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4-15 /

  

제가 교회에서 일반 성도들에게 듣는 불평 가운데 종종 직분자들에 대한 불평 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집사가 장로에게 또는 집사가 권사에게 하는 불평하는 경우들 입니다. 그 중에 많은 불평이 우리 목자는 너무 가르치려고만 해요. 저 권사님은 항상 사람을 가르치려고 해요. 저 장로님은 언제나 설교하려고만 해요…. 이런 불만스러운 말 속에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 설교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 사람들은 그 사람의 가르치려는 태도 때문에 저런 불평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너보다 높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내가 너보다 좀더 안다는 느낌이 전달 될 때, 나는 너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는 의식이 전달 될 때 ….사람들은 기분이 상하는 것 같습니다. 겸손하게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이런 문제를 놓고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제 경우에도 해당 되리라고 생각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 서도 이 문제는 성령 받는 오순절 이전까지 계속 되었던 갈등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누가 더 높으냐? 주님 이 다음에 권세를 잡으실 때 내 아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하나는 우의정 하나는 좌의정 삼아 주세요. 치마 바람을 일으키는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10)

 

도토리 키 재기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누가 더 높으냐? 누가 더 크냐? 라는 경쟁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문제, 요한과 야고보 형제의 문제도 이런 문제였습니다.

 

여러분은 섬김이라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감정이 무엇입니까? 혹시 낮은 자리의 사람이 높은 신분의 사람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 되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도 우리를 섬겨 주십니다. 예수님도 섬기러 왔다고 말씀 하십니다. 사도는 강자가 약한 자의 약함을 담당하여야 하고, 강자가 약자를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신앙생활의 구체적인 상황에도 얼마든지 적용 될 수 있습니다. 14장에 보면 신앙의 본질적인 것은 아닌데사람들이 각각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제시 합니다. 예를 들면 음식에 관한 경우가 많습니다. 돼지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개고기 먹어도 되느냐?

이것은 각 나라마다 문화가 각각 다르기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신앙의 본질적인 것이 아닌 이상 저는 크리스챤들은 자기 민족과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고 자기 문화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것이 좋다고 생각 합니다. 또 음식 가운데도 믿는 사람들이 제사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이방인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데 우리도 그런 것을 먹어도 되는가? 꼭 일요일을 주일로 지켜야 하는가? 나는 직업이 토요일 날 쉬는데 토요일에 예배 하면 안 되는가? 술은 먹어도 되는 건가술에 취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담배를 피워도 되는가?  음식과 날짜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와 갈등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이런 갈등은 문화권에 따라서 다르지만 우리들의 가장 예민한 현실 이기에 그냥 지나 갈 수는 없을 것 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본질적인 문제가 발생 할 때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가르치기 시작 합니다. 그런 것은 안되지요. 어떻게 우상에게 드렸던 제물을 먹을 수 있습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도는 우상이 어디 있으며, 우상이 무슨 음식을 먹느냐? 음식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먹어도 되는 것이고, 양심을 묻지 말고 먹으면 그만이라고 가르칩니다. 먹는 사람이 믿음이 더 좋은 사람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결론에 가서는 이렇게 말 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믿음이 좋아서 먹어도 되지만 믿음이 없고 양심이 약한 자를 실족 시키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덕의 차원 입니다.

 

성경은 믿음에 덕을 세우라고 가르칩니다. 지식에 절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 다. 얼마 전에 말씀 드렸던 신앙의 8계단을 기억 하십니까?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을 섬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강자의 덕 입니다. 그러므로 섬김의 정신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은 바로 이런 면에서도 우리들이 따라가야 하는 삶의 모델이 되어 주신 것 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몇 가지 섬김의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섬김은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심이라…

