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근대 설교 연구-

 

Ⅰ. 조나단 에드워즈

1. 조나단 애드워즈의 생애

조나단 에드워즈는18세기 영국으로부터 이주해 와 뉴잉글랜드를 세웠던 중심부인 코네티컷주의 이스트 윈저에서 전형적인 성직자의 가문으로 지도적 위치를 지켜온 에드워즈 가(家)에서 출생했다. 그가 출생한 1703년은 설교를 통해 영국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던 웨슬리의 출생과 같은 해였다. 에드워즈는 3대째 성직은 이어온 가문에서 11남매 가운데 유일한 아들로 태어나 성직을 이어받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에서 살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적 적성과 설교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인물로 인정을 받았고 훈련의 과정을 거쳤다. 그는 1716년 13세의 어린 몸으로 예일대에 입학하였고 그의 영성을 새롭게 하는 신앙으리 체험을 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된다. 에드워즈는 예일대를 졸업한 이후에 영적인 회심의 경험을 통해서 목회자가 되기를 결심하였다. 이 경험은 애드워즈는 그의 설교에서 “종교적이고 초 자연적인 빛”이라고 불렀다. “이 빛은 하나님의 이해이며 성경과 자연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의 새로운 감각이었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졸업 후 잠시 임시목사로 뉴욕에서 교회를 섬긴 그는 1724년 21살의 나이로 예일대학의 강사로 2년 동안 가르치기도 했다. 애드워즈는 1727년 외할아버지가 목회하는 노스햄프톤 교회의 부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던 중 1729년 외주부의 사망과 함께 26세에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1750년 성찬참여 논쟁으로 교회에서 쫓겨가듯 목회를 마감하했다. 그 이유는 세례를 받는 자들의 공개적 신앙고백을 지금까지 교회의 전통과는 다르게 강조한 점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1734년 설교시리즈인 “믿음에 의한 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을 통하여 노스햄프턴 지역은 신앙부흥이 일어났다. 그의 설교는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유명하게 되었다. 그의 설교는 위대한 조지 휫필드와 뉴저지 장로교인들, 길저드 테넌트와 함께 1740년-1743의 ‘대각성 운동의 원인이 되었다

그는 1750년 목회를 마감한 후 여러 해 동안 저작을 하면서 보냈다. 그는 현 프린스턴 대학인 The College of New Jersey의 학장이 되기로 한 후 안타깝게도 천연두로 죽음을 맞이 하였다.

 

2. 조나단 애드워즈의 사상

1) 하나님 주권사상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주권교리를 이렇게 정의한다. “주권교리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택해서 영생을 주시고, 어떤 사람은 영원히 멸망 받도록 내버려 두어 지옥에서 끊임없는 고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에게는 끔찍한 교리였지만 이후 특별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사람들을 영원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게 되었다. 그 후로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확신을 즐기게 되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하였다. 에드워즈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주장하는 알마니안 주의자들을 비난하였으며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무가치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의지를 강조했다.

2) 계약사상

이 사상은 청교도들의 독특한 신학사상으로 그 뿌리는 칼빈의 신학에 두고 있다. 계약사상의 본질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계약으로서, 하나님은 태초에 인간과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담에게 주신 ‘행위의 계약’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의 법 안에 거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과 복을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약은 인간의 파기로 깨지고 전적 타락으로 빠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제2의 계약인 ‘은혜의 계약’을 체결하신다. 이 은혜의 계약은 인간의 믿음만이 그 조건으로 나타난다.

3)성경관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그의 설교의 가장 기초적인 자원은 성경이었다. 그는 철저히 성경적이었으며, 모든 것은 성경으로 귀속되었다. 설교자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설교자는 자신의 현명함을 나타내거나 자기주장을 교인들에게 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인간적인 설명은 적게 붙이고 성경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지식과 진리를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해서 강단에 서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기의 철학과 사변을 성경의 권위에 종속시켰고 그것들을 종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다. 어떤 좋은 생각이나 영감이 떠오른다 할지라도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차지했다. 그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었다.

 

4) 인간관

에드워즈는 인간의 마음의 기능을 세 가지로 본다. 이해(understanding)와 성향(inclination)과 의지(will)이다.

이해는 지각하고 생각하는 기능으로 인간은 이것을 통해 사물을 살피고 판단한다. 또한 이해를 통해 지각되고 관찰된 사물을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즐거워하거나, 불쾌해 하거나, 찬성하거나, 거부하거나 간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살펴보는 것들에 마음이 기울어지든지, 멀어지든지, 어떤 성향을 가지게 되며, 그 성향의 지배를 받아 결정된 행동에 대해 말할 때 의지라고 한다.

