저주가 내려지는 기도였습니다. 사람의 기도였다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해달라고 요청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으로 기도하십니다.“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 나를
생각하소서(39-43)
그 사형장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고 두 강도와 함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형방법을 그 당시에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이었습니다. 신21:22-23을 보시면“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한 말씀과 또
민21:9에서도“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 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고하여 이미 십자가형이 성경에 예고
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일반적으로 로마시민은 십자가형에서 제외되었으나 로마 식민지 백성들에게 적용되어진 사형
법이었습니다. 아주 위험한 죄수나 국가적인 위협의 큰 죄를 지은 죄수에게 적용되는 아주 힘들고 어려운 사형 법으로 그것은 바로 고문형태의
사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므로 저주 받은바 되어 사형 받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대속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엡2:16에서“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 하여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가 막혔던
원수관계가 예수님의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시므로 뚫렸습니다.
또 골1:20에서는“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하여 십자가의 보혈로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케 하셨다는
것을 확증하십니다.
골2:14-15에서는“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하여 우리의 모든 죄악을 기록한 모든 문서를 도말하시어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으므로 이 승리는 바로 우리 믿는 자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승리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을 십자가에 이루신 예수님은 그 현장에서 한 영혼이 함께 낙원에 있게 하십니다. 한 죄수가 눅23:39에서“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므로 예수님을 비방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안타가운 현장을 맞이하고 영생
얻을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한 죄수는 비방하는 죄수를 꾸짖으면서 눅23:40-41에서“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자신이 행한 일을 사형 받아 마땅함을 인정하나 예수님은 죽을 죄목이 없고 모두 옳은 일만하였다는 것을 믿고
인정합니다.
그는 눅23:42에서“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고백하므로 구원의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눅23:43에서“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즉시 응답받습니다.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청하는 것은 자기발견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이 땅에서 저는
소망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당연히 죽을 자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청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저와 같이 이렇게 죽으시지만 의로운 분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청하는 것은 더 나아가서 자기의 죄를
대신하여 자기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고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를 생각하소서’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예수님에게 맡기고 함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갈2:20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자신의 육신의 것은 이제 모두 다
포기되어졌고 자신의 영혼의 영생이 예수님과 함께하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었습니다.
♦. 결
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은 지상최대의 사건입니다. 아담이후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롬3:23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롬6:23말씀과 같이 모든 인류는 영원한 사망에
이르는 일 외에는 다른 일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 땅의 모든 피조물중 인간이 가장 비극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인류최대의 사건이요, 각 개인의 최고의 사건이며, 생애 최대의 사건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사건이 바로 나와 직접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알 때 기적은 내게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고후5:21에서는“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여 우리의 의로는 도저히 구원이 없으나 주님의 의가 우리에게 덧입혀지므로 우리가 저의 안에서 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벧전3:18에서“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고 하여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은 또 딛2:14에서“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하여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은 바로 내가 십자가에 달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짊어지심은 바로 내 죄를 짊어지심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되어 진노아래 있게 되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 시키시려고, 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