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 설교의 역사 지도교수: 박희춘 교수님
과정: 예배 설교학 발제자: 이대우
김삼환목사의 목회적 삶과 설교 그리고 부흥
I. 들어가는 말
명성교회의 명성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한국교회사상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교회로 알려진 명성교회와 담임목사인 김삼환 목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자연스로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명성교회는 1980년 7월 6일 강동구 명일동의 홍우상가 2층의 34평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20명의 신자들로 시작되었으나, 설립 3년만인 1983년에는 출석교인수가 1,500명으로 늘어났고, 이로부터 4년 후인 1987년에는 출석교인수가 4,500명에 달했다. 2000년 6월에는 7만여명의 등록신자와 3만 8천명의 출석교인을 그리고 2006년 6월 현재 출석교인 약5만명의 등록신자 8만명에 이르는 교회로 성장했다. 이런 급성장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점에서 논구할 수 있겠으나 한국의 목회현실에서 볼 때 담임목사의 역량이 지배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혁교수의 지적처럼 명성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담임목사인 김삼환목사의 삶과 사역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앙적 삶과 신학, 목회와 설교는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의 교회성장론에 대한 중요한 소제와 주제가 된다.
이 글에서는 명성교회의 부흥의 원인과 김삼환 목사의 설교의 배경이 되는 그의 목회적 삶과 신학을 검토하고, 그의 설교를 분석하는 데 있다. 그의 설교의 성격과 특징을 조명함으로 그의 설교가 갖는 수용성(受容性)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II. 명성교회의 부흥 배경과 원인
1.새벽부흥 이야기
적막감마저 감도는 시골교회의 새벽, 한 소년은 마을에 새벽기도를 알리는 종을 치고 교회 귀통이에 앉는다. 소년의 간절한 기도가 이어진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제 소원은 주님 사랑하는 거예요, 주님 사랑하고 살게 해주세요, 제 소원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새벽녘에 그토록 주님의 사랑을 갈망하던 영성의 열매였을까. 눈물어린 기도를 드렸던 소년은 어느덧 60의 나이가 됐고 한국교회와 전세계 교회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부흥된 새벽을 자랑하는 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게 된다.
어린시절 새벽 종지기 역할을 자청해 봉사하고 날마다 기도했던 그가 바로 지금 ‘한국의 새벽을 깨우는 교회’ 명성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삼환 목사이다.
1)교회시작
명성교회 출발은 1980년 7월 6일 강동구 명일동 500번 종점 앞에 있는 홍우상가 2층에서 34평되는 상가건물 전세방을 얻어 김삼환 목사와 약 2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림으로 창립되었다. 교회 이름을 '명일동의 소리‘가 되자는 뜻에서 명성이라 지었는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성장시켜 주셨다.
지금의 명일동은 종점이었던 땅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하나둘씩 들어서고 26년이 흐른 지금 명성교회는 주일예배에 총 5만명이 참석하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현재 등록교인만도 8만명을 웃돈다.
명성교회의 성장은 여타 한국의 대형교회들과 같이 목회자의 카리스마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금도 많은 교회성장학자들은 명성교회의 부흥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물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황금땅에 우연히 닻을 내린 것도 한 요인이었겠으나 단지 터를 잘 잡았다고 수만 명이 모일리는 만무하다. 명성교회 이외에도 명일동 아파트단지 주변에는 많은 교회들이 자리잡고 있다.
교회성장학자들이 명성교회 성장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구별된 새벽기도회와 담임목회자의 머슴목회론을 꼽는다. ‘새벽기도’를 통해 거룩함을 체험해야 한다는 김삼환 목사의 목회철학과 김삼환 목사를 비롯한 교역자들의 섬김의 철학이 명성교회의 발전을 이루는 두 축이라는 것이다.
2)교회의 상징(두개의 십자가)
교회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두 개의 십자가는 김삼환 목사가 기도 중에 은혜로 깨달은 것으로서 야긴과 보아스와 같이 성전의 두 기둥을 의미하며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을 의미한다. 더불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여호수아가 싸울 때 모세가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고 아론과 훌이 손을 받쳐준 것처럼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목회의 중심은 ‘오직주님’(THE ONLY LORD)'이고 표어는 ‘칠년을 하루같이’이다. 특히새벽기도에 힘써 기도하는 교회로 유명하다.
3)부흥의 씨앗 새벽기도회
실제로 명성교회의 성장은 새벽기도의 부흥과 함께 발걸음을 해왔다. 특히 26주년을 앞두고 열린 새벽기도회에는 하루 참석자 수 5만명이라는 전무한 기록을 남겼다. 주일예배 참석자수가 5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집과의 거리문제 등 피치 못할 사정들을 제외하고 교인 100% 출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성교회가 ‘새벽’을 강조하는 데에는 김삼환 목사의 깊은 신앙적 체험이 깔려있다. 김삼환 목사는 본인 스스로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영접하고 신앙이 깊어졌음을 고백하고 있다. “제가 이제까지 목회하면서 강조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새벽기도를 통해 훈련받아서 ‘머슴정신’을 가지고 봉사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는 설교마다 새벽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과거를 회상한다.
“일찍이 새벽기도 나가서 종치고 울고 기도했어요, 주님 나를 불쌍하게 여겨 달라고요, 기도했는데 주님이 저를 만나 주신 거예요, 기독교는 새벽의 종교예요, 새벽에 나오면 반드시 주님을 만나요, 네 소원이 뭐냐 물으시기에 네 저는요, 주님 사랑하는 거예요. 주님 사랑하고 살게 해주세요”
명성교회가 1980년 7월 6일 개척 이후 25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토록 성장한 것은 새벽기도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명성교회에는 매일 새벽 5000여명의 성도들이 성전에 나와 교회와 가정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구한다.
특히 3월과 9월 특별새벽집회는 명성교회 뿐만 아니라 서울과 나라 안팎을 깨우는 새벽기도 모임이 됐다. 1980년 교회 창립 직후 첫 9월 특별새벽집회에 20명이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출석교인이 갑절씩 늘어 1988년에는 출석 교인 5000명을 돌파했다.
이후 계속된 성장으로 새벽기도회도 몇 부로 나눠 진행하는데 1992년 3월 특별새벽 집회는 4부로 열렸으며 1995년 9월 특별새벽 집회는 5부로 진행됨과 동시에 처음으로 하루 2만여명 이상이 참석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6년 3월 특별새벽집회에는 매일 5만여명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새벽기도 부흥의 놀라운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목동, 과천, 의정부, 상계동, 일산에 사는 성도들의 편의를 위해 1995년에는 목동, 상계동, 일산에, 1997년에는 분당에 명성 기도실을 마련해 특별새벽집회와 새벽기도회를 드리고 있다. 또 1995년 11월부터는 이 기도실에 주일낮예배(목동, 일산), 주일 찬양예배, 삼일기도회의 예배 실황이 위성으로 중계되어 동시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같은 명성교회의 새벽기도 부흥은 이미 해외교회에 널리 알려져 2000년부터 뉴욕, 중국, 말레이시아, 대만, 싱가포르 등의 현지 목회자들이 새벽기도를 배우기 위해 단체로 참석하고 있다.
