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무정부 상태

삿 21:25

 

성경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대는 사사시대입니다. 흔히 영적인 암흑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사시대(士師時代)는 여호수아 사후부터 사울 왕 즉위 직전(B.C. 1390~1050)까지 340년에 해당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정복 전쟁 후 지파별로 땅을 분배하고 정착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가 별세합니다. 그 후 이스라엘에 왕정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왕이 없었습니다. 사시기를 읽어보면, 그 시대의 특징을 한 마디로 왕이 없는 시대라고 표현합니다. 본문 25절에도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 ”라고 증거합니다. 이 외에도 삿17:6, 18:1, 19:1 등 여러 곳에서 동일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는 게 왜 문제였을까요? 왕이 없었지만 그 대신 사사가 있었으니까 사실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왜 사사기를 자꾸 왕이 없는 시대라는 사실을 강조할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모든 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위대한 이유는 그들 자신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잘 섬기며 하나님의 통치에 잘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 사후에 왕이 없는 게 문제라는 말은 정치적인 왕이 없는 것을 지적하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왕으로 믿고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 내가 왕인 인생 : 영적인 무정부 상태 무질서, 혼돈, 멸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대신 스스로 자신이 왕 노릇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실패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무질서와 혼돈의 삶이 이어졌고, 멸망의 길을 향해 치달았습니다. 내가 왕인 인생은 다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가로챈 결과입니다. 그런 상태를 영적인 무정부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려야 하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분의 통치를 거부하니까 영적인 무정부 상태입니다.

 

이러한 사사시대의 특징이 사사기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8,10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알지 못했다는 것은 지적으로 몰랐다는 게 아니라 참 신앙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사사 시대의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삿2:16~17에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그들을 도와주시려고 사사를 세웠는데 거부하고 불순종했습니다. 사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사(士師 Judge)는 문자적으로는 재판관이란 뜻인데, 평화 시에는 재판관 역할 뿐만 아니라 행정관 역할도 합니다. 그리고 유사 사에는 군사적 지도자의 역할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다스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위기 가운데 있을 때에는 순종하는 척하다 숨통이 트이면 금세 불순종합니다. 그들의 근본 문제는 영적인 겁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대신 다른 신들을 따라갑니다. 다른 신들이라 함은 가나안 토속신들을 가리키는데, 그 중에 바알 신과 아세라 신(아스다롯 신)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각각 남신과 여신으로 농경 신으로 풍요와 다산의 신입니다. 이들을 믿고 따르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겁니다. 문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면 필연적으로 음란해집니다. 왜냐하면 신전의 여사제와 음행을 할 때 남신과 여신이 자극을 받아 성 관계를 하면 비가 내린다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영적 타락과 도덕적 타락이 이어집니다.

 

이처럼 사사시대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를 거부한 시대입니다. 사무엘이 마지막 사사인데, 그의 말년에 백성들이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합니다. 자신을 거부한 것으로 여겨 마음이 불편했던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죠? 삼상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사사이든 왕이든 인간은 진짜 왕이신 하나님의 보조에 불과합니다. 사사나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뜻대로 백성을 다스릴 때 평화의 시대가 되는 겁니다. 말하자면 신정적 사사, 신정적 왕이 중요한 겁니다. 이스라엘 왕정 시대의 역사를 보면, 다윗 같은 신정적 왕이 다스릴 때는 평화의 시대를 구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멋대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집니다. 그래서 역사서를 보면, ‘다윗의 길이란 표현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면 승리, 거부하면 실패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사시대의 특징을w단적으로 표현한 게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여기서 옳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솨르’(ישׁר)인데, ‘옳은’(right)이란 뜻 외에 기분 좋은’ (pleasing)이란 뜻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라는 말은 자기 욕심대로혹은 제멋대로이런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욕심대로 살면 반드시 망합니다.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욕심대로 살다 보면 삶이 무질서와 혼돈에 빠지고, 결국은 멸망합니다. 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자신을 옳다고 믿고 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비뚤어지고 엉뚱한 데로 가버리게 됩니다.

 

운동장에 금을 그을 때 제대로 하려면 기준을 잡아야 합니다. 기준이 없으면 비뚤비뚤해지고 엉뚱한 방향으로 금을 긋게 됩니다. 그런데 맞은편에 있는 철봉 같은 것을 기준 삼고 금을 그으면 똑바로 그어집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 기준 삼지 않으면 계속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사기를 잘 읽어보면 일정한 패턴이 반복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악순환의 사이클(범죄 징계 회개 구원 재범죄 ...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 족속의 침략을 통해 징계합니다. 징계로 고통스러워진 백성이 회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워서 구원해 주십니다. 평화가 오면 당분간 하나님을 따르는 것 같지만, 얼마 후에는 또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합니다. 그러면 또 다시 징계가 닥칩니다. 계속 이런 식입니다.