이것도 예수님의 사명 선언문 입니다. 섬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알리는 것 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섬겨주려 오신 분 입니다. 그래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말구유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난했던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 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섬김이 MISSION 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들 의 삶의 목적이라는 것 입니다. 섬김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목사의 직분도 섬김입니다. 설교와 가르침은 은사인데그것으로 섬기는 것 입니다. 장로의 직분도 섬기는 것 입니다. 권사의 직분도 섬기는 것 입니다. 물론 집사의 직분도 섬기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지도력은 섬김의 지도력입니다. 군림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군가 리더쉽을 말하면서 예수님은 성자형의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지도자 가운데는 BOSS 형이 많습니다. 두목형입니다. 히틀러, 모택동, 전두환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HERO형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영웅형입니다. 나폴레옹, 알렉산더, 이순신 장군 같은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GENIUS 형의 지도자 입니다. 미국의 키신저나 우리나라의 율곡 선생이나 세종대왕 같은 분은 천재형의 리더쉽을 발휘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자형의 지도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아브라함 링컨, 성 프랜시스, 테레샤, 간디 같은 분들이 이런 유형에 속할 것 입니다.

 

그래서 요즘 예수님의 리더쉽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SERVANTSHIP입니다. 다스린다는 개념보다 종의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 합니다. 리더쉽은 종의 정신이 기본이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섬김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면 저와 여러분의 사명도 분명하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주님을 따라 섬김을 사명으로 알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시는 종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섬김은 예수님의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발 씻기시는 장면도 한번 행사로이벤트로 한 것이 아닙니다. 일년에 한번 수련회 때 하는 세족식 행사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섬기시고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요 13:1절을 보겠습니다. (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가롯 유다에 대해서도 베드로에 대해서도 끝까지 참으십니다.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오래 참으십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사명이란 끝까지 하는 것 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언제나 중도 에 그만 두는 것 입니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 입니다. 이벤트성으로 흉내 내는 정도 하고 마는 것 입니다.

한번 돌보면 끝까지 돌보고, 한번 사랑하면 끝까지 사랑하고, 한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주는 것  이것이 섬김의 정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에게 있어서 섬김은 일종의 평생 습관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습관에 따라….

 

마지막 최후의 만찬석 에서도 본을 보이십니다. 본문에서 주의할 구절 가운데 저녁 먹는 중…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유대 관습은 식사 전에 손님들의 발을 씻겨 드리는 것이 기본 예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중에 아무도 그런 일에 신경쓰는 제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시던 주님은 식사 도중에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기 시작 하십니다. (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 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무엇이든지 example 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지금 본을 보여 주고 계신 것 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입니다. 지난 주에는 기도하시는 모본을 보이신 주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시 주님을 따라 가자는 것 입니다. 우리는 지금 섬김의 본이 되시는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섬김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이기심 때문 입니다. 자기의 입장, 자기의 체면, 자기의 체통, 자기 의 위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 하기 때문 입니다. 남자가 어떻게 그런 일을.. 여자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이런 생각이 섬김을 방해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의 도를 말씀하시면서 항상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섬김은 자기부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을 말하면 무슨 발 한번 씻어주는 것이 대단해서 미션이라는 말을 쓰는가? 생각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언제나 지극히 작은 것 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대하여 한 것 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작은 친절, 작은 관심, 작은 배려, 작은 양보, 작은 봉사, 작은 섬김은 어디 에서부터 시작 될까요? 주차장에 들어오는 차량을 맞이하는 작은 친절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차를 주차 할 때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차를 주차하는 일에서 부터 시작 됩니다. 교회 식당에서 식사 하실 때, 수고 하시는 분들에게 한마디라도 감사를 표현하고, 줄 설 때도 서로 양보하고, 설겆이 봉사도 하고, 봉사 할 때도 남들이 하기를 꺼려 하는 일들을 찾아서 하고, (지난 주 콩나물 삶는데 남자 분 두분이 일하는 보습이 보기에 아름다웠습니다)

 