명성교회의 이러한 새벽기도 부흥과 함께 교회성장도 나날이 기록을 거듭했다. 교회를 세운지 3년만인 1983년 출석교인이 1500명으로 늘었고 이 때 처음으로 연건평 627평의 교회를 완공했다. 4년 후인 1987년에는 교인 수가 4500명으로 늘어 다시 교회를 신축, 2년 뒤인 89년에 연건평 2684평에 지하 2층 지상 6층, 교회 본당 좌석수 4000석의 지금의 건물을 완공했다.
2.머슴목회론
“목회자는 종일 뿐”... 25년간 머슴목회 한길만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나는 철저히 주님의 종이다.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부름을 받은 주님의 종이다‘라는 의식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런 사명의식을 저는 ’머슴정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어릴적 집에 있던 머슴 ‘덕환’(책, 철수-가명)을 통해 ‘머슴정신’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주인에게 절대복종’ ‘항상 즐거운 삶’ ‘농사일에 전문가’ ‘간편(단순)한 삶’ 등을 들어 목회자의 모습과 삶을 연관지어 말한다.
장신대 김도훈 교수는 ‘김삼환 목사에게 머슴 덕환은 머슴목회와 머슴신학을 깨우쳐준 중요한 인물이다. 김삼환 목사는 늘 설교에서 머슴 목회를 강조한다. 머슴신학의 핵심은 종처럼 낮아짐과 겸손, 순종의 신학이다.’라고 보았다.
김삼환 목사는 외모나 행동에서나 카리스마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말로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어휘의 마술사나 불치병을 고치는 큰 능력과도 거리가 멀다. 그러나 김삼환 목사는 약한 듯 하면서도 사람을 끄는 강함이 있다. 온화한 표정은 늘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목소리는 부드럽다. 명성교회 교인들은 이를 ‘머슴목회의 힘’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삼환 목사는 교인들 앞에서 권위주의를 내세우지 않는다. 부목사를 비롯한 당회 회의에서 늘 강조하는 것도 “목사는 하나님의 종일 뿐”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목회자들이 교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비결이라고 교인들은 전한다.
김삼환 목사의 머슴목회는 고난을 삶으로 체험하며 이미 뼈 속에 깊이 박혔다. 대형교회 목회자면 으레 교인들로부터의 존경으로 고급 아파트나 고급 승용차를 대접받기도 한다. 그러나 김삼환 목사는 농촌 목회자가 도움을 요청할 경우, 아파트 평수를 줄여 거처를 몇 차례나 옮겨 다니면서까지 농어촌교회를 도왔다.
또 국내외 부흥회에서 받는 사례금으로는 주변의 어려운 교회를 돕거나 헌금한다. 초기 교회가 성장할 무렵, 김삼환 목사는 폐결핵으로 하루하루가 최후의 만찬과 같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김삼환 목사는 섬김의 목회를 포기하지 않고 그 명맥을 이어나갔다.
3.섬김과 나눔의 목회
명성교회가 한해 예산중 선교비 40% 원칙을 철저히 고수해나가고 있는 이유는 이같은 김삼환 목사의 머슴목회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대형교회는 교회 유지보수에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가 1년 예산 중 90%를 자체적인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예는 명성교회의 섬김목회의 가치를 더욱 강조해 준다.
명성교회에서 1년간 선교비로 지출되는 금액은 90억원을 넘는데 명성교회는 현재 831개 농어촌교회를 지원하고 있으며 45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밖에 봉사선교 45개 기관, 학원선교 9개 기관, 병원선교11개 기관, 교정선교 7개 기관, 장애인선교 55개 기관에 관여하고 2000년 부활절에 시작한 디아스포라 미션을 2006년 현재 6개 언어로 (중국,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몽골) 약 350여 명이 매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1909년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가 세운 안동성소병원 인수건은 섬김의 목회를 위한 명성교회의 집념이 드러난 사례다. 1994년 모든 목회자들이 병원 매각에 찬성할 때 김삼환 목사 혼자만 반대했던 것이다. 명성교회 창립 25주년 감사예배에 참석한 한완석 목사는 당시 김삼환 목사를 ‘바보 목사’라고 비판(?)했다.
“영남 사람들이 총 동원해서 안동성소병원을 매각하려는데 서울에 있는 명성교회 하나가 그 110억이나 되는 부채를 안으면서 그것을 살려달라고 하더라”
안동성소병원은 신부전증 환자들에게 평생 혈액투석 치료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해외에서 들어온 병원들이 문을 닫을 때에도 안동성소병원은 지금도 환자가 끊이지 않고 있으니 이는 김삼환 목사의 신앙심에서 비롯된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다.
김삼환 목사의 머슴목회는 그의 출생과 자란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삼환 목사는 경북 영양의 유교집안에서 1남8녀 중 막내로 태어나 부친의 극심한 기독교 반대에도 모친을 통해 신앙을 알게 됐다. 17살에 시골교회 종지기를 자원하면서 새벽기도가 곧 삶의 기본이 됐고 이후 지방 고등학교와 경서신학교를 졸업하고 흥구교회, 월전교회, 풍북교회, 해양교회 등의 지방교회를 개척한다.
김삼환 목사는 이 같은 지방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의 대형교회들은 농어촌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목회철학을 갖게 된 것이다. 한완석 목사는 감사예배에서 명성교회 성장의 또 다른 원인을 분석했다. 바로 농어촌교회 돕기와 같은 ‘어려움 가운데 나눔’이 교회성장의 축복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남의 셋방에서 20여명이 창립예배를 드렸던 곳이 한달도 못되어서 자리가 다 찼다. 이것은 정상적인 교회성장이 아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키운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능력이냐 나눔의 능력이다. 명성교회는 창립 5년이 지난 후에 교회사정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농촌교회를 도왔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진리를 실천했던 것이다. 명성교회는 어려운 가운데서 어려운 교회를 섬겼다”
4.하나님이 하셨어요!
그는 교회성장은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김기홍교수와의 대담에서 “교회성장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전재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의 성장이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가면 진행이 잘 되지만 하나님의 뜻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구름이 이동하지 않고 머무는 것을 봅니다. 결국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뜻에 맞을 때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성장이 안 되는 교회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만있어도, 교회가 문을 닫아도 하나님의 뜻일 수가 있습니다. 신사참배 때 문 닫은 교회는 오히려 살아 있는 교회이고, 그 때 문을 연 교회는 죽은 교회였습니다.
명성교회의 성장도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교회의 성장을 회고해 보면 정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생각하지도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 진행하시고 홍해를 열어 역사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몇 번의 이런 귀한 과정을 거치면서 순식간에 3천명이 늘어나기도 하고 한 주일에 2천명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아무리 전도하고 총동원해도 안 늘어납니다. 한동안 그러다가도 다시 생각지도 않는 때에 늘어납니다.
