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인의 특징(Ⅳ)-겸손
성경:마 11:28-30
하버드대학의 헨리 누웬박사는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항상 정상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누웬이 만든 20여권의 저서는 모두 베스트셀러였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누웬은 많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지체아 보호시설인 데이브레이크의 직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하는 일은 정신지체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대학자로서 왜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십니까?" 그때 누웬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동안 '성공'과 '인기'라는 이름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 달려왔습니다. 그러던 제가 한 장애인을 만난 후 내리막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나'만 보일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누웬의 참된 겸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까요? 저는 지난 세 시간을 통하여 “기쁨, 감사, 사랑”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내야 할 특징인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네 번째 시간으로 그리스도인의 특징 “겸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㰡첫째도 겸손이며,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㰡라고 말했습니다. 교부 크리소스톰은 㰡겸손은 모든 덕의 뿌리요, 어머니요, 기초이다.㰡라고 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은 피조물로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마음으로서 인생의 첫째 되는 의무요, 또 가장 고상한 덕행이요, 동시에 모든 덕의 기초가 된다. 혹 교만해지거나 겸손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이것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예수님은 㰡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㰡(29절)고 하시면서 겸손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1.우리가 겸손을 배워야할 이유는?
①겸손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가 6:8에 㰡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㰡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지 않으시고(미 6:7),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은 공평하고 의로운 것(공의)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인자),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고, 겸손해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님 탄생교회 안으로 들어가려면 문이 작고 낮아서 누구나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겸손하지 않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②겸손은 예수님이 본을 보여 주셨고, 배우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29절에 㰡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㰡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주일의 본문 말씀을 보면 주와 선생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종으로 낮아지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이렇게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하나님과 동등된 위치에 계신 분이지만,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인 인간으로 겸손히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친구가 되시고, 인간을 섬기시고,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겸손은 하나님께 대한 예수님의 근본적인 태도였으며, 동시에 그의 구속 사업의 기초였습니다. 그의 겸손은 우리의 구원이 되고 그의 구원은 우리의 겸손이 됩니다. 만일 우리에게 주님의 겸손이 없다면 하나님을 모실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은총도, 성령의 능력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겸손이 없다면 신앙도 있을 수 없고, 사랑도, 기쁨도, 감사도, 능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겸손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뿌리 박힐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의 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이 겸손을 보고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 갈 때까지 배워야할 중요한 덕목은 겸손입니다.
③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3:34에 㰡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㰡 했고, 베드로 전서 5:5에 㰡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㰡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높은 곳에 있지 않고 우리 발 높이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허리를 굽혀 겸손해야 하고, 그럴 때에 은혜가 임합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겸손한 자에게만 임합니다.
④겸손해야 하나님이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10에 㰡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㰡, 베드로 전서 5:6 㰡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㰡, 잠언 15:33 㰡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이니라.㰡고 했고, 잠언 18:12 㰡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㰡, 잠언 29:23 㰡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㰡고 했습니다. 스스로 높아지려 한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존귀해지려고 한다고 존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 높아지려고 발버둥치고 존귀해지려 몸부림치면 하나님이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친히 높여 주십니다(마 23:12). 때문에 겸손해야 합니다.
2.우리가 배워야할 겸손이란?
신약성경에서 겸손이란 말은 희랍어 㰡타페이노오㰡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㰡억누르다㰡, 㰡억압하다㰡, ‘낮추다㰡, 㰡굴복시키다㰡, 㰡지위를 떨어뜨리다㰡 등의 뜻이 있습니다. 즉, 범죄한 죄인이 스스로의 현실을 자각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낮추고 억누르고 굴복시키는 자세를 겸손이라고 합니다. 겸손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humility"는 ‘낮은’을 뜻하는 라틴어 humilis("땅바닥에 가까운”,humus=땅)로부터 유래했습니다.
①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아는 지식이 없는 자는 무식한 자이며, 교만한 자입니다. 나를 바로 보고 진정한 자기를 올바르게 발견할 때 바로 겸손이 시작됩니다. 창세기 18:27의 말씀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엎드려 㰡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㰡 하면서 겸손한 태도로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자기의 능력의 한계성을 바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흙으로 만들어진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인간은 흙이요, 먼지로 만들어진 것뿐입니다. 폼잡고 우쭐댈 것이 못 됩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고, 돈이 있고, 다이아 반지로 장식했어도 인간은 별것 아닌 먼지뿐이라는 사실을 알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흙덩어리, 먼지 같은 육체에 하나님의 기운과 생기를 받아들여서 귀하게 된 것뿐입니다. 이것을 알면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분수, 자기 가치를 잘 몰라서 교만한 것입니다.
