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직한 청지기 비유(눅 16:1-9)

많은 성경 해석가들도 사실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이 사실이다. 16:8에 보면 주인이 그 청지기를 칭찬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 청지기가 불의한 청지기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고자 노력한 신학자들도 더러 있었다. 더구나 청지기가 불의했다면 비유 교훈의 모델로 채택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16:8에서 이 청지기를 가리켜 분명히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명명하여 평가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청지기가 절대로 불의하지 않다고 변명하려는 노력은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16:8의 하반부에서 이 ‘불의한 청지기’가 ‘이 세대의 아들’ 곧 ‘이 세상에 속한 아들’로 비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음에 나오는 ‘빛의 아들’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 청지기는 분명히 불의한 청지기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 이 청지기는 칭찬을 받았으며,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내용을 교훈하시고자 한 것일까요?

● 비유에 등장하는 청지기를 보면,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장부를 변조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본문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성경시대 당시의 청지기직이 과연 어떤한 것이었는가를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

1)청지기의 역할

청지기(steward)란 문자적으로 ‘집을 지키는 자, 집을 관리하는 자’라는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부유한 집의 업무를 책임지고 맡아보는 사람을 가리키며, ‘집사’라고도 불리워진다. 예로부터 부와 명예를 지닌 가문이면 으레 집안에 청지기를 고용했는데, 이들은 보통 주인의 식탁 시중을 드는 것에서부터 식량, 의복, 금전 관리, 하인 감독, 주인의 수입과 지출 관장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신뢰를 받는 충직한 청지기는 주인 가족의 각 구성원에 대한 상속 분배까지도 맡아 관리했다. 이렇듯 청지기가 주인의 모든 재산을 관장했으므로, 청지기들은 약간은 융통성 있게 주인의 재산을 자기 편의대로 유용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청지기를 고용하는 데 있어 부자 지주는 청지기의 정직과 충성스런 태도를 제일 우선으로 하였다.

그리고 신약시대 당시의 청지기란, 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유인으로서 주인과 고용계약을 맺은 자들이었다. 그래서 좋은 소문이 난 청지기들은 먼저 주인이 죽을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조건으로 고용되기도 했는데, 요즘으로 치면 스카웃 되기도 한 것이다.

2)청지기에 대한 성경의 언급

성경에서 청지기란 말은 다양한 의미로서 사용되었다. 먼저 구약 이스라엘 족장시대에 살았던 아브라함의 청지기는 엘리에셀이었는데, 엘리에셀의 경우에는 단순한 고용인의 차원을 넘어 ‘양자, 상속자’에 해당될 정도로 집안에서 비중이 높았다. 또 형들에 의해 팔아넘겨진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 집의 청지기가 되는데, 이때 요셉은 주인의 재산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의 일을 관리하는 집사장이 되었다.

이러한 청지기직이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주인의 재정을 담당하여 정규적으로 재산을 점검하는 총책임자로 주로 고용, 계약에 의해 그 직책이 맡겨졌다.

3)영적 교훈

아무튼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는 청지기직에 관한 언급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 청지기와 관련된 교훈들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시간과 물질과 모든 형편을 다 주를 위해 성실하게 관리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땅끝까지 이르러 생명의 복음 증거자로서, 맡은 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위탁받은 모든 직무를 지혜롭고 근면하게 수행해 나가야 함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선한 청지기, 충성된 청지기인지, 스스로에게 한번 자문해 보기 바란다. 나는 나의 재능과 시간과 물질과 힘을, 하나님 보시기에 충실하고 효과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이 모든 것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늘 살펴보아야 한다. 혹시 내가 진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본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두 가지 비유를 통한 가르침을 주시는데,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가 그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비유들은 올바른 재물 사용에 대해 교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 나타난 불의한 청지기는 세상의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유익과 안녕을 추구하는 자였다. 낭비가 심했던 이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다. 허비했다는 말은 ‘마구 뿌린다’는 의미로, 이는 청지기가 자기를 고용한 주인의 재산을 자신을 위해 마구 썼거나 아니면 미련하거나 부주의하여 헛되게 잃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소문을 들은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 책망하며, ‘보던 일을 셈하라’고 명한다. 이 말은 ‘그 동안에 맡은 모든 업무나 장부 등의 결산을 보고하고 인계하라’는 것이고, 나아가 ‘청지기 직분을 내놓고 나가라’는 뜻이다.