이런 그의 입장은 부흥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았던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와 일치한다. 미국이 낳은 최고의 청교도적 칼빈주의자이자 설교자였고, 18세기 부흥운동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1734년과 35년에 있었던 부흥운동을 기술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에 대한 진실된 기술」(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 in the Conversion of Many Hundred Souls in Northamption)에서 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임을 강조했다.
김삼환 목사는 ‘단지 목회자는 교회성장을 위해 준비 할뿐이고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다’라고 말한다. 이런 교회성장관은 김삼환 목사로 하여금 인위적인 성장지상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고, 이런 교회성장관이 도리어 건실한 교회성장을 이루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새벽기도를 강조했으나 그것을 성장을 위한 의도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명성교회의 성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요 은혜라고 보았다.
III. 목회적 삶과 설교
김삼환목사의 설교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그의 설교에 영향을 끼치는 목회적 삶의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의 설교 속에 내포된 거룩한 감화력(필자는 성령의 기름부음)과 감동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1.목회적 삶
1)기도(Oratio) 생활
종교개혁이래로 서구 기독교신학, 특히 루터교 전통에서 영적 삶의 기본 토대로서 기도(Oratio)는 묵상(Meditatio), 시련(Tentatio)과 함께 강조되어 왔다. 이는 경건훈련의 기본(基本)으로만이 아니라 신학연구의 기초 혹은 바른 신학함의 방법으로 간주되어 왔다. 신학연구의 기초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신학은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학문이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기도는 경건한 삶의 기초로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는 것으로서 경건한 삶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었다. 김삼환목사의 목회적 삶과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기도라는 무기였다. 그는 기도를 강조해 왔고, 기도는 그의 목회와 설교를 이끌어 온 중요한 힘의 원천이었다. 네팔인으로 명성교회의 성장을 연구한 만갈 만 마하르잔은 아시아연합신학대학에 제출한 논문에서 특히 이 점을 명성교회의 특징으로 이해했다.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의 오랜 기도생활은 그의 설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자원이었다.
그는 특히 새벽기도회를 강조해 왔는데, 교회를 설립한 해인 1980년 9월에 20여명으로 특별새벽기도를 시작한 이래로 연 2회(3,9월) 특별 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다. “새벽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35)를 새벽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모범으로 보는 그는 새벽기도를 “승리의 삶을 살게 하는 모든 영적인 은총과 힘을 부여받는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라고 정의한다. 명성교회는 매일 4차례의 새벽기도회를 갖는데(4:00~7:00) 이것은 꼭 새벽기도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기도로 출발해야 한다는 기도 중심의 신앙생활에 대한 강조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벽기도가 그의 목회와 교회성장의 기초였고, 효과적인 행정과 관리, 은혜로운 목회와 감동적인 설교를 가능케 했던 힘의 원천이었다고 판단된다.
2) 묵상(Meditatio) 생활
그의 목회와 설교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한 가지는 ‘묵상’이다. 묵상은 서구신학전통에서 바른 신학함과 경건한 삶을 위해 거듭 강조되어 왔고 이점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유효성은 원리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목회현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김삼환 목사의 경우라고 생각된다. 메디따찌오(Meditatio)라는 말은 다만 묵상만을 의미하지 않고 학문적 성경연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흔히 김삼환 목사의 설교는 이해하기 싶다고 말한다, 그것은 설교자가 성경의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설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오랜 날들 동안 계속된 체질화된 말씀에 대한 연구와 묵상의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삼환 목사는 아무리 바빠도 자신의 영성이나 경건생활을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진력하는데, 2001년 4월 이전의 김기홍 목사와의 대담에서 “금년 들어 신구약을 두 번 통독했다”고 했고, “아무리 바빠도 여기에 매달린다”고 대답했다. 자신이 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는 새벽기도 후 하루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묵상해서 40일에 1독씩하여 졸업할 때까지 성경을 약 30회 통독했다고 한다. 김삼환 목사의 일상화된 성경연구와 묵상이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는 저력이라고 생각된다.
3) 시련(Tentatio)의 여정
서구교회 전통에서 경건훈련과 신학함의 한 방법으로 간주해온 텐타치오(Tentatio)는 ‘시련’(temtation)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가운데서 얻은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의 삶 속에서 경험적으로 반성(reflect)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련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화하고 개인의 삶속에 살아있는 말씀으로 체득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루터는 “시련은 신학자를 만든다”(Tentatio facit theologium)고 했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가 감동적인 힘을 가지는 근저에는 그의 삶의 여정속에서 얻는 시련과, 그 시련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고뇌하고 고투했던 자신의 내적 경험에서 표출되는 설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신앙경험은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신학적 지평을 넓혀준다. 그런 점에서 루터는 텐타찌오를 신학의 역동성 혹은 생동성(Lebendigkeit)을 측정하는 시금석이라고 불렀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에서 나타나는 감동은 그의 삶의 여정속에서 경험한 시련의 결실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지적인 배움이나 사변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현장에서 얻는 고유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경배 교수는 김삼환 목사는 “설교를 스스로의 이야기로 체휼(體恤)하고, 그것을 고백적으로 하는 설교이기에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라고 말한다.
경북 영양군 벽촌에서 태어나 가난과 고난을 경험하며, 계란 몇 알을 팔기 위해 이십 리의 거리를 걸어다니며 살았던 그의 주변적 삶(marginal life), 농촌교회에서의 가난한 생활, 이런 환경에서도 새벽기도를 다니며 주님과 교제하고 교회를 섬기며, 말씀 앞에 고뇌했던 날들이 가져온 결실이라고 본다.
김삼환 목사의 시련의 날들이 그의 영적 풍요함의 근원으로 보인다. 시련(Tentatio)가운데서 얻는 복음에 대한 체험과 복음적 삶에 대한 끊임없는 반추(反芻)는 한 목회자의 행로를 결정했고, 그것이 설교의 틀이자 설교의 가능성과 적용성을 높여준 것으로 보인다.
4)목회자로서의 인격
기도, 명상, 시련과 함께 김삼환 목사의 설교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한 가지 요인은 김삼환 목사의 신앙인격이다. 그는 ‘오직 주님’(sola dominum)의 헌신적인 사역자로서, ‘머슴목회론’을 주창해 왔는데, 이 점은 그의 목회자적 인격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목회자적 인격이 명성교회를 성장시킨 또 다른 요인으로 보인다, 그의 겸손하고, 검소한 생활 태도, 신행일치의 생활은 그의 설교가 호소력을 지니는 힘이 되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여전히 고급스런 운동인 골프를 즐기는 목회자들도 없지 않으나, 그가 골프를 멀리하는 것 자체가 그의 목회자적 인격을 반영한다. 어떤 점에서 설교는 말이 아니라 설교자의 삶이다. 삶으로 선포되는 설교이기에 능력을 지니게 된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가 신뢰를 주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의 목회자적 인격과 삶이다.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에서 교회지도자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난 힘을 지닐 수밖에 없다. 김삼환 목사의 신앙과 인격, 겸손하고 규모있는 삶은 그의 설교를 능력 있게 해 준다.
