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한결같이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행복한
가정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최근의 통계청 인구 동태 연보에 따르면
연간 36만
2000쌍이 결혼하고11만
8000쌍이
이혼했습니다. 그러니까3쌍이 결혼하고 1쌍이
이혼하는 비율입니다. 게다가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이혼을 꿈꾸지만 여러 가지 여건 상 실행에 옮기지 못한 '잠재
이혼' 또한 무시 못할 비율이라는 사실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가정의
행복을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가정이 깨지거나 가정 안에서 행복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정은 하나님이
세워주시고,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하는데 인간들이
자기 힘으로 가정을 지키려고 하기에 안되는 것 입니다. 가정은 너무 중요합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평생 행복을 찾다가 결국은 행복을 찾는곳, 결국은
행복한사람이 되는
곳, 그리고 마지막에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요? 그곳이
가정입니다.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투니시아에서
사망했습니다. 그가 죽은 지 31년이 지났을 때, 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본국으로 이송해 왔고, 유해를 실은
군함이 입항하는 순간,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 소리가 울려 퍼졌고 대통령과 국무위원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거대한
환영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은 환영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가 작사한 단 한 곡의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
가사가 미국인들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와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로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을
작사한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
1771∼1852)이었습니다.
즐거운 곳과 궁궐을 나 다녀보지만, 우리 집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세상에 우리 집 같은 데가 없네. 하늘의 안식을 나 찾아보지만, 이 세상 어디를 다녀 봐도 그런 곳은 만날 수 없네. 나의
가정, 나의 가정, 안락하고 평화로운 나의 가정이여! 세상에 우리 집 같은 데가 없네. 세상에 우리 집 같은 데가 없네.
나
집을 떠났더니 온갖 호화로움이 나를 유혹하네. 오, 나의 오두막 초가집을 돌려주오. 내가 손을 내밀면 새들이 다가와 노래 불렀지. 그들을
나에게 돌려주오. 마음 편한 것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나. 나의 가정, 나의 가정, 안락하고 평화로운 나의 가정이여! 세상에 우리 집
같은 데가 없네. 세상에 우리 집 같은 데가 없네.
Mid pleasures and palaces though I may roam,
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 A charm from the sky seems to
hallow us there, Which, seek through the world, is ne'er met with elsewhere.
Home! home! sweet, sweet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An exile from home, splendor dazzles in vain: O, give me my lowly
thatched cottage again! The birds singing gayly that came at my call; Give me
them,—and the peace of mind dearer than all! Home! home! sweet, sweet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이
노래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삶의 근본이 되는 '가정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제 생각에도, 지금까지 살면서 살펴본 행복한 사람들 가운데 임금이든 백성이든 자기
가정에서 행복한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 합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기위해 아무리 산을 넘고 또 넘어도 행복은 찾을수가 없다는 것이
역사와 인류가 내린 결론입니다. 행복은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가정을 떠나서는 행복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집 나간 탕자도 결국에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클린턴 가드너라고 하는 사회학자는 정말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가정이 있으면 아직 다 잃은 것이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삶의 의미도 무너지고,
삶의 의욕도 무너집니다. 지금은 작고했습니다만
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는 날 한 기자가 물었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가장 긴급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테레사 수녀가 웃으면서
답했답니다. "기자 선생께서 빨리 집에 돌아가셔서 가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세계 평화도 좋고, 사업 성공도
좋고, 출세도 좋고,
이름을 날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면서 해야 합니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으로 집무하던 시절에 백악관 직원들에게 거듭해서 이렇게 강조했답니다.
"백악관 직원은 가정생활에 충실해야 백악관에서 일 할 자격이 있습니다.
안정되고 건강한 가정 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 에게도 필요한 사람이며 나라 일도 맡길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직분자들에게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딤전 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가정을 행복하게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사람들만이 교회 봉사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돌아가고픈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따뜻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그런데 이런 행복한 가정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
물도 주어야 하고,
거름도 주어야 하고,
가지치기도 해야하고,
해충도 잡아주어야 하고,
잡초도 뽑아주어야 하고...
노력이 끝도 없는 것처럼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봉독한
시편128편은 행복한 가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일까요? 1.경건한
가정입니다. 경건한 가정이란 다른 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경건한 가정 이란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정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가정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정을 창조하시고,
계획하시고,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시편127편
1절을 보면"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했습니다.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워주지 아니
하시면 사람들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헛되다는 것 입니다. 사람은 여기서 부터 빗나간 것 입니다. 이것을 몰랐던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둠속에서 저주 가운데 방황합니다.
