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19:9-14)

● 예수님의 모든 비유가 그렇듯이 이 비유 또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활에 그 바탕을 두고 있었다.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세리는 평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었고, 저들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비유를 듣고 있는 청중들은 실감나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그 와중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여러 당파로 나뉘어 분쟁하였는데, 대표적인 당파로는 당시 로마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권력을 쥐고 있었던 헤롯왕가 중심의 헤롯당, 제사장계급을 형성하며 종교권력을 장악했던 사두개파, 모세의 율법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전통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열심을 가지고 백성들의 종교생활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바리새파, 로마제국으로부터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던 열심당, 이러한 여러 당파들의 분쟁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세속과 격리되어 광야에서 살며 엄격한 절제와 수련생활을 했던 에세네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예수님 당시 백성들에게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당파는 바로 바리새파였다. 헤롯당이나 사두개파가 비록 정치, 종교적으로 권력을 쥐고 있기는 했지만 늘 바리새파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리새파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신임을 얻고 있었고, 여론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리새파가 반대하면 헤롯당이나 사두개인들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바리새파의 동의를 얻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하기 어려웠다. 당시 유대인 공동체의 최고의결기구는 산헤드린공의회였는데, 대제사장은 물론 지도적인 서기관들과 장로들, 명망 있는 평신도들의 무리들을 대표하는 71명의 남자들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이 바리새인들이었다. 로마제국조차도 산헤드린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였으며, 특히 종교적인 결정에 대해서는 존중하였다고 한다.

‘바리새인’ 그러면 오늘의 대부분 기도교인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 바리새인이란 ‘구별된 자’라는 뜻이다. 즉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으로, 율법적으로 이방인들은 물론, 세속적인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많은 백성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약 백 여년전에 형성된 종교적인 당파인데, 처음에는 평신도 운동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이들은 서기관계층과 긴밀히 연결되어 일반 평민들과 분리되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에 적힌 것뿐만 아니라 입으로 전해 내려온 엄격한 종교적 생활규범들, 곧 장로들의 유전도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으로 여겼다. 다시말해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율법 및 전통을 존중하고 일상생활의 사소한 데에 이르기까지 이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열정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 가운데 바리새인이 되고자하는 사람은, 시험 기간을 거친 뒤에 십일조 및 결례규정을 아주 엄격히 지키기로 약속하는 사람들만을 자기들의 공동체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바리새인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지나쳐 바리새인들은 자기 의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형식적인 율법조항에 너무 얽매이다 보니, 율법조항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에게 엄격하고 냉혹한 정죄를 일삼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진정한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비록 바리새인으로서 구별된 삶을 산다고는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동족들을 정죄하고, 무슨 일이든지 종교적인 계율로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바리새인의 신앙행태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원래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며 살라고 주신 율법을,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핑계로 바리새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정죄하고, 짐지우고, 괴롭히는 율법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특히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어떤 선한 행동이나 올바른 행실로서 선이나 의를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이나 관습에 의하여 규정된 율법적 의식이나 규례들을 지키는 것을 통해 의를 추구하였고, 이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죄인이라 부르며 그들을 무시하는데 앞장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자신들을 가리켜 스스로 의인이라 부르는 것을 매우 만족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예수님의 잦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위선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과 책망이 신약성경 여러 곳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의 내용도 바로 그것 가운데 하나이다.

● 이 비유의 핵심은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대조시키는 데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시간은 오전 9시, 12시, 그리고 오후3시였다. 본문의 비유에 나타난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간 시간이 정해진 시간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시간에 들어갔는지는 불확실하나, 여기서 바리새인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다는 것은 사람들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것이지만, 불경건한 사람으로 대표되는 세리가 기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전에 갔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일로 여겼을 것이다.

하여튼 10절에서 두 사람이 똑같이 성전에 올라갔고(going up) 14절에서는 내려갔으며(going down), 두 사람이 모두 그들의 마음을 ‘성전’과 ‘하나님’께로 향했고 또 모두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그러나 기도의 내용과 태도는 서로 크게 달랐다. 첫 번째 사람의 기도는 길었고 그 기도의 주어는 계속 ‘나’였다. 그러나 둘째 사람의 기도는 짧았고 그 주어는 ‘하나님’이었다. 첫째 사람의 기도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 가운데 관심이 수평적으로 쏠리고 있었으나, 두 번째 사람은 수직적으로 하나님께로만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바리새인의 기도의 내용은 ‘그 자신의 덕의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자랑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첫째로는 자신이 범하지 않은 악행들을 곧 토색, 불의, 간음들을 열거하고(11), 둘째로는 자신의 특별한 경건 행위, 곧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한 것과 소득의 십일조를 바친 것을 열거하고 있다(12). 특히 두 번째로 열거된 그의 경건 행위는 율법의 요구를 훨씬 초월한 것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즉 율법은 일 년에 단 하루 속죄일에 금식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는 자진해서 일주일에 두 번 곧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다. 뿐만 아니라 곡식, 포도즙, 기름은 생산자들이 십일조를 바쳐야 했는데도 그는 사들인 물건에서 십일조의 의무가 부과된 것에 대해서는 모두 십일조를 다 바쳤다. 이로써 그는 십일조를 바치지 않은 어떤 물건도 사용치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런데 그런 바리새인의 기도와는 대조적으로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했고 하나님의 자비를 호소했다. 이런 세리의 기도는 시34:18과 시51:17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은 상한 심령이라. 오 하나님, 당신은 상한 심령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세리는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았는데’ 이런 축복은 바로 바리새인이 토색, 불의, 간음을 피하고 금식과 십일조를 함으로써 얻고자 애썼던 것이었다.