2.그의 설교에 나타난 특징
김삼환 목사는 한국목회개발원 주최 제15회 전국목회자세미나에서 말하기를 ‘저는 사실 어렵게 설교하는데 듣는 분들이 아주 쉽다고 말합니다. 저는 아주 유식하게 하는데 듣는 분들에게 쉽게 잘 전달이 되는 것 같습니다’고 고백하면서 모두가 은혜 받는 쉬운 설교에 대해서 전국 목회자를 대상으로 강의했다. 그렇다면 그의 설교의 특징은 무엇인가?
1) 난해하지 않는 설교
김삼환 목사의 설교의 한 가지 특징은 쉬운 설교라는 점이다. 그는 설교는 모든 이에게 싶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의 신앙생활에서 얻은 체험적 믿음이었다.
설교를 이렇게 하게 된 동기는 제가 너무 개인적으로 종말론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병들고 가난하고 일에 몰려서 갈급하고 울고, 그렇게 해서 교회에 가면 들리는 메시지가 너무 안 맞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어 쓰고, 영어 쓰고, 뭐 그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설교를 하게 되면 나는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설교를 난해하게 하는 것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거부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는 지식인에게나, 무학자에게나 동일한 의미를 줄 수 있는 난해하지 않는 설교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설교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일차적으로 삶의 경험을 토대로 나온 설교이다. 이 점이 그의 설교의 수용성을 높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김삼환 목사는 평범한 진리, 상식적인 윤리를 진부하지 않게 전달하는 화법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그의 절절한 예화라고 볼 수 있다. ‘성경말씀’이 밥이라면 자신의 체험이나 예화를 반찬으로 삼아 교인들이 맛있게 먹도록 밥상을 차리는 지혜가 있다.
2) 단순성(simplicity)
그의 설교가 갖는 또 한가지 특징은 설교가 단순하다는 점이다. 그의 설교는 진부하지 않고 분명하다. 그는 여러 가지를 말하려하지 않고, 한가지 주제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설교한다. 단순하다는 것은 설교의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한가지 대의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의 설교의 주제는 다양하다. 그의 설교집에 나타난 바와 같이 복음(4권, 160), 예수 그리스도(7, 361), 영생(4, 59), 은혜(5, 95; 7, 371), 믿음(7, 274), 기도(4, 51; 5, 13), 의(4, 115), 영적 삶(4, 264), 감사(4, 302; 5, 173), 사랑(7, 29), 그리고 성도의 생활 등 다양한 주제들이 있으나 그 모든 설교는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설교의 전개는 한 가지 정점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 설교의 단순성이 천박하고 경솔함에 빠지지 않게 한다.
3) 현실성(Relevancy)
그의 설교는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지나치게 내세(來世)지향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현실안주적이지도 않으면서 현실의 문제를 신앙 안에서 용해하는 성격이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설교는 실재적 삶과 관련되어 있는 ‘오늘을 위한 설교’라는 점이다. 현실성이라는 설교자의 설교가 설교를 듣는 청중과의 동일한 삶의 자리를 공유하는 내면적 동의 혹은 합의 (internal consensus)이다. 달리 말하면 김삼환 목사는 오늘의 청중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이 그의 설교의 수용성을 높여주고 있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미국북장로교 선교사이자 설교학을 가르쳤던 첫 교수였던 곽안련(Charles A. Clark)의 견해를 배우고 가르쳐 왔는데, 그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사람을 구원하려는 계획과 목적에서 사람을 감동하도록 권면하는 종교적 강화이다.”라고 했다. 이런 정의가 설교자의 선포적 기능을 강조하지만, 청중의 현실(context)을 고려하지 않는 ‘선포’의 일방성은 설교의 수용성을 높일 수 없다. 설교란 바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으므로 설교는 설교를 듣는 청중과의 케뮤니케이션의 문제를 포함한다. 설교는 인간의 삶의 자리에서 성경적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자의 청중이해는 설교의 효용성을 높여준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가 범상치 않는 힘을 지닌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설교를 단순히 고전적 의미의 일방적 선포로 이해하지 않고, 한국적 정황, 곧 우리 한국인의 내면세계에 도도히 흐르는 한국인의 고유한 삶의 환경과 역사적 자리를 간파하고 한국적 정서에 용해될 수 있는 설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 현실에 대한 그의 감각은 학문적 연구로 얻는 결과라기보다는 그의 삶의 환경에서 체득한 경험적 인식이라고 판단되며, 바로 이 점이 청중을 압도하는 설교를 가능케하는 원천이라고 본다.
4) 복음주의적 설교
물론 김삼환 목사는 자신의 신학을 구체적으로 피력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설교 속에는 자신의 신앙과 신학이 나타나 있다. 그의 설교에 나타난 일관된 신학은 복음주의 신학이다. 복음주의란 평이하게 말해서 역사적 기독교 신앙과 가르침을 중시하면서도 전도나 선교를 강조하고, 신자의 사회적 책임을 경시하지 않는 신앙체계를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주권, 문화적 사명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장신대 김도훈 교수는 ‘복음과 설교’ 논총에서 김삼환 목사의 설교에서 나타난 신학의 특징은 신본주의이다. 김삼환 목사는 인간의 영적위기는 바로 문예부흥으로 인하여 나타난 인본주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삼환 목사가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공산주의 안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으로도 연결되어 진다고 보았다.
