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비유설교(22)  손의 비유(사41:8-13)

 

● 사람을 동물과 구별 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손이라고 한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도구를 사용하여’ 무엇을 만들 수 있는 동물, 즉 ‘Homo Faber’이기 때문에, 문명을 창조하고 역사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손은 그 사람의 성격과 직업, 인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 상영되었던 ‘킬링필드’라는 영화에 보면, 공산진영의 학살자들이 잡혀온 사람들의 손을 보고서 노동자인지 지식인인지를 가려내어 처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손을 한번 들여다보라! 여러분의 손에는 어떤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가?

 

사람의 인체가 모두 중요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손은 더욱 요긴하고 중요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여러 모양의 부처상을 그리거나 조각할 때, 부처의 손을 가장 신경을 써서 만든다고 한다. 불교의 중요한 진리를 손 모양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칸트는 ‘손은 외부의 두뇌다’(손은 겉으로 드러난 두뇌다)라는 말을 했다. 물론 이 말은, 사람이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겉으로 표현할 때, 손이 그 대표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지만, 이런 철학적인 사고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손은 온 몸의 축소판이며 뇌와 직결된 기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손을 잘 사용하면 두뇌를 자극해 어린아이들은 두뇌발달에 좋고,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치매예방에 좋다고 한다.

 

한때 수지침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수지침의 원리는 바로 우리 손에 모든 인체의 신경과 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가운데 손가락은 머리부분, 그 옆은 양 팔, 바깥쪽은 양 다리, 그리고 손바닥은 몸통에 해당하는데, 이같은 원리는 이미 한방뿐만 아니라 서양의학에서도 깊이 연구되어 활용되고 있다.

 

손은 현재의 건강상태를 반영하기도 하는데, 몸에 이상이 있으면, 손이 붓거나 자연스럽지 못하고, 뼈마디에 통증이 있거나 심지어 변형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뇨병이 있으면 손발이 저릴 수 있고, 만성 간 질환의 경우는 손바닥이 몹시 붉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철 결핍성 빈혈이 있는 경우는 손톱 색깔이 창백하며, 심하면 손톱이 우묵하게 되기도 한다.

 

가정주부들의 경우, 손빨래를 하거나 걸레를 짤 때, 너무 꽉 쥐어짜면 오랜 세월 후 손가락 관절에 퇴행성관절염이 와 손가락 마디가 굵어지고 뒤틀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정주부들은 스트레스가 쌓이더라도 너무 꽉꽉 쥐어짜지 않도록 조심하기 바란다. 예전에 아주 히트했던 가요 가운데, ‘젖은 손이 애처러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가 있었는데, 남편들은 아내의 손을 자주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어떤 값비싸고 성능 좋은 핸드크림보다 효과가 좋다는 사실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처럼 손은 신체의 일부로서 가장 주요하게 쓰이는 기관인데, 성경에서도 손은 아주 다양하게 쓰이고 있고, 그 의미도 대단히 포괄적이다. 손은 순결, 힘, 권위, 보호, 굴복을 나타내며, 사람들은 기도할 때, 맹세할 때 손을 들고, 비통한 마음을 나타낼 때 손뼉을 치며, 고소인은 법정에서 피고소인의 오른 편에 서야 하고, 제사장은 오른손으로 어린양의 피를 만져야 하며, 히브리인들은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했다. 맹세하는 자는 상대편의 사타구니(환도뼈)에 손을 넣어야 했고, 악수는 동맹과 계약의 성립을 나타냈으며, 박수는 기쁨을, 손뼉을 치는 것은 또 분노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런데 성경에서 손은 신체의 일부로서의 의미보다 은유적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많은데, 특히 ‘권세, 힘, 능력, 영향력, 소유’ 등에 대한 상징으로 쓰인 예가 가장 많다. 반면에 ‘손가락’은 정교함이나 재주에 강조점을 두고자 할 때 사용되었다. 물론 이같은 구분이 안될 때도 많은데,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그의 손가락으로 돌판에 십계명을 새기셨는데, 이때 하나님의 손가락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성경에는 오른손과 왼손에 대한 구별이 자주 나타나는데, 그것은 손이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센 오른쪽을 선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오른편은 영광스럽고 선한 것인 반면, 왼편은 우매스러운 악에 기울어지는 것으로 표현한 곳이 많다. 전10:2에서는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로 되어 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 관한 마25:31에서는 염소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에서 심판을 받을 때에 그 왼편에 서고 나중에 천국에서 쫓겨나 영원한 지옥불에 던지움을 받는 것과 관련하여 나타나 있다. 방위를 나타낼 때에는 오른편이 남쪽을, 왼편이 북쪽을 각각 나타냈는데,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설 때, 그같은 방향이 나온다.

