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나사로(눅16:19-31)

● 예수님의 이 비유는 바리새인들과 나눈 대화 도중에 나오는 비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비유를 바리새인에 대한 경고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때, 그 문맥상의 의미를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본 비유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리새인의 폐단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바리새인들의 탐욕 혹은 재물욕 : (14,15절 읽기)

바리새인들은 놀랍게도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과 노고에 비추어 그만한 물질적 대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당연한 축복이라고 생각했으며 나아가 사회적 특권을 이용하여 축재하는 일을 당연시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들은 위선의 탈을 쓰고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척 하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의 주관심사는 재물에 있었다. 이렇듯 탐욕이 가득하면서도 스스로 의인으로 자처하는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써 그들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셨다. 이에 대해 저들은 한낱 시골 출신의 이름 없는 선생인 예수를 비웃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만으로 그 눈이 어두워져 진리를 용납하지 못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2)바리새인들의 비정함, 냉혹함 : 이것에 대해서는 비유를 통해 잘 나타나는데, 그들은 스스로 율법의 모범적인 준수자요 율법의 선생이라고 자부했으나, 그것은 허위와 위선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이웃 사랑이야말로 율법의 큰 계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본문의 나사로와 같이 고통받는 이웃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 이제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부자는 어떤 사람이었나? (19절 읽기) 이 부자는 왕같이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의 의복은 자색옷과 고운 베옷이었는데, 자색 옷은 당시 왕이나 귀족들만이 입던 매우 값비싼 고급 겉옷으로, ‘뼈고등’이란 열대산 물고기의 피로 옷감의 색깔을 내었다고 한다. 또한 고운 베옷은 애굽산의 세마포로 만든 귀한 속옷이었는데, 금으로 환산하면 금의 무게와 같아도 값은 두 배나 비쌀 정도여서 보통 사람들은 평상 구경도 못하는 옷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날마다 연락하였는데, ‘연락’한다는 이 말은, 사람이 갖고 싶은 것을 다 갖고서 자신이 주인이 되어 마음껏 즐기는 것을 말한다. 즉 부자는 최고의 사치와 호화를 자랑하며 매일 잔치를 벌이고 삶을 즐겼던 것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이 비유는 특별히 당시 사두개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당시 대부분의 사두개파 사람들은 유대 사회에서 특권과 부를 누렸던 귀족이었거나 제사장 출신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사후의 삶이 있음을 믿지 않은 현세주의자들이었고, 성경이 그와 같은 사실을 증거하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이었다.

사실 부자가 누리는 부 자체가 죄일 수는 없다. 다만 넘치는 부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위에 있는 가난한 거지 나사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에 부자의 잘못이 있다. 일반적으로 부자는 자신의 부귀가 스스로의 뛰어난 노력에 대한 대가로 주어진 것이라 믿으며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무능과 게으름 탓이라고 돌려버리기 쉽다. 따라서 부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특권의식과 교만에 사로잡히게 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갈파하신 예수의 말씀은, 재물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 하는, 어떤 강한 부정적 흡인력이 있음을 경계하심과 동시에, 세상 재물에 대해 청지기적 사명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물을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유용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웃에 대해 자비를 베풀지 않음으로써 율법의 명령을 소홀히 하는 죄를 범하기 쉽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큰 집에 사는 부자가 대문 앞에 누워있던 거지를 몰랐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알았으면 도와주었을 것인데... 하지만 (24절, 27절)을 보자. 부자는 이미 나사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사로는 어떤 존재였는가? (20,21절 읽기) 나사로는 몸도 꼼짝할 수 없는 불구자였으며, 피부병을 앓는 거지였다. 헌데가 나서 앓은 것으로 보아 문둥병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나사로가 문둥병 환자라고 한다면 그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함께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여튼 그는 부자의 집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로 배를 채우고자 했고,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을 정도로 비참한 삶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다른 비유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 이 비유에서는 굳이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 나오는 나사로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는 분명히 아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도움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이름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이처럼 굳이 이 비유에서 이렇게 이름을 밝힌 이유는, 아마도 나사로가 그 이름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였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 부자와 한 거지가 있었는데, 거지가 먼저 죽었고, 나중에 부자도 죽었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다.

(22절)에 보면 ‘천사들에게 받들려’라는 말이 나오는데, 후기 유대교 사상에 의하면 의로운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을 선한 천사들이 받들어 모셔가고, 악한 자가 죽으면 악귀들이 데려간다고 믿고 있었다. 아마도 성대한 장례식이 있었을 부자의 죽음과는 달리 거지인 나사로는 장례식도 없이 공동묘지의 허술한 곳에 버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그들의 영혼이 도달하게 된 장소는 전혀 반대였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 유대인들의 개념으로 아브라함의 품은 낙원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며, 낙원의 중심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하여튼 아브라함의 품은 구원받은 자들의 처소로서, 이는 천국의 넉넉함과 풍요와 안전함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은 간접적이나마 사후의 중간상태에 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과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부자가 죽어서 간 음부란 히브리어로 ‘스올’에 해당하는 말로 구약에서는 흔히 선악에 관계없이 죽은 자가 가서 부활 때까지 있는 중간지대를 뜻하였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는 선한 사람이 죽어서 가는 중간지대인 낙원의 개념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죽은 자가 최후의 심판이 있기까지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비유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자.