그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고 있으며, 그의 설교 속에는 인간의 죄와 비참,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한 구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그는 “빈들의 기적”(마14:13-21)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그의 신앙과 신학관은 복음주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 우리는 심한 혼란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가 너무 많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 신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아브라함 때부터 믿어오던 순수한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말씀 위에 세워졌던 이 교회가 말씀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어려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신학적으로 황폐하여 대부분의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는 원인중의 하나는 새로운 신학이론의 영향입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셨겠지만 우리 나라에도 한때 ‘자유주의 신학’ 혹은 ‘혁명신학’이라는 것이 교계를 한바탕 휩쓴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들과 신학교 교수들이 대립하고.... 교수직에서 해임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핵심은 바로 ‘다원주의 신학’입니다. 다원주의 신학에서는 꼭 기독교에만이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다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불교에는 불교대로 구원이 있고, 유교에도, 힌두교에도, 이슬람에도, 통일교에도 나름대로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그의 복음주의 신학적 건실성은 흉(凶)과 화(禍)를 피하고 길(吉)과 복(福)의 추구를 신앙의 이상으로 삼는 기복신앙이나, 주관적 경험이나 체험을 중시하는 신비주의, 그리고 자유주의나 급진주의에 빠지지 않게 한다. 도리어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중시하면서도 차원 윤리의식, 기독교적 가치, 공의, 기독교 본래의 이타적(利他的)봉사와 문화적 소명을 경시하지 않게 한다. 명성교회의 장학관 설립하고(1987), 영주에 있는 여자중고등학교의 인수(1991), 안동 성소병원의 인수(1994),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사역(1996),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1400여 객석을 갖춘 ‘월드글로리아센터’개관(2006) 등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 주제 중심의 설교
그의 설교 형식은 주로 제목설교(topical preaching)라고 불리는 주제중심의 설교로 볼 수 있다. 이런 설교방식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초대교회 교부들, 특히 오리겐에서 어거스틴에 이르기까지 이 설교가 유행했고, 1900년대를 전후하여 미국교회에서 유행하던 설교 방식이었다. 이 설교는 설정된 주제를 구약과 신약을 통해 제시하고, 때로 예화가 도입되었다. 이런 방식의 설교는 성경신학적 이해가 결핍된 이들에게 주제중심의 제목설교는 상당한 호소력을 지닌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는 형식면에서 주제중심의 설교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삼환 목사는 제목설교를 지향한다 해도 이런 형식을 탈피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설교가 성경적 설교(Biblical sermon)로서 강해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4.김삼환 목사의 설교 본문 분석
김삼환 목사의 설교에서 구약을 본문으로 한 경우가 타 설교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이 점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가 1988년부터 2005년까지 주일 낮 예배시에 선포한 설교를 모아 출판한 10권의 설교집, 곧「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1988),「장막터를 넓혀라」(1989),「바로 바라보라」(1990),「하늘의 별을 보라」(1991),「네 마음을 지키라」(1992),「꿀을 먹으라」(1993),「예수께로 가라」(1994),「여호와를 기뻐하라」(1995), 「올라가자, 벧엘로!」(1997), 「주님의 옷자락잡고」(2000)에는 총 347편의 설교가 수록되어 있는데(이 중에 17회는 본문을 두 군데서 선택하였음), 구약 본문이 122회, 신약 본문이 242회였다. 아래의 표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구약본문에 기초한 설교가 33.5%, 신약설교가 66.5%에 달한다. 구약성경 중에는 시편(27회), 창세기(18회), 여호수아(8회), 이사야(8회) 순이고, 룻기, 느헤미아, 전도서, 에스겔서와 소선지서는 거의 설교되지 않았다. 신약의 경우, 빈번한 본분은 마태복음(52회), 누가복음(42회), 사도행전(35회), 요한복음(29회), 히브리서(12회) 순이며,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요한일서, 유다서의 본문을 설교한 경우는 없다. 물론 이것은 출판된 10권의 설교집(1988년부터 2005년까지 설교한 주일 낮 예배 본문)을 근거로 한 것이므로 절대적이지 않다. 김삼환 목사의 경우 비록 한 본문을 선택했다할지라도 그 본문에 메이지 않고 성경 전체의 교훈을 참작하려했으므로 위의 분석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의 타 설교자들에 비해 구약본문을 설교한 경우가 높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된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를 분석하기 위해서 최근 주일예배시간에 했던 설교 한편을 간추려 보았다. 한 목사의 설교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의 설교문을 검토 분석해야 그의 바른 설교세계를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삼환 목사의 설교 한편이 어느 정도 그의 설교의 특징이나 그의 설교의 신학을 엿볼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왜냐면 설교의 구성이나 형태 그리고 전개 방법론의 칼라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 분석
2006. 05. 07 주일설교문
제목: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
본문:열왕기상 18:3-4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 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인을 가져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러”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이 세상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왜 믿음입니까? 우리의 생명보다도 더 귀하고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더 귀한 것이 믿음 아닙니까? 성가대에서도 찬송을 했습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믿음은 금보다 귀합니다. 귀한 것보다 더 귀합니다.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도록 귀한 것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는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귀한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찬송가에 있는 대로 우리 모두를 복되게 합니다. 우리 모두를 좋게 합니다. 우리 모두를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라고 나옵니다.
저를 믿는 사람은 멸망치 않습니다. 좋은 것을 얻습니다.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모든 일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불행한 일은 하나도 없게 합니다. 멸망치 아니하리라, 불행이 없으리라, 여기는 저주, 멸망, 부끄러움, 불행, 파멸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파멸이 없는 길, 불행과 저주와 죽음이 없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의 길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그런 모든 일에 우리는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모두 다 그런 말을 합니다. “안 믿어도 잘 되는데, 뭐 잘 사는데...”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129편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지붕위에 풀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잠깐의 풀처럼 무성하지만, 시편 1편에 있는 것처럼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영광, 인기, 믿음을 떠난 모든 성공은 바람에 나는 겨, 지붕위에 풀과 같습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잠깐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축복, 은혜, 성공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는 믿음을 지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오바댜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며 오바댜같이 용기 있는 믿음의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천국 가는 사람은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지옥 가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불행의 길로 죄악의 길로 가는 사람은 어떤 결단과 용기가 전혀 필요 없습니다. 술 먹는데, 죄 짓는데 무슨 용기가 필요합니까? 이 세상으로 가는 길은 아무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생활은 용기, 결단이 필요합니다. 요령껏 살고 적당하게 살면 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어느 편에도 설 필요가 없습니다. 손해나고 자기에게 불리한 길은 안가면 됩니다.
그때그때 알아서 요리조리 움직이면 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렇게 해서는 못 들어갑니다. 요리 조리 가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적당하게 사는 사람은 천국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한 길로 가야 됩니다. 한 믿음을 지켜야만 갈 수 있습니다. 멸망의 길을 믿음의 사람은 가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믿음의 길만 좇아갑니다. 마귀와 타협하는 사람은 영생이 없습니다.