그런데 주인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이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청지기로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재량권을 발휘하여 신속히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조치를 취한다. 즉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채무자들에게 문서를 고쳐 쓰게 하여 그 빚을 감해 주었다. 이는 채무자들에게 선심을 사서 청지기직에서 쫓겨난 다음 자기의 살길을 찾기 위한 불의한 청지기의 의도였다.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이 청지기는 사기꾼이요 도적이다.

그런데,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나중에 이같은 사실을 안 주인이 오히려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어내신 하나의 비유로서, 실제 생활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어떤 주인이 자기의 재물을 이처럼 축내는 불충하고 괘씸한 청지기를 칭찬하겠는가? 당장 관아에 연락하여 투옥시켰을 것이다. 아무리 인자한 주인이라고 해도, 종이 자신의 재신을 빼내어 용의주도하게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장래를 대비했다고 해서 그 지혜를 칭찬하기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비유를 들려주신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8절에 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말의 뜻이 무엇인가?

이 세대의 아들들, 곧 이 세상 불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빛의 자녀가 된 신자들보다 자신들의 일을 처리하는 면이나 미래를 대비하는 면에 있어서 더 지혜롭다는 말이다. 사실 악한 영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그의 자녀가 된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에 속한 신자들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빛의 자녀들은 실로, 모든 면에서 얼마나 많은 제재를 받는지 모른다. 이쪽을 보면 말씀에 어긋나고, 저쪽을 보면 신앙양심에 위배되고, 앞을 보면, 십자가가 걸리고, 뒤를 보면, 지옥불이 겁나고... 성령의 능력으로 구습을 완전히 벗어 던지고 세속의 삶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신앙생활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모른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주인의 재산을 남용한 불의한 청지기의 부도덕성, 악한 방법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세상의 아들들’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빈틈없이 준비하는 것처럼 빛의 아들들도 그들의 존재 근거인 영원한 거주지, 즉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적 목표로 여기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신 것이다.

나아가 예수께서는 불의한 청지기가 재물을 이용하여 자신의 장래를 도모했듯이, 빛의 자녀인 성도들 역시 세상 재물을 일신의 쾌락을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장래의 영원한 삶을 위해 선용하도록 교훈하시고자 이 비유를 도입하신 것이다.

이 비유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책망이 담긴 이전의 비유들과는 달리 제자들에 대한 교훈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깨닫게 된다.

1)앞날에 대해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세이다. 불의한 청지기가 악한 방법까지도 사용해서 자신의 세상적인 안전을 도모했던 것을 통해, 빛의 자녀들도 안일하고 나태한 채로 현재의 신앙과 생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좀더 체계적이고 계획성 있게 삶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 비유의 핵심은 이 청지기의 행동이 의로우냐 불의하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록 불의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행했던 사려깊은 재빠른 예비 조치에 있다. 그의 행동의 도덕성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위기에 직면하여 그가 취했던 민첩한 결단이 문제이다. 따라서 이 비유가 본보기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결코 청지기의 불법적인 행동이 아니라 위기에 직면해서 재빨리 취했던 그의 결단력있는 행동이다.

2)재물을 올바르게 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는 재물을 이용해서 자신의 안전을 꾀했고 친구들을 만들었다. 빛의 자녀들 역시 세상 재물을 통해 영육간의 유익과 선을 추구함으로써 장래를 대비해야 한다. 불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장차 유익을 얻기 위하여 지혜롭게 투자하듯이 신자도 다른 세상에서 장차 유익을 얻기 위하여 재물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물을 헛되게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일에 올바로 사용함으로 주님 앞에서 칭찬받고 인정받는 의로운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