 

 

Ⅱ. 청교도 설교

1. 청교도들의 성경해석 원리

청교도들의 성경해석의 원리의 특징은 문자적 문법적 해석으로 일관되고 조화적인 해석, 교리적 및 하나님 중심적 해석, 기독론 적 해석 및 복음적 해석, 경험적 실천적 해석 등의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문자적 문법적 해석

청교도들은 칼빈의 성경해석의 전통에 따라 본문 말씀을 역사적 문법적으로 해석하였다. 역사적 해석이란 말씀이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문법적 해석이란 전후 문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이러한 역사적 문법적 성경해석의 기초위에 수사학적이요 논리학적인 분석을 첨가함으로 성경을 해석하였다.

 

2) 일관되고 조화적인 해석

성경의 진정하고 완전한 의미가 문제시 될 때 보다 더 명확히 말하는 성경의 다른 부분을 찾으며 깨달아야 한다. 성경의 모호한 내용이 명확한 본문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며 지엽적인 모호한 표현들은 근본적으로 확실한 것들과 조화시켜 해석한다는 원칙이다.

 

3) 교리적 및 하나님 중심의 해석

 

4) 기독론적 및 복음적 해석

그리스도는 모든 성경의 내용이며 골수이며 정수요 하나님의 위로의 영광의 영이 함께 하는 모든 것이다.

 

5) 경험적 및 실천적 해석

청교도들은 심각성과 통찰력을 가지고 경험의 차원을 연구하였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이 방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성경은 인간이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영적 건강함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청교도들은 이 같은 실천들이 강해설교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야 한다고 믿었다.

 

이 다섯 가지 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청교도들은 성령을 의지했다. 그들은 본문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말하기를 성경은 성경자신이 해석한다고 했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시므로 누구도 성령의 도움 없이는 성경을 바로 이해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칼빈의 원리를 따라 청교도들은 성경해석을 하였다.

 

2. 청교도들의 설교의 구성원리

청교도 설교자들은 먼저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려 했다. 그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찾은 다음에는 그 본문 속에서 교리를 찾아내려 했다. 그리고 본문 속에서 그러한 교리를 찾아낸 것이 왜 정당한지 그 이유를 밝히고, 같은 교리를 가르치는 다른 성경 본문을 참고하여 그 본문 속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교리를 확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과 성경을 비교하여 증거를 끌어내고 교리를 입증하야 나갔다. 입증한 다음에 실제 삶의 적용으로 나아갔다. 언제나 그들의 설교에는 적용이 있었다. 청교도들은 인간적인 성경해석을 배제하고 오직 성령이 해석하여 성도들의 생활에 조명하므로 말씀운동을 실천하고자 했다.

 

1) 본문중심의 해석원리

청교도들은 본문해석을 통하여 먼저 성경이 쓰여진 당시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였다. 본문에 쓰여진 단어를 연구하고 정의한 후 문장을 해석하였다.

 

2) 교리유출의 원리

교리는 성경의 명시적인 단어들로 표현되거나 혹은 직접적인 결과로 이들로부터 도출된 신학적인 원리이다. 청교도들은 교리진술을 본문에서 추출하였다. 청교도들은 본문에서 교리를 유출하여 설교의 방향을 제시하고 청중에게 무슨 설교를 하는지 보여주곤 하였다. 교리를 성경에서 먼저 발견한 후 그것을 논의하여야 하였다. 교리를 발견하는 것은 논리적인 분석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수사학과 문법이 동원되었다.

 

3) 논증의 원리

교리 논술이 나온 뒤에는 반드시 왜 그 교리를 진리로 채택하여야 하는지를 논증 하였다. 이 부분을 논증 또는 예증이라 하는데 본문의 논리를 이용하여 논증하거나 인간적인 경험이나 이야기, 신학자들과 교부들의 진술을 가지고 논증할 수 있었다. 예화는 교리를 예증하는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4) 실제적인 적용의 원리

청교도 설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설교의 대부분을 실제의 삶에 적용하는 데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오늘의 삶과 관련이 없는 교리는 생명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조나단 애드워즈의 대표적 설교 “성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들”은 38개의 문단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19개의 문단이 적용부분이다.

 

 

이처럼 청교도들은 개인적인 성경연구와 성령의 도움으로 성경을 연구한 것을 가지고 한편의 설교를 구성하였다. 설교의 주제는 성경에서 찾았고 서론부분은 본문의 문맥에서 인출하였으며 그 내용은 간단하고 명료하였다.

