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은 종 비유(마18:15-35)

●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이 비유는, 앞서 18:15부터 나오는 ‘형제가 죄를 범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과, 18:21부터 나오는 ‘끝없는 용서’에 대한 교훈의 결론과 연결되어, ‘용서’에 대한 기본적인 교훈을 완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형제가 죄를 범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유대인들의 경우, ‘형제’라는 말은 ‘같은 종교를 가진 자’, 혹은 ‘같은 종교 공동체의 일원’을 말하는 것으로, ‘믿음의 동료, 신앙의 동지’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행해진 어떤 죄에 대해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계시는데, 여기서 언급하는 죄는 하나님께 대한 근원적, 궁극적 범죄가 아니라 신자 상호간의 도덕적 범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15절의 경우, 다른 성경 사본에 보면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범하거든’ 하고, ‘너에게’라는 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제1단계로, 피해자는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상호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는 일을 쉽게 하여, 죄 지은 형제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권고하다’라는 단어는, 죄에 대한 심판이나 책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도록 ‘무엇이 죄악인가’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 형제의 잘못을 정당하게 꾸짖고 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죄를 지은 형제와 피해를 당한 형제와의 첫 화해작업에 해당한다.

사실, 자기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잘못한 이웃을 만나, 겸손한 마음으로 형제의 잘못을 권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가? 옆에 사람이 있건 없건 그자리에서 화를 내거나 잘못을 따지고, 시비를 가리자고 언성을 높이는 타입인가? 아니면, 겉으로는 화를 참고 있지만, 속으로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면서, 냉정하게 꾸짖는 타입인가? 그도 아니면, ‘이 사람 도저히 상종할 인간이 아니구먼!’ 하는 독한 심정으로 문을 꼭 걸어잠근채 아예 교제를 끊는 타입인가?

주님께서는 함께 신앙생활하는 이웃이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1차적으로 인내와 지혜와 조심성을 갖고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실되게 권고할 것을 교훈하신다. 왜냐하면, 그같은 노력이 있어야 신앙공동체의 진실된 친교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런데, 이같은 진지하고 겸손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고를 듣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 제2단계로, 피해자 외에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문제점에 대해 다시한번 권고한다. 여기서 ‘증참케 한다’라는 말은 ‘확정하다. 굳게 세우다’는 뜻인데, 그 의미는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이때도 ‘권면’에 해당하며, 이렇게 하는 까닭은 개인적이 만남에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범죄한 형제가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자신의 행위가 범죄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리고 이때도 공개적인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비밀을 보장하는 조용한 접근이어야 한다.

제2단계까지 시도했으나 범죄한 형제가 회개치 않아 개인적인 해결이 실패한 경우 제3단계이자 마지막 조치로서, 이제는 교회가 공식적으로 개입하여 범죄한 그 형제를 권면한다.

하지만 이처럼 세번에 걸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교인들은 교회 차원에서, 마치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세리를 유대의 회당이나 기타 모임에 참석시키지 않듯이, 교회의 권위를 갖고 범죄한 형제와 더 이상 친교와 교류를 일절 금하고 접촉을 피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와의 접촉을 피하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의 소외’라는 압박을 ‘죄지은 그 형제’에게 가함으로써, 또 다시 회개와 반성의 기회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뒤에 나오는 구절 때문인데, 흔히 19,20절은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모여 합심기도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구절이나, 원래는 범죄한 형제를 위해 17,18절에서와 같은 마지막 조치가 취해지지 않도록 권면하며, 적어도 두 세사람이 그 형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구절이다. 그리고 이때는 단순히 그 형제의 ‘잘못에 대한 회개’ 문제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 이처럼, 공동체 내에서 이웃이 범죄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예수님께서 교훈하실 바로 그때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베드로가 불쑥,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하고 말을 꺼냈다. 앞서 주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세번의 기회를 가지되, 무엇보다 계속해서 범죄한 형제에 대해 기도하라고 교훈하셨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책무를 수치화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 벤시라 같은 유대인 지도자는 범죄한 이웃에게 두 번의 기회를 줄 것을 말했고, 또 랍비들은 이웃의 범죄는 3회까지만 용서하고 그 이상은 금하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율법적 용서 개념을 능가하는 자신의 관대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예수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완전수 내지는 거룩한 수에 해당하는 일곱번의 용서를 제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의 이 말은 즉각 거부되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전통이나 랍비의 가르침, 심지어 관대한 베드로의 제안까지도 거부하시고, 용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한 새 지평을 여셨다. 여기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는 말에 대해 70×7(490)로 보는 학자도 있고, 70+7(77)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여하튼 490번이든, 77번이든 본문의 숫자는 강한 상징성을 내포한 말로서 숫자상의 어떤 기준이나 범위를 초월한, 끝없는 용서, 무제한적인 사랑을 가르친 말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즉 형제들간의 용서는 결코 횟수나 일정한 정도에 의해 제한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이어 나오는 23-35의 비유에서 보여 주듯이, 용서의 갈등을 겪고 있는 형제들은 그들이 용서한 것보다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용서를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한 보복과 복수로 유명하다. 창4:24에 보면 라멕이 복수의 범위를 77배로 갚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복수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용서를 77번, 아니 490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끝없는 용서의 새계명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23절 이하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대비이다.