모두 다 가는 길입니까? 우리는 그런 길로 갈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좋아하는 길입니까? 모두 다 욕한다고 욕을 하며, 모두 다 넓은 길로 간다고 넓은 길로 가십니까? 그것은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악에서 떠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의와 싸워서 이겨야 하며, 내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선한 일, 믿음의 길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며칠 전에 어떤 장로님이 저와 식사를 하면서 그럽니다. “목사님! 제가 목욕탕에 갔었는데 그 분은 국정원장, 서울시장, 국회의원도 많이 하셨는데, 때를 밀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목욕탕 안에 다 들리도록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 이 구원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 목욕탕 안에서 찬송을 부르는 일은 놀랍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는 사람은 모두 다 숨기고 적당하게 살아갑니다. 지난번에 하인즈 워드가 왔었는데 얼마나용기가 있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그런데 살았지만, 우리 어머니는 기도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제가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저도 늘 기도합니다.” 여러분! 인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인기에 집착하지 이런 일을 경홀히 여기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기를 주신 분도, 성공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기회에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자의 길은 열려질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 2005년 2006년 겨울 농구 결승전에 삼성이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준호 집사님이 감독인데 모든 분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첫 마디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용기입니까? 모두 다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집사님은 “삼성에는 얼마나 훌륭한 선수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위대하신 우리 이회장님 덕택이고 끊임없이 우리를 밀어주시고 격려하신 덕택입니다.” 이렇게 삼성 회장님을 높이면 좋지 않습니까? 그러면 뒤로 봉투가 두둑하게 들어 올 텐데 그 말은 안하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순간순간 용기가 필요하고, 이 용기가 우리를 복되게 합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믿음의 복을 유업으로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천국은 그냥 못갑니다. 상처가 있어야 갑니다. 아픔을 통과한 사람이 갑니다.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지키는 자에게는 땀, 피, 눈물, 아픔, 고통이 있습니다. 그 열매로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미국에 가면 우리나라의 국립묘지와 같은 국립묘지가 알링탠, 워싱턴에 있습니다. 이 국립묘지는 미국 사람들과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찾아 가는 곳입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FREEDOM IS NOT FREE"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자유는 그냥 공짜로 쉽게 얻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많은 누워있는 젊은이 덕분에 지금 미국의 인구가 세계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으며 자유를 지킬 수 있습니까? 자유를 위해 싸움하지 않는 나라는 자유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자유를 위하여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나라는 자유가 소중한 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남이 가져다 준 이 엄청난 희생 때문에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지키는 용기 있는 민족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이렇게 어느 나라보다도 힘이 있게 성장한 것은 설교를 잘하고, 목회를 잘하며 요사이 목사님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일제 시대 때 공산주의와 싸웠던 그리고 수많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 얼마나 용기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엄청난 고문, 감옥에서 말할 수 없는 핍박, 죽임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나라의 권력자들, 학자들, 모든 종교들이 모두 다 일본에 싹싹 빌고 일본이 하라는 대로 했지만, 끝까지 이 믿음 지키기 위해서 피 흘린 분들은 한국의 크리스챤들이었습니다. 유명한 언론들도 모두 다 일본 편에 서서 글 쓰고, 모든 학자들, 힘 있는 사람들이 모두 넘어갔지만, 교인들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고난이 왔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겼습니다. 피 흘렸습니다. 어떤 분은 일본 국회에 가서 “너희들 망한다. 하나님 없는 너희들! 하나님 교회 핍박하는 너희들은 망한다.”를 뿌리고 감옥에 들어간 분도 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능력 있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을 지키고 엄청난 매를 맞으며 고통당하므로,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자유로운 예배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유는, 축복은 그냥 얻는 것이 아닙니다. 시시한 면류관도 그냥 얻는 것이 아닌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영적 싸움을 싸울 때만이 그 대가를 우리가 얻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목회를 40년 전에 하면서 주일마다 설교를 하는데도 교인들이 예배드리는 사이에 많이 끌려 나갔고, 어머니들을 남자들이 와서 그냥 자기 부인 머리채를 붙잡으며 나가는 것도 예배드리면서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믿음 지킵니다. 아무리 맞고 쫓겨나도 그렇게 해도 믿음을 지킵니다. 수많은 종손들이 친척들 앞에서 비참하게 두들겨 맞아도, 자기 믿음 지켜서 그 집안을 구원했습니다. 여러분! 믿는 종손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국동 윤보선 대통령도 종손이지 않습니까? 온 집안에 종손에게 주는 혜택을 모두 다 포기하고 ‘나는 예수 믿어 구원 받겠다.’라고 결단한 사람과 용기 있는 사람이 영생을 누리고, 자유를 누리며 자자손손 복을 받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은 내가 지키는 것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이 한 분 계시는데 지금 시내 연동교회라고 하는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하고 같이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목사님은 아버님이 목사님이십니다. 훌륭한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군에 입대를 했는데 헌병대에 헌병이 되었습니다. 헌병은 군기가 얼마나 센지 주일날 전부 순찰을 해야 하는데 첫 부대에 배치를 받아 가서 첫 번째 이야기를 이렇게 했습니다. “저는 교회에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창조 이후로 헌병이 교회에 갔던 일은 없느니라.” 그렇게 선포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러나 그것은 높은 분의 선포이고 저는 교회에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냥 비참할 정도로 맞았지만 그러나 또한 갔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또한 갔습니다. 나중에는 자유를 주더랍니다.
.......
오늘 본문에는 아합 시대에 궁내대신 오바댜라는 분이 있습니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지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릅니다. 때에 따라서는 이 세상 권력도 하나님의 나라를 핍박하고, 한 순간에 바뀌어 집니다. 하나님을 믿던 이 나라에 7대 왕인 아합 왕 때에는 그의 부인이 저 엘바알의 딸 이세벨이라는 우상 숭배하는 여자가 와서, 서서히 남자를 움직이고 법을 바꾸어서 하나님 믿는 제사장들 선지자들을 모두 죽입니다. 모두 다 핍박합니다. 법을 만들어서 요리조리 교인들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들이 이 산 저 산으로 피하고 있을 때, 오바댜는 하나님을 못 죽이고 궁내대신 장관 자리에 그대로 둡니다. 그래서 이 오바댜는 자기만 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보내어서 고통당하는, 이 굴 저 굴로, 이 산 저 산으로 헤매는 주의 종들을 오십명씩 자기가 아는 토굴 속에 숨겨 놓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물을 주었다는 말씀이 여기에 나옵니다. 백 명의 선지자를 계속해서 오바댜가 보호해 줍니다.
들키면 어떻게 됩니까? 적당하게 “각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쟁이들 없애야 합니다. 큰 교회들 손 좀 봐야합니다.” “맞습니다. 각하! 옳습니다. 만수무강 하옵소서, 길이길이 영광을 누리옵소서.” 그러면 자기가 높은 자리라도 하나 올라 갈 수 있을 텐데, 아닙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그 시대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어디서 살든지 비즈니스든지, 정치이든, 과학자든, 누구든 간에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사는 결단을 가지고 행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항상 용기를 가져야 됩니다. 이런 것 뿐 만 아니라 범사에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도 용기입니다. ‘주여! 나는 내일부터 새벽기도 나가겠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 좋은 일에 용기를 가지십시오. 미움도 용기입니다. 부부간에 싸우는 것도 용기이지만, 사랑하는 것은 더 큰 용기입니다. 저도 결혼하기 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니까 그 말 할 여가도 없고, 그 말이 또한 안 나옵니다. 한 십여년 동안 사랑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가 안 나옵니다. 그래서 부산에 집회를 갔다가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은 그 말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40분 동안 전화를 하는데도 그 말이 안 나옵니다. 사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40분 되었을 때 제가 용기를 가지고 “여보! 사랑해요” 그러니까 처음 듣는 말이니까 한참을 듣고 생각하더니 “나도요” 그럽니다. 자기도 용기가 없어서 그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용기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좋은 일에 용기를 가지십시오. 청교도들은 용기를 가지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바다를 건넜습니다. 102명이 많이 희생을 당하고 미국 보스턴에 도착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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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우리가 용기 있게 싸워야 할 오늘 우리의 영적 싸움의 대상들을 열 가지로 말씀을 드릴 텐데 잘 기억하셨다가 영적 싸움에서 하나 하나 승리하고 적당하게 적을 향하여 타협하지 말며, 성도는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첫째, 이단입니다.........................