 

 

 

Ⅲ.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의 특징

1. 조나단 에드워즈 설교의 전개방법

에드워즈가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윌리암 퍼킨스의 「설교의 기술」인데, 청교도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즉, 논리적 전개, 단순하고 평이한 스타일, 간단명료한 개요, 요점의 반복, 대지와 소대지의 구분, 예화의 사용 억제, 자신의 지식 나열에 대한 거부, 균형 잡힌 언어의 사용들로 사실감이 있게 하는 점 등이다. 에드워즈의 설교 구성 방법의 순서는 본문을 선택하고 설교의 윤곽을 작성한 후 분석을 하고 그 구조의 틀 안에 적합한 단어를 선택하여 배열한다. 에드워즈는 단어를 선택하는 데 가장 신경을 썼으며 함부로 선정하지 않았다.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나름대로 규정적인 설교구조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대지가 나누어지고 그 대지 밑에 소대지가 첫째, 둘째 순으로 전개하고 반제를 한 후에 응답의 순서를 가졌다. 많은 설교에서 에드워즈는 공식적으로 설교제목을 말한 후에 주제를 전개해 나갔다. 그의 글의 특성을 명확하고 간결하였다. 이것이 그의 문학적 창의력에서 나온 특별한 기법이다.

에드워즈는 설교시 체스추어도 없었고, 그의 목소리는 매혹적이지 않았으며, 시력이 약하여 원고를 눈앞에 가까이 놓고 조용한 목소리로 원고를 낭독해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에드워즈의 본문의 샘물을 깊이 파는 석의, 묵상과 기도, 신학적 해석과정을 통해 주어진 주제나 교리를 신실하게 성경적으로 전파하였기에, 또 그의 설교가 회중의 심정을 강타하고 지성에 불을 붙이는 설교를 하였기에 하나님은 그의 메시지를 통해서 신대륙에 대각성운동과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에드워즈의 설교의 결론은 예외 없이 적용의 항목을 두어 메시지의 의미를 현재의 상황과 결부시키고 있다.

2. 조나단 에드워즈 설교의 본질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존 파이퍼 목사는 에드워즈의 설교의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다.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의 본질은 몇 가지의 특징들로 정리될 수 있다. 이 특징들은 에드워즈에 관한 사실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시대에도 적절한 도전을 줄 만큼의 가치를 갖는다.

 

1) 거룩한 감정을 일으키라

설교자 스스로가 죄에 대한 증오, 하나님을 기뻐함,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 그의 자비에 대한 감사, 거룩함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설교 가운데 이러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함으로 자연스럽게 설교를 듣는 청중들로 하여금 세상과는 다른 구별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그의 설교의 특징이다. 왜냐하면 행동의 근원이 바로 감정의 변화를 통해서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는 그는 경건한 행동의 근원 역시 감정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설교를 듣는 청중들로 하여금 거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려고 노력하였다.

 

2) 마음을 밝혀라

에드워즈는 “우리들의 회중은 머릿속에 무엇을 저장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을 훨씬 더 필요로 한다” 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설교를 함에 있어서 종교의 진리를 명백하고 분명하게 설명해주고, 청중들이 갖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밝혀주고, 이성과 논증의 힘으로 확신을 주고, 이해력과 기억력의 도움을 받아 쉽고 명백한 방법론들을 눈여겨보다가 그것으로 자신의 설교를 조직화하는 것은 설교자에게 아주 유익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좋은 설교란 청중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진리로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3) 성경에 흠뻑 적셔라

그의 설교 원고 중에 자신의 말을 지지해주는 환언하면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게끔 해주는 성경본문의 구절을 써넣는데 대단히 많은 정력을 기울였다. 그의 설교는 성경에 흠뻑 적셔져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그의 설교 전체가 성경에 흠뻑 적셔야 한다고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꾸준히, 계속하여, 그리고 자주 성경을 연구해야 하며 수백권의 노트를 필요로 하고 가능한 모든 통찰력을 기록하고 연구하였다.

 

그의 설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에서는 시편말씀과 복음서의 말씀 이사야서, 잠언 등 여러 성경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미끄러운 곳을 걷는 사람은 언제든지 넘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이와 똑같은 말씀이 시편 73편 18절에서 19절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 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 하였나이다”

“그것은 누구의 진노입니까? 그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진노입니다.…왕의 진노하면 물론 무섭습니다.… 잠언20장2절도 이 사실을 긍정하고 있습니다. ‘왕의 진노는 사람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 이니라’

“그것은 아주 맹렬한 진노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구절들이 종종 나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9장 18절에 보면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 그리고 이사야 66장 1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이외에도 여러 곳에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에 대한 구절들이 나와 있는데, 요한 계시록 19장 15절을 보면~ ”

 

4) 유비와 이미지를 활용

에드워즈는 하늘의 영광을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것으로, 지옥의 고통을 극도로 무서운 것으로 과도하게 표현했다. 그의 설교는 이처럼 강력하고 지속적인 인상을 주기 위한 온갖 비유적 표현들로 가득했다. 이러한 비유와 이미지는 심오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설교본문

비유와 이미지 분석

비유법

이미지

그들은 멸망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마치 미끄러운 곳에 서 있는 사람이 항상 굴러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는 것처럼

