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려내는 언어의 힘  

약  3:1-12                            

단편소설 '깊이에의 강요'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 
주인 공으로 한 여류 화가가 열심히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평론가가 작품을 구경한 후 그림에 대하여 평가를 하기를 "당신 작품은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도 와 닿으나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 는 말을 합니다.
이 화가는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 와 닿는다는 말은 다 잃어버리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에만 마음이 걸렸습니다. 그녀는 깊이라는 두 글자에 집착을 합니다.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깊이'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자신의 몸을 술과 약물로 혹사시킵니다. 아름다웠던 모습은 고뇌와 집착으로 엉망이 되어갑니다.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린 그녀는 결국 '깊이' 없는 자신의 그림들을 전부 찢어버리고 1백 39m의 높이에서 깊이를 알기 위하여 몸을 아래로 던져버렸습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작품 이야기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이라는 것은 한 번 말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씨가 됩니다. 그런데 그 씨가 어느 때는 사람에게 활기와 용기, 힘, 기쁨, 소망, 행복을 주는 생명의 씨 역할로 심어질 경우가 있고 어느 때는 절망과, 우울, 슬픔, 고독, 포기 등의 사망의 씨로 심어질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의 씨는 사람을 살리는 강한 힘을 가질 수도 있고 말의 씨는 사람을 죽이는 강한 힘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언어가 있고 사망의 언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 야고보가 삼십년 동안 예루살렘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결국은 말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정의 불화도 말 때문이요, 교회의 분열과 다툼도 결국에는 말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말에 대하여 비유하고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말에 대한 교훈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말에 실수를 줄이도록 힘써야 합니다.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말에 대한 실수를 줄여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말에 실수가 많으면 흠이 많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말에 실수를 줄이도록 해야 합니다.


▶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인격도 있고 재산도 있고 명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훌륭한 것을 가졌다고 해도 어쩌다 말 한마디 잘못하고 나면 그 훌륭한 것들을 다 잃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바친 오랜 세월과 각고의 노력이 말 한마디 때문에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옛말에도 말에 대한 격언이 많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말 한마디로 공든 탑을 무너뜨린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어떤 가정에 결혼 한지 10주년을 맞이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는데 무엇을 가지고 싶어? 이번에는 큰마음 먹고 준비할 테니 부담 없이 말해봐.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은 달랐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오늘 밤 집에 와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두 시간만 들어 주면 그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에요.

남편은 아내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 오늘밤 내가 집에 일찍 들어가서 당신이 하는 말 원 없이 들어 줄 테니 < 그건 그거고 선물은 무엇을 가지고 싶은가?>

아내는 선물은 사양하고 오늘밤 원 없이 나의 이야기를 2시간만 들어 달라는 것인데 2사간 동안은 내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남편이 할 말이 있다면 그래 맞아, 옳아, 그렇지 세말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어렵지도 아니한 것 그런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딱 2시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 결혼 10주년에 남편이 꽃다발 하나를 가지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베란다에 커피를 끌 여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내- <여보! 우리 처음에 기차에서 당신하고 만났지요?>

남편- <아니지. 버스에서 만났지? 또 알지도 못하면서 또 우길 거야. 당신은 너무         모르면서 고집만 센 것이 탈이란 말이야.>

아내-<여보 잊었어요. 오늘밤은 두 시간만 맞아, 옳아, 그렇지 하기로 했잖아요.>

남편- 그런데 당신이 잘 모르면서 고집만 부리잖아.

아내- 여보! 오늘밤은 무조건 당신이 나에게 주는 선물은 2시간동안만 그래 맞아         옳아 그렇지 세 마디만 하는 거잖아요. 잊지를 마세요.  남편- 그래 알았어.

아내-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먼저 내게 프로 포즈 했지요?>

남편- <아니지 당신이 먼저 결혼하자고 편지 보냈잖아?> 그것도 기억 안나는거야.