 

오늘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이런 사실을 거부하는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욕심만 따르는 게 인본주의(人本主義 humanism)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휴머니즘은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을 배제한 휴머니즘은 인본주의로 악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바알 신이나 아세라 신을 섬기면서 양 다리를 걸쳐놓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세상의 다른 신들을 함께 섬기는 게 문제입니다. 이를 가리켜 혼합주의(syncretism)라고 부릅니다. 요즘 기독교계나 종교계 일각에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대판 혼합주의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마치 이런 겁니다. 산봉우리에게 올라가기 위해서 여러 갈래 등산로를 통해 갈 수 있는 것처럼 종교들이 다 마찬가지라는 사상입니다. 각자의 도를 추구하다 보면 결국은 하나님을 만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부산에서 WCC 10차 총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세계교회협의회니까 좋은 것 같고, 세계에서 수천 명의 종교 지도자들이 오니까 국가적 경사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기독교회 중에 가입 교단이 있고 그렇지 않은 교단이 있습니다. 무관심한 분들은 그냥 지나가는데, 관심있는 분들은 궁금하실 겁니다. 왜 기독교회들끼리 입장이 다른가? 우리교회는 어느 쪽인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교회 소속 교단(예장 합동)WCC에 가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의 신앙관이 혼합주의적이고 종교다원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들 간에 서로 대화하고 서로 관용하자는 식으로 좋은 말을 늘어놓습니다. 생활적인 면에서야 세상에 같이 살아가니까 사이좋게 지내야죠. 그러나 진리까지 뒤섞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고,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도 한 길입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아담 이후 범죄하고 타락해서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가 탄식한 게 게 바로 그겁니다.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1:21도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그래서 인간이 스스로 신을 찾지만 엉뚱한 종교들이 나오고 우상숭배가 나오는 겁니다. 세상의 여러 종교들은 나름대로 진리의 체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바른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참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라고 말입니다. 14:6~7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예수님을 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인은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겁니다. 오직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순교하면서까지 이렇게 외쳤습니다.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물론 WCC에 가입한 교단과 교회들 중에도 신실한 신앙을 지키는 신자들이 많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꾸 타협하다 보면 진리의 초점이 흐려질 수 있는 게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기독교계 안에서 서로 싸우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 실상을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신앙의 순수성을 꼭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씀하며 경고합니다. 1:7~8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순수성이 변질되고 우리의 삶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사시대처럼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영적인 무정부 상태가 되어서 모든 삶이 혼란에 빠지고 실패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프랑스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가 오랜 세월 나방의 모습을 관찰하던 중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나방 한 마리가 앞에서 돌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도 아무런 이유 없이 따라 돌기 시작합니다. 먹을 것을 줘도 거들떠보지 않고 계속 돕니다. 7일 동안 그러다 결국은 굶어죽는다고 합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나방의 습성입니다. 인간도 하나님이 없이 살면 이렇게 됩니다. 인간 세상에서 서로 따라 하면서 방황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에는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대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진정한 왕으로 역사해 주시는 겁니다.

 

[2] 하나님이 왕인 인생 : 하나님 나라 실현 질서, 승리, 소망

 

하나님이 왕이신 인생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삶 가운데 무질서와 혼돈 대신 질서가 잡히고 승리합니다. 그리고 내세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가리켜 신본주의(Theocracy)라고 합니다. 신본주의는 자기 욕심대로, 제 멋대로, 자기 뜻대로 사는 인본주의와 정반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세입니다. 사회나 국가 인류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신정 정치가 되는데, 세속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라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신본주의를 실천할 때 나 자신부터 질서가 잡히고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세계로 퍼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공생애 일성이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그리고 공생애 내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8: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승천하기까지 40일간 지상에 머무실 때에도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이 지상에 살 때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이 지상에서 현재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세에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사영리 아시죠? CCC(대학생선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도소책자입니다. 거기 보면 이런 그림을 사용합니다. ‘내가 왕인 사람은 마음의 왕좌에 나 자신이 앉아있는 겁니다. 내가 왕이 되어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하고, 내 욕심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무질서와 혼돈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참 평안과 행복이 없습니다. 결국은 멸망 길을 향해 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왕인 사람은 마음의 왕좌에 예수님이 앉아 계십니다. 나는 그 아래로 내려옵니다. 내 생각이나 욕심은 접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속에서부터 질서가 잡히고, 평안해집니다. 이게 마음속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더 나아가 삶 가운데서도 주님이 다스림으로 승리하며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삶의 전반으로 확장되어 가는 겁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왕권(Kingship) 혹은 주권(Lordship)이 우리 마음속에서, 삶 속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현재 이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지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7:20~21 “20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이게 바로 이 지상에서 실현되는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마음속에서부터 삶 가운데로 이뤄져 가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왕권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축복하십니다. 3:5~6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모든 삶에 형통함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역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는 말씀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하나님 통치(Theocracy)는 말씀 통치(Logocracy), 성령 통치 즉 성령 충만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을 보면, 말씀을 묵상하며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더 나아가 다른 한편으로는 장차 들어갈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면 내 마음속에서부터, 삶 전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혼돈이 정리되고 평안과 기쁨으로 넘칩니다. 그리고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던 삶의 모습이 복되고 안정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여러분, 혹시7번방의 선물이란 영화를 혹시 보셨나요? 1300만 관객이 관람한 유명한 영화입니다. 그 시나리오를 집필한 분이 김황성 작가입니다.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과거에 한 때 세상과 재물의 유혹으로 음란물 CD를 판매하다 적발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습니다. 7번방에 경제사범으로 두 달 반 수감된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합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회개하고 예수님 만나 인생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왕으로 모시니까 마음에서부터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고 삶 전체로 확산됐습니다. 어려운 삶의 과정이 있었지만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되었고,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유명 작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작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는 사사시대처럼 하나님을 거부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과 세상에 양 다리 걸치고, 심지어 다른 신들을 겸하여 섬기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무정부 상태가 되고, 그래서 삶이 무질서와 혼돈에 빠지고, 실패와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이런 신본주의 원칙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부터 모든 삶에 하나님 나라의 평안과 축복을 경험하시고,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