멸망이란 무의식 관념을 시각을 가진 사물로 의인화

의인법

직유법

시각적

촉각적

하나님의 공의가 가던 길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관념인 공의가 말을 하는 사람에 비유

의인법

청각적

그들을 붙잡은 손을 놓아

손은 육체적 손이 아닌 제어하는 권한과 능력을 비유함

상징법

시각적

악인들의 우편에는 귀신들이 항상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편이란 위치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류, 협조자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

상징법

시각적

지옥의 원리들은 지옥불의 불쏘시개들입니다

원리를 불쏘시개로 비유함

은유법

시각적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썩은 덮개로 지옥의 구덩이 위를 걸쳐놓은 바로 그 위를 걷고 있는 사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지옥에 떨어질 위험에 있는 위태로운 사람으로 비유함

은유법

시각적

유황불이 타는 불못은 여러분의 발밑에까지 밀려와 있습니다

지옥의 불못을 지옥을 대표하여 비유적으로 말함

제유법

시각적

하나님의 정결하신 눈을 격동시킴

눈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으로 사용되어 하나님을 격동한 것을 비유함

환유법

시각적

여러분은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습니다

가느다란 실에 매달림은 위태로운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함

은유법

과장법

촉각적

여러분은 멸망하기로 예비된 진노의 그릇

토기장이와 그릇의 비유에서 그릇은 피조된 인간을 상징한다.

상징법

 

그의 대표설교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아래 있는 죄인들”에 사용된 비유법에는 직유법, 의인법, 은유법, 상징법, 환유법, 제유법등이 있으며 사용된 이미지는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이미지가 있다. 그 예시를 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조사한 바로는 애드워즈는 이 설교의 길이 동안 무려 96개의 비유법을 사용하였다. 그 비유 중 의인법과 직유법, 상징법, 은유법의 사용이 전체의 88%를 차지하였다. 상징법이 많은 이유는 하나님의 손이라는 상징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사용도 많다. 주로 시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 촉각적 이미지만 사용하였다. 이미지를 사용한 총수도 100개에 이른다. 이는 2시간의 설교를 가정한다면 약 1분마다 1번씩의 비유나 이미지가 사용되어 설교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에드워즈는 거룩한 감정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설교를 작성함에 있어서 비유와 이미지를 가득 담아 회중들의 상상력을 이끌어 내면서 감동적으로 선포하는 수사학적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5) 위협과 경고를 사용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것처럼 사랑하기에 거친 말투로 위협과 경고를 사용하고 있다. 지옥은 회개치 아니한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그들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그러신 것처럼 당연히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두려움과 죄의식을 낳는데 위협과 경고가 비생산적이라고 하는데 그는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처럼 성도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성경의 경고에 주의하여 경건하게 인내할 수 있도록 경고를 사용하고 있다. 즉 성도인 회중들에게 성경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의 설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의 적용의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위협과 경고를 하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 중에 아직 중생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이점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맹렬한 진노를 발하신다는 말씀은 곧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가차 없이 심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여러분이 지옥에 떨어져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큰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래서 여러분의 불쌍한 영혼이 그 고통에 못 이겨 끝없이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 여러분을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진노를 조금도 늦추지 않으실 것이며 그 진노를 조금도 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6) 반응을 촉구하라

설교할 때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설교자의 호소를 통해 청중들이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그의 설교는 적용이라고 불리는 긴 부분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그의 교리를 함축해서 말하고 반응을 요구한다.

 

그의 설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의 적용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촉구하고 있다.

“자, 여러분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주머니나 아저씨, 청년이나 어린이 할 것 없이, 자기는 그리스도 밖에 있으며 지옥 구덩이 위에서 하나님 손에 붙들려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모두 다 큰소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지금은 주님이 받으실 만한 때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중에 아직도 그리스도 밖에 계신 분들은 모두 깨어 장차 임할 진노로부터 도망하십시오. 지금 여기 계신 분들 중 많은 분 들 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거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소돔으로부터 도망 합시다”

 

7) 마음의 작용을 탐구하라

에드워즈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가졌다. 에드워즈의 이러한 지식은 청교도들이 즐기는 내적 성찰로부터 유래한다. 그리고 대각성 운동 기간에 많은 종교적인 경험들에 대한 주의 깊은 시험에서 마음의 작용에 대한 탁월한 이해력을 얻었다.

 

8) 기도 가운데 성령께 복종하라

애드워즈의 능력 있는 설교의 배후에는 그의 능력 있는 기도가 있었다. 그는 자기시대의 젊은 목사들에게 충고하기를 “켜서 비취는 등불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여야 하고, 그리스도와 가까이 교제해야 한다” 고 말했다. 설교자의 은밀한 기도와 회중들 사이의 기도합주회는 하나님의 자비가 내려와 성령으로 그리고 능력으로 나타나도록 공모하였다.