힘들었지만 망가진 가정이라도 끝까지 지켰던 룻과 나오미와
보아스는 다시 행복을 찾은 사람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힘들었지만 가정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넘치는 축복은
요셉의 가정으로 수백년 대를 잇습니다.
본문1절을
보십시오"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하는 자마다
복이있도다"고 했고,
4절도"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 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고
했습니다. 여기 경외한다는 말속에는 세 가지 깊은 뜻이
있습니다. '높인다,
섬긴다,
믿는다'등 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높이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말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며,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 복을 얻는 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복을
얻겠습니까? 구약성경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 입니다.
창세기22장17절에
보면내가 네게 큰복을 주겠다 말씀하십니다. 모든
진짜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입니다. 창49장25절을
보면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고 했습니다.
또 신약성경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베소서1장3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고 했습니다.
복은 하늘에서 오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어린이든 어른이든 가족적으로 복을 받습니다.
본문3절을 보면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라고
했고,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같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가정에서 아내들이 풍성한 삶을 살 때 그 가정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풍성한 삶을 살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행복하고, 그 열매를 함께 먹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내를
포도나무라고 비유했다는 점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기 스스로는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버팀목이
필요하고, 계속해서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아내가 가정에서 풍성한 삶을
살려면 남편은 물론 온 가족이 다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감람나무라는 말은 어린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듯이 빨리 번성하는
것을 뜻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감람나무는 어려서 잘
키우면 1,000년도 더 살 뿐만 아니라 늙어도 빛이 청청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어린 감람나무는 조금만 돌봐주면 정말 잘
자랍니다. 그래서 어린 감람나무는 큰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그렇습니다.
우리 가정 안에 자녀들이 온 가족들에게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될
때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5장이
말하는 탕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집을 나간 자녀가
있고, 부모에게 불효한 자녀들도 있습니다.
팔려가는 딸이 있는가 하면 가정을 파괴하는 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을 보십시오.
3절에 "내
상에 둘린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게 식탁에 둘러앉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가정은 온 식구가 식탁에 앉을 때마다 찬송,
기도, 사랑이
있는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 자녀에게는 미래와
꿈이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이 자녀들에게 있기도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 내일이 있어야 합니다.
내일이 있는 가정은 행복이 보장된 가정입니다. '돈
많이 벌어서,좋은 집 사고,
고급 자동차 타고, 날마다
쇼핑하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즐기다가 죽자'
이러한 가정은 소망이 없습니다. 아무리 부자라
해도 하나님이 그의 삶에서 빠져 있다면 모든 것을 잃은 것
입니다. 또한 그 가정에 미래의 소망이고,
약속이고, 꿈인,
자녀들이 어린 감람나무처럼 아름답게 자라는 가정이
내일이 있는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예수님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2. 열심히 일하는
가정입니다. 아무일도 안하고, 팔자 좋게 놀고
먹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 아닙니다. 성경은 수고한 대로 먹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라고
말 합니다.
본문2절을
보십시오. "네가 네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여기서 수고는 우리들의
손으로 하는 노동을 말 합니다.
불교는 노동을 경원하고,
유교는 노동을 천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노동을
신성시합니다. 노동은 행복한 가정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요, 노동은 크게는 문화를 창조하는 기본이지만
작게는 행복한 가정의 수단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횡재를
만났다' 여기에 있는 것 아닙니다.
'일확천금을 꿈꾸자'이것은 망상이나 도박이지 축복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고한 대로 대가를
주십니다. 그러니까 땀 흘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땀 흘린 대로 먹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노동은 결코 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스러운 인생의 권리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리라" "엿새동안에 힘써서
일하라" 말씀하셨지
'엿새동안 빈둥빈둥 거리며 실컷 놀아라. 휘파람
불면서 즐기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말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3장10절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철학자, 신학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노동자 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밀레가 그려 놓은 만종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밭에서 일하던 부부가 황혼 때에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서 함께 머리를 숙여 기도하는 경건한 모습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 속에는
세 가지 신성이 있다 고 합니다. 1.종교의
신성 2.가정의 신성3.노동의 신성입니다.