둘째,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셋째, 사상적으로 침투합니다. 잘못된 사상, 하나님이 없는 사상이 많습니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는 사상입니다................
넷째, 때에 따라서는 어떤 힘으로 교회와 성도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권력이나 언론이나 이 세상에 있는 다양한 힘을 통하여 교회를 공격할 때가 많습니다...........
다섯째, 우상숭배입니다.............
여섯째, 죄악에 대한 유혹입니다............
일곱째, 물질주의, 현실주의, 이기주의, 출세주의, 권력만능주의, 인기주의 이런 주의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여덟째, 문화적으로도 너무 많은 어두움의 세력은 교회와 성도들과 우리를 넘어뜨립려 합니다. 음악이라고 모두 다 좋아하면 안 됩니다..........
아홉째, 쾌락주의입니다. 온갖 이 세상에 술 취하고 방탕하며, 음란하고, 오락과 도박.........
마지막으로 정신적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어두움의 세력이 있습니다. 미움, 분열, 원망, 불평, 의심, 염려, 걱정, 두려움, 낙심, 시기, 질투가 정신적으로 우리를 침투합니다. ..........
따라 하십시오, “나는 걱정하지 아니하리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낙심하지 아니하리라! 염려하지 아니하리라! 미워하지 아니라하라! 할렐루야!” 그런 고민되는 시간 있으면 찬송을 부르십시오. 저도 잠이 안 올 때가 있습니다. 걱정이 될 때, 잠이 안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일어나서 기도합니다. “네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버리라 했는데 주여 염려를 맡깁니다. 이 모든 문제를 맡깁니다.” 그러면 잠이 한 순간에 옵니다. 염려를 맡깁니다. 잠 잘 자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은 누가 해 주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해야 됩니다. 이 모든 영적 관리, 용기 있는 결단은 내가 하는 것이지 누가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에 승리자가 가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 언어는 간결하며 언어 구사력은 뛰어나다. 그는 말의 힘을 감각적으로 감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설교를 노래로도 한다. 그래서 설교의 감동이 증폭되며, 메시지가 노래를 통해 몸으로, 삶으로 스며들어 회중이 은혜를 받아 몸살이 날 정도이다. 그의 설교는 성도의 일상생활 속으로 구석구석 스며들어 은혜되고 뒤틀린 삶의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 해법의 가능성과 목표를 복음적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성서를 연결시켜주어, 삶이 말씀을 통해 조명되게 하고, 말씀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성서와 삶은 그의 설교 속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다시 태어난다.
1)설교 언어 표현
김삼환 목사는 설교를 위한 낱말을 고르고 언어를 구사하는 데 대단히 신경을 쓴다. 그는 제목을 정하는 데만 몇 시간을 투자할 때도 있다고 털어놓는다.(10권 중, 13) 그는 설교를 다양한 문장으로 시작함으로써 회중을 집중시킨다.
①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회중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풀어나가게 한다.
“이 시대는 참으로 위기의 시대입니다.”(10권 중, 118) “오늘 이 시대는 너무 빨리 변하는 시대입니다.”(10권 중 168) “이 시대는 정신적인 에이즈가 만연하고 있습니다.”(10권 중, 172)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위 설교문 중)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왜 중요합니까?
②새로운 명제를 던짐으로써 신앙의 핵심 내용을 이해, 요약하게 한다.
“기독교는 살리는 종교입니다.”(10권 상, 26) “가정은 정원과 같이 꾸며야 합니다.”(10권 중, 30) “하나님 나라도 가정입니다.”(10권 중, 33) “기독교는 가정의 종교입니다.”(10권 중, 35) “주일은 받는 날입니다.”(10권 중, 43) “기독교는 사람을 귀하게 봅니다.”(10권 중, 76) “기독교는 신비한 종교입니다.”(10권 중, 104) “사람은 신비한 집과 같습니다.”(10권 중, 229) “믿음은 금보다 귀합니다”(위 설교문 중) “믿음의 사람음 용기가 필요합니다”(위 설교문 중)
③어떤 사태에 대한 좋고 나쁨을 가감 없이 표현함으로써 목회자의 인격에 감성적으로 접근하게 한다.
“목회자는 교인이 잘 도면 참 좋습니다.”(10권 중, 12) “그렇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위 설교문 중) ”여러분도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의 언어 사용은 풋풋하고 맑으며 무엇보다 친근감이 돈다. 대개는 설교의 제목만 보아도 ‘아, 설교 제목이구나’를 짐작하는데, 그의 설교 제목은 제목만 보아서는 설교인지 아니면 수필이나 동화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포착한 것들이 많다. “첫째와 둘째”(3권, 76-84), “수술 환자”(3권, 313-323), “해결사”(3권, 334-344), “이사”(3권, 461-470), “하늘의 별을 보라”(4권, 372-381), “야곱의 직장생활”(5권, 57-66), “작은 여우”(5권, 145-152), “성전에 심긴 나무”(5권, 160-165), “쟁기를 잡은 자”(5권, 178-185), “별과 같이”(5권, 267-273), “이 기쁜 날”(5권, 351-359), “부드럽게 말하라”(10권 중, 11-28), “바닷가에 오신 주님”(10권 중, 45-54) 등.
이러한 일상어가 예수의 비유에서처럼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언어로 변한다.
2)다양한 화법
그는 다양한 화법을 통해서 설교에서 말을 리듬감 있게 구사한다.
①명령형을 사용함으로써 회중에게 말씀이 압도적으로 들리게 한다.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1권) “장막터를 넓혀라.”(2권) “바로 바라보라.”(3권) “하늘의 별을 보라.”(4권) “네 마음을 지키라.”(5권) “꿀을 먹으라.”(6권) “예수께로 가라.”(7권) “여호와를 기뻐하라.”(8권) “좋은 일에 욕기를 자려라”(위 본문중) 목사가 성도들에게 내리는 명령이라기보다는 주님의 명령의 말씀이며 목사는 이 말씀을 대언한다는 자세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향해 내리는 명령이 아니며 이 말씀에 대한 순종은 어디까지나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그는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②청유형을 사용함으로써 회중으로 하여금 자발성과 매력을 유도한다.
“올라가자, 벧엘로!”(9권) “기도하러 갑시다.”(3권, 103-111) “예루살렘으로 가자.”(3권, 112-121) “이런 믿음으로 삽시다.”(4권, 254-263) “왕께 경배하세.”(5권, 342-350) “우리 사랑합시다”( 본문 중)
③고백형을 사용함으로써 말씀의 인격성을 드높인다.