 

9) 상한 심령과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라

좋은 설교는 상한 심령과 부드러운 성품으로부터 온다. 강단에서 에드워즈의 힘의 비결중 하나는 가장 무거운 문제들도 감당할 수 있었던 “상한 심령의” 부드러움이었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공허함, 대책 없음, 그리고 심각한 죄성을 알기 전에는 그 성품은 결코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이다. 에드워즈의 능력은 수사학적인 화려함 또는 귀를 울리는 듯한 천둥소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에 있었다.

 

10). 강렬하게 하라

강력한 설교는 무언가 대단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조지 휫필드의 설교를 통해 자신의 강렬함이 결여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논지에 압도적인 무게와 감정의 강렬함은 있었으나 그의 설교방식에 있어서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설교에 있어서 강렬함의 결여는 설교자가 믿지 않고 있거나 자신이 이야기하는 바에 의하여 한 번도 강하게 붙잡혀 본바 없다는 것으로 , 아니면 그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Ⅳ.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의 영향

1. 설교학에 끼친 영향

그의 설교세계를 살펴보면 비록 예화가 부족할 지라도 진리가 사람들 앞에 제시되었고, 마음속을 꿰뚫는 자질이 드러났다. 에드워즈의 설교가 교리적이고 때로 심판적이기는 했으나 그의 구령에 대한 열정은 높이 살만 하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교리는 생동감 있게 전해졌고, 그의 설교는 설득력이 있어서 듣는 사람들의 양심을 사로잡았다.

또한 그의 상상력이 담긴 설교는 후예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 상상력은 꾸준히 연구되고 논의 되다가, 오늘날 폴스캇 윌슨에 이르러 많은 설교자들이 회중을 사로잡기 위한 상상력을 통한 설교방법을 제안하는데 까지 성장했으며, 설교에 있어서 상상력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너무 길고 장황하게 보일 수도 있었으며, 그의 전달방법은 오늘날의 설교방법과 비교해 볼 때 전달하는 태도에 있어서 회중과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부흥운동을 지지하는 신파(New Side)와 부흥운동을 반대하고 웨스트민스터의 신앙고백을 강조하는 구파(Old Side)로 나누어지게 되어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였다. 결국 뉴 잉글랜드 신학은 순수한 칼빈주의자들로부터 반감을 사게 되고 또한 보수주의자들에게도 호감을 사지 못하게 되어 그 자취를 잃게 되었으며, 그 대신 자유주의와 칼빈주의를 순수한 위치로 회복시키려는 두 방향으로 귀착되게 되었다.

 

2. 대각성 운동에 끼친 영향

그는 미국이 낳은 첫 칼빈주의 신학자였고 목회자이며 철학자였다. 그의 설교는 시대를 뛰어 넘은 불멸의 설교자였으며, 식민지 시대의 미국의 가장 큰 거울이었으며 그의 설교로 말미암아 영적 대각성 운동의 불이 질러졌다. 그래서 그는 미국 설교사의 꺼지지 않는 불이 되었다.

그는 1727년부터 1750년 노샘프턴에서 목회하면서 미국의 대각성 부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설교는 때로는 애절한 호소였고 때로는 예언적 경고로 선포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설교 중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Sinner in Hand of an Angry God)” 이라는 설교는 강퍅한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대각성 운동의 선구적 폭탄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에드워즈가 가졌던 설교의 사상과 구성의 과정은 실로 오늘의 설교자들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모든 설교를 단순한 자기의 지식에 근거하기를 거부한 설교가 였다.

애드워즈는 그와 동시대의 인물인 조지 휫필드와 같은 인기와 명성은 결코 얻지 못하였다. 아마도 그의 설교는 너무나도 세심하고 논리적이고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도 꼼꼼하였으며 지적인 면에 있어서도 너무 높은 수준에 있었던 까닭에 그는 일반적인 회중들의 인기를 차지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고 진실과 사랑과 정열이 담긴 그의 설교는 분명 대각성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미국의 설교사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영향력과 그 자취를 남겨 놓았다.

미국의 1차 대각성 운동은 1720년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은 화란 개혁교회 목사 데오도르 프리링 하이젠이 깊은 내적 변화의 필요성을 확신하고 회개의 필요성, 헌신적인 생활, 열성, 평신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길버트 테넨트의 열렬한 복음적 설교로 동아일랜드, 버지니아로 퍼지게 되었으며 1734-1735년에 와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로 메사추세크 놀램톤 지역에 대각성 운동의 불길이 일게 된 것이다.

