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같은 제사장 바울의 행복 명령 / 살전5:12-28 /
오늘 본문 말씀은 누구든지 원하는 가장 당연한 말씀이고, 누구든지 원하지만 동시에 실천하기는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말씀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누구 든지 성경에 나와 있는 가장 좋은 말씀이라고 인정하는 그런 유명한 말씀이라 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 하는 신앙생활은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 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기 때문 입니다.
그래 오늘은 이런 가장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도전 앞에서 주님이 주시는 명령 이라는 차원에서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명령이라고해서 항상 일방적이고, 부담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행복한 명령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기쁨이라는 창고에, 기도라는 창고에, 감사라는 창고에 행복의 선물을 가득 가득 준비해 놓고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아 너희들이 행복한 신앙생활, 행복한 인생을 원한다면 항상 기쁨의 창고를 열어라, 기도의 창고를 열어라, 감사의 창고를 열어라. 그리고 그것들을 맘껏 가져가 즐기려무나."
여러분, 이것이 어찌 까다로운 명령이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나를 속박하는 율법이겠습니까? 밖에서 친구들과 한참이나 재미있게 놀던 아이가 배가 고파 집으로 달려 들어왔습니다. 냉장고 문에 이런 엄마의 명령이 씌어 있었습니다. "철수야, 엄마가 냉장고 안에 과일, 음료수, 아이스크림, 치즈, 불고기 충분히 넣어두었으니 배가 고프면 맘껏 꺼내 먹어라."
"꺼내 먹으라" 표현은 명령형이지만 이 말씀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행복한 명령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행복한 명령형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잘알고 있는 핵심구절을 보면 세가지 명령이야 말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한 평생 순종하고 추구해야 할 명령은 무엇입니까?
1. 항상 기뻐하는
삶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3대 경건은 기쁨과 감사와 기도 생활입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는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기쁨이 넘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면 먼저 첫번째 명령은 “항상 기뻐하라”-16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수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기분좋은 일을 만날 때 일시적, 순간적으로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항상 기뻐할수 있단 말입니까?
빌립보서 4장에 보면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다시 말하니 기뻐하라. 한번 기뻐할 것 뿐 아니라 또 강조해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뻐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고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고 린도후서 6장 10절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내면은 항상 기쁨과 평안이 있다는 고백입니다. 근심이 있으나 우리에게는 기쁨이 항상 약속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기 성경이 가르치는 기쁨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행복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영어로는 happiness라고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 단어의 뿌리는 happen이라는 단어입니다. 행복은 우연히 발생하는 환경적 요인에 의하여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인 수준의 것입니다. 우리말의 요행이나 행운과 같은 수준의 것입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오늘 생각지 못했던 돈을 받아서... 매상이 올라서..
그러나 기쁨은 환경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입니다. 기쁨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안에 거하게 된 선물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초 자연적인 성령의 열매라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믿고 구원받음으로 우리안에 주어진 성령의 기쁨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1:5-6에 보면 바울은 복음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큰 능력으로 전파되었을 때 그들이 성령의 기쁨으로 이 도를 받아드렸다고 가르칩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6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의 기쁨의 본질은 성령의 역사로 구원받은 기쁨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은 그날부터 우리가 주안에, 그리고 주께서 우리안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기쁨은 흔들릴수 없는 기쁨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기쁨의 이유이신 주께서 우리안에 계심을 알기에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기쁨은 성도에게 있어서 우리 밖에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기쁨은 우리안에 있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에 빠진 어떤 여인이 물을 긷다가 우물에서 보석을 발견합니다. 마침 그때 삶의 슬픔에 지치고 가난한 한 친구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녀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인생의 참 기쁨을 경험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보석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를 듣습니다.
보석 소리를 듣는 순간 이 친구는 나도 저런 보석만 가질수 있다면 기쁨으로 인생을 살수 있을 터인데--하고 생각하다가 미친척하고 여인에게 내 사정이 딱한데 나에게 그 보석을 줄수 없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여인이 그렇게 하자고 하며 보석을 건네어 줍니다.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그런데 이 친구가 보석을 받아들고 길을 떠나 한참을 여행하면서 이상한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보석이 자신을 기쁘게 하기보다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는 다시 발걸음을 돌이켜 이 여인의 집으로 돌아가 보석을 되돌려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나에게 필요한 것은 보석이 아니라 이 보석을 나에게 건네어주던 당신의 마음이었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그 기쁨을 내게 줄수 없겠오”
그때 이 여인이 친구에게 성경말씀을 들려줍니다. 느헤미야8:10의 말씀이었습니다.--“--여호와를 기뻐하는 것(Joy of the Lord)이 너희의 힘이니라”(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저와 여러분도 이 보석보다 더 존귀한 주님의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보화가 무엇입니까? 기쁨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요?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얻지 못하고 오늘도 방황하고 있을까요? 기쁨을 얻을 수 없는 곳에서 기쁨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쁨 아닌 것을 기쁨인줄 알고 찾기 때문입니다. 이는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이 마르듯이 그것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목이 마르게 됩니다. 권세 향락, 인기, 명예, 정욕 - 세상 것들은 모두 그런 것들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헛다리 짚지 말고 이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구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기쁨은 있다가 없어지고 잡았다가 사라지는 기쁨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기쁨이요 영원한 기쁨입니다. 세상 엉뚱한 곳에 기웃거리지 말고 하나님께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실망하고 그만큼 속아 봤으면 되었지 또 속으려 하느냐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내게로 오라 말씀하십니다. 이 명령은 기쁨과 행복에로의 초대인 것 입니다.