달란트는 예수 당시의 유대와 로마 사회에서 통용되던 화폐 단위 중 가장 큰 것으로서(무게 단위로는 약 34kg의 순금에 해당함), 1달란트는 노동자 한 사람의 일일 품삯인 1데나리온의 약 6천배에 상당하는 것이었다. 이 일만 달란트에 대한 최근의 평가는 여러가지 물가 상승요소를 감안한다면 오늘날의 통화로는 10억달러(1조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의 증언에 따르면 유대 전역에서 1년동안 거둬들인 세금이 800달란트였다고 하니, 일만 달란트는 10년치 이상의 전유대 땅 세금액이었다.

따라서 임금에게 빚진 어떤 종(관리/동관이라는 표현)이 빚진 1만 달란트는 그 어떤 방법을 총동원한다 할지라도, 흔히 하는 말로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개인으로서는 갚을 수 없는 큰 빚이었다. 그런데, 이 빚이라는 단어(오페이레테스)는 주기도문에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주기도문에서는 ‘죄’로 번역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 등장하는 1만 달란트의 빚은, 하나님께 대하여 인간이 저지른,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 죄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로 우리는 매일 매순간 죄를 호흡하고 지내는 존재이다. 특히 요즘처럼 온갖 유혹이 도시를 뒤덮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는, 죄악을 피해 숨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은 죄의 무게를 단다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예수님은 형제에 대해 ‘쓸모없는 놈’ 하고 욕설하는 것이 바로 살인하는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여인에게 음욕을 품는 것 자체가 간음죄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지은 죄의 가짓수와 분량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또 앞으로 지을 죄의 분량은 얼마나 되겠는가? 실로 어떤 댓가를 지불해도 탕감받을 수 없는 그 모든 죄를 예수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용서해 주셨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양대 재벌 회장들이 8천억이다, 1조원이다 하면서, 그동안 자신들의 잘못과 비리를 탕감받는 조건으로, 엄청난 금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들을 하고 있는데, 설사 세상의 법정에서는 그 돈으로 탕감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씻음받지 못한다면, 천국문턱을 결코 저들은 넘지 못할 것이다.

1백 데나리온은 일백일분의 품삯이므로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하지만 일만 달란트와는 도무지 어떤 방법으로도 비교되지 않는 금액이다. 그런데 비유에 보면,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그 관리는 자신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용서하지 않고, 기다려 달라고 간청함에도 불구하고 옥에 가두어 버린다.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처사이다. 그래서인지 그 장면을 보고 동관들이 이 일을 그 주인에게 고해바쳐버렸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웃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악이 우리를 고발할 것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그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2).”

● 이 비유에서 나타나는 핵심 주제가 ‘용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비유는 “용서(18:21)”란 단어와 “용서(18:35)”란 단어 사이에 샌드위치되어 편집되어 있다. 그래서 비유의 결론 구절에서도(35)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형제에 대한 “용서”를 강조하고 있다. 이미 앞서 언급했듯이, 이 비유 가운데는 ‘용서’라는 단어를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비유에서 사용된 중요한 단어들인 “빚”과 “탕감”이란 단어는 모두 “죄”와 “용서”를 나타내는 용어들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결국 이 비유는 세상을 용서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메시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 메시지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 사랑의 핵심은 용서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누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밝히고 있으며, 이어 나오는 마6:14-15에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18장의 교훈 전체를 통해 볼 때, 교회 안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없신여기지 말고, 그들을 죄짓게도 하지 말고, 또 죄지은 형제가 있으면 그를 교회의 일원으로 다시 받아들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해야 하며, 형제가 죄를 지을 경우 무제한적으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후에, 용서하는 생활을 보이지 못한 경우에 당하게 될 상황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어떤 원칙에서 심판하시게 되는지를 결론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18:35).”

섬김과 양육과 사랑의 집은, 어떤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하겠는가? 아무쪼록 주님께서 우리를 다함없이 용서하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여, 우리 가정을, 우리 교회를 진정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공동체로 세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