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삼상(39)/망명

제목 :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

성경 : 삼상 27:1-12

찬송 : 292,375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삼상 27: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삼상 27:2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삼상 27: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삼상 27:4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삼상 27:5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삼상 27: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삼상 27:7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삼상 27:8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삼상 27:9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삼상 27:10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삼상 27:11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서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이 행한 일이 이러하니라 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삼상 27:12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

다윗은 이스라엘 지경 안에서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사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살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윗이 사울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분명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그는 오히려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사울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경험을 통해서 어떤 어려운 궁지에 빠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다윗이 그런 궁지에 빠져 있을 때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는데, 그 궁지에서 나온 후에는 더 믿음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승리 후에 찾아온 시험

⎷삼상 27: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다윗이 그렇게 사울에게 쫓기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는 믿음으로 잘 견디었는데 어떻게 어려움을 벗어난 후에는 더 믿음이 없어지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에게 정신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인간적인 생각이 파고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저 한 순간 한 순간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남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이 단순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을 두 번이나 이기고 이제는 자신에 대하여 생각할 여유가 생기게 되니까 그만 인간적인 생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할 것은 우리가 생각을 많이 한다고 꼭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는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별로 고민하지 않았고 매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위기를 넘기고 생각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생각이 복잡하게 되었고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어려움입니다. 다급해지면 결사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이겨내지만 여유가 생기게 되면 인간적인 생각이 파고들어 와서 쉽게 침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갈멜산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둔 후 이세벨을 두려워하여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가 얼마나 침체 상태에 빠졌습니까?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죽기를 원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놀라운 믿음이 생기는데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비참해질 정도로 믿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계속하여 바라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을 물리쳤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열 번이라도 사울을 물리칠 수 있는 계략을 가지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은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혜를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시키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다윗은 두 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긴 후에 하나님의 능력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르게 보면 하나님은 계속 이런 식으로 다윗을 무궁무진하게 도와주실 것입니다.그래서 은혜 받는 것 이상으로 은혜를 간직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 중요한 선택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른다면 이스라엘 땅 안에서 살면서 계속적으로 추격을 당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떠나서 블레셋으로 망명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물론 육적으로는 평안했는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결정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다윗이 그동안 많은 시를 썼지만 블레셋에 있는 동안에는 시를 쓴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육체적으로는 편했는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잠들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함

⎷삼상 27:2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사울은 다윗의 손에서 놓임을 받은 후 다시는 다윗을 추격하지 않겠다고 또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울이 정상적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데 정신적으로 심한 우울증과 정신 분열증에 빠져 있으니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사울이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블레셋 땅으로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생각할 것은 아기스가 사울의 원수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도 원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목사가 싫다고 절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그 절에서 성경을 읽거나 찬송을 부르거나 할 수 없고 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지긋지긋한 사울의 추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다윗의 눈에는 사울이라는 사람이 너무나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사울은 이제 다 꺼져가는 불이었습니다. 사울은 그냥 내버려 두면 저절로 꺼지게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잘 견디어 온 다윗이 조금만 더 이스라엘 안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면서 참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허락없이 블레셋으로 망명하고 만 것입니다.

과거에 다윗은 블레셋으로 망명을 선택했다가 미친척하고 겨우 빠져 나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드 왕 아기스는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사울과 원수인 다윗이 자신의 부하가 되겠다고 수하 600명을 거느리고 투항했으니 얼마나 행운입니까? 그래서 아기스는 다윗 일행을 환영하며 받아준 것입니다.

⎷삼상 27:4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이 사울에게 전해졌고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여 찾지 않았습니다. 모처럼 다윗은 마음에 평안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과거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그렇게 간절히 찾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에게 잠시 침묵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결정을 기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만일 다윗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땅 안에 남아 있으면서 고생을 했더라면 매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감격과 은혜를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땅에서는 몸은 편했지만 마음에 감격과 감동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같으면 어떤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블레셋에서 다윗의 생활

하나님은 다윗이 블레셋 땅에 망명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과 싸우도록 하기 위해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래도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인자와 신실하심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자식이 부모가 원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고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네 마음대로 해봐라 나는 모른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도와주셨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하나님이 아기스로 하여금 다윗에게 독립된 성읍을 차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몰랐지만 그와 아기스는 사고 방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겠다고 망명을 했는데 하나님은 아기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다윗과 따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무려 일 년 넉 달을 아기스와 별 충돌없이 지낸 것입니다. 만약 같은 성에 살았다면 사사 건건 충돌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몸을 피한 다윗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다윗은 이스라엘을 치는 대신 아말렉을 쳐서 전과를 올렸습니다. 다윗은 아기스의 신하로 있는 이상 무엇인가 도움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을 친다고 하고서 아말렉을 쳐서 그 전리품을 아기스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삼상 27:8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삼상 27:9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다윗은 자기의 일이 탄로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진멸하였습니다. 그리고 약탈물은 아기스에게 바쳤습니다. 물론 다윗의 이런 행동은 정직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블레셋 땅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신앙 없는 자들과 똑 같은 약탈자로서 살았던 것입니다. 물론 나쁜 사람에게 공갈협박을 해서 돈을 뜯어낸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도 결코 바른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다윗을 지켜 주셨기 때문에 위험한 게임은 들통나지 않고 비밀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 아래서 대단히 위험한 모험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기 쉽습니다.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소집이 되어 큰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이 다윗을 빼 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우리의 실수가 실수로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으로 덮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도 그대로 살 수 없는 연약한 자인 것을 고백하고 이런 악한 세상에서 능히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키심과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는 하루라도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될 때도 우리 자신의 머리나 지혜로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간섭하심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