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인의 특징(Ⅴ)-순종
성경: 히 5:8-10
항구에 정박한 한 상선에서 선장의 아들이 원숭이와 어울려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소년의 모자를 낚아채 돛대 위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소년은 모자를 빼앗기 위해 정신없이 원숭이를 뒤쫓아 따라 올라갔습니다.
소년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발 밑을 내려다 본 소년은 겁에 질려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은 공포에 몸을 떨며 밧줄을 잡은 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선장이 돛대 위에서 울고 있는 아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습니다.
㰡아들아, 밧줄을 놓고 빨리 바다로 뛰어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㰡
소년은 두 눈을 감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말만 믿고 뛰어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물 속에서 솟구쳐 올랐을 때는 아버지의 아늑한 품에 안겨 보트에 태워져 있었습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밧줄을 놓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특징 마지막 시간으로 “순종”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후 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후 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낙원의 상실에서부터 회복에 이르기까지 순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나무와 하나님의 은혜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은 오직 순종뿐입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불순종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고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순종은 다시 그 길을 회복케 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롬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빌 2:8-9)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히 5:8-9)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동참케 하시기를 원하시는 그 영광도 순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쓴 “순종”이라는 책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제일 첫 번째의 소원도 그리고 마지막의 소원도 단순하고 보편적이며 변함없는 순종일 뿐이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구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이나 신약에 나타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한결같이 순종의 삶을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믿고 순종케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을 말씀합니다.
(롬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롬 16: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우리는 성경에서 수많은 순종의 모델을 발견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최상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우리가 배울 순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우리를 죄인으로 만든 것처럼 그리스도의 순종도 우리를 의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빚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하여서입니다. 순종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상속받은 가장 귀한 보화 중의 하나입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기를 싫어했습니까! 순종하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또한 그 넘치는 축복도 차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우리의 불순종의 방향을 돌이키려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것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인류에게 미친 힘은 컸습니다. 그 영향력은 우주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순종은 그 보다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은 세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①하나의 모범으로서, 우리에게 참된 순종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②우리의 보증으로서, 그가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한 모든 의를 이루시려는 것이었습니다.
③우리의 머리로서, 우리에게 나누어줄 새로운 성품(순종)을 마련코자 하심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배울 순종은 어떤 것입니까?
①주님께 있어서 순종은 하나의 생활 원리였습니다.
주님께 있어서 순종은 때때로 행하는 어떤 단순한 순종의 행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활 전체의 정신을 의미합니다.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히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주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나타내시며 사셨습니다. 그의 생애를 지배했던 최고의 영향력은 순종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은 생활 원리를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②주님께 있어서 순종은 하나의 기쁨이었습니다.
(시 40: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의 원기를 돋우며 힘이 나게 합니다. 여름이 되면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그만큼 영향 보충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여름이 되면 보신식품을 많이 섭취하였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나 음식은 즐거움을 주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주리신 양식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없이는 살 수 없었습니다. 이것만이 그의 굶주림을 만족시켜 줄 수 있었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그를 강하게 할 수 있었고 기쁘게 할 수 있었으며 그 힘을 새롭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순종은 음식 이상으로 우리에게 원기를 돋우는 기쁨입니다.
③주님께 있어서 이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모든 뜻을 단 번에 다 계시해 주시지 않으시고 매일 매일 그 상황에 따라서 계시해주셨습니다. 주님의 순종하는 삶에는 성장과 발전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배우기 힘들었던 것은 최후의 순종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데 실패하여 불순종의 길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④주님께 있어서 순종은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요 6:38-39) 『[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 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주님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순종은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빌 2:8)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⑤이러한 순종은 주님의 겸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느 정도 겸손하셨는지 우리는 지난 시간에 ‘그리스도인의 특징-겸손’을 통해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겸손함이 없는데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겸손은 순종의 원동력이 됩니다. 주님의 겸손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는 것으로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⑥주님의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완전히 의지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한 사람 우리 주님의 순종으로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그 안에서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아들이셨지만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죄인들은 더욱 그 순종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순종을 배우는 고난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셨고 자기를 순종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그리스도의 순종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순종의 학교에 학생들이 되었습니다. 학교는 세 가지 원리적인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①가르치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자신이 순종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순종을 배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순종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보고 듣기 위해 기다리심으로 순종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순종을 바치려면 오직 우리가 주님처럼,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을 통해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말로만 순종을 가르치시는 교사가 아니십니다.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들을 위하여 친히 기도하심으로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셨습니다. 행함 없는 가르침은 허공을 칩니다. 그러한 가르침은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시는 진정한 교사이십니다.
②교과서입니다.
신령한 순종의 학교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나 어린아이나 교과서는 한 가지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실 때에 한 가지 교과서만을 사용하셨습니다.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는 공생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셨습니다. “기록하였으되”라는 말씀은 마귀를 물리치는 성령의 검이었습니다(마4:4,7,10). 주님의 삶은 한마디로 성경을 이루는 삶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셨으며,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작정하신 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순종의 학교에서는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교과서입니다.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신령한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사 50:4-5) 『[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이렇게 순종을 배우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신령한 해석자이신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매 순간마다 말씀을 가르쳐주십니다. 순종의 학교에서 순종의 교과서인 성경을 배우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무엇을 순종하기를 원하시는지 분명하게 깨달읍시다.
③배우는 자입니다.
순종의 학교에는 순종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교과서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순종을 배우기 위하여 순종의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입니다. 신실한 제자는 신뢰할 만한 스승에 대해서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스승의 가르침에 완전히 순종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하면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훌륭한 선생님께 배우는 제자들은 그 태도부터 다릅니다. 그러므로 그 선생님의 명예에 걸맞는 제자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순종하여 축복을 받은 사람과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온전히 순종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불순종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모세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성경에 가나안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을 상징하고, 또 하나는 축복을 상징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순종을 통해서 축복을 성취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비록 모세라 할지라도 불순종하니 그 축복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울 왕도 마찬가지로 불순종으로 그에게 임하였던 성신이 떠나고 악신이 그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로지 순종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은 우리들에게 최후의 순종을 기대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선교사 저드슨(Adoniram Judson)이 대학교를 마치고 신학교를 졸업하자 자기 고장 보스턴에 있는 당시 아주 좋은 교회에서 그를 부목사로 초청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이제는 자기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친구들도 그를 축하했습니다. 그런데 저드슨은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서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일터는 여기가 아니야. 하나님은 나를 저 바다 건너로 부르셨단 말이야. 여기 머물면서 교회를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분적인 사역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기쁘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져드슨은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심한 갈등을 이기고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 대우도 잘해주는 그 교회를 뒤로하고 그는 무지하고 위험한 불교 국가 미얀마(버마)에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는 미얀마에서 5만명 가량의 회심자를 얻었으며 그의 거룩한 생애는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개의 인간은 나의 육신이 편하고 좋은 대우가 주어진다면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묻기 전에 인간의 선택이 앞서곤 합니다. 그 결과 반은 내 뜻을 따르는 결과가 되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의 뜻에 전폭적인 순종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우리 모든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아니오가 아닌 예의 사람이 되며 순종을 나타내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