아내- <여보. 여보. 제발 두 시간만 맞아, 옳아, 그렇지 하기로 했잖아요.>

남편- 남편은 울화가 치밀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결혼 10주년 선물로 주기로 한 말이기 때문에 참았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아무 말도 않고 두 시간만 들어 주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아내가 그 동안 마음에 쌍인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않고 들어 주던 남편은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그리고 흐느끼기 시작을 했습니다.

▶► <내가 그 때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그렇게 몆 일씩 잠을 못 잤나?.

그 때 그런 일 가지고 그렇게 결혼을 후회했나? 그렇게 내가 무심코 한 말이 그토록 당신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아프게 했었나?

무심코 던졌던 말이 당신의 가슴에 그렇게 비수로 꽃혀 상처를 입고 살아왔는가? >

결혼 10년 동안 아내가 남편이 던지는 말의 폭력 때문에 고통당하고 살아온 것을 깨닫게 되어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 때문에 아내의 가슴 알이 하는 10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답니다.


▣ 이제는 남편이 1시간동안 이야기 하고 아내가 무조건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두 시간 아내의 말을 듣고 난후에 남편도 아내에게 그동안 아내의 말 때문에 힘들었던 것을 고백했습니다. 아내는 시댁이나 처가모임이나 친구들 모임 때로는 직장 동료와 상사들 모임에 함께 나가면 항상 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남편이 생각할 때는 아내의 말이 논리도 없고 쓸데없는 말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미워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함께하는 모임만 돌아오면 남편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내 없이 모임에 나갈 수도 없고 모임에 나가면서는 오늘 당신은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만 모임에 참석하면 무심코 내뱉는 아내의 말 때문에 남편은 가슴에 열불이 끌어 올랐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에 대한 실수 때문에 아내를 죽이도록 미워하는 마음과 아내에 대한 분노 심을 가지고 아내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외롭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아내도 놀랬습니다.


◈ 이 부부간의 10년이란 결혼생활은 말 때문에 피차 가슴에 멍든 세월을 보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살아온 것에 대하여 피차 잘못을 뉘우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부부는 결혼 10 주년에 가장 값진 선물을 주고받는 행복한 밤이었다고 합니다.

▶ 성경에는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목회 가운데 말 때문에 성도들이 상처를 받고 시험 들고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많이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말에 대한 실수를 줄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 세상을 죽이는 사망의 언어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야고보는 사람의 혀를 여러 가지로 비유를 했습니다.

(1) 배의 키와 같다고도 비유했습니다.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 요즈음 여격 선도 엄청나게 커서 수백 명의 사람이 타고 물건을 실러 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여객선도 작은 키 하나로 배의 방향과 전체를 안전하게 항구로 운전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 뱉는 말이 바로 이 배의 키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의 말은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람을 해치게 하며 세상을 파괴하는 사망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방과 비난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2) 혀는 마치 불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 불이 한번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갑니다. 작은 불씨가 엄청난 재산과 생명을 해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한순간의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말 한마디의 여파는 엄청나게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심코 내뱉는 말은 불을 지르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무서운 것이 말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거짓이나 비방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망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그로 인해 파급되는 영향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치권에서 퍼트리고 책임을 안지는 말들 때문에 결정적으로 상처를 입고 인격과 생명을 다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3) 혀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3:8-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것들이 잘 사용하면 특효약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생명을 죽이는 독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은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언어가 되기도 하지만 언어를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독처럼 사망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은 손이 없지만 손이 하는 일을 하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리고 말은 손을 넘어서기도 한다.  왜냐하면 손은 가까이 있는 사람만 해치고 죽일 수 있지만 말은 먼데 있는 사람까지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보다 말이 더 무섭다는 것입니다.

▶ 말은 쏜 화살보다도, 휘두르는 칼보다도 더 무섭다는 것입니다. 화살이나 칼은 방패로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이 쏘아대는 살상력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성도들의 말은 어디를 가든지 약이 되도록 해야지 독이 되도록 하면 안 됩니다.