 

바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신 말씀은(마6:3), 사랑의 삶을 꼼꼼하게 생각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고 섬길 때 그것을 계산하고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다. 효과와 평판을 계산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래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계산으로 할 수 없다는 자애로운 가르침이다. 또 오른 쪽 눈이 실족케 하면 빼어버리고, 오른손이 그러면 잘라버리라 하셨다(마5:29,30). 이것은 우리의 삶을 그르치고 악행으로 이끄는 욕망과 생각을 단호하고 철저하게 버리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성경에서는 ‘손’이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활동’(행동)을 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창22:12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에서 “손을 댄다.”는 것은 그 아이를 상하게 하거나 또는 죽인다는 것을 나타내며, 수10:6의 “당신의 종들에게서 당신의 손을 더디게 하소서”에서 “손을 더디게 한다.”라는 것은 곧 의무를 더디게(소홀히)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잠19:24의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라가기를 괴로워하느니라.”에서 “손을 넣는다”는 것은 게으름뱅이의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나타내며, 욥21:5의 “손으로 입을 가리우라.”는 곧 침묵할 것을 종요하는 의미의 표현이며, 삼하13:19의 “다말이 재를 그 머리에 무릅쓰고 그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며 가니라”에서 “손을 그 머리 위에 얹는다”는 것은 곧 남에게서 당한 부정한 일 때문에 오는 그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축복하기 위하여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기도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야곱)이 그렇게 하였다. 또한 예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그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또한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바와 같이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레16:21의 언급과 같이 희생 동물의 머리에 안수하되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고하여 그 죄를 희생 동물에게 전가하는 의식을 치르기도 하였다. 애굽인들도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풍습과 유사한 의식을 행하였다.

 

이처럼 ‘손’은 성경 속에서, 단순히 어떤 ‘힘, 능력’을 상징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참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사용되었다.

 

한편, 하나님의 손은 너무도 크시므로 거대한 대양도 그 손바닥 안에 있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과 솜씨를 지닌 손이다. 왜냐하면 그 손에 의해 땅의 토대가 놓여졌고, 모든 놀라운 천군들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다. 하나님이 그 손을 펴실 때, 그의 피조물들은 선한 것으로 충만케 되며, 그들의 모든 욕구들은 충족된다.

 

선한 목자는 그 손으로 그의 양들을 먹이고 인도하며 보호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좋은 손이다. 그것은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는 능력의 손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손이다. 그 손의 그림자만으로도 충분한 보호이다(시51:6). 하지만 그것은 그의 백성들을 징계할 때는 무서운 손이며, 그 손이 악인을 벌할 때에는 훨씬 더 무서운 손이다. 그 손은 그의 적들과 싸우기 위해 펼쳐져 있다.

 

● 시편에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라.(시24:3-5)’고 노래하고 있는데,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은 깨끗한 손을 가졌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깨끗한 손’이란 단지 물이나 어떤 세척제로 씻어 깨끗해진 손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손이 진정으로 깨끗한 손이며, 어떤 손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손일까?

 

가장 아름다운 손의 본은 예수님의 손일 것이다. 그 손에는 못자국이 있다. 그것은 사랑과 희생을 드러내는 손이었다. 예수님의 손은 피로 물들었으나 깨끗한 손이었다. 시편이 말하는 깨끗한 손이란 그리스도의 손처럼 사랑과 희생으로 얼룩진 손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손은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행복과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는 손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질병을 고쳐주실 때 손을 펴시고 만져주셨다. 그의 손을 어린이의 머리에 얹으시고 복을 내리셨다. 그의 손은 한량없으신 그의 자비와 인자와 권능의 표현이었다. 그의 손은 사랑과 구원의 역사요 위로와 평화의 선포 그것이었다.