(24)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를 가리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이 부자 역시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대인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부자는 아브라함의 자손됨을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처럼 혈통적 특권에 의지하여 긍휼을 얻기를 간구한다.

(25)얘; 테크론은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를 부르는 호칭으로 남자 아이일 경우 ‘아들아’ 하는 말이며, 여자 아이일 경우 ‘딸아’ 라는 말과 같다. 아브라함은 그를 ‘아들아’라고 부름으로써 그 자손됨을 시인하였지만, 다음에 나오는 구절의 내용으로 보아 자신의 자손 즉 선택된 민족이라고 하는 유대인만의 특권이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치로는 인정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7)유대인들 중에는 죽은 사람을 통해서 (물론 그 방법은 꿈이든지 환상일 수 있다.) 산 사람들에게 전갈을 보낼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그 예를 구약의 사울이 엔돌에서 죽은 사무엘을 만나본 사실에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죽게되면 그 영혼은 즉시 지상의 세계와 다른 차원의 영적 세계로 옮겨지고 지상의 세계와 교통하지 못한다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 볼 때, 사울의 경우는 사단의 기만에 속은 예였다. 한편 여기서 부자는 나사로를 여전히 그의 종 정도로 생각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현세에서의 신분 차이가 저 세상에서도 여전히 효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죽고나서 음부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심판의 엄정함과 무서움을 깨닫게 되어, 그 가족에게 나사로를 보내도록 요청한 것은, 여전히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음을 나타낸다.

(29)부자는 나사로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그의 다섯 형제에게 나타난다면 그들이 나사로를 하나님의 사자로서 확실히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를 끊임없이 강조한 모세와 선지자들을 그들이 믿지 않는다면 설령 죽었다 살아난 자가 경험담을 이야기해준다고 해도 그것을 거짓으로 단정해 버리고 말 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기적인 삶의 방식은 그 완악한 심령 가운데 이미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30)이 생각은 오늘날 일반인들의 생각과 같다. 즉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면 불신자들도 믿음을 지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기적 자체에만 연연하는 자는 그 기적이 드러내고자 하는 참된 진리에는 오히려 무관심하다. 더욱이 초자연적 기적이 계속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은 곧 자신의 세속적인 삶으로 쉽게 복귀하고 만다.

(31)요11장에서 바리새인들이 죽음에서 부활한 나사로를 보고서도 회개치 않은 것처럼, 누군가가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재물을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사용하는 참신앙적인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이 말은 이 비유 뿐만 아니라 부에 관해 집중적으로 교훈했던 16장 전체의 결론에 해당된다.

● 앞에서 언급했듯이, 본 비유에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삶이 극적으로 대조되어 나타난다. 부자의 의복과 음식의 풍족함과 그에 반해 병든 거지의 참담한 불행이 매우 충격적으로 대조되고 있으며, 또한 사후에 그들 두 사람의 삶이 통렬하게 대조되고 있다. 이렇듯 대조되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책임과 보상’이라는 주제를 상기시킨다. 부자가 저 세상에서 고통을 받은 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부 자체는 악이 아니요 인간이 피해야 할 죄도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를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사용할 때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니 다른 생에서 쓰라린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거지 나사로를 본다. 그는 이 땅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저 세상에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 그가 이처럼 구원을 받은 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천대받던 소외 계층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이름 ‘나사로’의 뜻이 ‘하나님의 도우심’이라 사실이 암시하듯 그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다. 가난함 자체가 죄는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권장할 만한 것도 아니며 구원의 보상을 얻는 근거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심령의 가난함,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히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영적 풍성함과 기쁨을 얻는 삶의 태도이다.

● 다분히 종말론적 암시가 내포된 이 비유 속에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1)내세에의 소망; 이것이 없다면 성도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시들어 없어질 들의 꽃과 같으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이 성도에게 있을 것이니 이는 약속된 백성이 영원한 기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기업을 상속받을 자는 이 세상에서 부하든 부하지 않든 궁극적인 소망을 하늘에 두고 있으므로 진정한 부를 마음에 품은 자의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다.

2)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 오늘날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는 시점에서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의 사정을 생각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품음으로써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져 간다. 부자가 정죄를 당한 것은 나사로를 쫓아내거나 때렸기 때문도 아니며 자기의 먹고 남은 찌꺼기를 나사로에게 주어 그의 생명을 연명하게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자는 자신이 가진 부의 극히 일부분만을 내주기만 해도 거지 나사로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나 그에게 무관심했으므로 나사로가 병으로 죽든 말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가진 자의 소득 재분배라는 형평의 원리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예수의 제자된 성도들부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의 한 모퉁이에서부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단지 이것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근래에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들이 수십, 수백억원에 달하는 교회 건물을 열심을 내어 짓고 있다. 그런데 사실 수천만원이면 아프리카 등 여러 선교지에서 엄청난 사역이 가능하다. 오늘 이 나라의 교회에 허락하신 물질의 축복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누가는 이 비유를 통해 세상에서 누리는 풍요와 부유한 생활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이기적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을 위한 선한 일에 사용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재물을 맡은 청지기로서 올바로 행하는 것이며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진 것임을 가르쳐 준다. 이런 점에서 본문은 누가복음이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이자 소외되고 약한 자를 위한 복음서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불우한 이웃과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선한 사업에 힘쓰면서 미래에 소망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