▣ 노회나 총회에 참석을 해보면 회중이 회장에게 발언하는 것이 공격적이고 심문하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자기의 당회장이 노회장인데 그 교회 당회원이 발언을 하면서 따지듯이 추궁하듯이 발언하면 측은하고 한심스럽게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 교회에서 당회나 제직회나 공동회를 열면 발언이 거칠어서 꼭 싸우러 나온 사람들같이 따지고 추궁하고 심문하듯이 발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면서 은혜 떨어진다고 회의는 아예 참석하지 아니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교인들의 발언이나 말의 내용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를 것을 기대하면서 참여한 성도들이 수준이하의 발언을 들으면 그런 회의에 참석하려 하지를 아니합니다.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말할 때에도 먼저 상대방을 존중해 주고 자신의 의사를 발언합니다.  그 의견도 좋은데 저는 이렇게도 생각한다던지 혹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더욱 좋은 뜻이 있었는지 ?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상대방의 의견과 생각은 무시하고 자신의 발언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자신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4) 혀는 길들여져야 합니다.

본문 7-8절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이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
▣ 가끔 태국이나 관광지에 가보면 동물 쇼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 쇼를 하는데 보면 조련사가 코끼리 등에 타고 관광객 앞에 오면 등치 큰 코끼리가 인사를 하고 춤을 추면 사람들이 돈을 코에 물려주면 돈은 등에 탄 조련사에 주고 관광객에게 절을 하고 춤을 주고 재롱을 부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원이나 곡마단에서 잘 길들여져서 조련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재롱을 떠는 짐승들을 볼 수 있습니다. 원숭이의 재롱 또한 바다의 돌고래까지 조련사에 의해 길들여진 동물이나 물고기의 재롱을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나운 호랑이나 곰도 길들여 진 다음에는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기도 합니다. 개는 길들여지면 시장까지 봐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모든 짐승들은 조련사에 의하여 길들여지는데 그런데

사람들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혀를 다스리기가 쉽지 아니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릇 자기 혀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입술에서 저주의 말을 버리도록 해야 합니다.

내 입술에서 파괴의 언어를 제거해야 합니다.


3) 세상을 살려내는 생명의 언어가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거짓된 경건의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떠들어댑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면 이것은 은혜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함부로 내뱉어지는 말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1장 26절에서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않는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 사망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런 신앙생활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입으로는 경건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찬송도 축복도 말로써 합니다. 그런가 하면 칭찬도 원망, 저주도 말로써 합니다.

히브리말로 '축복'은 '바라크'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에서 '바라크'라는 말은 '좋은 뜻의 말을 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라크'라고 하면 찬양한다는 말이 되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바라크 한다'라고 하면 축복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좋은 말을 하면 이것이 찬송입니다. 사람을 향해서 좋은 말을 하면 이것은 축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말은 축복과 저주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 한다 망한다 하면 망합니다. 복을 빌면 복이 됩니다. 은혜가 있을 지어다 하면 은혜로워집니다.

▶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축복의 말을 합니다. 창조적인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언어의 변화가 행복의 척도입니다. 행복하려면 먼저 말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말이 좋아져야 합니다. 말이 신선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창조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이 충만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드럽고 온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

힘을 내세요.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힘이 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해 보도록 하세요.

그러면 당신도 힘을 얻을 테이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걱정이 사라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속삭여 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용기를 얻을 테니까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용기가 생겨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속삭여 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용기를 얻을 테니까요


조건 없이 용서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 말로 정말 감격하거든요.  그러면 당신도 용서를 받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따사롭고 푸근해 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또렷하게 해 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감사를 받게 될 테니까요


아름다워요. 라는 말입니다

오늘 이 말을 꼭 전하세요. 그러면 당신도 아름다워지게 될 테니까요


사랑해요. 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사랑이 깊어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하셔야 해요

그러면 당신도 사랑을 받을 테니까요


사람은 손이나 발로 짓는 죄보다 입으로 짓는 죄가 훨씬 만다고 합니다.
성경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더럽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입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우리의 말 한마디를 통해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죽게 만들어 버리는 사망의 언어를 버리고 세상을 살리게 하는 생명의 언어를 사용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들의 언어를 통하여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며 모든 사람을 살려내는 언어의 힘을 가진 성숙한 성도들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