에드워즈의 설교는 수많은 회심자들을 만들었다. 모든 계층의 무감각한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이에 대해 존 길리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에드워즈가 설교할 때에 무감각하던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밀려오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하여 갑자기 하나씩 차례로, 너댓명씩, 놀라운 방식으로 회개하였다…회개의 사역은 가장 놀랄만한 방식으로 수행되었으며, 점점 더 강해졌다. 많은 영혼들이 무리를 지어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왔다.…성령의 은혜가 한곳에서 여러지역으로 번져나갔다.…성례를 8주만에 거행했는데 한 차례의 성례식에 약 100명이 참여하였는데 이중에 80명이 한 번에 성례를 받았다.”

애드위즈는 청교도주의의 복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뉴잉글랜드 칼빈주의와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의 전승에 확고히 섰다. 특히 애드워즈는 18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인 알마니안 주의에 대항했다. 에드위즈는 새로 밀려드는 알마니안 사상을 반대해서 정통 칼빈주의의 교리를 반복하였다. 애드워즈는 칼빈주의 신학과 부흥주의를 적절히 조화시켰다. 에드워즈의 칼빈주의는 정통신학과 부흥주의의 성령운동이 결합된 복음전도적인 칼빈주의(Evengelical Calvinism)였다. 에드워즈는 청교도주의가 퇴조했던 당시에 그의 확고한 정통주의 신학으로 청교도주의를 새롭게 복원시킨 공로자였다. 결국 그는 서구문화의 세속적 흐름이었던 인간 이성주의가 교회 안팍으로 만연하는 분위기속에서 청교도 정신을 18세기 영적 대각성운동에 새롭게 접목시킨 위대한 신학자였다.

 

3. 미국사회와 교회에 미친 영향

먼저 그는 교회성장에 공헌하였다. 에드워즈는 휫필드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확신을 중요시하여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세례 받는 것을 옳지 않게 생각하였는데 바로 이점이 침례교회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에드워즈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체험하게 했고 이들은 교회는 오직 신앙에 근거해야 한다는 확신에 주(州)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던 회중교회를 떠나서 침례교회로 넘어갔다. 따라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전에는 보잘 것 없었던 침례교회가 1차 대각성 운동 후에는 막강한 교파로 등장하였다. 이들을 분리침례교회(Separate Baptist)라고 부른다.

두 번째로 선교운동이 시작되어 활발히 진행되게 되었다. 에드워즈의 심오한 영성신학의 영향으로 일어난 대각성과 부흥은 구령의 열정으로 연결되었다. 에드워즈의 영혼에 대한 사랑과 전도의 열심은 타락으로 달려가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교열을 고취시켜 19세기 미국 주도의 세계선교를 가져왔으며, 인디언 선교와 아프리카 흑인들을 위한 선교사 파송이 일어났으며, 노예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제 2차 대각성 운동을 전후해서는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 1767~1834)가 인도선교사로 파송되기도 하였다. 결론 적으로 에드워즈의 설교와 부흥 운동을 통한 대각성 운동은 복음의 열기를 국내외적으로 확산해가며 선교의 시대를 연 선교의 운동이었다.

세 번째로 고등 교육이 활발하게 일어나서 대학들이 설립되었다. 개종한 사람들의 감격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과 지역사회에 대한 의무감, 젊은이들이 목회자가 되려는 열심으로 인해 부흥운동은 대학의 설립으로 나타나는 지성운동으로 연결되었다. 펜실베니아 대학(1755), 뉴저지 대학(후에 프린스톤 대학, 1740), 장로교회의 하노버 대학(1746)을 설립하였고, 브라운 대학(1764)과 후에 릿거즈 대학이 된 컨즈 대학(1766)이 설립되었으며, 인디언과 그들을 위한 선교사 훈련을 위해 1743년 뉴 햄프셔에 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런 대학들의 설립은 부흥운동이 반드시 지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며, 이는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열정과 지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4. 일반적인 영향

그의 영향은 비단 미국교회사에만 영향을 미친것은 아니다. 1915년 심리학자 고다드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손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후손 1,394명중 대학졸업자는 195명, 13명이 큰 대학의 총장이나 학장이고 65명이 대학 교수, 60명은 의사, 100명 이상이 목사나 선교사였으며, 75명이 공군장교, 6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술가나 신문기자로 봉직해서 그들 가문에서 출판된 책이 무려 135종이나 되었으며 유명잡지가 18종이나 발간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100명 이상의 법률가가 있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은 미국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법학교수요 30명은 재판관으로 사회에 봉사라고 있었다. 공무원 생활을 하는 사람도 80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그중 한사람은 부통령이었고 세 명의 상원의원을 위시하여 숱한 주지사. 국회의원, 시장, 대사, 공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로서는 실업가로서 최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철도, 기선, 은행, 보험회사 등의 책임 경영인이 부지기수였다. 또한 그렇게 많은 후손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범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연구결과에서 밝혀진 대로 에드워즈의 영향은 그의 당대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그의 경건한 후손들을 통해 미국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나타났다.