“사랑이 제일입니다.”(5권, 67-78)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5권, 101-107) “감사, 찬송 드립니다.”(5권, 173-177) “두려워 하지 아니하리라!” 걱정하지 아니하리라! 염려하지 아니하리라!(위 본문 중)
④대조법을 사용함으로써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스스로 알게 한다.
“길은 고속도로, 삶은 좁은 길.”(4권, 337-347) “하늘같이 넓은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요, 지붕같이 조그만 은혜는 부모님의 은혜입니다.”(10권 중, 277) 그는 부모님의 은혜와의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하고 드높인다. 하나님 앞에 겸손을 말하기 위해서도, “나를 크게 하면 모든 것이 작게 보이지만, 나를 작게 하면 도두가 커 보입니다. 하나님 앞에 좀 작아지시기 바랍니다. 부모님 앞에 작아지시기를 바랍니다.”(10권 중, 278)
⑤앞의 부정과 뒤의 강한 긍정은 말씀의 초점을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
“여러분, 교회에 음악이 있어서 우리가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우리 영혼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10권 상, 41) “모두 다 가는 길입니까? 우리는 그런 길로 갈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좋아하는 길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길이 아닙니다”(위 본문 중)
⑥역설은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길이 다름을 알리는 가장 좋은 화법이다.
“목회에 소질이 있거나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목회를 잘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기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우리 영혼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10권 상, 62)
⑦반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향해야 함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제가 설교를 잘해서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10권 상, 232)
⑧그의 설교언어의 백미는 은유와 비유를 자주 사용된다는 데 있다.
가령, “주님의 옷자락 잡고”(10권), “별과 같이”(5권, 267-273) 등이 있다. 은유와 비유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관습화된 신앙 이해를 조정하고 전도(顚倒)한다.
⑨설교를 노래로도 전한다.
그는 설교하면서 성도들이 즐겨 부르는 두세 편의 찬송가 혹은 복음성가를 부른다. 잘 부르는 가수 보다 더 가슴에 와 닿게 부름으로써 설교의 로고스(logos)에 파토스(pathos)를 결합시켜 회중의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도 술렁이게 한다.
3)김삼환 목사의 설교 신학
그의 설교 전체의 주제를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설교와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설교와 신학이다. 설교 중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는 물음이 가장 많이 반복된다. 가령,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10권 상 43)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10권 상, 174)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이 시대에 성공적이고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10권 중, 142)
하나님 중심의 삶의 자세는 목사에게만 요청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삶의 근본 태도이다. 성도란 어려움을 당할 때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이다.(10권 상, 30) 성도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정치를 해도 주님을 높여야 하고, 학자의 길을 가도 주님을 높여야 하고, 사업을 하든지 공무원이 되든지, 운동을 하든지 연예인이 되든지, 집에 있든지 들에 있든지, 작은 일을 하든지, 주님을 높이는 마음을 갖고 살면 하나님께로부터 보응이 옵니다.(10권 상, 53)
모든 인생이 귀중하게 여기는 행복과 성공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다.(10권 상, 246)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리스도적으로 규정하는 근본 요소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인간학적 소질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이다. 인간의 존재는 인간의 행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잘못해도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고, 내가 잘해도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 으로 가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하든 악하든, 불의하든 의롭든, 누구든지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워지고, 그분의 은혜로 이 땅에서 잘 살다가, 그분의 은혜로 이 땅을 떠나 천국으로 가는 것이 바로 성도의 길이라는 것입니다.(10권상, 13)
인간의 존재는 윤리적으로 결정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결정된다. 따라서 믿음은 윤리적 덕목이 아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구하는 세상 지식은 초조와 불안감만 증진시킨다. 세상의 지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을 전혀 알지 못한다.(10권 상, 187) 따라서 김삼환 목사에게는 세계를 아는 것도, 나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리스도를 바로 믿으면, 그 한 분을 믿는 믿음으로 온 세상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10권 상, 189) “행복한 삶(well-living)은 ‘예수를 잘 믿음’(well-believing-in-Jesus)에 있다.
전체적으로 그의 설교는 기쁨과 용기와 희망과 자신감을 북돋운다. 한마디로 은혜가 넘치며, 따라서 그의 설교를 들은 이들은 얼굴에 화평과 화목이 가득하고 소망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여 복을 받고 감사하며 찬양하며 세상의 화해를 위해 사는 삶(10권 상, 241-42)이다.
맺으면서
김삼환목사의 설교는 복음주의적 신앙과 신학 위에서 성경 계시의 말씀을 오늘의 일상의 삶속에 적용시키는 감동적인 설교자라는 점에는 의의가 없을 것이다. 그는 성경의 세계를 오늘의 한국적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선포했다. 그의 목회적 삶의 여정은 그의 설교의 수용성을 높여 주었고, 목회자로서 그의 건실한 삶의 방식, 곧 겸손, ‘오직 주님’의 전적인 헌신, 윤리적 생활과 모범은 목회자로서의 그의 설교에 대한 믿음을 더해 주었다고 평가된다.
외람된 말이지만 앞으로도 변함없이 모범적인 삶을 지향하고,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와 가까이 하며, 겸손한 말씀의 사역자로서 변함없이 존경받는 목회자이자 설교자로 우리 기억 속에 소중하게 간직되기를 소망한다. 한국의 목회자들이 권력과 명예와 물질로부터 자유한다면 이 시대의 하나님의 종으로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소고를 통해서 한 시대 하나님의 쓰임 받는 목회자의 삶과 설교세계를 평가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겠지만, 선지 동산에서 설교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한 하나님이 맡겨주신 성도들 앞에 서야하는 목사로서 따르고 싶고 배우고 싶은 제자의 마음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서 한 사역자의 삶과 그의 설교세계를 배우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설교사역에 쓰임받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김삼환 설교집 3권 ‘바로 바라보라’ 생명의 말씀사, 1993.
김삼환 설교집 4권 ‘하늘의 별을 보라’ 생명의 말씀사, 1993.
김삼환 설교집 5권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말씀사, 1993
김삼환 설교집 7권 ‘예수께로 가라’ 생명의 말씀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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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환 설교집 10권 상 ‘주님의 옷자락 잡고’ 도서출판 실로암, 2003
김삼환 설교집 10권 중 ‘주님의 옷자락 잡고’ 도서출판 실로암, 2003.
김삼환 강해설교집 ‘사무엘’ 도서출판 오직주님, 1999.
김삼환 강해설교집 ‘사무엘 강해’ 도서출판 실로암, 2002.
김삼환 새벽부흥 이야기 설교집 ‘새벽 눈물’ 교회성장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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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표외 14인 한신목회 개발원주최 ‘ 15회 전국목회자세미나‘ 쿰란출판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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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종 외 ‘이렇게 설교해야 교회가 성장한다’ 복음주의 목회신서, 도서출판 하나, 1994.
그 외 명성교회 홈페이지와 인터넷 자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