 

● 하여튼 손은 행위와 연결된 생각과 의지의 표현이다. 삶에서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생각, 그것이 손이다. 한마디로 손은 행위라 할 수 있다. 그 행위는 생각과 의지의 하나된 몸이다.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사59:3)’는 잔인하고 악한 생각과 의지로 범죄하였음을 말한다.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시24:3,4) 뜻이 견고하고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가 주의 거룩한 산에 오른다 하였다. 하늘의 뜻, 경건한 의지로 행하는 자라야 주의 말씀의 반석 위에 선다는 뜻이다.

 

사람은 손으로 문명을 창조하고 역사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며 살아왔다. 인간의 손은 발명의 손이요 건설의 손이요 개척의 손이요 생산의 손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손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죽이는 손도 있고, 살리는 손도 있다. 빼앗는 손도 있고 주는 손도 있다. 압박의 철권도 있고 봉사의 손길도 있다. 총을 잡고 사는 인간도 있고 호미를 잡고 사는 농부도 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에덴동산의 지혜의 열매를 따먹던 아담의 손은 반역의 손이었다. 질투의 불길 때문에 자기 친동생을 죽인 가인의 손은 무서운 피의 손이었다. 겨우 은 30냥 때문에 스승 예수를 판 유다의 손은 배신의 손이었다. 예수를 재판할 때 군중의 눈치를 보고 발뺌한 빌라도의 손은 아무리 깨끗한 물로 씻었다 할지라도 그 손은 비겁의 손이었다. 참으로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손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손이 하는 결과가 우리의 삶의 무게와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 ‘기도하는 손’이라는 명화가 있는데 요즘은 목각으로도 조각되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원래 이 그림의 제목은 ‘사도의 손’이라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종교개혁 당시 독일에서 활동한 알브레히트 뒤러라는 화가이다. 뒤러가 청년 때 시골의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와 함께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하여 도시로 나왔으나, 일하며 공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루는 친구가 뒤러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벌 테니 자네가 먼저 그림 공부를 하게. 그리고 자네가 공부를 마치면 그 다음엔 내가 그림 공부를 계속하겠네.” 친구의 말을 들은 뒤러는 그럴 수 없노라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둘 다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진심으로 애원하는 친구의 청을 끝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인 뒤러는 친구가 벌어준 돈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드디어 작품을 팔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작품이 처음 팔리던 날, 뒤러는 기쁜 마음으로 친구에게 그림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친구가 대답하기를 “나는 이미 노동일로 손이 굳어져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자네나 계속해서 공부를 하게.” 친구의 손은 그간의 힘든 노동으로 말미암아 손가락이 휘고 굳어져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가 없게 되었다.

뒤러는 커다란 슬픔에 빠졌다. 친구의 희생으로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이루어 냈지만, 친구는 자신 때문에 그의 꿈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친구의 집에 예고 없이 방문한 뒤러는 친구가 그 마디진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친구는 뒤러가 화가로 성공한 것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뒤러는 자신을 위해 노동으로 거칠어지고 휘어진 친구의 기도하는 손이 사도의 손처럼 거룩하게 여겨졌고, 뒤러는 감동 가운데 그 손을 화폭에 옮겼다. 이것이 ‘기도하는 손’이라고 알려져 있는 뒤러의 명화 ‘사도의 손’이 그려진 배경이다.

 

● 여러분은 어떤 손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자신의 손을 다시한번 들여다보기 바란다. 수많은 손금과 주름들과 상처들... 여러분의 삶의 흔적이 바로 그 속에 담겨져 있다.

 

이제는 고개를 들기 바란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성실히 살아왔다 할지라도, 그 손으로는 도저히 거룩한 주님의 손을 잡고 천국의 계단을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각자 깨닫고 있을 것이다. 13절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힘의 근원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 구원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내 힘으로 붙잡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손을 붙잡으시도록 하라.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고, 그리고 의지하도록 하라.

 

열 두 해를 혈루병으로 앓았던 어떤 여인은 조용히 예수님께 접근하여 옷자락을 만졌다. 그의 손은 주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사모하는 믿음의 손이었다. 얼마나 많은 손들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겠는가? 하지만 믿음의 손만이 생명과 회복과 은총의 통로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