어느 날 러시아 황제 니콜리아가 어느 날 평민 복을 입고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는 중에, 어느 갈림길에서 길을 몰라 지나가던 군인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군인이 거만한 자세로 대답합니다. 황제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군인의 계급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군인이 배를 내밀고 㰡자네가 한번 맞추어 보게㰡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황제는 겸손하게 물었습니다. 㰡상사이신 가요?㰡 㰡아니, 그 위일세.㰡 㰡그러면 소위입니까?㰡 㰡그 위지.㰡 㰡그럼 대위입니까?㰡 그때서야 그 군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㰡그래, 내가 대위란 말이다.㰡 하면서 우쭐거렸습니다. 이 때에 대위가 㰡자네는 군인이 아닌가?㰡 㰡네, 저도 군인입니다.㰡 㰡그럼 계급은 무엇인가?㰡 㰡한번 맞추어 보시지요.㰡 했더니, 㰡자네 계급이 일병인가?㰡 㰡그 위입니다.㰡 㰡그럼 상사인가?㰡 㰡그 위입니다.㰡 㰡그럼 소위인가?㰡 㰡그 위입니다.㰡 㰡그럼 중위인가?㰡 㰡그 위입니다.㰡 㰡그럼 대위인가?㰡 㰡그 위입니다.㰡라고 황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대위는 입에 문 담배를 던져 버리고 거수경례로 깍듯이 하면서 㰡그럼 소령입니까?㰡 㰡그 위이지요.㰡 㰡그럼 장군이십니까?㰡 㰡그 위이지요.㰡 㰡그럼 원수이십니까?㰡 㰡그 위이지요.㰡 㰡그럼, 황제폐하!㰡 하고 무릎을 꿇고 죽을 죄를 지었다며 엎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도 흙으로 된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 되심을 알 때 겸손해집니다.
②죄인임을 깨달았을 때 겸손해집니다.
누가복음 18:11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㰡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㰡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지도 못하는 겸손한 자세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㰡나는 죄인입니다.㰡 하는 죄인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인정할 때 겸손히 하나님의 아들을 의지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 후에 어떤 고백을 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니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죄인이라고 겸손하게 고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어떠하였습니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에 대해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나’라고 하였으며,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하였으며, ‘죄인 중의 괴수’라고 까지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뵈옵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자기를 바로 알게 되면 절대로 교만할 수 없습니다. 겸손해집니다.
에딘버러 대학의 학부 교수인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발명하여 고통 없이 수술을 하는데 크게 공헌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의학계의 커다란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번은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노교수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생애에서 가장 뜻 깊은 소중한 발견 한 가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하자 그는 한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하는 말이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옛 인간이 죄인된 자기의 참 모습을 발견할 때 겸손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실제를 알고 죄인 됨을 알기에 언제, 어디서나 겸손해야 하며 이 겸손의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인다운 특징이 아니겠습니까?
3.겸손과 축복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도 큰 은혜를 받음으로 스스로 교만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어 겸손을 유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육체에서 제하여 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였습니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의 가시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과, 또 연약하고 겸손한 중에서 오히려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더 잘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기도 응답이었습니다.
곧 그때부터 바울은 자기 받는 그 고통에 대하여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겸비의 자리 바로 그 자체가 축복의 자리요, 능력과 기쁨의 자리인 것을 바울은 분명히 배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겸손해지기를 노력하십니까? 아마도 그렇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됩니까?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울을 그토록 겸손하게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얼마나 당당하고 교만하였습니까?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나니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초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음을 말하였습니다.
(빌 3:7-9)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날마다 자기를 죽이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하나님은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셔서 약함을 체험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약점이 있습니다. 그 약점 때문에 우리는 겸손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 때문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교만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시를 주심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축복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함이다’
겸손과 교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은혜를 많이 체험한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은혜 받은 사람들이 교만하다가 멸망 길로 갔는지 모릅니다. 겸손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간직하는 길이요, 우리가 받은 축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시147: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를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 뜨리시는도다
유럽의 종교 개혁자인 루터와 쯔빙글리는 각자가 추구하는 종교개혁의 방향이 서로 반대였습니다. 두 사람은 종교개혁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의견 충돌로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스위스의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마리의 염소가 매우 좁은 다리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염소들은 다리의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했습니다. 곧 한판 싸움이 붙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염소 한 마리가 다리 위에 납작하게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마리가 엎드린 염소의 등을 밟고, 유유히 다리를 건너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루터와 쯔빙글리는 이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배우고 그들은 서로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권면합니다. 㰡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㰡(벧전5:6)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그분의 마음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멍에가 어떤 것입니까? 온유와 겸손의 멍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가볍고 쉬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쳐다볼 수도 없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이 쉽다, 가볍다고 하셨으면 쉽고 가벼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멍에를 매고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