젊은 부부를 위해서 어린아기 봐주기(예배 시간), 다음 사람을 생각해서 화장 실 개끗하게 닦는 것, 주변 청소하기car pool 을 하면 주차 문제도 해소되 고, 환경오염도 줄고, 이웃사랑도 나누고, 삼중 사중 효과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메일로도 섬길 일이 많습니다. (방지일, 전종석 어른들도 이메일로 은혜 끼쳐 주십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 곁에서 당분간 힘이 되어 주고, 새신자들을 당분간 친절하게 도봐주고, 시험당한 성도를 만나면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실 것이고,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주신다고 가르쳐 주고, 중보로 기도해 주고, 직장을 잃고 사업에 실패한 친구들에게 욥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가 나를 단련 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올 것이라는 말씀도 들려주고그러면서 말과 행동으로 섬겨 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입니다. 이런 섬김의 삶이 평생 습관이 되어 주님을 따라가시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3. 섬김은 주의 명령입니다.

 

명령이라고 하면 강제성을 띤 것 처럼 들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을 말씀 하실 때에는 명령하십니다. 전도도, 기도도, 섬김도 명하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면, 그 분이 나의 사령관이라면 그 분의 명령에 마땅히 순종해야 할 것 입니다. 본문 요13:13-14절을 봉독 하겠습니다.

(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명령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옵션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 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서로 눈치 보며 아무도 발을 씻겨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일어나 본을 보이신 것 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이렇게 행하라고 명하십니다.

 

내게 지금 물질의 넉넉함을 주셨다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기도하며 고민하셔야 합니다. 내게 지혜와 지식의 은혜를 주셨다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내게는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한 힘과 건강을 주셨다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약한 사람들을 섬길 것인가?... 내게 여호와의 기업인 자식의 축복을 주셨다면 그들을 잘 길러서 어떻게 섬길 것인가? 우리교회가 부흥되어 큰 교회가 된다면 어떻게 작은 교회를 섬길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은퇴하신 분들은 나의 실버 인생을 어떻게 주님게 드려 섬김의 삶을 사실 것인가를 생각 하셔야 합니다. Silver mission, tentmaker의 모델들이 필요합니다.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지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제자들이 후배 들이 따라 올 것 입니다. 섬김은 명령입니다. 명령에는 순종만이 필요합니다.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순종하면 주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 입니다. 순종은 본성을 극복하는 것 입니다. 섬김의 도는 우리들의 순종하는 자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입니다.

 

부산 호산나 교회 최홍준 목사님이 쓰신 책 가운데 <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한 자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교회 생활에 무척 열심인 자매입니다. 주일예배는 물론, 주중 성경공부와 새벽기도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회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자매입니다. 그런데 이 자매의 마음 속에 늘 자리잡고 있는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 이었습니다.

 

아무리 설득하고 간청해도 교회 나가는 것은 항상 거절하던 남편에게 이 자매는 어느 날 교회 대각성 집회 하는 날 다시 한번 권했으나남편은 냉정히 거절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자매는 이렇게 말 했다고 합니다. <여보! 이번에 딱 한번만 같이가자. 그러고도 당신이 가기 싫다면 이제 더 이상 말 안 할께, ?>