또한 그는 미국인의 정치의식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해 주도된 대각성 운동이전의 미국인들은 미국인이라는 국민의식을 가지지 목하였거나 혹은 미국인으로서의 일체감을 가지지 못했었다. 미국인이 미국인으로서의 일체감을 가지지 못한 데에는 미국 교회의 종파주의도 큰 몫을 담당하였는데 대각성 운동은 이러한 종파주의의 벽을 깨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그는 미국인의 인종주의를 극복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대각성운동의 결과 내가 어느 나라에서 이민을 왔으며 어느 언어를 쓰는가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영국 출신이든, 화란 출신이든, 독일 출신이든, 아일랜드 출신이든 회심한 크리스찬이냐 아니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독립 전쟁(1775~82)은 이러한 대각성 운동과의 관련에서만 완전히 이해 될 수 있다. 독립전쟁은 미국 국민은 하나라는 의식을 전제로 하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의 독립전쟁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의 사상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을 알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를 매우 존경하였다. 그는 합리주의 정신을 그의 조상의 청교도 정신에 주입시켜 미국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 곡 독립전쟁 후에 미국에 전개되는 민주주의 시대에도 그들의 전통적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Ⅴ. 대표설교“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든 죄인들”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 (신 32:35)

 

이 구절을 통해 믿지 않는 악한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수가 위협적으로 진술되어 있습니다. 그 믿지 않는 악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시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이었고, 은혜의 방편 아래에 살고 있었으나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를 보고도 아무런 모략을 얻지 못했고(28절) 총명이 전혀 없었습니다.......

1. 그들은 언제나 ‘멸망 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미끄러운 곳에 서있는 사람이 항상 굴러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2. 이 본문 말씀은 그들이 언제라도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파멸을 당하게 되어 있었음을 함축합니다. 미끄러운 곳을 걸어가는 사람은 어느 순간엘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3. 본문에는 함축된 또 다른 요점이 있습니다.......미끄러운 곳에 서있거나 걸어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밀치지 않아도 스스로 곧잘 넘어집니다.

4. 그러면 어째서 그들이 넘어지지 않았고 지금도 넘어지지 않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이 미끄러운 곳에서 그들을 더 이상 붙잡고 계시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요 점

이 본문 말씀에서 제가 지적하려는 사항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순전하신 기뻐하심 외에는 악한 사람들을 그 어느 순간에도 지옥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 없다”.......이 말씀 속에서 이 점을 관찰하는 것이 진리가 된다는 것은 다음의 여러 가지 요점들을 생각해 보면 드러납니다.

1. 대적이 없는 하나님의 일방적 권능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을 어느 순간이라도 지옥으로 던져 넣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떨쳐 일어나시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하나님의 원수들의 허다한 무리들이 손에 손을 잡고 연합한다 해도 그들은 쉽게 부서집니다. 마치 그들은 회오리 바람 앞에 쌓아놓은 검불더미 같습니다. ......우리는 땅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발로 밟아 짓이겨 버리기가 쉽다는 것을 압니다.........

 

2. 찍혀 던져질 나무

악인들은 지옥에 던져지더라도 ‘마땅합니다.’하나님의 공의가 가던 길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그것이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이요, 하나님의 순전한 의지입니다.

 

3. 이미 확정 판결이 난 자들

그들은 이미 지옥에 가기로 ‘정죄’의 선고를 받은 사람들입니다.......그렇습니다. 모든 회개치 않는 사람들은 마땅히 지옥에 속한 사람입니다.......

 

4. 준비 완료된 형장

이제 그들은 지옥의 고통으로 표현된 , 하나님의 바로 그 ‘분노’와 진노의 대상들이 됩니다........ 지금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함을 느끼고 당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잡은 손을 놓아 당장에 그들의 생명이 그치도록 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의 악함을 생각지 않거나 분개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하나님의 분노는 그들을 향해 불타오르고 있으며, 저주는 잠들지 않고 있습니다.....무저갱이 그들 아래서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5. 삼킬 태세를 갖춘 마귀

‘마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바로 그 순간에는 언제라도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당도하여 자기의 소유로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만일 하나님께서 손을 거두시면, 그 귀신들의 제어하는 것이 사라져 순식간에 그 불쌍한 악인들의 영혼을 향해 재빠르게 덮쳐 올 것입니다......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 악인들은 신속하게 삼킴을 받아 멸망당할 것입니다.

 

6. 끝없이 파괴하려는 죄의 본성

악인들의 영혼 속에서 왕 노릇하는 지옥의 원리들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제어하지 않으신다면 그 원리들은 금새 불꽃을 일으켜 그 화염을 지옥에 까지 뻗칠 것입니다......그들을 온전히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지옥불의 불쏘시개들입니다.