2.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17절의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의 크리스챤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세가지 명령이 단계적이면서 피차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가 항상 기뻐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 주신 내적인 기쁨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지속적인 기도생활이 뒤따라야 합니다. 쉬지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쉬지않고 기도할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대부분 이 말씀을 기도의 태도로 살아가라는 권면으로 받습니다.
요한복음 16: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기서도 확인 할 수 있는것은 기도가 기쁨을 가져 오는 비결이라는 것 입니다. 기도 없는 진정한 기쁨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놀라운 축복을 소홀히 여기면 안됩니다. 누가복음 21:36절에서는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고, 로마서 12:12절에는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4:2절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도 기도와 감사의 관계성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에 깨어 있는 사람이 진정한 감사로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중단하지 말아라.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는 자세로 하라. 기도를 생활화하라. 네 삶을 기도 체질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탄 마귀와 대적하기 위해 서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감사하는 마음도 빼앗 깁니다. 그런데 마귀에게는 밤과 낮이 없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거나 속이거나 공격 하려고 불철주야 쉬지 않고 활동합니다. 마귀가 얼마나 부지런 한지 아십니까? 성경은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18절에 보면 성도의 전신갑주에 '기도'가 포함 되어 있습니다. 이 마귀와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느냐? 기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26:41)"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에 든다는 말씀입니다. 왜 기쁨과 감사가 없을까요? 기도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요한복음 16:24절에서도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목이 곧고 자만하여 자존심을 세우기 때문 입니다. 기도는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2장에 보면 사무엘 선지의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기도 쉬는 것이 왜 죄가 될까요?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겐 필요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너무 바빠 하나님 만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한 문제는 하나님도 해결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불신앙입니다. 모두가 죄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나아가 이 말은 기도를 즐기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명령이기 이전에 행복에로의 초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기도는 부담스럽게 지고 가는 짐이 아니라 맘껏 누리고 즐기는 행복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범사는 문자 그대로 “모든 일”을 뜻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좋은 일만 아니라 안 좋은 일, 힘든 일, 고통스런 일, 악한 일도 포함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모든 일에, 범사에 감사할수
있겠습니까? 바울사도는 이미 그 해답을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 롬8:28에서 주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일, 즉 범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앞서 주신 명령이 무엇이었습니까? 쉬지말고 기도하라-였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당했던 기도할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가 경험하는 일들 가운데 이미 간섭을 시작하시고 역사하시고 계시다면 모든 일들이 잘 되어가지 않겠습니까?
1. 먼저 우리는 좋은 일을 알아보고
감사할 줄 알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좋은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속상한 일이 많이 있지만 그 아이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서로 인내하고 희생해야 할 일이 많지만 행복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 행복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 아내 내 남편 보고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내 배우자가 되는 겁니다.
교회 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내 교회입니다.
2. 둘째는 어려운 형편, 힘든 환경,
좋지 못한 일을 만나도 감사할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가 교인들이 핍박속에서도 감사했듯이 오늘 우리도 언짢은 일이
있어도, 손해 보는 일이 있어도, 병석에 누워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감사할 수 있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감사는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받아 들이는 감사입니다. 이는 궁극적 승리를 믿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감사입니다.
3. 셋째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상
생활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으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코로 숨쉬는 공기를 감사할 수 있고, 한모금 물을 마시며 감사의
노래가 나오고, 내 몸이 오늘도 움직이는 것 보고, 보고 걸을 수 있음에, 내 입으로 밥을 먹고 말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늘
하나님을 느끼고 사는 사람입니다.
의사였다가 기독교 작가로 변신한 분 가운데 성채, 천국의 열쇠등을 쓴 A.J.크로닌 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본래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광산촌에서 의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산촌에는 억울한 일로 오해를 받아 이 오지로 옮겨온 한 그리스도인 간호사 자매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자매는 이 오지에서도 아무 불평없이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무엇이 그리 기쁜지 늘 웃으며 찬양하며 정성으로 환자를 간호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 진료가 끝나도 제일 늦은 시각까지 남아 환자를 돌보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크로닌 박사가 하도 보기에 안스러워 이 자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지닌 가치만큼 여기서 대우를 못받고 있어요. 그걸 자신은 알고 있나요? 하나님은 이걸 다 알고 계실터인데 말이에요” 그때 뜻 밖에 이 간호사 자매는 크로닌 박사에게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 대답이 크로닌 박사의 일생을 바꾸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사님, 제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걸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그분이 알고 계시고 그분이 함께 하신다면 된 것 아닌가요. 박사님, 저는 그냥 제가 살아있고 그분과 함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거든요.”
이것이 바로 크리스챤 라이프 스타일인 것입니다.
말세의 징조는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롬 1:21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할 줄 모르는 것이 사람입니까? 이것이 패역한 세대의 특징이라는 것 입니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했습니다.
본문을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