자매의 간절한 부탁에 남편도 슬그머니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대신에 단서가 붙더랍니다. <딱 한번만이다> 드디어 주일에 자매는 남편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 할 때는 눈을 감고찬송하면 따라 부르고별로 거부감없이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매는 내심 어떤 기대를 갖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오자 남편은 양복을 훌훌 벗어 던지면서 말하기를 됐지? 한번만 간다고 했어! 이제 또 교회 가자고 하지 않기다” 뭐라고 할말이 없었 던 자매는 기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달 후 이 교회에서 목양 장로 사역이 시작되었고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매님 안녕하세요? 아무개 목양 장로입니다. 그리고몇일 후 그 장로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매의 집에 심방을 왔다고 합니다. .. 착하고 친정 아버지 처럼 느껴진 장로님은 기도의 제목을 물었고 이 자매는 남편의 이야기 를 했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기도하겠다고 하면서 남편의 연락처를 물었습니 다. 그날 저녁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장로님이라는 분이 자기에게 전화 한것을 말했고마음이 조금 움직이면서 <한번 더 나가보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몇개월 만에 다시 교회에 나온 남편이 교회에 도착 했을 때 전화 하셨 던 장로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나이드신 어른이 친절하게 영접해 주시 는 모습에 남편의 마음도 조금 열렸다고 합니다. … 장로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분의 손을 잡아 끌고 교회 구석 구석을 구경시켜 주고, 예배가 시작 되자 남편 옆자리에 앉아 기도해주고 함께 찬양도 불러주고 남편이 어색해 하지 않게 배려 했다고 합니다.

예배후에 식사 하자며 지하 1층 식당으로 갔습니다. 나이드신 분이 가자고 하니 거절 할 수 없어 따라가는 눈치였지만 싫지는 않은 기색이었습니다. 장로님은 그 부부에게 손수 음식을 갖다 주며 이것 저거 챙겨 주었다고 합니다…. 어느덧 남편도 그 장로님과 편하게 대화하며 식사하기 시작 합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말하길당신네 교회 장로님들은 다그래? ..그럼…남편왈.

“사실 내가 교회 안 나가는 이유가 장로들 때문이었거든. 나도 어렸을 때 교회 다녔는데, 어찌나 장로들이 교회에서 왕노릇 하던지… 그때 내가 장로 아들하고 친하게 지냈는데, 교회 사람들이 그 애가 장로 아들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못하는거야. 그리고 개네 아버지도 교회에 헌금을 얼마했네 …하면서 너무 권위적인 모습이었지. 보통 장로들이 다 그런 모습이더라구. 나는 뭐 우리 아버지가 교회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달랑 나혼자 교회 나갔었는데,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서 안나게 됐지. 그런데 오늘 그 장로님은 안그러시더라고. .. 정말 좋으시던데? 그래서 한번 교회 다녀 보기로 했어.”

 

그 후 그 남편은 장로님과 일대일 성경공부도 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버 지처럼 찾아가 의논도 하고,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에 그분은 그 교회에 집사로 임명됩니다. 이 자매는 이 모든 일이 목양 장로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합니다. 그 교회는 이런 행복한 간증들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계속 말씀 하십니다. <서로 서로 섬겨라> <서로 종이 되라> <높은데 처하려 하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라> <스스로 낮추라> <자기를 낮추는 자는 주께서 높이시리라>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왜 섬기라 하실까요?

 

1. 섬김에는 기쁨이 있기 때문 입니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그 행복은 나에게도 전염되어서 나도 행복해집니다. 오지에서 불편하게 살면서도 선교사님들이 헌신하는 이유는 섬길 때 오는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 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 고 증거합니다.

 

2.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져 가기 때문 입니다. 섬김을 통해 약한 자들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것 입니다. 있는자가 없는 자를 섬기는 것 입니다. 건강한 자가 병약한 자를 섬기는 것 입니다. 우리 교회에 섬기는 자가 많을 수록 교회는 든든하게 세워질 것 입니다.

 

3. 섬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는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섬김의 흔적이 있느냐는 것 입니다. 이것을 성흔이라고도 합니다. 섬김을 통해 육체의 고통의 흔적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는 아픔을 당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수치와 모욕과 욕먹음을 당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상처 가 무수했습니다. 그러나 주 앞에 설 때 이런 성흔 밖에는 보여 드릴 것이 없을 것 입니다. 주님은 이 상처를 어루 만지시면서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면서 위로해 주실 것 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4. 섬김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 입니다. 마가복음 10장을 다시 보겠습니다. (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의 삶은 영혼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는 것 입니다. (고전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