● 이 비유의 결론(14)은 분명히 예수의 청중들이나 누가의 독자들을 놀라게 만들었을 것이다. 도대체 바리새인이 무슨 잘못된 일을 했단 말인가? 그리고 세리는 자기 죄를 보상받기 위해 무슨 일을 했단 말인가? 바리새인은 그의 사회적 지위나 또는 그가 하지 않은 일(11)과 그의 한 일(12)로 미루어 볼 때, 또한 그의 기도가 오직 하나님께 감사만 드렸지 아무것도 요구한 것은 없었다는 점을 볼 때 그는 그 당시 종교의 최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세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정직이나 나라에 대한 불충을 고려할 때, 또한 그 자신이 인정했듯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죄인’인 점을 고려할 때 분명히 그는 그 당시 세계의 죄악을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유의 결론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낮추는’ 그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말한다.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의롭다함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곧 결정적인 것은, 좋건 나쁘건 간에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현재의 태도라는 것이다. 바리새인에게 있어서 문제는 그가 자기 생활과 자기 자신에 만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위해 하실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세리가 의롭다함을 받은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즉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이렇게 만족하지 못할 때 언제나 소망이 있는 법이다. 결국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 때문에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그의 자비와 은혜를 호소함으로써 라는 것이 이 비유의 메시지일 수 있다.

예수는 항상 죄인들을 용납했고 그래서 그들과 어울렸으며 그 때문에 스스로 거룩하다고 자처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예수는 죄인의 구원에 관심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며 그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 저주했다. 닫힌 마음 때문에 죄인의 회개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바리새인을 향해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은 상한 심령이며’ 따라서 하나님은 절망하고 희망없는 죄인을 용납하고 오히려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를 거부하신다고, 즉 하나님은 절망하는 자들의 하나님이고 마음이 상한 자들에게 무한한 긍휼을 베푸시는 분임을 선포하면서 나도 그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비유는 복음적인 비유이면서 도잇에 어느 정도는 논쟁적인 비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 비유는 바로 앞에 소개한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와 연결시켜 ‘기도’에 관한 교훈을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두 비유는 ‘기도’란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래서 크리드는 이 두 비유를 ‘기도에 관한 두 비유’란 제목 아래 다루고 있기도 하다. 앞의 비유가 어떻게 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비유라면 이 비유는 어떤 기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친다고 보인다. 달리 말한다면 앞의 비유는 ‘끈질긴 기도’를 가르치고 있는 반면에 이 비유는 ‘겸손한 기도’를 가르친다고 볼 수도 있다. 바로 이 ‘겸손한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 누가는 14절을 결론으로 첨부했고 또 이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첨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이 비유는 누가복음 전반에 걸쳐 강조되고 있는 가치 전도(顚倒)의 주제(theme of reversal)와 잘 어울리며 따라서 그 점이 누가의 의도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새 시대에는 현재 악한 세대의 가치와 구조가 뒤바뀌게 마련이다. 누가는 이미 탄생설화에서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1:52-53).’라고 그 주제를 밝혔고 계속 평지설교(6:20-26)에서 가난한 자에게 축복선언을, 부자에게 저주 선언을 하고 있다. 여행 설화에서도 선과 악이 뒤바뀌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즉 선한 사마리아인과 악한 제사장과 레위인, 마르다에 대한 책망과 마리아에 대한 칭찬, 잔치 좌석에서도 상석이 좋은 자리가 아니라 말석이 오히려 좋은 자리이다. 선한 탕자와 악한 맏아들, 악한 부자와 착한 나사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가난이 선이고 부가 악이다. 바로 이런 문맥에서 읽는다면 세리가 의인이고 바리새인은 죄인이다. 누가의 의도 가운데 하나는 세상 사람의 가치 판단이 하나님 앞에서는 뒤바뀐다는 것이고 이 비유는 그 점을 잘 예증해 주고 있다. 누가는 예수의 복음적이며 논쟁적인 비유를 자기 시대 기독교인들을 위한 교훈적 비유로, 특히 기도에 대한 비유로, 그리고 가치전도의 교훈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