부부가 함께 노동을 해야 됩니다. 자녀들도 노동을
해야 됩니다. 노동은 결코 천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창세기3장17절이
말합니다.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9절에서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한 사람이 범죄 하므로 모든 사람들이 죄인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생들에게 행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길이 어떤 길입니까?
얼굴에 땀을 흘리는 수고의
길입니다. 잠언10장
4절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고 했습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9장4절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그 밤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떤 밤입니까? 병들어서
일할 수 없는 밤, 늙어서
힘이 빠져서 일할 수 없는 그 밤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조만간에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주의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5장58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열심히 일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교회같은
가정입니다.
본문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무슨
말 입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되 우리
모두에게 시온을 통해서 주신다'는 말씀 입니다.
그런데 여기 시온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뜻합니다. 여기
시온은 큰빛교회를 뜻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결혼할 때 가능하면
큰빛교회에서 결혼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큰빛교회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복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특별히
시편128편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는 결혼하는 부부에게 시편128편을 읽도록
했습니다. 루터는
시편128편을 '결혼의
노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왜냐구요?
본문3절을 보면 가정의 구성원들이 축복가운데 거하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같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서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을 역설하고 있습니다가정에도 교회에도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질서입니다. 6개월씩 번갈아 가며 부부의 역할을 바꿀
수 있습니까? 가족 회의를 통해서 아버지를 결정하고,
어머니를 결정한 가정을 본 일이 있습니까? 투표로
형님을 정한다든지 언니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정은 타고난 질서가
있습니다.그것이 무너지면 가정은 파괴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가정도 교회도 가정 되게 하고 교회 되게 하는 절대적인
조건이 하나 있는데
사랑입니다. 교회도
사랑, 가정도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입니까? 저 주는
것, 봐 주는 것, 내
주는 것, 손해 보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상대를 기어코 이기고 넘어
뜨리려고 하는 것은 전쟁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물러서 주는 것이고,
높여주는 것이고,
받들어 주는 것이고,
위로해 주는 것이고,
박수해 주는 것이고,
격려해 주는 것이고,
나보다도 상대를 더 낫게 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이 이러한 사랑이 넘치는 교회를 닮은 가정이 되어야
되지 않습니까? 교회를 닮은 가정이란
무엇입니까? 교회 생활을 가정생활화 하는 가정을 뜻
합니다. 가령 교회에서 말씀을
받았으면 그 말씀을 가정으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를 우리 가정으로 가지고 가야
됩니다. 이것이 교회를 닮은 가정입니다.
교회를 닮은 가정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① 온 가족의 믿음이 통일되어야
합니다.남편은 불교,
아내는 기독교, 시어머니는
무당, 아들은 무신론,
딸은 이단종파를 믿는 다면 어찌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일 수
있습니까? ② 출석교회가 같아야
합니다.가정이 각각 다른 교회를 출석하게 되면 가족간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남편의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내에게는 흥미가
없습니다. 아침에 떠날 때에 한 사람은 동으로,
한 사람은 서로 간다면 어떻게 하모니를 이룰 수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③ 가족예배를 드려야
합니다.가족끼리는 성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직장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보면 의견의 차이가 있고 갈등이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예배를 통해 교회를 닮은 가정이 되어 가정에
기도, 찬송, 전도가
있어야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죄를 이기는
삶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 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경건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 청교도 시대가 남긴 에피소드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에는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대부분의 지역 교회에서 그를
그 교회 회원으로 받아 드리기 위하여 교회 위원회와 입교 문답을 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자매가 교회의 나이 든 장로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매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물론 이 자매는 “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은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지금 예수를 믿은 후에는 자신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자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전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장로님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다음에 자매가 했던 대답이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전에는 제가‘죄를 향해 달려가는
죄인’이었지만(a sinner running after sin), 지금은‘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죄인’(a sinner running from
sin)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료가정이 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특징이
있습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구제를 많이
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항상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어느 날 천사가 그 가정에 심방
했습니다. "고넬료야?"
불러 주었습니다. 얼마나 축복 받은
가정이요, 행복한 가정입니까?
천사의 심방을 받은 가정, 참으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또 새생명 축제로 <한가정이
한가정을 인도하자>는 전도의 달을 지키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고넬료 가정처럼, 아브라함의 가정처럼, 룻의
가정처럼, 노아의 가정처럼 구원과 축복 받을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