압착기에서 튕기는 배신자의 피

성경에서는 악인들의 영혼을 가리켜 요동하는 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의 악함을 제어하고 계십니다. ... 마치 요동하는 바다의 격노하는 물결을 제어하시면서......그 제어하시는 세력을 거두시면 그 물결은 앞에 놓인 모든 것을 금방 쓸어버릴 것입니다.

 

7. 예상 못할 순간에 집행될 형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편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악한 사람들에게 한순간도 안전한 보장이 되지는 못합니다.....하나님께서 악한 사람들을 세상에서 취하여 지옥으로 보내는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방법을 갖게 계십니다. 그러므로 악한사람을 멸하기 위해..... 죄인들을 세상에서 떠나게 하는 모든 방편들이 바로 그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그 방편들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으로 그 하나님의 권세와 작정에 달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어떤 순간에 지옥에 갈 것인지는 하나님의 순전한 뜻에 달려 있을 뿐 아니라, 그 경우에 방편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8. 꾀부림으로 피할 수 없는 죽음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세심히 주의하거나,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보존하기 위해 유의한다할지라도, 그것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안전을 한 순간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9. ‘내가 어리석었다’ 고 후회하는 지옥사람들

........각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그 지옥의 저주를 피할 런지 방안을 강구합니다.....그렇게 하면서 자기만은 설마 그 고통의 장소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 약속밖에 있는 거듭나지 않은 자

.......그러하기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지옥 구덩이 위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불구덩이에 들어갈 만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 형벌의 선고를 받았습니다......모든 순간에 그들을 보존해 주는 것은 오직 그 성난 하나님의 자원하는 뜻, 언약에 의해 매인 것이 아닌 오래 참으심밖에 없습니다.

 

적 용

이 두렵고 떨리는 주제를 활용하여 이 회중속의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깨우쳐 드려야겠습니다............그 유황불이 타는 불 못은 여러분의 발밑에 까지 밀려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타오르는 화염으로 가득 찬 무서운 구덩이가 있습니다. 지옥이 넓게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1. 무서운 ‘왕 중 왕’의 진노를 막을 자가 없음

그 진노는 ‘누구의’진노 입니까. 그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진노입니다.........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왕들은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들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

 

2. 은혜의 때가 지나면 쏟아지는 맹렬한 보응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함에 노출되어 있습니다........하나님의 격노하심이여! 여호와의 맹렬하심이여! 오, 그것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요?.....

이 자리에 있는 아직까지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이 이 맹렬한 노를 발하신다는 말씀은, 어떤 동정도 없이 노를 부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무한한 사랑을 보여 줌같이 한없는 진노의 두려움도 보여주심

여호와의 진노가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 주실 목적으로 그 비참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 만일 여러분이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머물러 있다면 바로 그 일이 여러분에게 떨어질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위엄과 권능과 가공스러움이 여러분에게 크게 나타나,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고통을 여러분에게 가하게 될 것입니다........

 

4. 그 진노의 영원함, 끝도 쉼도 취소도 있을 수 없음

그 진노는 ‘영구한’ 진노입니다........ 이 큰 진노와 무한한 비참의 위험 속에서 매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상태가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이 강론을 듣는 자 중에는 내일 지옥에 있을 자도 있다.

우리는 누가 그런 사람이 될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이 전체 회중에서 배로 이 비참을 당할 사람이 한 사람만 있다 해도 그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그러나 안타깝습니다....... 여러 젊은이들이여, 당신들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보배로운 시기를 소홀히 하겠습니까? 여러분과 비슷한 연령의 수 많은 다른 사람들이 청년의 허망한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뛰어 몰려오고 있는데 말입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각 사람은 지금 깨어서 임박한 진노를 속히 피하십시오. 이 회중 대부분의 머리위에 틀림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습니다. 각 사람은 소돔에서 서둘러서 빠져 나오십시오. 창세기 19장17절에서는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라고 경고 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㰋®단행본

1) 양낙홍.『조나단 에드워즈 생애와 사상』.부흥과 개혁사. 2003.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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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장복 외,『설교학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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㰋®논 문

1) 존 파이퍼.『에드워즈의 신학과 설교』.그 말씀. 1993. 서울

2) 김형철.『조나단 에드워즈가 1차 대각성운동에 끼친 영향』.합신대 석사논문. 1995

3) 김성국.『대각성 부흥운동의 주도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사상 연구』.장신대 목회전문대학원 석사논문. 2004

4) 정민용.『영적 각성과 설교의 상관관계』.고신대 석사논문. 2004

5) 김용웅.『조나단 에드워즈 설교 연구』.합신대 석사논문. 1996

6) 김철온.『조나단 에드워즈가 1차 대각성운동에 끼친 영향연구』.고신대 석사논문. 1996